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의 포스터. 대런 아로노므스키 감독은 기독교를 재해석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찬반의 격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모 마리아를 다시 한번 위대한 인물로 재부각시켰다. 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는 힘겨운 결정을 내렸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만인의 연인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뚫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주름과 점 등 여자라면 특히 여배우라면 꺼렸을 법한 흠결은 아예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는데만 주력했다.
Mother,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아주 재미있거나 매우 심오하거나. 곧 지극히 대중적인 작품과 보는 내내 머리를 쥐어싸메게 하는 어렵고 복잡한 씨네마. 마치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락날락하는 것 같지만 미지근한 물은 내 취향이 아니다. 영화 <마더>는 단연코 두번째였다.
그러나 썩 내킨 것은 아니다. 미리 본 네티즌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데다 상영관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억지로 수입하기는 했지만 관객들이 안 들테니 대충 개봉하는 시늉만 냈다고 할까? 겨우 찾아낸 곳은 메가박스 코엑스 스크린 A. 좌석은 고작 36석. 맨 앞자리가 아니면 관객의 뒷머리가 영상을 가리고 게다가 작으니 화면의 픽셀이 점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더우기 우연히 읽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스릴러를 가장한 블랙코미디라는 혹평이 주를 이루었다. 스탠리 큐브릭이 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거장이라는 희롱가지 있을 정도였다. 과연 이런 영화를 꼭 봐야할까? 시간떼우기라면 황당무게한 저스티스 리그가 더 낫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작은 상영관도 어지러운 픽셀도 감상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아늑한 분위기라 몰입도는 최고였다. 초반은 공포분위기였다. 한 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중늙은이 시인과 딸이라고 의심받을 정도로 예쁘고 거기에 육감적인 부인이 낯선 집에 살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느날 자신을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찾아오고 뒤이어 부인도 오게 되면서 뭔가 긴장감이 고조된다. 드디어 두 아들이 연달아 방문하면서 가족싸움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추모행렬이 들이 닥치면서 영화는 혼돈의 도가니로 빨려 들어간다. 순간 나는 미국의 평론가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주장에 내심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대체. 개그아냐? 스토리도 중구난방이고 너무 억지잖아? 출판사 직원이 사형집행을 위해 총을 쏴대고 특수군이 투입되고 집을 방문한 사람들을 울고불고 웃고 떠들고. 몬도가네가 따로 없다.
그러나 난장판가운데에서도 제니퍼는 임신을 하고 애를 나고 또 그 아이를 남편과 추종자들에게 빼앗긴다. 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인데. 그렇다. 성경이다. 형제간의 다툼부터 카인과 아벨의 오마쥬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건 결정적인 힌트 아닌가? 그녀가 마리아라면 남편은 그럼 요셉, 아니면 하나님. 결국 마리아와 아이는 죽음을 당하고 남은 것은 그녀의 심장.
머리속이 덜그럭거리면서 제발 카오스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찰나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마리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를 찾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단 하나 사운드 트랙이 흐른다. 세상의 종말. 원곡을 부른 스커디 데이비스 버전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은 페티 페이지도 아닌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의 패티 스미스가 담담하게 세계는 끝이 났다고 읆조린다. 설마 이게 세상의 끝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