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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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믿고 읽는 작가다. 거의 모든 작품이 평타 이상은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그의 최근작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는 고개가 갸웃했다. 게이고도 나이가 든 것인가? 뭔가 영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의심부터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직하게 말해 끝까지 다 읽지도 못했다. 단순히 소재 자체가 지나치게 일본스러워서가 아니다. 핵심은 공감능력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음 소설을 어서 빨리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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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철저하게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야


유튜브가 생기면서 반짝 스타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동시에 몰락도 순식간이다. 이유가 뭘까? 방송은 이런 저런 걸림 장치가 있다. 일단 섭외할 때부터 단순한 화제성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핀다. 예를 들면 범죄력이 있는지 학폭에 관련되었는지 돈 구설수가 있는지 등. 그럼에도 사고가 터지는 일이 잦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기획사다. 곧 스캔들이 터졌을 때 재빠르게 수습하여 더 큰 파장을 막는다.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 게 유튜브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제작자며 출연자며 매니저며 사장이다. 기존 방송에 비해 훨씬 발 빠르게 참신한 아이템으로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영상소비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딱 맞는 방식이다. 그러나 리스크도 크다. 혼자 혹은 여럿이라 해도 그 규모는 매우 미약한 집단이 만들어내다 보니 예상치 못한 파장을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유튜버 영국남자의 부인인 국가비 사태가 대표적이다. 영국에서 귀국하여 자가격리중에 올린 생일파티 영상 때문에 채널이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아마도 당사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나름대로 보건당국에 문의까지 다 했다고 하니까. 그러나 영상을 올리기 전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유명세를 타도 뭔가 만들어 업로드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파국이었다. 한창 인기를 끌다 돌연 중단을 한 진짜 사나이 2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연출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유디티 훈련을 체험하는 것인지, 참가자들을 괴롭히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물론 사전 설명을 달기는 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 결국 가학성 논란만 낳은 채 급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부족한 탓이 컸다. 


반면 좋은 사례도 있다. 함연지가 그렇다. 재벌가 딸로 유명세를 탄 그는 유튜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방송에서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는지를 보여주었다. 함씨는 직접 원고를 쓰고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있었다. 곧 사전에 철저하게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 본 것이다. 역설적으로 사전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을수록 실제 영상도 자연스레 보여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유튜브 뿐이겠는가? 대부분의 일들도 마찬가지다. 이 글도 의외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더디 가도 오래 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반짝 스타는 사절이다.  


사진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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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황당한 영화를 마주할 때가 있다. 호기심에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눈길 끌기용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프랭크도 그럴 줄 알았다. 우연히 한 방송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았다. 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노래 부르는 인간. 요즘 유행하는 부케인가? 음악이 취미인 직장인 존.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 꾸역꾸역 일터를 향하지만 마음은 늘 딴 곳에 가있다. 우여곡절 끝에 황당한 사건으로 한 밴드에 키보디스트로 합류하게 되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프랭크를 만난다. 다행히 자신과 음악적 지향이 맞아 일까지 팽개치고 음악에 몰두하지만 그렇다고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어떤 관객이 보겠는가? 적당한 고난과 역경을 양념처럼 곁들여야지? 그러나 감독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구렁텅이로 계속 몰아붙이는데.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을 것 같았던 프랭크도 탈을 벗지만 찜찜한 기분은 감추기가 어렵다. 음악은 더 나아가 예술은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단순한 자기만족인가? 아니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관객이 있어야 하는가?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젊은 생을 마감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스포삼아 알려드리자면 기괴한 노래가 난무하는 이 영화에 단 한 곡의 정상적이며 감미로운 곡이 숨겨져 있다. 이걸 찾는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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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우유는 왜 지금까지 아이스크림을 만들지 않았을까? 


서울우유의 오래된 팬이다. 체질상 우유가 맞지 않아 먹으면 설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서울우유를 마시고 나서는 이 증상이 사라졌다. 혹시 모든 우유에 면역이 생겼나 싶어 다른 제품을 섭취하면 역시나. 서울우유에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순간 무릎을 딱 쳤다. 어머 이건 꼭 사 먹어봐야 해. 바닐라. 딸기, 바나나, 초콜릿 네 종류가 나왔는데 나는 무조건 바닐라. 같은 아이스크림으로 무려 세 개를 주문했다. 재미있는 건 흰 우유라고 표기한 점이다. 오히려 더 정감 있고 좋았다. 우유하면 서울이니까. 


맛은 기대이상이었다. 다른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 느껴지는 텁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우유를 그대로 농축해 놓은 듯 한 맛이랄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우유의 함량이 높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흰 우유인가? 더불어 쫀득쫀득함이 매력적이다. 젤라또 같다고나 할까? 한 팩에 8천 원정도하니까(소매가는 다를 수 있다) 다소 비싸지만 어차피 아이스크림은 주식이 아니니까. 양보다 질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서울우유 아이스크림을 선택하겠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서울우유는 왜 지금까지 아이스크림을 만들지 않았을까? 우유를 만드는 회사니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법 한데. 무려 1937년부터. 여하튼 뒤늦게나마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열심히 먹을테니 지금 이 맛 변치말고 계속 생산부탁드려요.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galled/222082400274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사서 먹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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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AC와 직류DC


테슬라 보기 전 예습용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대게 과학자들 덕이 크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 상태로 지냈다. 극히 소수만이 권력자 내지 지배세력이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약 동력장치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혹은 막았다면 문명사회는 영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차가 등장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비로소 평등에 대한 열망은 실현가능해졌다. 전기는 또 다른 세상을 열었다. 밤을 없애고 세상을 언제나 대낮처럼 밝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에너지원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냉난방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전기의 탄생은 예견되어 있었다. 수많은 과학자와 사업가들이 달라붙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표주자는 바로 에디슨과 웨스트하우스였다. 두 사람은 자시의 이름을 딴 기업대표로 명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여론은 에디슨 편이었다. 이미 발명왕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이 위험하다고 계속 경고를 날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류 전기를 이용하여 말을 죽이고 다 나아가 교수형에 처해진 살인자를 죽이기 위한 살인의자까지 만들었다. 역사는 에디슨의 손을 들어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가 테슬라다. 에디슨 회사에 있다 의견이 맞지 않아 나온 테슬라는 교류방식의 문제를 해결하며 웨스팅하우스와 합작을 하게 된다. 위험이 사라지고  효율적인데다가 값도 저렴한 교류방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영화는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에 초점을 맞추어 전기 공급 표준방식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상대적으로 테슬라의 비중이 적어 매우 아쉽다. 사실 웨스팅하우스는 과학자는 아니었다. 돈 많은 사업가에 불과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대결에 집중했다면 훨씬 박진감이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주인공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아무리 빼어난 명연을 펼쳐도 소용없는 이유는 그가 영국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형적인. 죽었다 깨나도 미국의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대체 제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를 캐스팅한 것인가? 주제가 워낙 흥미로워 끝까지 보기는 했지만 내내 찜찜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리뷰를 올리는 까닭은 곧 개봉하는 <테슬라(2020년 10월 21일)>를 관람하기 전에 예습삼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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