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할아버지의 방주 이야기
톰 둘리 지음, 빌 루니 그림, 정연희 옮김 / 꿈을이루는사람들(DCTY)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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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너차례 아이들 손에 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들려준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나 교회의 학습서, 어린이용 신앙서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에 노아의 방주와 무지개에 대한 이야기는, 신앙적인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함빡 머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이 노하셔서 홍수를 일으키고, 노아와 가족 그리고 선택된 동물들은 방주에 피신해서 살아남았다는 것과 무지개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노아의 방주에 대한 그림책과 이야기 책들을 보았던 기억때문인지 몰라도 처음 이 책을 대하게 되었을 때는 마음속에 큰 기대보다는, 이전에 보았던 이야기 수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우선이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림은 조금 다르겠지만..... 하지만 책을 펼쳐서 읽다보니 저자가 이야기하는 노아의 방주는, 아이들이 그냥 듣기 좋게 들려주는 이야기로서의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었던 대로의 노아의 방주, 즉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된 역사가 사람들의 지독한 죄악으로 인해 물로 심판을 받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노아를 통해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선택받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남기신 창조주의 섭리로서의 방주이야기를, 또한 그 안에 담긴 신앙적인 의미들까지 명쾌하게 들려주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자체보다 더 세밀하게 하나님이 의도와 계획과 도우심을 저자 나름의 탁월한 식견으로 풀이하여 설명하고, 또한 이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한 기발한 생각도 들려줍니다. 예를 들면 동물들은 방주내의 공간과 홍수 이후의 번식을 고려했을때 아마도 어린 새끼들이 주로 방주로 피신하였을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으니까요.^^ 또한 방주의 모양에 대한 설명과 방주는 배가 아니라 물에 떠 있는 커다란 상자모양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 그리고  방주의 크기를 컨테이너와 비교하여 공간의 충분함을 설명한 부분은 저자가 확고한 신앙적인 믿음을 전하고자하는 의지이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설과 이야기로서의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노아의 방주를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제일 중요한 사실인 방주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와 연결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의미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진처럼 세밀하지만, 또한 그림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정성들여서 그려진 삽화에 대한 칭찬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크리스챤으로서 이 책을 보며 - 신앙인이 아니라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된 이 이야기가 조금은 거부감을 가지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아마 이전에 이보다 더 아름답고 신앙적으로 표현된 아이들 책으로서의 노아의 방주는 없었을 듯 하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것중 제일 멋진 노아의 방주이야기였으니까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들에게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과 기쁨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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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데이비드 우튼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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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진실>이란 제목에서 의학속에 뭔가 숨겨진 비밀들이 있는 듯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부제에서는 의학이나 의사들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인 자세마저도 느껴집니다. 뭔가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것이 의학과 의사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Bad Medicine. 저자는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이라는 구분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뼈대를 구축하는 듯 합니다.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입히기 일쑤였던 시대의 의학을 아마도 나쁜 의학이라고 하고,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의 치료에 진정한 도움을 주기 시작한 의학을 좋은 의학이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나쁜 의학이라는 의미가 현대의학속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나 병원에서의 질병감염 등의 문제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균의 발견과 예방접종 등의 발견으로 진정한 근대의학이 시작되기 이전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일쑤였던 사혈, 사하 등의 치료법에 대한 공격적인 의미에서의 나쁜 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65년을 리스터의 방부외과수술을 기점으로 진정한 좋은 의학이 탄생했다고 믿는 저자는, 하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말하는 나쁜 의학이 지지를 받고 여전히 치료법으로 행해졌다는 점에 대한 신랄한 문제제기에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진보라고 생각되는 여러 치료법이나 학문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나쁜의학이 과학적 통계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채 지속된 이유, 의학이 많은 획기적인 발견에도 불구하고 치료법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지연된 이유가 무엇인가? 가 아마도 이 책의 가장 주된 논점인 듯 합니다.   

 저자는 의학의 역사가 히포크라테스 이후로 맥을 이어오는 것으로 모든 의학사에 설명되지만, 자신의 좋은 의학, 나쁜 의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1865년을 기점으로 발전한 근대의학과 히포크라테스 의학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연속성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나쁜의학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1920년대까지 지속된 이유는 성공에 대한 환영, 위약 효과, 질병이 아닌 환자를 생각하는 경향, 순응의 압력, 통계에 대한 저항 등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1865년을 기점으로 발전한 근대의학의 발전과 치료법들이 아주 더디게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정서의 역할과 상상력의 한계, 그리고 제도의 보수성에서 그 설명을 찾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기술을 익히는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면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기는데 기존의학의 토대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그러한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생각을 추구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그 이유로 드는데, 예를 들면 세균설이 자리잡기 시작하던 때에는 전염병의 퇴치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천연두의 예방접종이라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생제라는 개념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질병의 전체적인 분야에 이것을 적용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것에 저항하는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이 저자가 말하는 나쁜 의학이 19세기초까지 존재하였던, 그리고 지금은 너무도 명확하게 보이는 의학의 진보들이 지체되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로서의 의학사에서 그러한 예들이 발견되는 것처럼, 전염병이후 시대라고 할 수 있는 현재에는 암이나 기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전염병들에 대한 현대의학의 대처가 과거에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에서 보였던 오류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료종사자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책의 제목을 보고는 현대의학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실제 내용은 현대의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역사로서의 의학의 부조리나 왜곡, 실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인간사에 부정적인 측면들이 있듯이 의학사에도 그러한 것들이 끼어들어 있다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현재 최신기술이니 획기적인 약물이니 치료법이니 하는 것들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의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어떤 획기적인 발견보다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그것의 개선이라는 과정속에서 이루어진 면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이 끊임없이 자기탈피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것이고 좋은 의학이라고 할수 있을 듯 하고,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제기한 의료외적인 면 때문에 지연의 역사를 썼던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이 보여주는 교훈과 근거없이 맹신되었던 히포크라테스 의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진지하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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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데이비드 비벨 지음, 김인경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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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발전과 과학 문명의 발전이 어우러진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고난)이라는 것이 적어도 유쾌하게 취급되지는 않는, 즉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통증이 적은, 또는 통증이 없는 것들을 더 나은 것, 우수한 것으로 선호하는 듯 하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겪게되는 통증 -예를 들면 아이를 낳을 때의 진통-도 이제는 아이를 낳는 이들에게 유쾌하지 못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생기는 듯 합니다. 또한 재미와 쾌락이 우선시 되는 여러 문화적인 것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자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단 육체적인 어려움이나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고통들도 이제는 치료하거나 피해야 할 어떤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로 취급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묻어납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면 시련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지 않아야 된다는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신앙인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시련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놓았습니다. 제일 크게는 목회자인 저자 자신이 원인모를 유전병으로  큰아들을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둘째 아들마저 동일한 질병의 위험을 겪으며 그와 그의 가정에 닥쳤던 시련과 고통의 순간 그리고 그 긴 터널을 지나며 새로이 깨닫고 알게 된 그러한 고통속에 하나님이 담아 놓으신 의미와 이유들을 이야기 하고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고통속에서의 신앙과 방황, 괴리된 삶, 우울 그리고 회복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고통이나 시련들에 대해서,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다 잘 되려고 그러는거야'나 '주님만 바라보면 만사가 형통할거야'라는 식의 진실이지만 공허한 권면들의 실체를 인정하며, 또한 그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에 애통해하는 모습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그러한 상태에서 취할 자세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었나요?'라는 식의 질문이 아니라 그러한 순간에도 함께 하시며 '네 마음을 다 이해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단다.'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겸손히 묻는 자세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욥이 그에게 닥친 고난속에서 보였던 모습은 아마도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자세의 하나의 모범이 될 수도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왜 제가 이래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끈을 놓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함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또렷하게 배울 수 있게되고, 신앙의 성숙을 이끌게 되며, 온전하게 살아있는 신앙을 이룰 수 있게 함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부단히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바는, 고난이나 시련이라는 것이 부질없는, 쓸데없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신앙의 발전과 성숙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무언가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섭리가 함께 한다는 믿음의 눈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난을 무조건적으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설익은 이해로 이리 표현하는 감이 있기에 다시 몇번을 더 읽고서 숙고하여야 할 부분이 있음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고통을 대면하게 될때 신앙인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성품을 믿으면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 그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알고 계신다.

 - 그는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 만큼 강하시다.

 - 그는 당신의 한계를 존중할 만큼 친절하시다.

 - 그는 당신의 의심을 용서하실 만큼 사랑하신다.

 - 그는 당신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실 만큼 사랑하신다.

 - 그는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나약한 당신의 신앙을 받아 들이실 만큼 자비로우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을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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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게리 슈테인가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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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수르디스탄 Absurdistan> 문자적인 뜻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땅'이나 '불합리한 땅'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 소설의 내용을 뜯어본다면 앞에 붙은 '망할놈의 나라'라고 이해해도 될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 이야기는 사랑의 관한 것이고 남에게 당한-이용당한-것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면 러시아의 1238번째 부자였던 자신의 아버지와 뉴욕에서 사귀었던 자신의 여자 친구 루에나에 대한 것을, 이용당한 것이라면 아버지가 미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댓가로 미국 입국 비자가 거부되어, 러시아를  벗어나고자 벨기에 위조여권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발이 묶이게 된 압수르디스탄이라는 나라에서 다문화부 장관이라는 그럴듯한 관직에 앉혀져서 이용당한 것을 말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이 소설은 세상살이의 불합리한 모습, 어이없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이 될 듯 합니다.

 한때 미국에 유학하여 어쩌다보니 대학 (Accidental College)에서 다문화학 학위를 받은 주인공 미샤 보리소비치 바인베르크는 나이 서른의 , 지독하게 뚱뚱하고 파란 눈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아버지는 러시아의 1238번째 부자이고, 뉴욕을 동경하며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사는 것을 기대하며 살지만, 아버지의 미국인 사업가 살해사건으로 인해서 미국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러시아에 묶여있는 우울한 영혼이구요. 뚱뚱하다는 것에 덧붙여 꼭 언급해야할 신체적인 특징은 잘못된 할례의식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못한 생식기를 가졌다는 사실인데, 이건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 육체적인 관계를 가질 때 마다 중요한 뭔가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뚱뚱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생식기를 가졌지만 그에게 루에나나 나나와 같은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지닌 돈이라는 것으로만 설명이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 주인공의 관심사는 먹는 것, 그리고 뉴욕의 여자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인공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닥치고, 어찌하여 벨기에 위조여권을 얻을 기회가 생겨 압수르디스탄이라는 나라에 이르지만, 이곳에서는 석유와 이 나라의 미래를 걸고 권력자들이 거대한 음모가 진행중입니다. 세보족과 스바니족의 인종충돌로 포장된 석유와 나라의 앞날을 건 음모 속에는 두 인종의 권력자들의 권력과 이권에 대한, 그리고 미국 회사의 이권에 대한 어두운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미국의 군수업체의 비리의 일면도 살짝 언급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여기서 이 나라의 다문화부 장관이라는 그럴듯한 직책으로 이용당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부자라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것이 이용의 이유일 듯 한데, 순진한 우리 주인공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듯하지만 결국 모사드 요원에게서 진실을 듣고서, 위험을 피해 국경으로 달아납니다. 우리 주인공의 최대 관심사는 인권이나 자유나 정의가 아닌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들과 여자 친구 루에나와 함께 있는 것이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고서......  

 책을 다 읽고서 느낀 감정은 엉터리 같은, 터무니 없는, 불합리한, 어이없는 등의 수식어을 붙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얼 말할려고 저자는 이 글을 이리도 방대하게 쓰며 이야기를 이끌어 왔을까? 그리고 어찌하여 이런 책이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았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내 책의 내용자체에서 뭔가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작가가 독자인 내게 말하려고 한 것은 내용을 통해서 느끼는 독자로서의 지금의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이내 작가가 말하려는 것들은 작가가 글로 표현한 것 자체가 아니라, 그의 글을 읽고 독자들이 느낀 것들, 바로 그것에 대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내용만 보고 따진다면, 도대체 이런 형식의 터무니 없는 글로 이 많은 페이지를 채우고 소설 나부랑이(?)를 썼다고 자랑스러워 할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었을 터인데,  다행히 그런 비난을 작가에게 퍼붓기 전에 문득 깨닫게 된, 작가가 노린 것이 바로 이런 감정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이번에는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 불합리하고 엉터리같은 세상을 산다는 것은 바로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느끼는 그러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겉모습이, 그리고 명분이 거창해 보이는 세상의 많은 일들이 뒤집어 놓고 보면 이 소설속의 내용들같이 엉터리 같고 불합리한 과정과 음모속에서 싹을 틔운 것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비웃음도 함께 들리는 듯 합니다. 너무 삐딱한 시선일 수도 있지만.....세상사라는 것이 결국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 작가는 자신만의 신랄한 풍자로 그럴듯하게 꾸민 세상에 대해 멋지게 한 방을 먹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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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들 - 그들도 처음엔 무일푼이었다!
조희탁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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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가 된 듯 합니다.  더 많은 제테크 서적과 더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시도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내밀고 선택을 기다리곤 합니다. 아니 조금 더 관심이 있거나 강박적인 사람이라면, 여기 저기서 언급되는 이런 서적들을 읽지 않으면 세상에서 더 뒤쳐지거나, 경제적인 자유을 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자라는 말보다는 그래도 경제적인 자유라는 말이 더 나을 듯 하고, 그것을 인생의 목적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냥 목표 정도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말장난에 불과한 것일수도 있지만.......

 저자가 우리나라의 자수성가한 부자 750여명을 만나고, 겪으면서 그들이 거기에 이르게 된 비법(?)을 분석하여 써놓은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가장 쉽게 표현한다면 그들을 부자의 반열에 이르게 한 것은 '돈을 아껴쓰고 열심히 모아서 잘 굴렸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조금 격을 갖추어서 표현하면 '절약하고 저축하여 투자하다'는 정도이겠구요. 이 세가지의 기본바탕위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부자들의 실제 예들과 부를 키워나가는 방법들을 차분하게 분석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부자들의 특성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특징으로 성실함, 끈기, 근검절약하는 습관, 그리고 그들의 삶속에 강하게 배어있는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들고 있습니다. 이어서 저자가 파악한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재테크 습관 7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들이 부자가 될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한두가지쯤은 나의 습관과 닮아있는 부분이 있는듯 한데, 아마도 그들과 나와의 차이는 더 여러가지 장점을 갖지 못했다는 것과 앞에서 저자가 그들의 특징으로 든 성실함이나 끈기, 근검절약, 긍정적인 사고 등의 부분에서의 부족함일 듯 합니다. 이어지는 4부로 구성된 부분은 한국의 부자들의 원칙과 비결, 그들이 죽을때까지 지키는 3원칙, 돈이 돈을 부르는 그들만의 재테크 노하우, 그리고 마지막 4부는 읽는 이로 힘을 얻게하는 '당신도 부자가 될수 있다'는 제목으로 씌여진 격려와 노하우 등을 담은 부분입니다.

 어찌보면 이 책의 내용은 다른 많은 제테크 서적에서 만났던 부를 이루는 방법이나 원칙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입니다. 다시금 확인하는 것들이라고 해야할까요! 끊임없이 절약하고 아껴서 종자돈을 만들고, 그것을 절대로 손해보지 말고 지혜롭게 투자하여 높은 수익을 반복적으로 올리도록 하라는 것이 큰 줄기인 듯 하니까요. 물론 실제로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도출한 이 책에 언급된 노하우가 우리사회에서 현재까지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고 실제로도 통하는 실질적인 재테크 방법들이라는 데 의의가 더 있을 듯하고, 기본에 충실할 것과 공부하고 노력할 것 등에 대한 거듭된 강조는 결국 부자가 되는 것,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행운에 의한 것이 아닌 세밀하고 주도 면밀한 계획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재확인해 주는 부분입니다. 한가지 이러한 성공한 사람들의 방법들이나 가치관, 의지들을 연구하거나 취합하여 간추려진 내용들이, 이리 하였으나 실패하였거나 변변치 못한 것들만 손에 넣고 만 사람들에 대한 대조군격의 내용정리가 없는 탓에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학구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이런 식의 토를 단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될듯도 합니다.^^  하여간 좀더 많은 사람들이 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지는 않더라도,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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