-
-
삶으로서의 은유
G.레이코프 외 / 서광사 / 1995년 8월
평점 :
절판
인식에 있어서 파리와 인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각적인 면에서만 한정해서 본다면 분명 인간과 파리는 같은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자료를 받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는 각각의 독특한 신체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신체적 차이에 의한 감각입력자료의 차이다. 그리고 하나의 대상에 대해 파리와 인간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똥이 그렇다. 파리는 똥에 달려들지만 (물론 제한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똥을 피한다. 대상은 같지만 반응을 서로 다르다.
특정한 행동은 순전히 주관주의적인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전히 객관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이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이분법을 허무는 것은 바로 '몸'의 존재다. 파리의 '몸', 인간의 '몸' 말이다. 라코프와 존슨이 주장하는 (주관주의도 객관주의도 아닌) '체험주의'의 토대는 바로 '몸'에 있다. 주관주의적 신화 속에서 상상력의 무제약성은 몸의 현존에 의해 제약받는다. 객관주의의 신화 속에서 절대적 진리의 무제한성 역시 몸의 현존에 의해 제한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체험을 은유라는 특정한 방식을 통해 조작한다. 객관주의적 시각으로부터 몸을, 주관주의적 시각으로부터 은유를 포착하여 두 극단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얼핏 스치는 생각에 이건 '이해'를 중시하는 대륙계의 해석학적 전통이 인지과학과 언어철학, 분석철학 등의 영미계 학풍을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와 관련하여 유사한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의 공저자인 존슨의 [마음 속의 몸]이 번역되어 있다. 인식의 해석학적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볼노오의 [인식의 해석학 1,2]도 볼만 하다. '구조'와 '은유'는 언어철학과 인식론에서 중요한 논점들인데 최근에 뉴턴 가버와 이승종의 [데리다와 비트겐쉬타인]에서 '2장 구조와 은유'가 생각난다. 또한 최근 인지심리학적 연구에서 인간 인식능력에 대한 Olympian rationality의 의심과 대안적 패러다임의 모색과도 서로 시사점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