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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 이야기 동물원
심우장, 김경희, 정숙영, 이홍우, 조선영 지음, 문찬 그림 / 책과함께 / 2008년 2월
평점 :
책 속 동물원에는 6개의 동물관이 있습니다. 먼저 매표소에 들어서면 저자가 본 '지하철에서 만난 풍경소리'라는 게시판에 '선택의 갈림길에서'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던 양개선사와 한 스님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스님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개구리를 구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양개선사는 '자연의 질서도 깨뜨리지 않고, 생명도 저버리지 않는 길을 택해야지'라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선문답보다 더 난해하게 느껴지는 대답으로 가르침을 주는 내용인데,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치의 보은>이라는 설화를 통해서 양개선사의 오묘한 대답의 의미를 짚어가고 있습니다. 까치와 구렁이와 나그네, 그리고 그 나그네를 향한 뱀의 아내의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준 것이 목숨을 내놓고 종을 울린 까치의 희생이라고 본다면 바로 이 설화속에 양개선사가 말하는 자연의 질서도 깨뜨리지 않고 생명도 저버리지 않는 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이 책에 소개되는 귀에 익은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동물관의 여러 동물들을 우리가 어찌 받아들이고 느끼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우리 앞에 던집니다.
1관 <동물 유래관>에 들어서면 동물들이 그리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광어의 눈이 한쪽으로 몰리고, 메뚜기의 이마가 벗겨지고, 개미의 허리가 잘록하게 된 사연, 뻐꾸가 그리 구슬피 울고, 참새가 종종걸음을 하고, 새우의 허리가 굽게 된 이야기, 또 돼지가 '꿀꿀'거리는 이유 또는 돼지는 꿀꿀이 아닌 '꾹꾹'거린다고 우길수 있는 근거를 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의 세심한 관찰과 상상력이 빗어낸 흥미롭고 그럴듯한 이야기이지요. 2관 <야한 동물관>은 야하기는 하지만 19세 관람가 영화처럼 노골적인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부엌에서 밥을 먹이던 쥐가 남편으로 변신해서 남편보다 진짜 남편같아서 진짜 남편이 쫓겨났다가, 고양이를 데리고 돌아와 자리를 되찾은 진짜 남편이 그사이 쥐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보고 '부인은 쥐X도 몰라봤단 말이오!'라고 항변하는 이야기 속에서는 결국 서생원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쥐 뿔도 없는 그 남편과 쥐X도 몰라 보았던 부인의 행실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남종이 족제비에게 거시기를 물린 사연과 아낙네가 게에게 거시기를 물린 사연, 옛선인들이 자신의 부인의 거시기에 토끼나 사슴을 그린 은근히 야한 이야기도 함께 소개됩니다. 3관 <변신 동물관>에는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동물들 이야기인데,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이야기나 구미호 이야기는 익히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쥐로 변해 콧구멍을 드나드는 이야기, 연모하는 마음이 뱀으로 변하는 상사뱀의 이야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4관 <신성 동물관>은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섬김을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구미호를 잡는다는 삼족구, 옛 탄생신화 뿐만아니라 여러 설화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김받는 백마, 산신령으로 추앙받던 호랑이와 신묘한 능력을 지닌 호랑이 눈썹, 십장생의 하나로 추앙받는 영묘한 사슴에 대한 전시관입니다. 5관은 비루한 강아지와 구백이라는 호랑이의 대결에서 시작하여, 지네와 닭, 고양이와 강아지, 수달과 호랑이 사이의, 서로의 자존심과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소개하는 <동물 대결관>이고, 6관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래도 선인들의 예리한 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설화에 등장하는 이나 벼룩, 지렁이, 거미 등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담은 <숨은 동물관> 입니다.
이리 6개의 동물관을 다 돌고 나오면, 누구나 이 동물원에서 소개된 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이미 우리가 자라면서 무수히 들어 귀에 익은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낯설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전래동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그보다 더 전에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머리맡에서 우리를 재우려고 토닥이면서 한번쯤은 어린 영혼에 들려주었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이리 저자들이 동물원을 짓고 다시 재배열해서 소개하는 동물원 이야기 속 동물들은 그런 단순한 이야기거리가 아닌 우리 조상들이 삶과 지혜와 해학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닌 여러 동물의 생김새와 습성을 고려하여 거기에 인간사의 여러 형상들을 푹 익혀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을 때는, 때로는 재미있는 소일거리로, 또 때로는 한두가지 교훈을 담은 이야거리로만 치부되고 말았던 것들인데, 저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각 설화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을 통해 다시 나뉘어서 전시된 내용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 흘러내리고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동물원에서 만난 동물들의 모습속에는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이 동물원 구경은 단순히 이야기속 동물 구경이 아닌, 결국 수천년의 역사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의 원래 모습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 가끔 잘 만들어진 책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잘 만들어진 책에 대한 기준이나 느낌은 각각이겠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던 옛 이야기들을 이리 멋지게 해석하여,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풍족하게 일굴수 있게 해준 이 책을 읽으며 참 잘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긴 시간의 인내와 땀냄새가 느껴지고, 사람의 정성과 온기가 느껴지고, 또한 우리 문화와 우리 조상들에 대한 의미있는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참으로 반가운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