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윤세경 지음 / 이레퍼블리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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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값은 상승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곧 동산이 아니다. 이동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트럭하우스도 있지만 이 경우도 집은 아니다. 그저 운송수단에 집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보자. 고정되어 있는 자산은 감가상각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집이 낡았다고 가정해보자. 허물어 버리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다. 땅이 어디 가지 않는다. 곧 집값은 고정된 땅의 가치를 반영한다. 


문제는 공공이 과도하게 개입할 때다. 정부가 집값이 너무 높다고 판단하여 새 아파트먼트의 분양가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땅은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임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두가 집을 갖고 사는 유토피아가 건설될까? 절대 아니다. 암시장이 생긴다.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니 독점가격에 암암리에 거래된다. 


해결책은 정부는 절대 빈곤한 사람을 위한 임대주택건설과 인프라 구축에만 신경 쓰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시장은 얼핏 보면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모든 수요를 포용한다. 아주 비싼 집뿐만 아니라 싼 가격에 몸만 누일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반대로 공공이 인허가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주도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정부에 세를 바치는 임대아파트들만 잔뜩 들어선다.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는 이러한 현상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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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소설 대환장 웃음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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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할 책들이 잔뜩이다. 이럴 때 난 단편집을 먼저 고른다. 일단 내용이 짧기 때문이다. 덧붙여 재미까지 있다면 더할나위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소소설>은 이 조건에 딱이다.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개그콘서트처럼 펼쳐진다. 친손자를 납치하는 재벌 할아버지, 아이 모습을 한 생명체의 흥망성쇠, 뉴타운에서 벌어지는 사모님들의 권력 다툼, 아내를 죽이고 자수를 했는데도 잡아가지 않는 경찰, 포르노를 보는 게 소원인 할아버지의 우당탕탕 소동, 엄마 말이면 끔뻑 죽는 마마보이의 좌충우돌 결혼식, 죽은 부인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노릇을 하는 남편 등 모두가 범상치 않다. 물론 다 읽고 나면 하무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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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회피심리 때문이다. 곧 각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다. 장르와 상관없이 판타지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연하 꽃미남들이 번갈아가며 쫓아오고 절세미녀가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안다. 그것이 거짓임을. 천만년 동안 늘 사랑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세상에는 없다. 홍상수는 반대지점에 서있다. 구질구질한 일상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미묘하게 어긋하고 자신의 누추함을 감추려는 듯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도망친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딘가 이상한 감희. 선배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이사 온 사람이 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을 준다고 시비를 걸고, 딱 하룻밤 함께 잠 어린 남자가 징징대고,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간 여자와 함께 사과를 먹는다. 지금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듯 한 일들인데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다. 홍상수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그게 그의 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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맜있어 맛있어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귀멸의 칼날>을 보고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극장판이다. 이른바 일본 애니 덕후들은 티브이 시리즈를 다 봐야지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 큰 상관은 없다. 물론 세세한 설정이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맛은 좀 덜하겠지만. 악귀들을 쫒기 위해 무한열차에 올라탄 귀살대의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 최강 염주 렌코쿠를 만나 한껏 기대에 부풀지만 알고 보니 기차 자체가 혈귀였다. 귀살대와 혈귀는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압권은 역시 싸움신이다. 애니메이션을 굳이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가히 디즈니에 대적할만한 유일한 강자답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선 욱일기 논쟁이 있다. 탄지로의 귀걸이 문양이 문제가 되자 해외 상영관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굳이 욱일기를 내세운 건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것이다. 곧 귀살대를 한창 뻗어나가던 시절의 일본에 빗대고 있다. 자살 미화도 여전하다. 아무리 꿈속이지만 스스로를 계속 죽여야만 현실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가정도 해괴하다. 주군의 뜻이라면 목숨 바쳐 충성해야 마땅한 사무라이 정신도 곳곳에 배어있다. 재미있게 보고 나서 과도한 해석이라고 한다면 유규무언이지만 렌코쿠의 말처럼 맜있어 맛있어 하지만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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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사 - ‘사농’ 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 시대 직업의 모든 것
강문종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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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분명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인터넷이나 휴대폰은 없었겠지만. 사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불과 오육백 년 전이다. 


그러나 왕조나 사대부들 이야기 말고는 잘 모른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더니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의 속사정은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다행히 조선은 기록을 중시했다.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민들의 일상이 보인다. 과연 그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을까? 


<조선잡사>는 이러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다. 일하는 여성, 극한 직업, 예술가, 기술자. 전문직, 상인, 사기꾼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건 오늘날까지 건재한 일자리들이다. 조선의 부동산 중개업자인 집주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서울은 노른자 땅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성에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중개업자들은 이 틈을 비집고 큰돈을 벌었다. 급기야는 단체를 조직해 큰 손 노릇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거의 다름이 없다. 


개인적으로 특이한 직업은 외지부다. 백성들의 소송을 대리해주던 일종의 법률 전문가였다. 네 죄를 알렸다 식으로 무조건 잡아들였을 것 같았는데 사실 조선은 귀천을 떠나 모두가 자유롭게 소장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여인이나 노비까지도. 문제는 이들이 글을 몰랐다. 한문으로 엄격한 형식에 맞추어 소장을 작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외지부는 이 역할을 대신했다. 놀랍게도 조선시대 소송은 세 차례나 진행되었다. 두 차례 승소해야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만약 판결에 불복하면 상급기관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다. 조선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밖에도 소설을 읽어주거나 곤장을 대신 맞아주는 등 흥미로운 일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말해 잡사雜史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이 있을까봐 Job이라는 영어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왠지 웃기지 않는 개그를 본 기분이 든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 모든 일자리가 사회에 필요하다면 성스러운 일이 아닐까? 적어도 마음속으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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