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 삐삐 삐삐 그래픽노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잉리드 방 니만 그림, 김영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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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어린이 책을 사 모은 적이 있다. 중고장터를 뒤져 조금이라고 싸게 놓은 전집이 있으면 무조건 사두었다. 동기는 어릴 적 그 책을 읽고 나서였다. 제목 그대로 유년기 때 읽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 내용을 떠나 어찌나 맛깔나게 알려주었는지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특히 온라인을 뒤져가며 책을 찾아가는 여정은 보는 내내 땀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 때부터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약 1년 이상 전투는 지속되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중독되어 집안은 책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 오래된 책들이라 곰팡이는 덤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사재낀 책들을 전혀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보겠지하는 희망도 없었다. 뭔가에 씌어 걸신들린 듯 쓸어 담았다.


삐삐롱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그래픽 노블 판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내 유전자는 아직 죽지 않았어. 눈이 번쩍 뜨이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 삐삐의 원형은 이랬구나. 천재 작가 린드그렌의 상상을 그림으로 그려낸 니만의 솜씨에 감탄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티브이 시리즈의 삐삐도 사실은 이 삽화에 빚지고 있다. 비록 본문을 압축하여 본래 삐삐의 발랄함이 다소 죽기는 했지만 입담은 여전히 살아 있다.


“푸하하! 자기 코를 어떻게 깨물어? 그럴 순 없지.”

“의자에 올라가면 되거든요, 우리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하셨어요,”

“삐삐, 넌 할아버지 없잖아.”

“맞아. 꼭 있어야 하나?”


거짓말을 커피 마시듯 하고 그럼에도 말대꾸는 따박따박해대는 삐삐는 모든 어린이들의 우상이다. 75년이 지난 지금에도.


덧붙이는 말


글을 쓰다 순식간에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개 어른 앞에서 말대답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귀찮아서였든 거슬러서였든 이유는 모르지만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 말이 꽤 상처가 되었나 보다. 여하튼 나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고 아버지와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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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바라 헨드릭스 - 슈만 :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가곡집 [Digipak]
슈만 (Robert Schumann) 작곡, 바바라 헨드릭스 (Barbara Hendric / Arte Verum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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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편견에 사로잡혀 산다. 그게 또 사람 사는 맛이라고 하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왜 맞아 죽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선입견을 드러낸다. 이를 테면 축구경기 해설자는 남미 선수는 다혈질이라 쉽게 흥분하고 후반에 가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진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과연 메시를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클래시컬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백인이 압도적이다. 유색인종이라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 정도다. 토대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곧 고전 음악을 듣고 즐기고 배우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흑인은 이 조건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럼에도 어느 분야나 천재는 있는 법. 바바라 헨드릭스도 그 중 한 명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는 그를 보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특히 잡다한 편견을 훌쩍 뛰어넘었기에. 흑인 성악가라면 우렁찬 소리와 애드립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바바라는 가늘고 결이 고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슈만의 음악은 대표적이다.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다지 많이 듣지는 않는 여인의 사랑과 생애 가곡을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게다가 피아노 반주자인 로란드 폰티넨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두 예술가의 최전성기 기량을 만끽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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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적응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스스로를 반사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코로나 19는 딱히 불편한 게 없다. 평소에도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인파가 붐비는 장소에는 얼씬도 안하고 혼자 노는 것이 너무도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이러스 세상은 이들에게 축복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니까. 더욱이 명절이면 얼굴도 잘 모르는 친척에게 훈수 들을 일도 없고.


버나뎃은 한 때 천재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정점에서 그는 돌연 사라졌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였다. 건축계에서 여성은 별종 취급을 받았다. 나름 결혼하고 딸도 낳으며 시애틀에 자리 잡으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잡음이 일어난다. 바로 이웃과의 분쟁이었다. 그는 적당히 묻어가는 길 대신 고개를 치켜들고 잘잘못을 따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남극 여행을 추진하다 난데없이 러시아 스파이와 엮인다. 인터넷상의 가상 안내인에게 개인 정보를 몽땅 알려준 결과였다. 버나뎃은 이 일로 정신요양원에 갇히게 될 위기까지 맞게 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다. 홀로 있으면 답답해하고 하루에 최소한 세 시간은 바깥 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마구 사교적이지는 않다. 떠들썩한 자리는 웬만하면 피하고 모임도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이 나같이 않을까? 문제는 천재들이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도 못하고 사회의 멸시를 받아 사라져가는. 버나뎃은 천운이었다. 그의 예술성을 알아준 남편이 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딸이 존재했다. 어쩌면 우리는 소수의 천재들 덕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그들을 마구 무시하지. 아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지?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bongseok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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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인사이트 - 넷플릭스는 어떻게 파괴적 혁신의 상징이 되었나?
이호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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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프릭스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뭐지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런칭한 게 2016년이니 고작 4년 전인데. 한 달에 얼마를 내면 무제한으로 영화며 드라마나 예능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단 인터넷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만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제약조건이 되지 않지만. 여하튼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자 나 같은 레이트 어댑터도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킹덩 2를 보기 위해서. 내친 김에 티브이로도 보고 싶어 별도의 셋탑도 구입했다.


<넷플릭스 인사이트>는 지금까지 나온 관련 책들 가운데 가장 충실하다, 그동안 여러 종류가 나왔지만 자화자찬이나 성공담에 그치기 일쑤였다. 이 책은 단지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오티티 서비스의 발달사 그리고 전망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사실 넷플릭스의 성공요인은 스트리밍 기술을 일찍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무한애정 덕이었다. 곧 내용을 충실히 하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실제로 넷프릭스는 여전히 사업의 모체가 된 디브이디 서비스를 미국에서는 제공하고 있으며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전용 상영관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스트리밍은 이제 보편 기술이 되었으면 콘텐츠의 독창성은 자신들만의 장점이 아니다. 실제로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에이치비오나 무궁무진한 창작물을 깔고 있는 디즈니도 전장에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왓차나 웨이브 등 독자적인 오티티가 출범하여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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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재개발과 재건축을 풀어 공급을 늘렸다면


은행에 돈을 맡겨본 사람은 안다. 이자가 싸도 너무 싸다. 구체적으로 2020년 12월 현재 정기예금 금리는 1퍼센트 남짓이다. 곧 1억을 맡기면 1년에 백만 원쯤을 이자로 받는다. 물론 각종 수수료를 떼면 그보다 더 적겠지만. 작년만 해도 2퍼센트였다. 그나마 이지라도 받는게 어디냐는 소리도 나온다. 제로 금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돈을 맡아주는 조건으로 역으로 여분의 돈을 지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돈을 빌리는 사람은 부담이 덜하다.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대출 금리 또한 낮기 때문이다. 물론 예금 이자와 달리 찔끔찔끔 떨어지기는 하지만. 요컨대 우리 모두는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과 한국, 다른 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경기를 일으키려는 몸부림인데, 문제는 물가다. 지금까지 돈을 풀면 소비자 물가는 오르게 되어 있었다.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니 가격이라도 올려서 부족분을 충당하려는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희한하게 소비자 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2년 전 먹은 짜장면 값과 지금이 다른가? 거의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배송의 진화 덕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탓도 크다. 그러나 저금리는 어떤 형태든 유동성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에 어느 한 군데는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정답은 부동산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니 당장 현금을 쓰기 보다는, 그 때문에 소비자 물가도 오르지 않는다, 어딘가에 저장해 두고 싶어 한다. 


아파트먼트는 가장 좋은 투자처가 된다. 언제든지 빼서 교환이 가능하고 규제를 해대니 희소가치는 더욱 더 오른다. 멍청한 정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돈줄만 옭아매고 세금만 때리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파트먼트를 사려는 욕망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서울은. 진작 재개발과 재건축을 풀어 공급을 늘렸다면 이 사단도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엄한 임대주택만 늘리겠다는 인간이 새 장관이 되었으니. 정권의 종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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