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가지 지식사전 - 세상의 모든 지식을 꿀꺽
필립 네스만 지음, 나탈리 슈 그림, 박창호 옮김 / 청림아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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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세상에 있는 많은 진기한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실어 놓은 것이 이 책입니다. 백과사전처럼 광범위하고,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라서 구성한 딱딱하거나 지루한 설명을 곁들인 지식들이 아니어서 흥미롭고, 세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아가기에  백과사전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살면서 생각했던 의문들에 대한 답이 가득하고, 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질문과 대답도 담겨 있습니다. 어찌보면 세상에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이라는 말이 허풍이 담긴 말로 들리지만, 그러한 세상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엉뚱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국은 아이들이 세상의 모든 지식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답을 찾아갈 만한 능력을 기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더한다면, 이 책 안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겨있다고 하는 것이 결코 허풍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은하에는 얼마나 많은 외계인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모두 다섯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시작으로, 동식물에 관한 모든 지식, 인간과 환경에 관한 모든 지식, 문화에 관한 모든 지식, 그리고 기원에 관한 모든 지식으로 구분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 분자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호기심 담긴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페이지에 큰 질문 하나, 작은 질문 하나씩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였기에 각각의 내용에 대한 것들이 단편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질문 하나하나를 곰곰히 되뇌이며 책을 읽노라면, 참으로 기발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그에 대한 때론 유머스러운, 그리고 때론 굉장히 진지한 대답을 대하게 됩니다. 단순한 과학적 사실보다는 생활을 하면선 갖게 될만한 여러 의문들에 대한 탐구 과정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훨씬 호기심을 갖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씩 거대한 곤충 괴물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 우리나라도 우주인이 탄생했는데 지구에서 달까지 또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 지구에서 태양까지 시속 250km의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 잠을 자기전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것이 좋을까?, 기억은 어떻게 머릿속에 저장될까?, 사람의 몸에는 털이 몇개나 있을까? 등등등. 엉뚱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과학적인 지식들을 응용하여 적용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 부활절의 달걀, 예수의 탄생 등 과거의 기록이나 사실을 탐구하여 얻어낸 것들, 미터법, 아라비아 숫자, 바코드, 도레미파솔라시의 음계, A4용지, 향수 샤넬 No 5., 이메일 주소에 쓰이는 @ 등 여러 기원에 대한 지식들이 버무려진 내용은 분명 읽는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세상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알게 해 주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매력적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은 스스로가 찾아낸 기발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질문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그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나설 만한 이유와 용기를 가슴 속에 가득 채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됩니다. 세상의 지식을 자신도 이리 맛있게 요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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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2.0 - 일상 속으로 파고든 '경제학의 재발견'
노르베르트 해링 외 지음, 안성철 옮김 / 엘도라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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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말을 들으면 냉철하고 빈틈이 없는 합리성의 철갑을 두른,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상을 먼저 그리게 됩니다. 수요와 공급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은 기존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그래프나 법칙에서 어긋나지 않고, 경제학이 말하는 원리나 원칙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을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그럴 듯한 설명을 누구나 인정하고 넘어가기는 하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실제 생활에서는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들여다보면 결국 경제학이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만들어지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회자되는 행동경제학에 대한 책들이 하나 둘 나오면서 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람이라는 존재의 정서에 조금더 다가선 온기가 담긴 경제학의 이면을 느끼게 됩니다.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는 기본 가정을 과감히 깨뜨리고 인간과 세상사에 한층 다가선 최신 경제학의 진면목'을 담은 책. '이코노미 2.0' 이라는 책 제목과 함께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간결하고도 의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 문구입니다. 기존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옹호하던 전통경제학의 버젼이 1.0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여러가지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발견과 통찰력이 담긴 최신 경제학의 이야기는 버젼 2.0이라는 이야기이겠지요. 컴퓨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버젼 업되면 될수록 사용자의 욕구와 편리성을 효과적으로 개선하듯이 경제학 2.0도 기존의 1.0 버젼에 비해 훨씬 더 개선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후진국이다 -미국이 아니다-, 인간을 상호협력과 신뢰를 중시하며, 때로는 손해보는 일도 감수한다-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소득세가 높으면 과도한 노등을 줄이게 되고 여가시간이 확보됨으로써 행복과 만족도가 커진다 -근로의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쟁사의 유능한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것만으로 조직의 전체 역량을 꼭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도로 전문화된 동료들이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협력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그들이 능력을 한 기업에서 다른 기업으로 고스란히 이전할 수 없다-, 신경학자, 뇌전문가,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인간의 행복과 만족도도 측정이 가능하다, 축구팀의 성적을 올리려면 최고의 감독을 영입하기보다는 감독을 끝까지 믿고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 언론이 극찬하는 펀드가 좋은 펀드가 아니라 광고를 많이 하는 펀드일수록 좋은 펀드라는 추천을 많이 받는다 -언론의 추천을 믿어서는 안된다-, 투자정보 입수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수익률이 더 낮다 -투자정보가 많을 수록 수익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스포츠센타 이용은 연간 회원권보다 1회 이용권을 끊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저렴하다......

 위에서 말하는 내용의 많은 부분은 경제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나에게도 기존의 경제 관념과 벗어난 느낌을 줍니다. 저자의 말처럼 기존의 경제학이 성장, 물질, 수치 등의 추상적이고 법칙에 맞추어 인간의 경제활동까지 분석하고 설명하는데서 온 오해와 오류들이 그대로 받아 들여진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경제학적인 설명들을 당연하다고 인정한 연유일 겁니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글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위의 내용들은 여러가지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기존의 경제관념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밝혀주는 것들입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때로는 엉터리 같이 경제 활동을 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이야기 됩니다.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본모습이구요. 기존 경제학의 딱딱한 틀에서 벗어난 현대 경제학이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나 행복, 만족 등에 대한 연구 방법들을 고안해 내고, 관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이 설령 현대 여러 경제학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더라도 훨씬 내 생활에 가깝고,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제는 경제학이라는 것도, 단순히 합리적이라고 가정된 시장과 인간, 그리고 여러 경제활동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냉정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러한 인간이 지닌 문제점들을 더 명쾌하게 설명하고 개선할 수 있는 따뜻함을 지닌 유용한 도구로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는 듯 합니다.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참견을 해 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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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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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가끔씩,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을 때, 또는 성경강좌에 참석하거나 강해서나 주석을 읽을 때면 성경말씀 한구절이나 단어 하나안에도 깊고도 풍부한 수많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신기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언어로 옮겨적고 그것을 다시 사람의 말로 풀어서 설명하거나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을 통해서 한 권의 반듯한 책으로 나온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다시 대하고 보니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신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말씀의 일면을 보게 되는 듯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더 넓게 적용되어져야겠지만, 결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샘물처럼 성경 한구절 한구절에 담긴 깊이와 의미에 대한 새삼스러움을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요. 물론 48글자로 이루어진 이 구절은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듣고 외웠을 것이고, 또한 많은 순간 위로와 은혜를 받았을 말씀이기에, 각자 나름대로의 신앙의 간증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대해 할말들이 많이 있을 만한 구절입니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자신의 깊은 묵상을 기록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많지는 않겠지요. 하나님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저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주셨으니, 우리가 믿으면,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는 네가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믿는 것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여러가지 말씀과 예화 등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갖게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과 소망의 메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따라가다보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과 머리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속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내가 형식적으로만 인정하며 생활했던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물론 너무 많이 듣고 암송하였기에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 구절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이 말씀의 의미와 중요성을 얼마나 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포함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책 속에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찾은 보배도 중요하지만, 다시금 이 구절을 반복하여 외우며, 내 심령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는 것이 아마 이 책을 읽고 얻어야할 가장 중요한 보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또한 이 책을 사용하셔서 다시 자신의 사랑고백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겠지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굳은 살이 박힌 세상 사람들인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도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10)

 그리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이리 기뻐하십니다.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3:17)

 이 순간 우리의 고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이 책을 통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나를 비롯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눈앞의 비늘이 벗겨지듯이 온전히 전해져서, 마냥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성경구절이 아닌 살아서 골수를 쪼개는 생명력이 있는 온전한 축복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행해지는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 그리고 행동이 귀히 드려지는, 열납되는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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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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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먼 상태에서도 수십년을 멋지게 살았던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뜬 이야기라는 책소개를 보면서 누구든 숱한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물론 그 중 하나에 나도 해당됩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온갗 색과 모양과 사물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눈뜬 사람의 입장에서는 명백하게 세상을 다시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은 축복이고, 앞을 보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하면 누구나 환호하면서 아낌없는 축하를 해 주고 관심을 보일 겁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의 의미가 너무도 당연한 눈뜬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세살때 화학적인 폭발사고로 시력을 상실하게 된 마이크 메이의 일생을 적은 이 책은 눈뜬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당연히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자기 중심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어서 생기는 것이겠지만- 즉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멋지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이 분명 축복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시력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눈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음을, 그리고 세상을 본다는 축복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당장의 의학적인 위험부터 시작하여 본다는 것의 의미를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익혀야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정서적인 혼란과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을 못보는 상태에서 세상에 나서는 용기도 기꺼이 길을 잃으리라는 용기의 표현이지만, 세상을 보기로 결정하고 수술을 통해 새롭게 눈동자에 빛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에서 기꺼이 길을 잃으리라는 더 큰 용기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진정한 용기. 마이크 메이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과 또한 각막줄기세포 및 각막이식을 통한 새로 눈뜬 자로서의 삶 자체를 이리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이크 메이라는 한 시각장애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용감하게 삶을 헤쳐가는 한 남자를 보게 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집안의 그늘진 곳에 수동적으로 남아있지 않고, 앞을 보는 이들이 하였던 모든 것을 똑같이 때로는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마저도 개의치 않고 도전하던 멋진 모습이 책에 담겨 있으니까요. 물론 그리 살기 위해서는 앞을 보는 이들보다 더 용감하고 더 무모하게 살아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을 통해서 그것이 무모한 것이 아닌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골대에 부딪히더라도 남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선 햄 라디오 통신을 위해 25미터 높이의 안테나를 홀로 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리고 남들이 다니는 일반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공부하고, 스키를 타고 세계기록을 작성하였던, 또한 CIA에 근무하고 은행원으로서도 일하고 자신의 사업에 뛰어드는 대담함을 보이는 모습속에서 -우리가 보기에는 무모하고 특별나다고 표현하겠지만, 그로서는 적극적으로 세상을 사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모습속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헤쳐나간다는 것,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면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의 용기를 보게 되는 것은 그 다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을 보기전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분명 다른 시각장애인보다 더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그와 보조를 맞추며 그의 삶을 지지하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을 보기 위한 각막수술을 받아들이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본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한 길로 과감히 발걸음을 옮기고, 자신이 최초로 가는 그 길에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본다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모습은 진실로 용기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메이에게 용기가 있다고, 그의 삶에 다른 이야기와 다른 감동이 있고 진정한 용기가 있다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몰랐어도 과감히 도전하였고, 그길이 외롭고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길을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 이 책을 다른 각도에서 읽는다면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읽을 수 있겠습니다.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는 무슨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생각될 부분이지만, 메이가 수술을 받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서의 이야기는 시각이나 시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처럼 메이는 처음에 수술을 받으며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고, 책을 읽는 독자들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도 처음에 약간의 문제는 있겠지만, 결국 정상적으로 세상을 보고 살 수 있으려니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메이가 시력을 회복해가기 위한 과정 -완벽하게 회복할 수는 없는-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을 지금처럼 본다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눈속으로 빛이 들어와서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보고 뇌로 이해한다.' 하지만 메이는 눈으로는 보지만 뇌로는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야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되고 학습되어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들에 대한 뇌속 신경망이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메이는 입체감을 느끼지도 못하고-그래서 계단을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합니다- 원근감이나 눈의 착시현상 같은 것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색이나 움직이는 물체는 감지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서로 다르게 인지하거나 남녀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일도 힘들어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어야 할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신경단위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못했고, 결국 나이가 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은 회복했지만, 뇌로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신경단위의 결핍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메이가 세상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불가능으로 결말을 맺지는 않습니다. 정상인의 관점에서는 분명 메이가 세상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메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에는 다른 의미가 생겼으니까요. 그가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행동을 하였듯이, 메이는 그때의 자신의 예민했던 다른 감각과 시각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헤쳐나가는 시도를 하기로 하였고, 그래서 그에게 본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체험하기 위한 감각하나를 더 얻은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상인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느끼고 보는 것들을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 더 알아갈 수 있겠지요. 바로 메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중에라도 새롭게 시력을 얻고 혼란스러워 할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것이 정상인과 조금 다를지라도, 새롭게 주어진 감각은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체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그리고 그 자신이 앞서서 그 길의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탐험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빛을 향한 여정을 통해,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세상의 빛과 색과 깊이를 오롯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묘하고 감격할 만한 축복이고 경이인지 아느냐고 , 얼마나 그러한 축복을 감사히 누리며 사느냐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모험하라. / 호기심에 답하라. / 기꺼이 넘어지고 길을 잃어라. / 길은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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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리스!
캐리 웨스턴 글, 팀 원스 그림, 송주은 옮김 / 예림당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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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원 꼬꼬댁 선생님반 친구들에게 화요일인 오늘은 보리스라는 새 친구가 오는 날이랍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새로 오는 곰친구를 생각하면서 각자 새 친구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토끼 래티는 예쁜 분홍색 아기곰을, 두더지 맥스는 아기 갈색 곰을, 생쥐들은 장화를 신고 코트를 걸친 멋쟁이 아기 곰을, 그리고 여우 퍼거스는 곰 인형처럼 귀여운 친구를 상상했답니다, 한데 꼬꼬댁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새 친구는....... 으악!!!! 귀여운 아기 곰이 아니라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털복숭이 곰이네요! 새 친구 보리스에게는 의자가 너무 작고 약해서 우지끈 부러져버리고, 연필과 공책은 너무 작고, 발톱과 이빨은 너무 크고 날카로워서, 유치원 친구들이 너무너무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도, 노는 시간에도, 그리고 수업시간에도 보리스는 친구들에게 무섭고 커다랗고 털복숭이인 낯선 친구, 불편한 친구일 뿐이네요. 그렇게 보리스의 슬픈 하루,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무서운 하루가 지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리스를 멀찍이 뒤로하고 앞서가던 친구들에게 깡패쥐들이 나타나서 행패를 부립니다. 이걸 어쩌나! 여우도 토끼도 두더지도 생쥐 친구들도 모두 쩔쩔매며 당하고 있는데, 보리스가 재미난 놀이를 하는 건 줄 알고 뒤쫓아 와서는 새친구들 앞에서 같이 놀자는 듯이 등을 곧게 펴고 화알짝 미소를 짓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화알짝 미소 속에 번쩍거리는 듯 합니다. 물론 깡패쥐들은 '쥐살려!'하고 도망가 버리고, 드디어 우리 유치원 친구들은 거대하고 무섭고 털복숭이인 보리스에게서 좋은 점 하나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친구로서 보리스처럼 털 많고 무시무시한 곰도 좋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다음은 여느 이야기처럼 해피엔딩입니다. 보리스와 친구들은 이젠 정말 친한 꼬꼬댁 선생님반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처음 만나면 낯설고 서로를 잘 모르기에 어색할 수 밖에 없음을 아마도 작가는 보리스라는 무시무시한 곰친구를 통해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서 서로 관심이 있어도 피하게 되고, 흥미를 보이고 싶어도 친구의 성격이나 특성을 모르기에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보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은연중에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을거구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결국 보리스가 친구들과 친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렸듯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데 필요한 시간이겠지요. 무서운 보리스도 깡패쥐들을 혼내줄 수 있는 멋진 친구라는 것을 친구들이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였듯이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아마도 아이들에게 친구들 각자는 자신만의 특색과 장점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것들이 서로 돕고 생활하다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친해진 친구는 더이상 무서운 이빨과 거대한 모집과 털복숭이 몸통을 가진 괴물이 아니라 함께 앉아서 수업을 받고, 숨바꼭질을 하고, 도시락을 함께 먹는 멋진 친구일 뿐이겠지요. 친구가 될려면 서로를 알고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누구든 서로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멋진 친구가 될 수 있답니다.^^ 보리스와 우리 꼬꼬댁 선생님반 친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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