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션 - 생각의 연결이 혁신을 만든다, 세계를 바꾼 발명과 아이디어의 역사
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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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작은 아이디어가 발전하여 현대의 거대한 문명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는 일, 정말 그것이 상상만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가 출현하고 어느 순간 돌조각을 다듬어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문명은 이젠 도시마다 마천루가 솟아오르고, 밤이 되면 온 도시가 태양이나 별빛이 아닌 전기를 이용한 인공적인 빛으로 불야성을 이룹니다. 컴퓨터와 여러 통신기기를 통해서 세계는 실시간으로 연결이 가능하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밖을 다녀오는 것이 꼭 어려운 일인 것만은 아닌 세상.... 아마 돌도끼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도, 곡식을 저장할 만한 토기를 처음 생각했던 사람도, 쟁기를 처음 소에 묶어 밭을 갈았던 사람도, 철을 제련하여 무기를 만들고 강력한 활과 화살을 만들어내서 전쟁의 방법을 아예 바꾸어버렸던 사람들도, 또한 전기를 처음 발견하고 전화를 만들어 내고, 전구를 만들어 내었던 가까운 과거의 과학자들까지도 아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명의 발달로 인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주변에 넘쳐나기도 하지만, 과거의 발견과 발명들이 어느 순간 폭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을 보노라면, 우리 또한 미래의 자손들이 누릴 문명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미래가 어느정도는 예측한 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변화가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펼쳐지는 세계는 과거의 조상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지니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사람들의 상상은 대부분 주어진 틀안에서의 선형적인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어서,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전화기가 발명되었을 때 그것이 방송에서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선 통신은 본래 목적에 맞게 배에서만 사용할 것이라고 믿고,  IBM의 우두머리라는 사람도 미국에 4-5대 이상의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보이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단순한 사건-발견이나 발명-으로 인한 선형적인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모이고 우연하게 융합하여 어느 순간 1더하기 1은 2가 아닌 3이 되기도 하고 그 이상이 되기도 하는 혁신에 대한 것입니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총알이 폭발적으로 튀어나가 듯이 인류 문명이 그러한 혁신의 과정을 겪게 되는 연결고리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그러한 변화의 과정과 그에 맞물린 혁신의 과정을 탐구하고 밝혀내는 것, 이것이 저자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여러 사건들의 시작과 연결고리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곤 하는 매 단원을 읽다보면, 이 책이 단순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에 담긴 과학적인 사실과 의미까지도 상당한 이해를 바탕으로 씌여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인내심과 이해를 위한 노력,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책을 읽는 속도가 유난히 느렸던, 그리고 매번 앞뒤의 연결을 위해 내용을 더듬거렸던 시간에 대한 변명같은 말이지만, 각각의 단원에 담긴 내용들은 분명 일정수준 이상의 과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어렵지 않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은 나만의 엄살은 아니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이 결국 저자가 말하는 큰줄거리에는 동의하지만 세세한 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면도 있지만, 이제와서 곰곰히 돌아보니 저자가 읽는 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하나가 그러한 어려움 속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로 또는 그 후로 한동안 선형적인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던 여러 사건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한 도구나 발명의 작동방식이나 사용법을 제대로 숙달하고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인데 비해, 현대 문명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둘러싼 여러가지 것들은 훨씬 세련되고 대단한 것들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 삶을 훨씬 편안하고 윤택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 각각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그것이 고장났을 때 대처할 수 요령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에서, 과도한 변화와 복잡함을 동반한 현대 문명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 도 있으리라는 깨달음과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들에 대한 앎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루는 지식에 대한 줄거리와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그 맥락을 놓치지 않는 지혜이지 않을까 하는 것..... 이러한 자각과 넘쳐나는 지식속에서 필요한 맥락을 간추려내는 지혜를 지닌다면,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그 물결에 휩쓸려 가버리는 불운을 겪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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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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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이 허락한 작은 웃음을 즐겨라!' 책의 부제가 참 그럴 듯하게 저자의 글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버트 풀검이라는 이름은 잘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긴 제목의 멋진 책은 기억할 겁니다. '우리가 뜻있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복잡하고 대단한 행동이나 사상이 아닌,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배웠던 사실들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사실을 전했던 그 책에 담겼던 메시지가 고스란히 이번 책에도 담겨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에 나왔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초판의 표지에는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소박한 아름다움, 거창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쉬운 진리, 작은 일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만들어낸 53편의 그림같은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그때와 같이 세상에 숨겨진 소박한 아름다움과 알고보면 쉬운 진리, 그리고 우리 주변의 작은 일에 담겨 있는 기쁨과 감사의 제목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방법들, 우리 삶에 허락된 작음 웃음을 찾는 방법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시애틀과 모앱 사막, 그리고 그리스의 크레타 섬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들..... 하지만 저자가 그곳들을 글쓰기를 위한 목적으로 여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의 삶의 한 영역이자 공간으로서의 시애틀의 집과 모앱 사막, 그리고 이국의 땅 크레타 섬에서의 생활속에서 얻어낸 소박한 소재들을 저자 자신의 예리한 통찰력과 유모와 해학을 담아, 그러한 삶속에 담긴 웃음과 삶의 이유, 그리고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크레타 섬에서 처음 살게 되었을 때, 조깅을 하면서 미국인과 다른 손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현지인의 관습을 몰라 실수를 연발하는 그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과 놀림받음에 멋지게 응수하는 저자, 그리고 그러한 복수(?)를 또한 여유로운 크레타인의 웃음으로 받아내는 현지인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웃음' 편을 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지구에서 웃으면 산다는 것에 대한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웃음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는 것, 바로 거기에 우리가 세상을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이유가 있고 비결이 있고, 그리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서로를 기꺼이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와 앞뒤를 재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과 단순함 정도가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저자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바로 세상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또한 그런 웃음과 생각을 퍼뜨리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크레타인의 웃음과 같은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그리고 무엇으로도 무찌를 수 없는 웃음...... 

 '인생의 성공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얼마나 멀리 뛰었는지 혹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에 상관없이, 마지막에 자신이 가진 것을 좋아하는 지에 달려있다...' 점프를 해서 멋지게 착지를 해내는 메뚜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것도 말해보시오.'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 주는 어머니가 엉뚱한 짓을 저질렀을 아이를 책망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 안에 담긴 이런 심오한 질문을 유추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삶에서 성공했다는 기분은 어디에서 놀아야 할지 아는 데 달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고 통통하고 느린데 월드컵 팀에서 뛰어야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삶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리그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러나 동네 운동장에서 키 작고 통통하고 느린 사람들과 축구를 하며 골키퍼를 하는데 만족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성공한 축구선수이다. 리그를 제대로 고른 것이다.' 삶에서의 리그와 영역의 문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 이러한 이야기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도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몇가지 방법들을 이미 내 삶속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웃음과 멋진 착지와 진지함.... 그리고 내게 어울리는 리그에서 인생이라는 공을 굴릴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지는 것.....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그런 방법 몇 가지쯤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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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를 리뷰해주세요.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문화도시, 이희수 교수의 세계 도시 견문록
이희수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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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 마요르카 섬, 아비뇽, 밀라노, 피렌체, 크레타 섬, 프라하, 안탈리아, 룩소르, 알제, 앙코르 와트, 라호르, 아르쿠츠크, 비슈케크, 밴쿠버, 그리고 시애틀..... 이 책에서 언급한 16개의 도시입니다. 아주 간단한 산술적인 계산을 이용하여 이 도시들을 한 4-5일정도씩만 묵으며 돌아본다면 64일에서 80일 정도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일주일 정도 머문다고 하면 100일이 넘어가지요. 일주일이라고 하고 하나의 도시를 그 기간동안 돌아본다면 도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알아볼 수 있을까요. 열심히 돌아다닌다면 상당히 여러 곳을 둘러보기는 하겠지만 깊이있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런다고 한두곳을 집중적으로 돌아본다면 그 도시의 본모습이 아닌 본것들에 치우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자의 여행방식이나 기간에 대한 정보가 없기에 뭐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아주 간단한 산술적인 계산과 낯선 곳을 가보았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책에 붙은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 이야기'와 같은 멋지고 거창한 제목을 붙이기에는 조금 '거시기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여행이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 영역이고 주관적인 것들이 많이 개입되는 것인지라, 실제로 여행중에 저자가 들른 이 도시들은 저자가 기록한 책의 내용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감성을 안겼을 것입니다. 도시를 더듬은 기록 곳곳에는 저자 나름의 세밀한 관찰과 느낌, 기쁨과 아쉬움도 담겨 있구요. 하지만 10여페이지에 여러 사진과 함께 담긴 한 도시의 이야기는 너무 간결하다는, 또는 뭔가 숙성된 여행의 맛이 빠져버렸다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가 말하지 못한 장소와 표현하지 못한 -또는 안한- 감동의 물결 속에 아마도 여행기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더 많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면, 저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물론 저자가 말하는 도시를 가 보았다거나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훨씬 많은 것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동의하며 넘어가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밖으로 짐을 꾸리고 나가서 낯설거나 멋진 곳에서의 며칠밤이 연례행사와 같은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책으로 대하는 다른 공간의 문화와 역사, 건축물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훨씬 더 세련되기도 하고, 세밀하기도 하고, 감성적으로 풍요롭기도 한, 그런 것들인데, 매혹적인 도시라고 유혹한 저자는 도시의 매혹적인 자태를 기대한 내게 좀 '거시기한 느낌'만을 남겨줍니다..... 

 책에서 기대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러겠지만, 조금 물러서서 저자가 소개한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기억속에서 희미해져가는 내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도시들이 있습니다. 예술작품을 보며, 책을 보며, 또는 역사를 배우며 듣고 상상했던 도시들..... 거기에는 밀라노와 피렌체, 크레타 섬과 프라하, 그리고 카뮈를 기억나게 하는 도시 알제, 그리고 앙코르 와트와 시애틀, 벤쿠버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어했던 곳이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대로 언젠가 휴식을 위해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 때가 되면 잠시 책장을 넘겨 저자의 감성을 훔쳐서 저자를 매혹했던 도시를 매혹하러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저자가 말한 이 도시들에 대해 조금더 알고 느끼게 될 것이고, 또한 저자가 말한 이야기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저자의 마음이 머물렀던 이유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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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여러 매혹적인 도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을 수 있다... 나중에 여행할 때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새롭고 매혹적인 여행지를 찾고 있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문화란 결국 사람의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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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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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아름 안고 길을 가던 여학생이 그만 실수로 그 많은 책들을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당신이 옆에 있다면 그 학생에게 도움을 줄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듣게 되면 당연히 도울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 역시 당연하게 그럴거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정답(?)은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 것 같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당신이나 나는 그 여학생에게 눈길 한번 주고는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고 당신과 그 여학생만이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 학생에게 당연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똑같은 사람이 이럴 때 이랬다가, 저럴 땐 또 저랬다가 하다니.....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바로 그렇다니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상황에 지배 당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상황에 지배당하는 인간과 그런 상황을 지배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서 인간의 전혀 다른 두얼굴이 나타납니다. 어떤 모습이 우리의 참모습일까요......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한다.  21페이지의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지하철 객차안에서 사람들이 태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의 사진입니다. 그 많은 중 누구하나 나서지 않고 그렇게 10분간을 순한 양처럼 앉아서 기다리다가 엄청난 사고를 당합니다. 10분이라면 모두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도 명백해 보이는 이상징후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서 문제는 바로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던 상황에 있었다고 이 책은 실험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있었다면 당연히 무언가 행동을 했을텐데,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스스로도 그리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이 결국은 대규모의 인명피해를 일으킨 이유가 되었을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바로 이런 상황의 힘에 휘둘리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여러 실험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정말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들이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상황의 힘에 굴복당하고 마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권위에 복종하고, 다른사람에 동조하고, 집단의 힘에 굴복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 바로 여러 실험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상황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상황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우리 삶의 결과 또한 그렇게 정해져 버렸다고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이 책 후반부의 주제입니다. 즉 우리가 상황을 좌우하는 사소한 포인트를 찾아내 바꾼다면 우리를 지배할려고 하는 상황을 멋지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지하철 선로에 끼인 사람을 모두 힘을 함쳐 구해내는 장면이나 작은 화단으로 무단 쓰레기가 가득했던 골목길을 깨끗하게 바꾸는 과정, 가로등 불빛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범죄율을 경이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상황을 어떻게 멋지게 지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상황속의 인간이 무척이나 나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 인간들이기에 상황이 사람들을 바꿀 수도 있지만, 사람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의 법칙이라는 동조자 3명을 모으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손가락을 가르키며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이 한사람 또는 두사람이었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시했지만, 세사람이 되었을 때는 구름같이 모여서 세사람이 가르키는 쪽을 쳐다보는 실험을 통해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사람의 동조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선로에 끼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하나 또는 둘일때는 그저 무심히 바라보지만 세사람이 나서서 밀기 시작하면, 주변사람들이 모두 달려들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하철 역에서 있었던 객차를 밀어 사람을 구하는 모습이 바로 처음 세명에 의해서 멋지게 상황을 지배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상황에 지배당하는 인간, 그리고 상황을 지배하는 인간. 이 두얼굴의 사나이가 항상 상황의 지배를 피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질문입니다. 즉 '나라면 안 그럴텐데'라는 교만한 생각보다는 결국 상황에 지배당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대한 겸손한 인정은 상황의 지배를 당하는 방관자나 외부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일깨우고, 그러한 상황을 깨뜨리고 행동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이 상황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로 인한 부조리들을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한 배움과 지식은 또 다른 환경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토대가 되겠지요.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방법, 선이 선을 부르는 사회를 위한 방법, 그리고 이수현씨 같은 작은 영웅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바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달려드는 상황의 힘을 깨뜨리게 될 때, 당신도 그리고 나도 세상의 작은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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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의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이건우 옮김, 배은미 그림 / 일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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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 슈워츠..... 미치 앨봄의 소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의 주인공입니다. 소설속의 그의 모습은 루게릭 병에 걸려 점점 온몸이 마비가 되고 쇠약해져 가지만, 그 육신을 채운 영혼으로는 죽음을 용감하게 마주하며 평화롭게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통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삶과 가족과 이웃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볼 만한 여유를 가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의 삶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은 감동을 간직할 수 있었고, 그러한 감정이 바탕이 된 격려와 박수와 감사를 그에게 보낼 수 있었겠지요.  

 이 책은 모리 슈워츠 교수의 잠언집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가 말한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짧은 글이나 단상에 대한 모리 교수 자신의 해설을 곁들인 내용인데, 내용이 우리가 논어나 맹자 등을 볼 때와 같은 난해함이나 철학적인 것들을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평이한 단어와 문장과 주제들을 통해서 자신이 죽음을 향하는 여정에서 말하고 싶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얼마전 우리에게 소개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와 맥락에서는 유사한 면이 있다 하겠고, 랜디 포시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모리 교수 또한 병과 죽음이 육신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중에도 결코 자신과 또한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놓치지 않고 꿋꿋이 지켜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이고,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 앞에서도 꿋꿋하고 의연한 모습..... 하지만 모리 교수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것은 그런 외적인 사실보다는 그러한 의연함의 근원이 되는 삶의 소중함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것들이겠지요.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비참한 최후 또는 실패가 아니라 삶의 연속이며 성숙한 삶의 완성이라는 사실과 그러므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충실할 수 있고 충실해야 한다는..... 

 어찌보면, 우리가 인생의 깊이있는 교훈이나 체계있는 배움을 원한다면, 논어 등의 사서삼경류의 책을 펼치고 진지하게 배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리 교수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한 잠언구들과 비슷한 의미의 경구들은 다른 많은 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모리 교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낸 삶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말한 내용들을 자신의 육신과 영혼으로 사람들 앞에서 실천하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과 그의 삶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교훈과 하나의 감동을 진하게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책속에 담긴 모리의 가르침은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마음이 울적할 때, 세상과의 사이에 벽이 하나 생겨버린 느낌이 들 때, 주변의 누군가가 힘들게 할 때, 삶에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을 때, 누군가가 미워질 때, 또는 어느 순간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 등등.... 그러한 삶의 어느 순간엔가 다시 한번 우리 마음에 끼어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가르침과 위로와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책꽂이의 한자리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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