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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애니 체니 지음, 임유진 옮김 / 알마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정육점이나 대형마트의 정육코너에 가면 각부위의 이름이 적힌 안내판이 있습니다. 등심, 안심, 갈비, 안창살..... 삼겹살, 목살, 돼지갈비, 족발(?).... 그리고 단정히 정리되어 진열된 상품들에는 안내판에 적혔던 이름이 적혀있고, 가격표까지 붙어 있지요. 너무도 당연시 되는 풍경이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동물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상품으로서, 먹을 거리로서의 육류를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걸 사람의 몸으로 옮겨간다면... 즉 사람의 몸이 또는 신체의 일부가 상품으로서 돈으로 거래되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라고 반응할 듯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설마에 대한 대답을 주는 책입니다. 물론 우리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우리나라보다 더 고도화된 자본들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 뒤를 열심히 쫒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나 머지않은 미래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의 몸이 거래된다고 하면, 먼저는 우리가 가끔씩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하는 신장매매 상담이나 장기가 부족해서 중국에 가서까지 이식을 받는 장기이식의 문제가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법과 국가의 통제하에 진행되는 장기이식의 분야보다도 훨씬 더 역겨운 이야기가 이 책속에 담겨 있습니다.
외과의사들의 다양한 복강경 수술의 시현을 위한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 또는 다른 목적으로 의사들이나 연구자들, 때로는 군대의 폭발물 실험을 위해 필요한 사람의 몸이나 뇌, 머리, 무릎, 어깨, 팔, 다리 등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책에 언급된대로 어찌보면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실화가 적혀 있습니다. 의료의 발전과 그에 대한 공헌이라는 숭고한 뜻을 품고 의과대학에 기증된 시체가 보호자들에게는 아무 알림도 없이 여기저기로 팔려 다니며 실험대상이 되고, 때로는 장기별로 잘려져 팔려나가는 이야기, 화장을 위해 맡겨진 시체를 마음대로 훼손하여 돈이 될만한 부위를 팔아 넘기고, 재 한줌만을 유족에게 건네는 사람의 이야기, 그러한 신체의 일부를 취득하면서도 그 출처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의사들과 의료인들의 이야기, 인간의 시체를 통하여 돈을 벌고, 인간에 대한 예의 -죽은 이후의 인간에게 보다는 살아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의-마저도 저버리는 장사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속이 거북하고 마음이 슬프지 않은 이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최근에 가까운 사람을 화장하였거나 사후 대학에 기부하였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마도 극심한 혼란을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분야를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점점더 많은 조직을 필요로 하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여야 할 듯 합니다. 정형외과나 치과에서 사용되는 뼈가루, 또는 정형외과 수술에서 사용되는 연골, 기타 수술시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사체에서 비롯되는 물질들, 그리고 얼마전에는 사람의 태반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태반주사가 문제시 된 적도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환자에게 사용하는 의사들마저도 그것의 정확한 출처나 안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이 책속에 있었던 조직이식에 의한 감염자들의 사망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이 돈으로 거래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용납되기 어려운 문제일겁니다. 하지만 우리를 치료하는 의학은 그것들에 더 의존하고, 또한 그것들은 필요로 하기도 한다는 아이러니가 함께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의대생들의 해부실습을 위한 사체 기증과 같은 숭고한 의미를 가진 기증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재료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이러한 고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그러한 거래를 못하게 하자는 것은 아마도 감정적인 답은 될 수 있어도 논리적인 대답은 아닐 듯 합니다. 자꾸 아닌 척하며 음지에서 거래되며 시장을 키워가는 사체나 조직시장에 대한 양성화 정도가 가까운 답이 아닐까 합니다. 음침한 곳에서의 거래를 법과 원칙에 의해서 투명하게 세상에 공개하고 승인을 받는 제도적인 관심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단지 감정적인 비난과 거북함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관심의 계기가 되고,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법과 원칙으로 재단해 놓았듯이, 죽은 후의 사체에 대해서도 사람다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원칙과 법의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는 정책적인 면에 대한 관심과 숙고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