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에서 본체와 추진체가 도킹하여 연결될 확률은 수시로 움직이는 골프홀에 공을 던져서 골인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상상이상의 변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실패하면 영영 떠다녀야 한다는 거다.

 

성공확률 제로, 숭고한 의지만이 도전가능하다

 

우주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동경따위는 없었다. 어렸을 적 본 다큐때문이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구를 떠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천문학적인 확률이라는 설명은 생생하다. 예를 들어보자. 달에 간다고 치자. 보통 비행기처럼 슝 날아가 활주로에 착륙하는게 아니다.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기체를 죄다 떼어내고 남은 최소한의 본체가 달 주위를 빙빙 돌며 임무를 수행하고 올라오는 차선과 도킹을 해야 한다. 만약 둘이 만나지 못하면 영영 우주미아가 되는 것이다. 끝도 없는 영겁의 세월을 떠다녀야 하다니. 달 탐험이 계속 조작이라는 의문에 시달리는 이유도 바로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스테이션 7>은 내 어린 시절의 악몽을 스크린에 담았다. 우주 스테이션의 고장을 수리하러 따나는 우주인의 이야기다. 달착륙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걸림돌은 어떻게 스테이션의 문을 열고 도킹에 성공하느냐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실험을 해보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 수명을 다한 정거장이 지구에 추락하면 가공할만한 사태가 벌어질게 뻔한데. 모두가 꺼리는데 한 명이 나선다.내가 총대를 매겠다. 성공 확률 제로인 이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을 거둘 것인가?

 

내용만으로도 흥미진진한데 세상에나 실화였다니. 만약 미국이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과 개인과 조직간의 살벌한 갈등을 그려넣어 블럭버스터급으로 재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달랐다. 일단 돈이 없고 또 히어로를 보는 시각이 완전 판이하다. 정말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 맞나 싶게 수수하고 겸손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은 오로지 해결해내고야 말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소련은 실패한 사회주의국가인가? 왜 모든 장점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짜르를 모시려고 하는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우주와 인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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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만큼 애매한 관계가 또 있을까? 친구란 남남이 되거나 더 나아가 원수가 되기도 한다. 둘 사이에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끼면 또 어떤가? 작가들에게는 이처럼 뻔히 보이는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에 매혹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증국상 감독은 이 미묘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열과 봉합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김고은을 닮은 안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때 홍콩 영화가 붐인 적이 있었다.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등이 번갈아 등장하며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 중에는 대만 영화도 섞여 있었지만 굳이 구분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못 알아듣는 중국말이니까. 그러나 홍콩이 느와르였다면 대만은 사회성이 짙었다. <비정성시>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518 혹은 413에 해당하는 중국 본토인의 대만인 학살을 다룬 이 영화는 폭력 장면 하나 없이도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언젠가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우리처럼 민주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제약이 심하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대안으로 삼은 것은 청춘물이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안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대만의 연이은 청춘 연애물과 다른 점은 운명의 엇갈림을 다룬 것이다. 열세살의 나이에 만난 칠원과 안생. 둘의 우정은 잘생긴 가명을 두고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결국 결혼식 전날 가명과 칠원은 헤어진다. 얼핏 보면 흔한 막장같지만 비밀은 다른 곳에 숨겨 있었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철저하게 여자들끼리의 우정, 애정, 증오가 한데 뒤섞여 있다. 젊은 날의 순애보 같던 영화는 롤로코스터를 타며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는 대목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의 뜻을 따라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칠원과 달리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삶을 꾸려가는 안생은 겉보기에는 자유롭지만 속으로는 찌들 때로 찌른 생을 살아간다. 이 두 사람의 운명은 가명이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면서 뒤바뀐다. 가명은 가정적인 여자로 칠원은 가명의 아이를 낳은 후 갓난애를 안생에게 맡기고 세계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 아닌가? 쉿,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이 영화의 진짜 비밀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잘 만든 영화에는 심오함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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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미래에 살고 있다. 손전화를 쓰고 있으며 세계 어느 곳이든 연결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매일매일 미세먼지를 걱정한다. 1960년대 꿈꾸었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49년까지는 불과 30년밖에 남지 않았다. 기계가 사람일을 대신하고 심지어 사람을 넘어서는 시대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하신다면 1988년을 떠올려보시라.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맛집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걸작의 저주마저 고스란히 이어받다

 

<블레이드 러너>를 디브이디로 보며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사람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간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화면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미학이 분명히 있어서다. 다행히 2월 초에 극장에서 다시 개봉한다. 꼭 가야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미래의 엘에이. 데커드는 수명이 다한 인간 복제품인 레플리칸트를 추적하여 죽여버리는 임무를 띤 특수 경찰이다. 차례차례 처리해 나가던 그는 어느날 자신이 인간인지 레플리칸트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어떤 결말도 내지 않은 채 끝을 낸다.

 

35년이 지났다. 저주받은 걸작으로 칭송받던 영화의 속편치고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전설로 남겨두는게 나을지 모른다는 논란 끝에 결국 뚜껑이 열렸다. 감독은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드니 빌뇌브. 아, 그런데 너어어어무 지루하다. 관객들은 하품을 해대고 극장밖을 나가면서 절대 보지 말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호소한다. 흥행은 엉망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인 선전을 했음에도 고작 35만 명. 전작의 저주를 그대로 이어받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빼어난 영화임에는 틀링없다. 1편의 궁금증은 결국 데카가 레플리칸으로 밝혀진다. 중요한 건 그의 정체가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인간을 규정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만약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탄생하고 기억마저 복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감독은 가능하다고 장담하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기억을 이식받더라도 로봇은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다. 왜? 레플리칸은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어떤 행동에 명확한 동기가 없는게 바로 사람이다. 로봇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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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있다. 얼핏 보면 신나게 노래하는 아저씨와 아이 같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마냥 즐겁게 웃을 수만은 없다.

 

 

잊혀지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어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보는 처지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사람이 돌물과 다른 점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사라져버린 선조를 떠올리지 않는다.  <코코>는 기억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디즈니 애니메이의 세계화는 놀랍다. 노르웨이 설화를 끄집어내 <겨울왕국>을 만들더니 남태평양으로 무대를 옮겨 <모아나>를 창작했다. 이번에는 멕시코다.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정통 명절을 모티브로 산자와 죽은자들이 어우러진다. 연결고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어린이다.

 

미구엘은 신발장인 집안의 손자다. 출발은 증조할머니다. 기타를 치던 증조할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버리고 음악가의 길로 떠난후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신발만들기는 어느새 거업이 되고 미구엘도 언젠가는 이어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소중한 것은 음악. 전설적인 가수 델라 크루즈를 흠모하던 어느날 마을축제에서 그의 묘에 모셔더있던 기타를 훔치면서 사후세계로 건너가게 된다. 미구엘은 온갖 모험을 겪은 끝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동시에 음악의 소중함도 잃지 않는다. 중간 내용을 생략한 것은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다. 직접 보시기 바란다.

 

보는 내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세계 곳곳의 민담을 끄집어내 각색하여 디즈니표 만화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지라는. 이승은 물론 저승까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니 단지 꿈많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코코>는 창작물이기는 하지만 오리지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은 분이라면 매우 유사한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저승세계로 가서도 용감하게 살아가는 내용이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더 비슷한 애니가 있으니 바로 <마날로와 마법의 책>이다. 사후와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거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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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격신과 우주전투장면. 로그원은 클래식 팬들의 향수를 되살리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음 편은 로그 투인가?

 

스타워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캐릭터나 내용이 너무 널리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리어 영화가 일종의 부록 내지는 서비스 상품같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이야기가 앞으로 갔다 뒤로 밀렸다 하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마니아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스타워즈 로그 원>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통 스타일로 되돌아왔다.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을 뿐 개인의 복수와 집단의 대의라는 갈등구조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시 스타워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격적과 우주대전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특히 마지막 30분 정도를 장식한 스페이스워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현란했다. 그러나 또다시 나올 것을 알기에 더이상 스타워즈를 봐야 하는 곤혹감이 든다. 차라리 기한을 정하든 아니면 결말을 미리 예정하고 앞으로 몇편이 더 나온다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싶다. 비슷한 줄거리에 특색있고 개성있는 인물만 들락날락하는 지금의 패턴은 식상해도 너무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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