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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
마티 크럼프 지음, 이충호 옮김 / 도솔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텔리비젼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흥미롭게 보곤 했던 '동물의 왕국'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당시는 볼것도 읽을거리도 많지 않았던 때라 동물들의 야생생활을 들여다 보는 것 자체가 큰 흥미를 주는 일이었지만, 아직까지도 텔리비젼에서 동물의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 받았던 그런 흥미와 재미를 느끼곤 합니다. 단순히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기쁨보다는 한단계 더 발전한, 감정적인 공감의 시간을 갖는다고나 할까.... 여느 동물들의 삶이 사람과 많이 다른 듯 하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삶과 너무 닮아 있거나, 어찌보면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다는 의미에서의 공감..... 때문이지요.
이 책은 동물들의 그러한 모습들을 담아놓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참 아름답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보다 더 사람같은 모습으로,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또는 생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몸집이 큰 포유류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거미나 작은 곤충이나 파충류, 그리고 더 나아가 무척추 동물의 세계 -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려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에까지 작가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내용은 위대한 수컷들의 애타는 구애를 담은 것에서 부터, 지극한 새끼 돌보기, 먹이를 구하기 위한 노력들,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동물들의 독특한 변장술과 방어술, 짝짓기를 위한 신기하고 처절한 노력들에 대한 관찰의 기록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자신이나 동료들의 '과학적 관찰 사실 가운데서 보통사람들이 즐겁게 읽으면서 새겨볼 만한 뜻이 있는' '기묘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골랐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학자적인 시각에서가 아닌, 보통사람의 눈높이로 보았을 때,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는 이야기겠지요.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동물들의 이름자체부터 난해한 경우-예를 들면 군대개미의 일종인 '에키톤 부르첼리'나 광절열주조충, 유구조충 등의 경우-도 있지만, 각 동물들의 독특한 삶에 대한 내용만으로 보면 충분히 저자의 노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코끼리 물범의 하렘에서 이슬람의 하렘을 생각하고, 짝짓기를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새들의 둥지를 부수고 훔치기를 서슴치 않는 바우어새 수컷의 모습에서 물질주의에 찌든 인간의 그림자를 보고, 암컷의 흉내를 내 짝짓기 기회를 노리는 쥐며느리나 갑오징어 등의 이야기를 통해서 황소로 변신해 바람을 피운 로마신화속의 유피테르의 일면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지적해 내는 등 저자의 번뜩이는 인간사와 동물사에 대한 관찰과 탐구는 분명 저자의 의도대로 보통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그런 인간사와 직접 연관시키지 않은 많은 부분들도 관심있게 읽다보면 단순한 흥미를 넘은 자연의 가르침을 주는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황제펭귄의 자식 돌보기나 자신의 주검을 후손에게 먹이로 제공하는 거미의 희생과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지요. 또 한가지 미처 알지 못하던 깨우침을 주는 부분이 있는데, 끝맺는 말에 저자가 언급했듯이 '아무 관계가 없는 다양한 동물들이 ...이러한 ... 행동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둥지가 새들만의 발명품이 아니고 거미나 흰개미, 딱정벌레 곤충 중의 일부, 그리고 일부 물고기나 양서류, 파충류 등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우는 것이나 신체의 일부를 떼었다가 재생할 수 있는 바닷가재와 게, 불가사리, 도룡뇽, 도마뱀의 경우, 그리고 섹스의 대가로 먹이를 선물로 바치는 동물들, 도둑장가를 드는 동물들의 경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동물들이 서로 비슷한 전략이나 행동을 공유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생존에 유효한 전략이나 행동은 종을 초월한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이러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신기함과 흥미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다양한 동물들의 삶속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를 보며, 결국 사람도 그 자연이 이룬 다양성의 일부라는, 그래서 그 자연속에서 스스로만 뛰쳐나와 거스리며 살 수는 없으리라는 그러한 저자의 암시까지 느끼게 된다면, 이 이야기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얻기를 바란 저자의 소박한 바람에 대한 과민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