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적절한 비유가 있을 것 같은데 가물가물 잡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있는 그대로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처음 생겼을 때 정말이지 당황스러울 만큼 아팠다. 몸이든 마음이든 매일매일 25%정도씩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많이 지나갔지만, 안 그러려고 해도 이따금 되새겨져서 고통스럽다. 아마 꽤 오랫동안 그럴 거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일단 외면하고 있다. 그 방식은 뭐냐면, 우선 그 일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사정을 알거나 짐작하는 친구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설명하면서 무너지기 십상이니까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또 생각해봤는데, 어차피 남은, 걱정을 하고, 그렇다고 말한다 뿐이지 공감은 못하는 거다. 공감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고.
또 하나는, 좋은 책을 읽거나 새로운 영화를 보거나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감동을 받으면 곤란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울리면 곤란한 상황이니까. 아주 조심해야 했다. 책을 만들면서 영혼이 필요할 때는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져다 썼다. 못났다고 애인한테 미움받을까봐 조마조마했으므로 애인한테 잘보이는 데 남은 힘을 쓰기도 약간 부족할 때도 있었다. 애인은 때로 안아주고, 때로 모른척해주고 때로 냉정하게 다그치면서도 계속 손을 잡아줬다. (대단한 남자다.)
또 하나는, 근무 시간엔 전화통화를 하거나 동료에게 말을 자꾸 걸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을 듣고 있다면,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의식한다면 내 속의 문제를 꺼낼 틈이 없을 테니까. 내 말소리를 듣기 위해서, 나는 자꾸만 이야기를 한다. 쓸데없는 말이라도 자꾸.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만 누워서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나 정도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 한마디로, 닥치세요.
그러니까 당연히, 나는 서재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글을 쓸 힘이 있나, 쓸 거리가 있나. 누가 다정하게 말 걸어주면 그걸 감당할 수가 있나. 좋아하는 친구들 보고 싶어서 눈물 쏟아지는 걸 참을 수가 있나. 남들 나누는 다정한 대화 엿보면서 샘을 안 낼 자신이 있나.
그러다 연습장에서, 지난겨울의 낙서를 보았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상처를 무기로 삼지 말자.
그러게. 그래, 내가 그러진 않지. 그런데 그 아래엔 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상처를 방패로 삼지 말자.
*
그러니까 나는 최소한 여러분 나 힘들어요~ 하고 징징대지도 않았고, 촐싹 맞게 난 씩씩해요! 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나 아프니까 막 할 거야, 하고 으르렁대지 않았다. 난 힘드니까 숨어버릴 거야,는 조금 아슬아슬했다. 실제로는 약간 거기 가까웠지만 용케, 아주 넘어가진 않았다! 그러니까 친구 여러분이 나를 미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걱정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