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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분도출판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창성을 위한 독창성, 새로움의 키치화
'가령 단테의 [신곡]이 그동안 낡은 작품이 되어버렸다고 누가 주장하려 한다면 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던 영화들이 불현듯, 전혀 예기치 못한 채로 미숙하고 거의 습작에 가까운 작품으로 판명되곤 하는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의 견해로는 가장 주된 원인은 감독이 자신의 작업을 원칙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도 삶의 중요한 행위로서, 윤리적인 노력으로서 파악하지 않는데 있다. 당대의 첨단 유행에 걸맞게 표현하겠다는 의도가 결국은 몇 년 후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는 표현법의 원인인 것이다: 독창성을 위한 독창성은 의미없는 짓일 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에서의 한 구절입니다. 저 역시 그의 의견에 많이 동조하는 편인데, '새로움'이란 것을 수평적인 맥락성에서 찾고자 할 때 새로움은 키치화되고 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새로움'이란 단지 파편적인 공백 매꾸기(혹은 틈새 공략)나 절충을 통해 어떤 효과를 노리는 일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독창성이니 크리에이티브니 하는 것들은 삶과의 긴밀한 연관성을 상실하고(실존적 관심을 놓쳐 버리고) 오직 유행, 제도, 시장현상적인 연관성을 통해서만 부각되는(구조적 관심 과잉) 면이 많은 듯 합니다. 바야흐로 이 분야에서도 '과잉사회화'가 문제인 거죠. '새로움'이란 자신과 당대의 삶과 경험, 감각의 뿌리까지 내려가지 않고서는 얻기 힘들다고 봅니다. 뿌리(radix)의 강조를 깊이에의 강요라고 대항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 생각으론 그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기꾼으로 밖에 안보이고요. 뿌리는 대항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