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 현재 총 확진자수는 73,918명, 사망자수는 1,316명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십 분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넋두리한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그러나 때로는 무의식의 늪에서 끄집어내야만 하는 기억도 있다.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코로나 19 감염자가 발생했다. 주인공은 비행기를 타고 온 중국인이었다. 2019년 가을 무렵부터 우한을 중심으로 강력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치리라고 믿는 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불후하고.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한몫했다. 사스의 경험을 예로 들며 조기에 차단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중국인들을 전혀 막지 않으면서 대체 어떻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계기는 신천지 대구 사태였다. 이후 우리는 수렁에 빠졌다. 중국이 도리어 한국인들을 막는 역현상도 벌어졌다. 2021년 1월 21일 현재 총 확진자수는 73,918명, 사망자수는 1,316명이다. 부디 내년 이 맘 때에도 비슷한 소식을 전하기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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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당장 영화 소울을 보시라


당신은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는가?


태어난 김에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이런 부류는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 것 같지만 아니다.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인다. 큰 불만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고 토익 점수를 따고 직장에 들어간다. 남들도 한다는 주식도 기웃거리고 열심히 청약도 부어 내 집 마련을 노린다. 문제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흔들린다. 이를 테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직장을 잃거나 조기퇴직이라도 하면 어쩔 줄을 모른다. 온실바깥으로 손만 내밀어도 화들짝 놀라는 셈이다.


조는 연주자를 꿈꾼다. 정식 학교 선생으로 임명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 때 제자였던 드러머가 연주 제안을 하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는다. 리허설까지 훌륭하게 마쳐 이제 남은 건 화려한 데뷔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영화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라면 관점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을 옭아매었던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조바심은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으면서 서서히 바뀌어간다.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걸.


소울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보는 사람에 따라 지나치게 추상적인 대사들 때문에 살짝 졸릴 수 있다. 상관없다. 깜빡 눈을 감더라도 자유로운 재즈선율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될 테니까. 디즈니가 뭔가 새로운 걸 하자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정답은 재즈였다.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덧붙이는 말 


당초 코로나 19로 개봉이 불투명했다. 디즈니 플러스라는 오티티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연장 끝에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바로 첫날 보았다. 이 영화를 조그마한 티브이화면으로 봐야만 하는 이들은 불행아들이다. 무조건 큰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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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나이브스 아웃의 뜻으로 맞는 것은?

1) 칼을 뽑아들다

2)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다

3) 누군가를 노려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다

4) 다 해당한다  


기깔나게 재미있습니다. 지적으로.


추리 영화는 두 번 보기 어렵다. 누가 범인인지 알고 나면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살해자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다. 나이브스 아웃이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다. 그의 주변에 자식들과 친척들이 몰려 빨대를 꽂아대는데. 유일한 예외는 나이든 그를 돌보는 간병인과 하녀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죽으면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된다. 과연 누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될까? 다들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효자 효녀였다고 떠벌이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직접 영화를 보시길. 


사실 이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타에게 바치는 헌사다. 밀실 살인과 관계자들을 죄다 모아놓고 범인은 바로 너라고 밝히는 김전일 스토리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시대에 대한 조롱이라고도 하는데 내 생각에는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재미있다. 그것도 기깔나게. 그리고 지적으로. 


사진 출처 : Knives Out — David Schlesinger (dbschlesing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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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바뀌면서 성능도 더 좋아진 뉴 브리카. 그러나 방심은 금물.


그 놈의 크리마 때문에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내게 커피는 거의 유일한 기호식품이다. 심지어 콜라나 사이다같은 청량음료도 마다한다. 한창 마실 때는 하루에 세잔쯤 마셨다. 마니아들은 에게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치사량이다. 지금도 두 잔 정도는 아침저녁으로 섭취한다. 마시는 종류는 조금씩 다르다. 주중에는 주로 베트남 인스턴트커피를 주말에는 네스프레스 캡슐을 애음한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 거의 굳어졌다. 


새해 들어 이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연히 한 신문에서 뉴 브리카 광고를 본 게 계기였다.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겠다고 고민하다 선택한 게 브리카였다. 값비싼 커피머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무엇보다 크리마(모가 포트에 끓일 때 나오는 특유의 맛)가 신기해서다. 단점도 있다. 번거롭기 짝이 없다. 매번 커피를 만들 때마다 물을 넣고 뚜껑을 닫고 간 원두를 깔고 다시 밀폐해야 한다. 가끔씩 폭발하는 바람에 엎어지기도 일쑤다. 뒷처리는 더욱 고단하다. 총기 분해하듯이 일일이 해체해야 한다. 커피 찌꺼기 제거는 덤이다. 


저절로 이사 오고 나서 브리카와 멀어졌다. 일단 기계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한동안 고생한 기억이 나서 영영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뉴 브리카는 압출 능력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곧 생명인 크리마가 잘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펌프가 사라져 아쉬움이 컸다. 맛은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고민하다가 아직은 펌프버튼이 살아있는 2019년형을 주문했다. 크기도 1, 2인용으로 줄여서. 4인용으로는 하도 자빠뜨린 악몽이 있어서. 덩달아 원두도 따로 주문했다. 한동안 단골이었던 가게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자취를 감췄다. 왠지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대신 강릉에 있는 원두전문점을 알게 되어 택배를 부탁드렸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익히 알고 있는 방법이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또 잘못되는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테스트용 커피가 또 일을 저질렀다. 용암처럼 솟구치고 엎어지고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원래 처음엔 그래 라며 위로하면서 물량을 줄이고 탬핑도 약하게 하며 살살 달래며 다시 올렸다.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였다. 앞으로 내 아침은 브리카와 함께 하겠구나, 라는 강한 가시감이 들었지만. 오늘 새 원두를 시험하다 또다시 콸콸, 아, 브리카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손가락도 살짝 데어 아프다.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사서 이용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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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안부를 주고받지 못하던 사람에게 메일이 왔다. 근 7년 만이다. 반가우면서 죄송스러웠다. 일 때문에 살갑게 대했던 이들인데 업무를 마치자 어느새 관계가 느슨해져버렸다. 하루쯤 묵혔다가 답장을 했다. 내가 쓴 글도 보고 싶다고 하여 블러그에 올린 글도 첨부했다. 사진과 함께. 시차를 둔 이유는 크게 고쳐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보내려고 했으나 다시 읽어보니 어설픈 구석이 너무 많았다. 마치 아마추어가 감정과잉상태로 끄적인 느낌이었다. 묘사도 구체적이지 않고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도 불분명했다. 결국 대여섯 번이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러다 깨닫는다. 내 글을 누가 읽는지 알게 되면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이는군나. 실제로 역사상 빼어난 글들은 모두 그랬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명확한 독자를 설정하고 바로 옆에 있는 듯 한 느낌으로 작성했다. 작가 중의 작가라는 헤밍웨이도 그랬고 단문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레이먼드 카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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