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교육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안선재 교수

얼마 전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이별의 시'가 아니라 '사랑의 시'로 보아야 한다. 이 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다 나온 일종의 농담시(joke poetry)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너무나도 당연히 여겨왔던 사실도 되돌아보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논문의 주인공은 안선재교수(1994년 귀화,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그는 한국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현재 교단에 서서 직 · 간접적으로 시교육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시교육을 접해왔고, 앞서 언급했듯이 시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한 바 있다. 덕분에 우리의 시교육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히 짚어 볼 수 있는 사람이겠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26일 오후, 바람이 제법 선선한 서강대 교정을 가로질러 그를 만나러 갔다. 차와 찻잔 그리고 책으로 가득 찬 연구실.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의 미소가 하얀 목화 같았다.

시 번역도 많이 하시고 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특별히 시에 관심이 많은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시를 좋아하니까(웃음). 시는 짧지만 강하고 집약적인 힘이 있어 좋아요. 그리고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주로 시문학이예요. 한국에서 영국의 전통 시를 가르치니까, 영국에 한국시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양 문화를 나눈다는 그런 정신으로. 그런데 옛날 한국시는 어려워서 현대시를 번역하기로 했어요. 여유시간에(웃음)

그러면 특별히 좋아하는 시나 시인이 있으신가요?
다 좋아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가장 좋아합니다. 짧지만 깊은 내용이 담겨있어요. 천상병 선생은 폐렴을 앓았고, 고문도 당해서 몸이 약해져 죽는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아무 원한도 없이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고 한 그 힘, 용기, 희망이 좋아요.

그럼 이제, 한국의 시교육은 어떠한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질문할게요. 영국에서 태어나셨고 프랑스에서도 유학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테제공동체 생활을 하시면서 다른 나라들도 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보셨던 시교육은 어떻든가요?
최근 서양의 문제는 학교에서 시를 거의 안 본다는 거예요. 현대시나 재미있는 시, 아니면 performance나 rapping 같은 것에 관심을 두죠. 옛날 문학 재미없다고 기피해요. 기본적으로 시는 가르치는 게 어렵구요. 한국에선 그런 것들이 덜한 편이죠. 한국 사람들은 문학이 의미 있다는 걸 믿어요. 그래서 한국문학에는 희망이 있어요. 한국학생들은 시에 아름다움이 있다, 의미가 있다고 말해요. 삶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고. 서양은 대부분 그만큼은 아니고 그냥 재밌다, 잘 썼다고 하죠. 그래도 프랑스나 독일보다 영국에서 시가 살고 있는 편이예요.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하고, 시축제가 있으면 즐기고.

아, 시축제도 있어요?
아, 그럼요. 많죠. 미국도 많아요. 2주 전에도 미국에서 닷지문학페스티벌(자동차회사 닷지가 후원하는 행사)이 있었어요. 시인들이 와서 시 낭송하고, 시인하고 대화도 하고, 음악도 있는 축제였는데, 4일 간 2만 명 정도가 참석했어요. 고은 시인도 참석했었죠.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문학축제가 많은 편인데, 한국에는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아쉬워요. 한국에서 시는 책만 생각해요. 한국에선 오랫동안 낭송이나 퍼포먼스를 안 했으니, 이제라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한국시인들은 문화적 체면의식이 강해요. '난 시인이다'(고개를 들고)라고 하는 거죠.

네, 권위의식이요. 아무튼 시축제가 없다는 것은 아쉽네요.
시인이 그러면 재미없죠. 시인은 독자와 대화를 해야죠. 사실 시마다 새로운 시작이니까, 시인이면 매일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시를 쓰고 그래서 시가 어디로 나오는지 알아야 시에 의미가 있어요. 난 시인이기 때문에 시 쓴다고, 대외적으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의식 좋지 않아요. 한국시인들, 시집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사람들하고 관계있어야 해요. 우리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시를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영문학을 가르치실 때 시를 수업하실 텐에요, 시를 가르치실 때 어떻게 가르치시나요?
오래된 시이기 때문에 시인 소개, 역사적 배경, 구조 등등 시에 관한 제반사항을 먼저 알려주죠. 다음에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낭송을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 시를 책 안에서만 접하고 낭송하는 법이 없어요. 영시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살아있는 방식으로 낭송해야 의미가 있어요. '뫄뫄뫄뫄뫄'하고 웅얼거리기만 해서는 소용 없죠. 감정을 담아서 시 느낌이 들게 낭송해야 해요. 영시는 리듬이 있으니까요.

그건 그럼 영시에 보다 적합한 방식이네요. 그렇다면 아까 제일 좋아하신다고 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만약 가르친다면 좋은 방법은 뭘까요?
한국 국내에서요? 글쎄. 그냥 읽어보고, 배경 이야기하고, 다음에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볼 수 있겠죠. 귀천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귀천>은 가르칠 일이 거의 없어요(웃음).
가르쳐야 할 시는 아이들이 어려워서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알 수 없다거나, 왜 중요한 것인지 모르거나, 그냥 본다면 재미없어할 시를 교육해야 합니다. 사실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문학사, 시의 특징 이런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지, 여러 시인들을 다 가르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읽어보라고 해야죠. 자체로 살아있는 시이니까요. 생각해 봐요. "학교에서. 왜. 시. 가르쳐야. 하느냐." 시가 아름답기 때문에? 시의 감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치는 것도 어렵죠.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화음이나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레코드판을 그냥 들었어요. 어떤 학생들은 코골며 자고(웃음) 어떤 학생들은 '아'하고 느끼기도 해요. 사실 음악, 시, 미술에 대한 감상은 가르칠 수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감상하도록 북돋아 줄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감상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우리 희망은 어느 날 시를 보고 '팍'하고 감동을 받는 학생이죠. 이런 학생들이 다른 시도 더 보고 싶어하고, 시를 쓰기도 할 겁니다. 어떤 때는 음악회에 가서 시를 보고 느꼈던 감동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겠죠. 인간의 기본적인 체험을 돕는 것이 인문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시험을 위한 것이 인문교육이 아니에요. 시나 음악에 대한 감성은 시험 볼 수 없습니다. 귀천을 배운다고 해도 그에 대한 감성을 시험 볼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시라고 느낄 거고, 다른 사람은 별로 느낄 수 없는 시라고 생각할 거예요. "Ok, that's you."

말씀하신 것처럼 학생들이 살아있는 시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국의 교육방법은 대부분 지시적입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대답주기를 기다리죠. 하지만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거예요. 스스로 경험하고 배워야죠. 학생들이 직접 생각해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알고, 그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의 독립된 정신이 있어야 해요. 선생은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라고는 할 수 없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의 생각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질문하면, 조금 더 넓게 생각하도록 유도해야 해요. 자신의 생각 없이 문학을 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시를 조금 더 살아있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면,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를 직접 써보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학생들에게 시를 제시하고 비슷한 제목으로 시를 써달라고 하면 '멍'해요. 자신의 생각을 시로 이야기하지 못하더군요. 시를 창작해보면, 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나오는지 좀 더 느낄 수 있을 텐데도 말이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시를 직접 읽게 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직접 시를 써보면 시를 살아있는 것으로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리고 넓게 보라고 다독여줘야죠. 현대에는 시인도 많고 시도 많아요. 사람들 좋아하는 시도 제 각각이죠.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시를 다른 사람은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죠. 사실 모두에게 좋은 시는 없어요. 모든 시가 좋죠(웃음). 각자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어느 날 문득 어떤 시가 '우왓'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게 아름답게 다가온다면, 다른 사람이 그 의미를 못 본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개인이 시를 보고 체험해야죠.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하겠습니다. 이번 호의 테마가 "시를 가르친다는 것이 시작품을 가르치는 것인가, 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어떤 때는 시가 삶에 비중을 더 두기도 하지만, 시를 가르치는 본래의 목적은 수업을 통해서 시작품을 직접 볼 수 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하기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난 시 더 보고 싶어요. 다른 시 읽고 싶어요. 나도 시 쓰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시의 아름다움, 시의 힘, 시 존재 자체가 목적입니다.

"살아있는 시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습 스스로 시를 경험 · 체험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 자신의 말을 자신의 시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시교육이란 시에 대한 제반사항이나, 접하기 어려운 시를 가르쳐 주고, 시의 감상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선재교수의 생각이다. 그의 문화적 기반인 서양의 시교육론 일수도 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 교육에 비교해 볼 때 서양의 교육방식이 막연히 우월하다 말할 수 없으며, 시가 다른 만큼 그들의 방법로을 우리 시교육에 쉽게 적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선재교수의 말에서 우리가 들었던 것은 시교육의 또 다른 방법론만은 아니었다. 정작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던 것은, 시와 학생들을 향한 그의 따스한 시선이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6~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 길에서 만나다

미당 시문학관

여행지에서 시를 만나다
홀로 떠나는 여행, 가방 속에 챙겨 놓은 작은 시집 한 권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하지만 시를 만나기에 시집 속은 너무 좁고, 시가 품은 것은 너무 크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우리나라의 푸른 숲과 맑은 강, 숨 쉬는 생동감 속에서 시를, 시인을 만나보자. 여행지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그들이 얼마나 반가울까.

시인, 미당을 만나러 가자
유난히 더우가 길었던 탓인지, 선선한 바람에 저절로 옷깃을 추스르게 되는 가을이 차마 반갑니다. 온 나라가 부끄러움으로 물드는 가을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마음 푹 놓고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볼까'하니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만으로는 가을을 느끼기에 부족한 것 같다. 하늘만을 향했던 시선을 발 아래로 떨어뜨려 보자. 가을 향기에 취해 무심코 따라간, 노오란 국화가 만발한 그곳에서 우리는 미당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젊은 문인들은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고은과 서정주를 꼽았다. 미당의 경우, 그의 문학에 대한 언급은 없이 '작품을 평가하기에는 친일로 인한 과오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미당은 생명을 노래하던 입으로 친일을 행했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친군부행위 등을 통해 권력을 향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부끄러운 행적이 알려질 만큼 알려진 때에 더 이상 그에게 덧칠을 할 필요가 있을까. 미당을 향한 젊은 문인들의 씁쓸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작품의 우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의 문학을 살펴볼 때,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는가. 미당의 전기적 요소를 살펴보는 것은 그의 문학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미당 문학의 뿌리이자, 그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있는 '미당시문학관'으로 떠나보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 초등학교 분교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미당시문학관'에 도착하면 수줍던 신부의 초록 저고리 빛깔을 가진 잔디밭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낮은 산과 낮은 집들이 모인, 한가로운 선운리에 낯선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에는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에 놓인, 친숙한 시 뿐만 아니라 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미당에 대한 진솔함에 충실하고 있다. 또한 그와 부인의 다정한 사진, 여행지에서 아내를 걱정하며 쓴 편지, 손때가 묻은 소파 등을 통해 한 시인의 삶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미당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려는 욕심이 지나친 탓인지, 아직은 여유를 가지고 그의 삶을 함부로 정리할 수 없는 탓인 지, 전시물들이 체계를 갖추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관리가 소홀해 보이지만, 제법 풍부한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비로소 그가 보인다
1층 전시실의 유품들과 작품들로는 부족하다. 미당을 진정 느끼고 싶다면 콘크리트 건물의 계단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겨보자. 계단을 올라가면 액자에 걸린 그의 작품들이 이어지고, 각 층의 좁은 공간에는 생전에 그의 집필 공간, 그가 사용하던 돋보기, 파이프, 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여러 산의 이름과 높이를 외우며 치매를 예방한 그의 흔적들을 보고 새삼 그의 정신력에 놀라기도 한다. 바다가 보내는 바람이 느껴질 때면 어느새 탁 트인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 위의 대리석에는 '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그의 대표작 '자화상'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제야 그동안 낯설었던 그 시구가 한 발짝 다가오며 악수를 건넨다. 한 쪽에는 동그란 구멍 사이로 미당의 생가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시인의 묘소, 이제 그가 부인과 함께 누워 있는 곳에는 가을마다 국화가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미당의 삶의 흔적을 되짚어 가며 전망대에 오르면 비로소 왜 이곳에 문학관이 자리했는지 절로 알게 된다. 질마재 신화를 낳은 한가로운 평야, 겸손하게 낮은 산, 멀리 보이는 곰소향, 정겨운 선운리 사람들까지, 문학관은 그의 시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이곳을 느껴보라 말하고 있다. 그의 삶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 이곳이 가진 독특하지만 낯설지 않은 정서를 발견했을 때, 적어도 미당 문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탁 트인 시야를 통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나는 미당과는 왠지 가까워진 느낌이다.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시문학관을 나서면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발길을 넓혀 그 엷붉은 땅의 촉촉함을 피부로 느껴보자. 미당에게 스며들어 있는 이 촉촉함을 직접 느낄 수 있다면, 그의 시를 이해하고, 가르침에 있어 더 이상 그늘에서 헤매며 혼란스러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적이 드물어 더욱 여유로운 선운리는 국화 향기가 진동하는 가을이면 국화축제에 활기를 찾는다. 또한 국화가 만발한 어느 때에 '미당 시문학제'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단지 한 계절의 축제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에 이곳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가 그리워 간간히 방문하는 문인, 작가들, 또는 관광의 연장으로 미당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견학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순히 그를 그리워하고 잠시 쉬어가는 곳, 발길이 뜸한 기념관으로 이곳을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도의 여유로움이 머무는 이곳을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이 마음 놓고 시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미당 시의 우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미당 문학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창작의 길로 이끌지 않을까.

가을이 아니어도 좋다. 국화꽃이 만발한 언덕이 아니라도 좋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남도의 평야가 주는 여유로움을 느껴보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숱한 세상의 말들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질마재 언덕의 고립도 대립도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미당을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2~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교과서 수록 시의 시인을 만나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정.일.근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된 시인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은 바람직한 시교육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직업이다. 해당 작품을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자신의 시를 어떻게 교육하기 바라는지, 혹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끼길 바라는지를 물어보고,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는 중학교(1-2)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 유리창 청소」의 작가 정일근 시인을 만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학생들이 어떠한 것들을 배우고 어떻게 감상하기를 바라는지, 더 나아가 바람직한 시 교육을 위한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 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 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 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1년 지금 살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솥발산 자락에 들어오면서 '전업시인'을 선언했습니다. 전업시인이란 시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쓰는 일이 주업이니 시를 많이 씁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마당 텃밭에 어머니와 함께 배추 15포기를 심었는데 5포기는 실패하고 지금은 남은 10포기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 손으로 키운 배추로 김장을 담는 즐거움에도 빠져 있습니다.

연작 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유리창 청소)가 현재 중학교 1-2학기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 창작 당시의 상황이나 작품을 쓰게 된 배경, 후일담 등을 말씀해 주세요.
1985년에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진해남중학교에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3년 반을 시의 제목 그대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인 모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의 교육여건과는 많이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는데 정규 수업이 30시간, 보충수업이 13, 4시간으로 주당 43시간 이상을 수업하는 후진국 교사였습니다. 저는 그런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불만이 많앗습니다. 대학시절과 휴학시절을 포함해서 7년을 야학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1984년 10월에 '야학일기'라는 연작시 등으로 당시 무크지였던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을 하고 1985년 1월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육시'를 썼던 시인일 것입니다. 그 이후에 교육시와 교육문제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해남중에 근무하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를 썼습니다. 모두 피가 뜨거웠던 20대에 썼던 시들입니다. 함께 했던『시힘』동인 중의 한 명인 안도현 시인도 당시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있었는데 안 시인에게 교육현장의 시를 쓰자고 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은 모두 11편을 썼습니다. 제가 담임을 했던 '열이'에 대한 이야기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홈(HTTP://WWW.1318POEM.NET/)에서 제가 쓴 '처음의 아름다움'이란 산문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시를 다음<첨부1>과 같이 배우고 있으며 평가<첨부2>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첨부1>과 <첨부2>는 어떤 문제집에서 따온 듯 하다.)
저는 시는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수업에서의 시는 시험을 전제로 한 학습이 되다보니 어려서부터 시를 읽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저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만 시의 이해는 교육을 통해서 이뤄지기 보다 시를 읽는 사람 스스로 시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모 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제 시에 대한 시험문제를 들려주고 답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모두가 답이 될 수 있고 답이 아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이 시 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하게 됩니다.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시를 통해서 독자(학생)들이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길 바라는지, 말씀해 주세요.
교과서에 수록된 제 시는 스무 해 전에 쓴 시입니다. 그 사이 저의 시 세계는 많이 변화되어왔습니다. 그 한 편의 시를 읽히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다른 대표작들도 함께 읽혀서 한 시인을 이해하는 교육도 함께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과서에 실린 저의 작품은 연작시「바다가 보이는 교실」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나머지 9작품도 함께 읽어보고 감상함으로써 다양한 시적인 감수성과, 시적 상황을 폭넓게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들이 좋은 시를 많이 외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이 인생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외운 시는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평생을 외우는 명시는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을 통해서 꼭 이뤄졌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시 교육이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울러 시 교육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루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이 있으시면 덧붙여 말씀해 주세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위의 물음에 대한 답과 중복이 됩니다만, 먼저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만드는, 시와 친구되게 하는 교육도 필요합니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시를 읽게 한다면 한 사람의 평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급학교 진학이 아닌 평생교육으로 시를 가르쳐주었으면 합니다. 현재의 평가방식에 관해서는, 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시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행평가에서 좋은 시집을 많이 읽고 좋은 시를 많이 외우고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는 학생들에는 국어점수에 가산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교과서라는 매체의 특성상 수록된 작품의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수록 작품 선정기준이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생각하는 시 선정은 필요합니다. 곧 중학교 국정교과서도 검인정 교과서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시를 선정하시는 분들이 시인의 명망에만 기대기보다는 시를 우선하는 시인(詩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선생님들에게 많은 의견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안빈낙도가 즐거움이니 욕심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늘 건강이 조심스러운데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시를 쓰는 것이 꿈이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일이 제 계획입니다.

정일근 선생님은 자신의 시를 통하여 학생들이 시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셨다. 때문에 시인은 단순히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연작시들도 함께 교육되길 기대하였으며 아울러, 학생들에게 시를 많이 접하게 하고, 많이 외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 시를 가까이하고, 시적인 체험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를 발견하고 반성과 발전의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현재 학교에서의 시 교육은 시험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안타까우며, 주관적인 시에 너무 객관적인 답을 요구하는 것은 시 읽기를 방해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에 혼이 난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시를 멀리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가 시험이 아닌 읽고 쓰고 생각하는 그 처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정일근 시인의 말은 학교 현장에서 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미약하지만,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시 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 지속될 때, 학교 현장에서의 시 교육은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일근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람직한 시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을 다짐해 본다.

정일근 시인은 현재 울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공동체-다운재(http://www.ulsan21.com/)'에 가면, 그가 지역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애정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문학은 그동안 너무 중앙 중심적이었다. 다양성을 상실한 채, 몇몇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에 의해서 한국 문학은 이야기 되어 왔던 것이다. 지방 문학의 발전은 결국 우리 문학 전체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또한 한국 문학의 한국다움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일근 시인의 노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일근 선생님을 첫 번째 인터뷰 시인으로 선정하였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10~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희들, 시 좋아하니?

시교육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은 시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아주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때, 바로 그 때 나오는 시교육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몹시도 궁금했던 만큼 실제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난상토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의 영특함은 빛이 났고 표정은 밝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시교육 전반에 관해서도 정확히 짚어 냈다. 우리는 이 난상토론을 이어나가면서 학생들이 우리에게 현재 시교육을 반성하고 하루 빨리 대안을 모색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학생들의 난상토론

수업시간에 시를 어떻게 배우고 있나요?
"시상(詩想), 내재율 같이 시 작품에 대해 분석한 것을 주로 배워요."
"저두요. 시 작품 분석하는 걸 배웠어요. 이 시는 무슨 율격이니, 무슨 심상이니 하는 거 있잖아요. 그리고 또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삶의 모습, 작가의 생각 그런 것들도요."

"그럼, 주로 수업시간에는 작품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 것 같은데, 그러면 작품분석 외에 수행평가나 학습활동은 안 하나요?"
"시와 관련된 학습활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시 창작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그래요."
"저도 예서처럼 학습활동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우리 선생님은 근데 시 창작만큼은 빠짐없이 다 했어요. 선생님을 잘 만났나…(웃음)"
"음… 수행평가나 학습활동은 잘 안하는 분위기인 것 같네요. 그렇긴 해도 시를 배울 때 조금씩이나마 했던 학습활동이나 수행평가가 효과적이긴 하던가요?"
"창작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학생 여러분들은 어떻게 시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냥 시집 같은 걸 마음대로 보게 하구요. 선생님이 우리한테 '시는 숨어 있는 뜻이 있어서, 겉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로 그 뜻이 해석될 수 있단다. 그러니까 너희들 마음대로 생각해 보렴.'이라고 말하면서요,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걸 보면 너무 한 가지만 강요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서가 말한 것처럼 시를 많이 배우는 것도 좋긴 하겠네요."
"저도 그래요. 자기 생각대로 시를 읽을 수도 있는 거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이상해요. 그리고 시를 직접 읽게 하지 말고 간접적으로 읽게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를 읽을 수 있게요."

"시를 많이 읽고 다양하게 해석해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여러분의 생각이 옳아요. 다만 지금의 교육방식이 그런 것들을 잘 못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보기로 하죠. 좀 어려운 질문일지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시를 배운다는 게 작품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시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야 둘 다 배우는 게 맞죠. 어느 것 하나에다 비중을 두고 우열을 논해야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시를 통한 삶을 배우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다른데요, 작품 자체를 배우는 거 같아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시인이 수능문제에 출제된 자기의 시를 풀어 봤는데 5개 중에서 2개만 맞춘 일이 있었데요. 시인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의도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가르쳐서 그렇다는 거죠. 시를 통해 인생을 가르쳐야 하는데 작품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여러분들이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시교육을 같이 고민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임해 준 덕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시간 내주고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등학생들의 난상토론

시, 좋아 하나요?
"저는 문학을 매우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시를 특히 좋아하죠. 분량은 적은 반면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거든요."
"저도 시 좋아해요. 숨은 뜻이 있잖아요!"
"저는 솔직히 시보다 소설을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소설이 역사적 사실과 연관이 되어 있으면 특히나 더 좋구요. 그렇다고 시가 싫은 건 아니지만요."
"저도 소설을 좋아해요. 시는, 시어의 의미가 함축적이라 그런지 쉽게 이해할 수 없거든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개인 취향에 따라 호감도가 다르겠지요. 시에 대한 선호도가 중 · 고등학교 때 시를 배운 방식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다들 시 어떻게 배웠어요? 전반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 학습활동이나, 시 창작, 수행평가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
"우리 학교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시 위주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 혼자서,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시에 대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방식밖에 없겠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학습활동이나 수행평가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뿐이구요. 물론 시 창작은 다른 나라 이야기지요."
"저도 비슷해요. 주로 선생님이 시 한 번 읽어주고, 주요 시구에 밑줄 긋고 의미 적고, 비유법 같은 경우는 색연필로 밑줄 긋고 무슨 비유법인지 적고, 같은 비유법끼리 묶어서 따로 체크해 두고. 수행평가라고 해봤자, 저희 학교에서는 시를 외우고 시험 보는 거 정도였어요."

시를 어떻게 배웠으면 좋겠어요?
"입시 위주 학습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느끼고 분석해 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수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현우 말에 동감해요. 주입식이 아니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시를 배울 때 그 시와 관련된 제반 사항도 다 함께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그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좀 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학교에서 시를 배우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EBS교육방송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은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수능에 더 도움이 되는 건 EBS교육방송이죠. EBS교육방송과는 차별되는 학교만의 학교다운 시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바람직한 시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가르치는 선생님의 열정이 필요하겠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선생님의 열정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그리고 학생들 역시 '시'라고 하면 무작정 기피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잠깐만요. 이스리 학생, 방금 학생들이 시를 기피한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래요?"
"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시 같아요.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갑자기 느릿느릿하게 천천히 읽는 것처럼,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거 같아요. 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느끼는 게 일반적인 거 같구요. 딱 드러나지 않으니까. 시가 함축적인 데다가 한 눈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어렵다고 하겠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하지만 제가 교단에 섰을 때, 제 제자들은 적어도 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제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지만요."

시를 배운다는 것은 시 작품을 배우는 걸까요, 시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걸까요?
"현재 학교 수업은 주로 시 작품을 배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 자체가 작가의 경험과 생각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배우고 그렇지 않은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요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거야 다 수능 위주잖아요. 그냥 집에서 시 읽으면서 인생을 깨닫는 거랑 학교나 학원에서 '이게 중요해! 이게 나온다!'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해요. 입시제도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은 시 작품을 배운다는 의미가 훨씬 강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생각들이 비슷하네요. 그러고 보니 시교육의 문제가 비슷하다는 말은 해결해야 할 방향도 단순하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결코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이제부터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개선과 갱신하느냐 하는 실천의 장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이렇게 모여 줘서, 또 진솔하게 이야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빕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8~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설문 결과를 보면서, 오히려 궁금한 점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직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 중학교 국어교사 김형봉. 91년부터 교직에 몸담았고, 현재 3학년을 담당하고 있다. 전화를 반갑게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 바로 교무실로 찾아갔다. 2006년 10월 31일.

수업시간에 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세요?
일단 교사용 지도서를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다만, 학년과 단원에 따라서 그 시에서 교육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르니까 좀 차이가 있죠. 예를 들어 1학년의 경우, 시의 즐거움이란 단원이 있습니다. 이 단원에서는 심상, 운율 등 시가 주는 즐거움을 재미있게 느끼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시라고 하는 게 딱딱하고 어렵고 상징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외에 제반사항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시되는 목표가 있으면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고, 제반사항도 가르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교과서 외에 시를 더 가르치기도 하십니까?
안 가르칩니다. 교과서 외에는 다룰만한 상황이 안 됩니다. 시간도 모자라고요. 교과서 본문에 있는 시를 이해 · 감상시키고 그 다음에 보충 심화학습 학습활동에서 나온 시들을 더 가르치기는 합니다. 선생님에 따라 시를 좋아하고 잘 가르치면 그 외의 시들도 가르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달라요.

평가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시에 관련된 평가는 보편적인 것만 묻게 됩니다. 시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느끼며 감상도 사람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현장에서는 어렵죠. 다만 서술형 평가에서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유동적인 답을 유도하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객관식 평가에서는 기본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을 정답으로 이끌어 낼 수밖에 없구요.

그럼, 수행평가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선생님에 따라 다릅니다. 안 하는 경우도 있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시와 관련된 수행평가는 모방시와 시에 배경음악을 깔아서 낭송한 것을 녹음시켜 제출시켜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귀찮아하기도 하고(웃음). 아무튼 아이들이 그렇게 달가와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이란 것이 학원까지 다니느라 바쁘니까요. 아이들에 따라 반응이 다르지만 의미 있다고, 재미있다고 했던 아이들도 있었지요.

그러한 방식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모방시 같은 경우는 시의 의미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효과적이었습니다. 대칭이라든지… 어떤 식으로 시의 구조가 짜여있고 표현 방법은 또 어떤 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요. 한 번 수업했던 시를 되새겨 본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시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시를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시를 배우고나서 학생들에게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를 생각해 보면 금세 반성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매번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시를 가르친다는 게 이런 것은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거든요.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가면서 시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는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요. 하긴 기본적인 사항도 하기 바쁘죠.
단 몇 줄이라도 그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의미가 함축 되어 있는 것이 시인데, 객관적이고 분석적이라는 이름 아래 공인된 한 가지만을 정답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도 답답하고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쉽기는 하겠지만 시를 가르치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는 셈이죠. 아마 학생들도 그런 아쉬움은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겁니다. 문제지요. 교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표현을 허용하지 못한다는 게.

학생들에 따라 다양하게 감상이 이루어지는데, 가르치는 감상의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그 감상에 대해 이의를 단다면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애들이 묻질 않습니다. 잘 가르치지 못해선지는 몰라도요(웃음). 지적인 호기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선생님 저는 이 시의 표현에 대한 설명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묻는 애들은 거의 없다는 거죠. 가끔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은 있지요. 대개 시는 시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선생님이 되어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웃음)
(웃음)어려운 질문입니다. 학원이라든지 자습서에 시를 분석해 놓았는데, 주제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표현법은 뭐인지 나와 있거든요. 아이들에게 이 외의 것을 이야기하면 선생님이 엉뚱한 소리 한다고도 해요. 시를 가르치다 보면 애들의 감수성을 넓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되더군요. 내가 모자라서 그런지(웃음) 아무튼 의견이 주관적이면 평가하기도 어렵지요. 이런 점들이 선생님으로서 한계라는 생각도 들곤 하지요.

그럼 선생님은 바람직한 시교육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시인이 가졌던 느낌을 한 번 가져 보는 것이죠. 감정이입을 한다든가, 상상을 한다든가. 그 시 분위기에 몰입되고 인상 깊었던 것도 생각해 보고 자기 안에서 되새김할 수 있으면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간다면 자기만의 언어로 자기만의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구요.

시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다양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수용하고 그리고 자신의 표현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겠지요. 글쎄요, 더 이상 구체적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호의 테마이기도 한데요.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시작품을 가르치는 것인가, 시를 통한 인생을 가르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세요?
그야 두 가지가 다 관련이 있습니다만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수필이나 작품의 의미구조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까요. 나와 관련지어서 생각하게 하고, 현실과 관련지어서도 생각해 보게 하고, 오늘날의 시대적 고민과 연관시켜 가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문학작품이 가지고 있는 역할이나 기능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모든 작품을 관련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시교육> 001,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시교육' 편찬위원회, 6~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