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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동양과 서양 사이의 경계선은 유럽측에 언제나 무엇인가를 인상지운 것이었다."(141쪽)

  '무엇인가를 인상지운 것'은 자기화 하는 것, 아니 자기 멋대로의 형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가능하게끔 변형하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은 언제나 유럽의 '사업'대상이 된다.

  "우리들이 아는 한 그들의 대부분은 '식민지의 개량을 촉진함과 동시에 자국의 지식을 높이고 예술을 향상시키는 것을 희망하여 아시아의 여러 학문과 예술을' 연구한다고 하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지녔다."(152쪽)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의 공통된 목표'라고 사이드는 말한다.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자 한다. 자국은 곧 제국이며, 그 제국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힘었으며, 그들의 지식은 침략과 약탈에 봉사하였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은 그들의 이익이 목표였던 것은 아닐까?

  "유럽인이 고전적 동양이라고 하는 과거로부터 끌어낸 것은, 자기를 위해서만 유리하게 작용시킬 수 있는 비전(및 수천 개의 사실과 인조물)이었다."(153쪽)

  결국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었다.

  "이집트에 대한 나폴레옹의 계획은, 연면히 계속된 유럽과 동양의 만남 속에서도, 오리엔탈리스트의 특수한 전문적 지식이 직접 기능적으로 식민지지배의 도구로써 이용된 최초의 보기가 되었다."(154쪽)

   "유럽의 중요한 오리엔탈리스트는 거의 모두 실베스트르 드 사시의 제자였고, 유럽에서는 어언 4분의 3세기에 걸쳐 그들이 이 분야를 지배했다."(159쪽)

  실베스트르 드 사시는 당시의 유일한 아라비아어 교사였단다.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언어를 알아야 했던 것일까?

  "동양에 대한 서양세계 공통의 사명이 낳은 유산은 대대로 계승되어 새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비전 그리고 새로운 사업이 되어 나타났으며, 그것들이 옛 동양의 남은 부분과 정복자로서 유럽정신을 결부시키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이후, 오리엔탈리즘이란 말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오리엔탈리즘의 서술적 사실주의는 격상되었고, 더 이상 단순한 표상의 한 양식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 실제로 '창조'를 위한 수단으로 변했다."(166쪽)

  "수에즈 운하의 구상에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의 논리적인 귀결과, 더욱 흥미 깊은 것으로는 오리엔탈리즘적인 노력의 논리적인 귀결이 같이 나타난다."(173쪽)

 


 

  오랜만에 놓아두었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읽었다. 오리엔탈리즘을 충실히 건설하였던 그 제국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밤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충실함을 다했을 것인데, 나는 오히려 그들만도 못하니 애석할 따름이다. 알지 못하고는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그 수행자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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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고은은 <<만인보>>에서 이상을 '사건'이라 칭하였다.

  어쩌면 당시의 문단의 글쟁이나 문학 꽤나 읽는 사람들에게 그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지금에도 이상은 참말 '쇼킹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내가 이상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의 '쇼킹한' 시 때문이다. 전위라느니, 다다라느니 하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시는 지금에서도 굉장히 실험적인 것에 속한다. 우리 시사에서 최초이자 최후, 아니면 최대로 전위적이랄까. 현대의 시들도 이상 이상의 도전적 시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당시 이상 시의 실패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이라고 하는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김해경의 천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더욱 크다고 본다.

  이상의 수필은 매우 뛰어난 수필 중의 하나로 치고 있다. 오히려 시보다는 수필이나 소설에서 이상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어쩌면 시는 이상의 열혈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겟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다분히 매니아적 팬들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 말고도 이상의 광팬들은 내 주위에 몇 있으니 말이다.

  이상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가 남긴 작품들을 읽어내야 하는 기본적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사 모았다.

 

 

 

 

  <<이상문학전집>> 1~5권. 1권은 시를 2권은 소설, 3권은 수필, 4~5권은 연구논문들을 모아 놓았다.

  이 책들을 다짜고짜 사둔지는 오래되었다. 다분히 시간을 가지고 읽어야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저 위의 책 <<이상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작품을 보는 관점이나 방법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의 문학교육이 가져왔던 병폐가운데 하나가, 작품 자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시대와 역사에 어거지적으로 짜 맞추는 식의 교육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혐오내지 반감으로 작품에서 역사적, 시대적 요인에 대한 적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빼먹는다면 작품은 오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우선 '평전'을 읽기로 한 것이다.

  작품 자체만을 가지고 이상을 읽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겠지만, 작품은 작가를 떠나서는 탄생할 수 없었기에, 이상의 삶을 우선 이해하고 가는 것은 효과적인 일이다.

  흔히 평전하면 위인들의 전기, 영웅들의 뛰어난 활약상을 담아내어, 거기서부터 교훈과 도전을 받기를 원하지만, 이상 평전을 읽고 나는 전혀 그러한 것들을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상이라고 하는 그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나는 그의 삶을 이해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 이상의 삶과 조우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이상과도 같이 삶이 우울해질 것만 같다. 계속 만나다가는 나도 '이상'(해 지는 것)이 되는 것 아닌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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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제1부 제2장 <상상의 지리와 그 표상 : 동양의 동양화>이다.

  99쪽에서 "오리엔탈리즘은 1312년, 비엔나 교회회의에서 ... 각 대학에 아리비아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시리아어에 관한 일련의 강좌를 설치하는 것이 결정된 시점으로부터 서양의 기독교세계 속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00쪽과 101쪽에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 분야는 매우 큰 지리적 야망을 갖는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이 잡다하고 엄청나게 거대하며 동시에 거의 무한대의 세분가능성을 오리엔탈리즘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인정하여야 한다."

  102쪽에서 "슈와브의 생각에 의하면 '동양'이란 말은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열광과 같은 뜻이었고, 아시아적인 것이란 이국성, 신비성, 심원함, 생식력 등과 놀랍게도 부합되었다. 이것은 과거의 르네상스 극성기에 유럽에서 나타난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정열이 그대로 동양으로 바뀐 것이었다."

  104쪽에서 "19세기의 중요한 작가 가운데 상당수가 동양열병에 걸렸다. 곧 위고, 괴테, 네르발, 플로벨, 피츠제럴드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오리엔탈리즘 저술의 한 장르를 전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 자체는 분명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106쪽 "사물이 구별되는 방식에는 언제나 어떤 정도의 순수한 자의성이 작용하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구분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자의적이다. 지리적 위치에 의하여 동양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은, 그 기준을 서양 지신들에 두었다는 자의성을 농후히 가지고 있다.

  107쪽에서 "사물 가운데 정신에 의해 판별되고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허구적인 실재밖에 갖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어서 "사람은 자신이 속하는 공간의 외부에 있는 생경한 공간을,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공상이나 연상 또는 꾸며 낸 이야기로 가득 채우게 된다."

  결국, 동양은 서양의 외부로서 서양이 만들어낸, '상상의 지리와 표상'들로 가득 채워진다. 즉, 서양은 동양을 자의적으로 '동양화'하였다.

  이 장에서 이런한 상상의 결과 어떻게 서양이 동양을 대상화, 표상화하였는지 입증한다. 110쪽에서부터 140쪽까지 동양, 특히 이슬람이 어떻게 서양에 의해 이미지화 되었는가를 입증하는데, 가히 어린아이들의 단순한 놀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미지는 더욱 확고히 굳어져, 모든 동양에, 모든 동양인에게 상징적으로 부여되었던 것이다. 재미를 느껴도 된다면, 마호메트가 어떤 캐릭터로 상징화되고 이미지가 부여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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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적어 남기고 싶어 마이리뷰의 밑줄긋기를 이용하고 싶었으나, 별도의 자리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일단은 이곳 마이페이퍼를 이용한다.

  오늘은 제1장 <동양인에 대한 인식>(pp.67~98)이다.

  아더 제임스 벨푸어

  "그는 '동양인'이라고 하는 말의 선택 그 자체가 이미 정해진 규범적인 것이라고 말했다."(p.69)

  "지식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지배한다는 것, 곧 그것에 대하여 권위를 미치고자 하는 것이다."(p.70)

  결국 서양은 오리엔탈리즘, 곧 동양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동양을 지배했고, 권위를 미친 것이다.

  "이집트는 영국에 의해 병합되기까지 동양의 후진성을 말하는, 소위 학문적 사례로만 얘기되는 존재였다."(p.75)

  "밸푸어의 '오리엔탈리즘'에 상응한 것이 크로머의 '종속적 종족'이다."(p.77)

  "본질적인 지식의 핵심, 그 긴 발전의 궤적에 접근한다. 그 지식이란 크로머나 밸푸어가 1세기에 걸친 근대서양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계수한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이며, 그것은 곧 동양인에 관한 그 인종, 성격, 문화, 역사, 전통, 사회 그리고 장래성에 관한 지식이었다."(p.79)

  "동양인이 동양인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범죄였다."(p.81)

  "18세기 중엽 이후 동양과 서양의 관계를 규제하는 두 가지의 중요한 계기가 생겼다. 그 첫째는 유럽에서 동양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이 증대한 점이다. ... 둘째의 양상은, 유럽이 지배자의 지위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언제나 강력한 힘을 갖는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는 점이다."(pp.82~83)

  "오리엔탈리즘이 제도의 면에서도, 내용의 면에서도 급속하게 진전된 시대는 유럽의 엄청난 팽창의 시대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p.85)

  결국,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의 봉사한 오리엔탈리즘인 것인가?

  "19세기와 20세기에는 오리엔탈리즘의 여러 관념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 ... 소위 동양 르네상스가 생겼났다는 점이다."(pp.86~87)

  "나폴레옹의 이집트점령과 함께,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적, 정치적인 관점을 지금까지도 여전히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 동서양 관계의 과정이 급격하게 시작되었다."(p.87)

  "오리엔탈리즘은 지금까지 제국주의, 실증주의, 유토피아주의, 역사주의, 다윈주의, 인종주의, 프로이트주의, 마르크스주의, 슈펭글러주의 등의 지배를 받아왔다."(p.88)

  "오리엔탈리즘이란 결국 현실에 관한 정치적 비전이며, 친구들(유럽, 서양, '우리')과 이방인(동양, 동방, '그들') 사이의 차이를 확장하는 구조"(p.89)

  동양이라는 것은, 곧 동양에 대한 서양의 타자화인 것

  "오리엔탈리즘의 현실이란 반인간적인 것임과 동시에 지속적인 것이라는 점을 나는 말하고 싶다. 오리엔탈리즘의 범위는, 그 여러 제도 및 광범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오늘에까지 존속되고 있다."(p.89)

  "동양인에 관한 적합한 연구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이다."(p.91)

  "이국적인 것을 취급하는 사고양식으로서 오리엔탈리즘은 그 근대적인 전개의 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엄격한 구분 위에 기초지워진 지식 특유의 지극히 개탄할 만한 경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p.92)

  "그의 구별은 동양인과 서양인을 분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정통적인 구별과 같다."(p.95)

  여기서 '그'는 전 미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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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와 오늘 이 책의 서문(pp.11-63)을 읽는 데 그쳤다.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을 언제 다 읽어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름신 덕분이었다.

   지름신은 나에게 이 책을 과감히 장바구니에 담게 했고, 그대로 결제를 했더니 지금 나의 독서대 위에 자랑스럽게 놓여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를 나는 고민해야 했다.

  우선은 한번 쭉 읽어내야 할 것 같았다. 이 책의 무게만큼이나 한 권을 대충 일독하는 데도, 많은 시일이 걸리 것만 같았다. 그것은 곧, 다시 한 번 읽어내기에는 커다란 인내, 또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난, 이 책을 꼼꼼히 읽기 방식을 택하여 읽기로 했다. 형광펜을 준비하고, 각주 및 후주까지 "꼼꼼히"읽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서문을 읽은 것이 이틀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읽더라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서문을 읽는데 그쳤지만,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더욱 꼼꼼히 읽어가기 위해, 몇몇의 귀중한 글귀들을 적어 남기고 싶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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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9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6-06-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간혹 이런 저런 책들(그나마 읽어내기 어렵지 않은 여러 해설서들이지요.)을 읽다보면, 자주 인용되거나 언급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이 눈에 띄면 항상 나중에 꼭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마르크스가 그러하고, 푸코가 그러하고, 프로이트, 라캉, 들뢰즈와 가타리 등이 그러합니다. 참 몇 년을 미루어 왔는지 모릅니다. 지름신이 강림하여 사놓은 책도 서가에 그냥 꽂아놓고는 몇 년을 삭혔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라타니 고진도 저의 그러한 목록에 있습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란 책이 제 서가 어딘가에서 지금 썩고 있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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