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드그렌,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 한겨레 인물탐구 8
카트린 하네만 지음, 우베 마이어 그림, 윤혜정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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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로는 흩날릴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말 그대로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퍼부었다. 걱정부터 앞섰다. 차는 얼마나 막힐까? 아니 가기나 할까? 기온이 급강하한다는데 얼어붙으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데 와하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아파트먼트 안에 갇혀 있던 동네 아이들 모두가 바깥으로 뛰어 나와 내지르는 환호였다. 그래, 아이들은 눈이 오면 미쳐 날뛰듯이 좋아하지, 개들도.


린드그렌은 평생 아이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 안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동심만 있는 건 아니었다. 후회와 눈물, 비통함도 버무려져 있었다. 아무 고민 없이 사는 것 같던 삐삐도 왠지 서글퍼 보이고 죽음의 세상에서도 용기를 보여준 사자왕 형제는 또 다른 희망을 안겨준다. 이 책은 아스트리드의 세계로 인도하는 좋은 길잡이다. 이제 남은 건 직접 그의 글을 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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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2disc)
요한 렌크 감독, 제어드 해리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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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의 출발은 무기였지만 다행히 종착지는 전기였다. 보다 값싸고 공해 없이 공급할 수 있는, 한 때는 안전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관리만 잘하면 됐다. 그러나 체르노빌 폭파 사건은 모든 평판을 한 번에 뒤집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논란을 낳고 있다. 공식 사망자 31명은 도리어 이 사건이 얼마나 철저하게 은폐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하나씩 하나씩 잔해를 뒤져 진실의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정부는 압박을 가하면서도 필요한 지원은 거의 다 해준다. 성실한 공산당 간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끔찍한 짓을 자행한 이나 수습한 사람들 모두 자랑스러운 소비에트 인민들이었다는 사실이. 비록 영어로 말하고 있지만 등장인물 모두 실제 사건에서 튀어나온 듯 자연스럽다. 게다가 생김새도 비슷하다. 보는 내내 숨이 막히고 귀가 멍멍해지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주어지 임무를 보란 듯이 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겹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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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힘찬 엔진 사운드


실제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대게 과장되기 마련이다. 뭔가 극적이고 자극적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실화인줄 모르고 끝까지 보았는데 진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영화 포드 대 페라리가 그렇다.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1위를 도맡아 하는 페라리. 반면 포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포드는 싸고 저렴하게 대량으로 차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점유율은 높지만 늘 열등감에 시달린다. 어떻게 해서든 페라리를 꺾고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드림팀을 꾸리게 되는데. 사실 이쯤 되면 결말이 예상된다.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여하튼 우승을 차지할 것이고 승리자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겠지. 역시나 영화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진 또 전진. 그러나 뻔한 줄거리를 뒤엎을 만한 강력한 반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동차 배기구 소리. 자동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드는 힘찬 엔진 사운드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다. 마지막 장면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진 출처 : 포드 v 페라리 일러스트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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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건너뛰셔도 상관없습니다.


영화 <조커>에는 살인 장면이 즐비하다. 악당이 등장하는 액션무비라고 생각하고 상영관에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코미디라고 여긴 분들은 당황할 정도로. 사실 누군가를 죽이는 건 현실에서나 가상에서나 일종의 금기다. 설령 살해를 보여주더라고 직접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커>는 이 금기를 깨버린다. 너무 순간적이어서 더 현실적이다. 그나마 편안한(?) 살인은 친모를 상대로 한 것이다. 애증으로 엮인 이 둘은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 같았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난다.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조커는 어떠한 측은함도 없이 베게로 눌러버린다. 해외 팬 사이트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조커는 왜 자기 엄마를 죽였는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무시하고 깔보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한 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해석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본격적인 살인에 나서기 전에 보인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언이 꿈이었지만 헛된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시 말해 더 이상 다른 이들의 잣대에 맞춰 살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다운 모습을 보게 된 어머니는 얼마나 실망하게 될까? 차라리 그 전에. 물론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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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진행되어야만 한다, 고 하지만 이 팻말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무참하게 박살이 난다. 마치 조커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이.


우리들을 대신해 미쳐준 피닉스 호아킨에게 경배를 


2020년 아카데미상은 역대 최강 영화들의 경연장이었다. 우리에게는 <기생충>이 가장 인상 깊었지만 사실 <아이리시맨>, <조커>, <1917>들 또한 빼어난 명작이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작품이 상을 타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쟁쟁했다. 특히 <조커>는 길이길이 남을 명작의 반열에 이미 올라섰다, 고 확신한다. 호아킨의 눈부신 열연을 보는 재미 외에 영화 곳곳에 깔린 깊은 페이소스(연민, 동정, 슬픔을 포함한 복잡한 감정)와 영상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우러지는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배트맨의 악당 정도로 취급받던 조커를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부활시킨 작가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자, 이제 남은 건 주인공과 함께 질퍽한 뉴욕거리를 두 시간 넘게 헤매는 거다.


덧붙이는 말


영화는 물론이고 예술이 위대한 까닭은 실패자들이 주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나고 유명한 인물을 다루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성공 뒤에 가려진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인간은 겉으로는 멀쩡한 척 살아가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는 늘 우울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는 이 지점을 찾아내어 어떻게 해서든 미치지 않고 살아가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 역을 맡은 피닉스는 자신의 본분을 눈부시게 해치웠다. 다시 한 번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진 출처 : Joker; When Tragedy becomes Comedy | Ethics of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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