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暴雨)

 

   

 

지금껏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서서히

젖을 새도 없이 젖어

 

세상 한 귀퉁이 한 뼘

처마에 쭈그려 앉아

 

물 먹은 성냥에

우울한 불을 당기며

 

네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 비가 내렸습니다. 비에 대한 예감이 이른 새벽부터 다가오더니 급기야 오전 내내 많은 비가 퍼붓더군요. 수업 준비를 하며 스팅의 ‘fragile' 과

이아립이 부른 ’물음표를 찍어요‘, 그리고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이라는 노래들을 번갈아 가며 한참을 들었습니다. 세 곡 모두 비가 내리는 소리와 비가 연상시키는 슬픔이라는 정서가 노래 전반을 슬프게 물들이는 노래들이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김수영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 여보 / 움직이는 비애를 아느냐?‘ 라는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구절이...

 

  오전 내내 움직이며 떨어지는 비애의 눈물들을 바라보아서였을까요?

문득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이 시가 그냥 자연스럽게 망각의 기억 속에서 둥 두웅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가물가물해졌지만... 아직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세상일도 사람을 대하는 일도 온통 서툴기만 했던 20대 초반에, 혼자 가슴앓이하며 먼 발치에서 외사랑하던 추억이 서린 시라는 것 정도만 얘기할게요.

 

  그렇다고 이 시가 그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의 이름으로 아련하게 떠오르는 대과거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군가는 오래도록 천천히 다가가 서서히 가슴에 물들어 오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서서히 젖을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젖어 버린 채 계속 먹먹한 눈물의 비를 맞아야만 하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니까요.

 

  다들 깊고 고요한 밤 맞으시기를 촛불 켜놓고 기원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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