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명하고 잘 알려진 작가인데 어디서 감히 어린놈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소설은 <태백산맥>이다. 여름밤 식은땀을 흘리며 읽었다. 단지 감동을 받아서라기보다는 특정 내용이 당시 내가 겪었던 상황과 흡사해서다. 좋은 글은 독자들의 공감을 극대화시켜야 하는데 이 소설이 그랬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글에서 벗어나 살아서 꿈틀대며 펄떡거렸다.


조정래가 구설수에 올랐다. 자신의 발언에 비판을 가한 진중권에게 사과요구를 한 것이다.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기사들을 참고하시면 된다. 가만있을 진 씨가 아니다. 기다렸다는 듯 재반격에 나섰다.


“ 진 전 교수는 이날 오후 페이스 북에 올린 글에서 “한 가지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을 ‘대선배’라 칭하고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무례와 불경’을 말한다는 것”이라며 “자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이 권위의식이 저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고 했다.


그는 “법에 호소하는 것은 그의 권리이니 존중해 드린다”며 “저는 이 진흙탕에 빠지지 않고, 이 문제를 역사철학에 관한 학문적 논쟁으로 승화하는 길을 택하겠다. 독일에서 있었던 ‘역사학자 논쟁’(Historikerstreit)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20. 10. 15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중권은 소설을 안 읽기로 유명하다. 꾸며낸 이야기에 흥미가 없기 때문이란다. 개인의 자유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조정래와의 논쟁이 마치 소설가의 패배로 비쳐질까 두렵다. 그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조정래의 시비 거는 방식은 너무도 졸렬했다. 내가 이렇게 유명하고 잘 알려진 작가인데 어디서 감히 어린놈이라는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어차피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지만 못내 씁쓸하다. 무례와 불경이라니그게 작가가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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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안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음악이면 일단 반은 눈감아준다.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음악은 남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래 하나로 기억되는 경우도 꽤 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음악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비중이 적지만 야구를 짧게 다루기만 해도 평가를 달리한다. 허무맹랑한 <내추럴>을 보면서도 쾌감을 느꼈을 정도니까. 참고로 이 영화의 야구 장면은 최악이다. 홈런을 친 볼이 조명에 맞으며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어렸을 적 극장에서 관람하면서도 허무맹랑했던 기억이 난다.


<야구소녀>를 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가 야구를 하는 영화다. 소재 자체가 특이한 건 아니다. 여자도 야구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제대회까지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 여자가 야구를 하는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보다 역사가 긴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이런 편견(?)에 맞서 싸운다. 실제로 여자가 프로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1996년 규정이 바뀌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왜? 안타깝지만 실력이 달리기 때문이다. 동일한 잣대를 기준으로 선발했을 때 남자선수의 능력을 뛰어넘는 여자는 나오지 않았다. 곧 여자라서 안되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다.


감독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강박적인 패미의 서사를 거부하고 그렇다고 어설픈 감동도 짜내지 않는다. 극히 사실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동병상련을 앓았던 코치와의 만남을 계기로 목표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성장스토리로 몰아간다. 이 부분이 크게 와 닿았다. 주인공 주수인 역을 맡은 이주영은 당차면서도 섬세하게 스스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갈등의 축이었던 엄마 염혜인도 인생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비시즌 기간에 촬영하여 야구 자체의 극적인 재미는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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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로 떠들썩해졌기 때문이다. 할로윈데이 인가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도 보름 남짓 남았으니 그건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이지? 내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음은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마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창밖을 열어보았다. 사방은 조용했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뭐에 홀렸나?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열심히 일을 하고 겨우 한숨을 돌리려는데 마치 지진의 전조를 알리듯 수군수군 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왁하고 소음이 쏟아져 나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30분. 그 때서야 깨달았다. 아, 어제부터 애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했구나. 하교 시간에 맞춰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애들이 뛰어놀고 있구나.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도 덩달아 나와서.


그러고 보니 거의 8개월가량 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 전에는 겨울이었으니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었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아이들이 사라진 세상에 적응해 있었다. 오후에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까마득한 과거가 되고 만 것이다.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들러온 나를 반기는 소음은 여전히 까르륵 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거실에서뿐만 아니라 내 방에서도 잘 들린다. 오히려 거실에서는 꽤 먼 거리의 놀이터에서는 스테레오로 울렸다면 방 앞 놀이터는 규모는 작지만 바로 앞이라 원음 그대로 생생하다. 정직하게 말해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귀에도 거슬린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소리는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신호 같아 반갑다. 부디 코로나 19도 사라지기를 바란다. 너무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마스큰 쓴 일상이 자연스러워져 도리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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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은 중독은 없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그럼에도 쉽게 유혹에 빠진다. 왜? 뇌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중독만큼 두뇌를 자극시키는 건 없다. 포르노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에서 <살색의 감독 무라시니>를 봤다. 공교롭게도 신청을 하고 보지 않은 지 서너 달이 되어 잠시 해지를 한 다음날 보았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구독을 중단해도 하루는 더 보게 해준다. 이 또한 얼마나 얄팍하지만 마력적인 마케팅인가? 8부작이라 처음에는 조금 보다 재미없으면 그만두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다 보았다. 일본 전설적인 에로 비디오 감독 및 제작자인 무라시니 주인공이다. 실화에 바탕했다고 하니 꽤 흥미진진하다. 중간 중간 일본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도 등장하여 현실감을 더한다. 딱히 에로 비디오를 즐기지 않더라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기 때문에 볼만하다. 규제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특히 제대로 된 포르노를 만들기 위해서는 뇌를 자극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단지 에로물뿐이겠는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필수다.


덧붙이는 말


주제만 보고 비급 드라마라고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일본 영화계를 빛내는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곡성>으로 잘 알려진 쿠니무라 존이 야쿠자로 나오고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탄 <어느 가족>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은 릴리 프랭키는 형사로 출연한다. 이밖에도 연기파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어 일본 드라마 의 과장된 분위기가 없다. 


사진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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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은 어떻게 사람을 잡는가? 심지어 자기 편마저도

 

우리나라 부동의 1위 신문은 조선일보다. 구독자수를 보나 광고비를 감안하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이 신문이 대변하는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넓고 깊은 취재와 정확한 문장만큼은 인정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지만 소제목을 귀신같이 잘 뽑아낸다. “홍남기씨, 전셋집 집 빼주세요”도 그 중 하나다. 주택관련 정책을 직접 진두지휘한 경제 수장이 정작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리고 만 것을 비꼬고 있다. 구체적으로 마포에 전세로 살고 있는데 만기가 되자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겠다고 통보를 하면서 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보유하고 있던 의왕 아파트먼트는 정부의 서슬퍼른 엄포로 이미 팔았기 때문에 당장 돌아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왜? 세종시 분양권이 문제였다. 아직 지어지지 않았지만 1주택으로 관주하는 법이 통과되어 생긴 일이다. 


어련히 잘 처신하겠지만 무리한(?) 부동산 정책만 마련하지 않았더라도 홍남기 장관은 지금 거주하는 마포에서 전세기간을 연장하여 잘 살다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좋아하는 의왕으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다주택자를 무슨 투기꾼으로 몰아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정직하게 말해 관련 정책이 본인 생각은 아니었다고 짐작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위정자 지지 세력이 집값 폭등을 어떻게든 잡고 지지 세세력인 세입자를 위한답시고 칼을 마구 휘둘러서 생긴 결과다.


덧붙이는 말


조선일보는 현직 장관을 왜 직함으로 부르지 않고 씨자를 붙였을까? 은연중 교체되어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으로 느껴진다. 혹은 시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함께 겪는 이에 대한 연민? 여하튼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준 카피만으로도 조선일보는 꽤 상급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신문자체가 낡은 매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종이책도 여전히 팔리지 않는가?


관련 기사 : 


https://www.chosun.com/economy/2020/10/09/XYBYYMMBPFETDBKLCO5AOWX3VA/?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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