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실화영화라. 꼭 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인 분이 추천을 다시 해주셔서 어제, 없는 시간 쪼개서 갔다. 이것이야말로 IMAX로 봐야 한다는 말에, 용산에 가려고 타진, 이런... 제일 앞좌석 빼고는 다 매진... 왕십리? 여기도..ㅜ 좌절 끝에 상암 IMAX까지 갔다. 그래도 꼭 IMAX로.. 라는 마음 때문에.

 

일단 이 영화는 IMAX로 보길 추천. 처음부터 그렇게 찍었기 때문인지, 그 화면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쟁 영화라고 우당탕탕 싸우는 걸 기대한다면 오산. 사지에 몰린 영국군과 프랑스군. 바다 건너편에는 영국이 보이고, 지척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은 아니라도 살 곳을 가지 못하는 이들의 사투가 펼쳐진다.

 

사람이 사람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일들.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해변가에서 죽어가고 그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갖은 일을 벌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헌신도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가 느껴졌다. 마구 쏴죽이는 영화보다 더 섬찟한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였다. 전쟁 영화이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역시 놀란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물론 호불호는 있다. 영국군에 편향된 내용이라는, 혹은 마지막에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연설을 날리는 처칠에게서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은 이것인가 라는 자괴감까지.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좋았다. 전쟁 영화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 다가왔다. 많은 대사 없고 많은 전투씬 없이 그저 가끔씩 크게 확대되는 화면에서 공포와 그리움과 처절함으로 가득한 눈과 표정이 클로즈업될 때의 느낌이란. 그렇게 생존해오는 군인들은 살았다는 기쁨보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한다. 수치스러워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쟁은 무엇인가. 전쟁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하나는. 배가 바다 위에서 넘어지고 그 주변으로 민간인들의 배가 모여드는 장면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생각했다. 아. 이것은 우리 세대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작동할 것 같다. 울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냥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영화가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옮긴이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주제 사라마구는 2009년에 이 작품을 내고 2010년에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 죽음이 늘 내 앞을 왔다갔다 하는 순간까지도 주제 사라마구의 '타협하지 않는' 글솜씨는 퇴색함이 없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신에 대해,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구심을 여한없이 풀어내며 탐구해나가는 그의 열정에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좋은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심각한 주제를 사라마구 특유의 유머를 가미하여 풀어나가는 것, 그러면서도 그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인 듯 환상인 듯 모호한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카인은, 성경에서는 아담과 사라의 큰 아들이자, 여호와의 사랑을 듬뿍 받던 동생 아벨을 손으로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사건은 아주 간단히 다루어지고 그 이후 신이 행한 숱한 성경 속의 일들을 따라 다니며 인간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의심하고 분노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여호와에게서 외면을 당했고 그래서 자신이 살인을 했으나 그 원인은 여호와이며, 이 세상의 모든 불합리의 원인도 여호와임을 통렬히 부르짖는.

 

불합리. 그렇다. 살면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라고 생각되는 일들에 얼마나 많이 마주치는 지. 인간의 정의가 신의 정의가 아니라고 억지로 믿으며 그 모든 환란에서 나와 나의 가족, 지인들은 비껴가길 이기적으로 기도하며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불합리와 부조리는, 결국 인간의 몫일 수는 없는 것이고 오로지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카인의 행로를 좇으며 참 많은 생각들을 투영할 수 밖에 없었다.

 

 

네가 네 아우를 죽였구나. 네. 죽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주이십니다. 주가 내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우를 위해 내 생명이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를 시험하는 문제였다.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 나는 만물의 주권자인 여호와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존재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저와 내 자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 죽이는 자유 말이냐. 주께서 내가 아벨을 죽이는 것을 막을 자유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p39)

 

 

아담과 사라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선악과 나무 따위는 두지 않았으면 된다. 카인과 아벨이 제사를 지낼 때 둘다를 공평하게 받아들였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늘 시험하려 든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짓게 되고 그래서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응당한 벌을 짊어져야 한다. 왜.. 왜 그래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종교적으로 그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것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어진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된다는 것까지 부인하긴 어렵다. 왜. 난 인간이니까.

 

 

이떄 아브라함에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인간적인 반응이라면 여호와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실제로는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 (중략) ... 간단히 말해, 아브라함은 여호와만큼이나 대단한 개자식일뿐 아니라 갈라진 혀로 누구라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유능한 거짓말쟁이였는데, 이 경우 이것은 이 이야기의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사전에 따르면 불충하다, 불성실하다, 거짓되다, 의리 없다 등등과 기타 비슷하게 훌륭하기 짝이 없는 자질을 의미한다. (p94-95)

 

 

이 부분에서 주제 사라마구에게 경의를. 뒤늦게 낳은 귀하디 귀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그저 순종.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종. 그걸 주제 사라마구는 가차없는 단어를 사용하여 일갈하고 있다. 개자식이라고. 그리고 그런 걸 시킨 여호와도 마찬가지라고. 세상에, 이런 표현이라니.

 

 

단지 황금 송아지를 만든 것에, 그런 경쟁자로 여겨지는 존재를 만든 것에 여호와가 분노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삼천 명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형제를 하나 죽였는데 여호와는 나를 벌했다. 정말 알고 싶은데, 이 모든 죽음에 대해 누가 여호와를 벌할 것인가. 카인은 생각했다. 루시퍼가 하나님에게 반역한 것은 정말 옳은 일이었다. 그가 질투 때문에 그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악한 본성을 인식했을 뿐이다. (p122)

 

 

정말 알고 싶은데.. 라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나도 정말 알고 싶다. 신의 장난 혹은 신의 명령, 혹은 신의 계시 뭐 어쩌고저쩌고 다 갖다붙여 얘기하는 것들에 대한 벌은 누가 받을 것인가. 당한 인간이 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왜 창조되었는가. 끊임없이 시험당하기 위해서? test bed 역할로서? 여호와의 위대함을 가끔씩 확인당하는 존재로서? 다시, 모르겠다.

 

 

정말로 네가 본 게 미래에 그대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릴리스가 물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미래는 이미 적혀 있어요, 우리가 그것이 적힌 페이지를 읽는 법을 모를 뿐입니다. 카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어디에서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발견했는지 의아했다... (중략) ... 우리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는 완전히 미쳤다는 것. 감히 여호와 하나님이 미쳤다고 말하는 거야. 오직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미친 자만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의 직접적인 책임이라고 인정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겁니다. (p154)

 

 

하나님은 미쳤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없는 아이들까지도 다 싹슬이 죽이시고, 인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로써 응징한 후 노아의 방주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고자 하셨고, 금송아지 만들었다고 관련자들 피토해 죽게 만드시고,.... 그저 여호와만을 따르고 의지하던 욥에게 사탄과의 내기로 수많은 시련을 안기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윤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성경에서는 여호와가 욥에게서 모든 재산과 모든 자식을 다 빼앗고 급기야는 몸에 욕창이 나게 하여 거렁뱅이로 지내게 했음에도 욥이 여호와에 대한 사랑이 불변함에 다시 모든 것을 되돌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그러지만, 다른 건 몰라도 열 명의 자식을 빼앗았다가 다시 똑같은 숫자의 열 명의 자식을 돌려 준다고 그게 대체가 되는 것이냐. 자식을 잃은 심정이 되돌려 지는 것이냐... 그 때 상당히 공감했었던 기억이 있다. 되돌려 준다고 다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만일 내가 들은 대로 욥이 그 모든 부에도 불구하고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 맞고 또 신앙도 깊다면, 그 사람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과 소유를 모두 잃는 벌을 받을 참이라니,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가 의롭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중략) ... 하지만 하나님은 유리창처럼 맑고 투명해야지요. 항상적인 공포와 두려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p163)

여호와는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귀머거리니까요, 도처에서 가난하고 불행하고 비참한 자들이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거부하는 어떤 구제를 하나님이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호와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우선 히브리인과 계약을 맺었고, 이젠 악마와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니 신이 있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p164)

 

 

이제 하늘나라로 간 주제 사라마구는... 그 곳에서 신을 만났을까. 근래에 가까운 사람을 잃은 나는, 며칠내내 그 질문을 했다. 저 세상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을까. 그 곳이 있을까. 왜 고생만 하다 가게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매일 밤 잠을 못 이루며 생각했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고, ... 이 책을 읽으며 주제 사라마구도 아마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곳에 갔다면, 주제 사라마구는, 해답을 얻었을까. 신에게 물어봤을까. 당신 뭐냐고. 뭔데 이러느냐고. 대답을 하라고 얘기해봤을까... 많이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을 하면서 말했다.

 

"아 재미없어. 엄마, 넘 재미없다."

 

엄마, 가만히 계신다...

못들었나? 다시한번 말했다.

 

"일이 힘든 건 오케이인데, 넘 재미가 없어.."

 

엄마, 한마디 하신다...

 

"어째 오래 간다 했다. 싫증 났구나."

 

딩동.

역시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다. 흐흐흐^^

 

 

싫증이 난 거다. 회사를 주기적으로 옮겨다닌 건, 거기에서의 일이 재미없어서이기도 하고, 사람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 기저에는, 내가 하나에 쭈욱 붙어서 뭔가를 계속 하는 걸 싫어한다는 감정이 자리한다.

 

회사를 들어가면, 처음 2년 정도는 잘 지낸다. 불만도 별로 없고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일도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업무이니 익히느라 정신없기도 하고 해서. 3년째부터는 슬슬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4년쯤 되면서부터는 억지로 다니게 된다. 이 때 가장 많이 옮겼다... 근데 이 회사에서는 무려, 8월 31일이 되면, 6년이다 6년. 한계에 다다랐다.

 

연애를 하는 것도 시작하기가 겁나는 게 이런 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람도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너무 붙어다니고 너무 자주 연락하고 그러면 어느새 싫증이라는 게 슬며시 나는 것 같다. 웃긴 건, 동성 친구한테는 별로 그런 게 없는 반면 이성 친구 (그러니까 애인) 한테는 그렇더라는 거다. 사랑이 식으면서 그것이 싫증으로 변모하는 걸까. 이러니 내가 누구를 만나 쭉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나. 그래서 싱글... 그래서인가? 그냥 운명인가?

 

걱정이다. 싫증이 나니 회사 나오는 게 거의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느낌이라 매일이 우울하고 불행한 것 같다. 이렇게 지낼 필요는 없쟎아.. 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이젠 나이가 훅 들어서 (아 내 나이) 어디 옮기기도 용의치 않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뭘 많이 바라고 많이 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책 좀 사고, 여행 좀 다니고, 맛난 거 좀 먹고... 가끔 공연도... 켁. 그만두는 즉시 나는 '돈까지 없는' 싱글이 되겠구나. 아. 붙어있어야 해. 어디 갈 데 있을 때 까지는.

 

 

 

맥락없이 갑자기 책 애기. 출근하러 나오는 길에, 그냥 집어 나온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 조금 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 놀라운 책일 거라는 예감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주제 사라마구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포루투칼, 콜롬비아. 어쩌면 영미권보다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미국 작가들의 지루하고 영양가없는 글들을 썩 가까이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어쨌든, 이 책 강렬하다.

 

첫 대목부터 그러하다.

 

 

 

 

 

 

 

하나님이라고도 알려진 여호와는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아주 원시적인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이 심각한 과실을 두고 달리 탓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와의 거룩한 명령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두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다른 동물들은 음메든 으르렁이든 개골개골이든 짹짹이든 휘리리든 꼬꼬댁이든 이미 자기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p9)

 

짜증내는 여호와라니. 크크. 뭐라고 비틀어서 나를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자체가, 생각하는 구조가 색다르고 놀라운 나머지 웃게 하는 것이 좋다.

 

... 그래. 일단 책으로 버텨보자. 나에겐 책이 있지 않은가.

 

 

 

이 책, 아직도 읽고 있다. 뭔가 특별한 책이긴 하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간다. 번역 자체도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고. 이제 2/3 정도 읽었는데, 결말이 이미 드러난 거면 너무 질질 끄는 거 아냐 싶다가도 뭔가 또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동진은 그럴 경우 그냥 던져버리라고도 말하두만, 나는 한번 끝까지 읽어보는 쪽을 택해 보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14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4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줄리언 반스를 좋아한다. 맨부커상을 탔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의 필체와 분위기를 좋아한다. 대단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 아닌데도 마음에 울림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쇼스타코비치의 이야기. 3장으로 구성되고, 윤년마다 찾아온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 3회를 그린 책이다.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지배체제에서 예술가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일들이 긴장감을 주면서도 왠지 담담한 서사로 묘사된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인생에 대한 이해로 통하며,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마음으로 와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이었다. 삶이 당신에게 "그래서" 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불렀다.  (p22)

그보다는 인간의 환상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하면, 그 환상들은 무너져 내리고 말라죽어버렸다. 영혼 깊숙이 닿은 치통처럼,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라면 뽑아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환상은 죽었을 때조차도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썩어가며 악취를 풍긴다. 그 맛과 냄새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내내 그것을 끌고 다닌다. 그 역시 그러했다. (p129)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P135)

"삶은 들판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햄릿에 관한 파스테르나크의 시 마지막 줄이기도 했다. 그 앞줄은 이러했다. "나 혼자뿐이다. 내 주위 사람들 모두 어리석음 속에 익사했다." (p163)

어쩌면 용기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도 나이를 먹는다. 그녀에게는 사라져버린 것만 보인다. 다른 이들 눈에는 남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잘 버텨냈다고, 굴복하지 않았다고, 신경절적인 겉모습 아래 굳은 심지가 있었다고 축하했다. 그에게는 사라진 것만 보였다. (p171)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흐 서곡과 푸가를 어떤 박자, 어떤 세기로 연주하더라도 여전히 위대한 음악이었고 그것은 건반 악기에 전혀 재능이 없는 비열한 인간에게조차 맞설 수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음악을 냉소적으로 연주할 수는 없었다. (p180)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 우리 존재의 음악 -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p181)

 

 

아직 다 읽어내기까지 60페이지 정도 남았다. 찬찬히 정제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 비단 음악에만 빗대어 시대의 소음을 얘기한 것은 아닐 터.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혀야 하는 그 수많은 '시대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하노이다. 원래라면 지금쯤 서울이어야 한다.

 

그저께 밤, 금요일 보고만 하고 집으로~ 라는 기분으로 자료를 작성하고 있던 중, 메세지가 날아왔다. 보고받을 분이 금요일에 시간이 안된다고 토요일 오전 9시에 하라고 했다는 거다. 헉. 그러니까 난 9시에서 아무리 길어도 30분 정도밖엔 안할 보고를 위해 (바쁜 분이다. 삼십분이면 엄청 길지) 하루를 여기에서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 거다.

 

망연자실.

 

그래도 어쩌리. 보고는 하고 가야지, 안 하고 갔다가는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 그래서 어제 하루종일 호텔에 감금당한 채 자료 작성. 꿀꿀했지만, 하루만 참자.. 하고 꾸욱... 자료 다 만들고 누우니 11시. 자자. 자자. 하노이의 밤은 엄청난 빗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아 비 엄청 오네. 소리 엄청 크다.. 이러면서 잠들었다는.

 

아침에, 짐 다 챙기고 룰루. 보고하러 갔다. 보고만 끝나면 집이야 집이야. 그런데, 도착했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안돼요... 다음주에 하는 게 어때요? 라는... 비보를 접함. 이 '을'의 비애. 이걸 어쩌나. 일단 대기 상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림 기다림... 그러나 역시 시간이 안 나고. 할 수 없이 그 아래 임원에게 보고를 하는 걸로 낙찰. 아 정말.

 

다행히 그 분은, 시간이 되어서 30분 정도 보고를 할 수 있었다. 다음 주까지 남아서 마저 보고하고 가라고 할까봐 초조했는데, 출장자들을 이렇게 남겨둘 수 없으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브리핑하세요 라고 일단락. 후유...

 

끝났는데, 긴장하고 화나고 그래서인지 속이 부글부글... 울렁울렁... 게다가 하노이는 덥고 습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올케한테 연락해보니 서울도 그렇다고는 하나, 여기는 타지. 더 힘든 거지. 그래서 호안끼엠 호수 한바퀴 돌고... 하노이가 처음인 동료가 있어서 말이다. 난 호안끼엠 호수 대여섯번은 온 듯... 지쳐서 로컬 푸드로 점심 겸 저녁 겸 하고 호텔 로비에 들어와 회의록 작성했다. 이건 뭐... 주변에 들리는 언어가 베트남어, 중국어라서 그렇지 그냥 한국같은 느낌.

 

아. 집에 가고 싶어...

 

오늘 11시 반 비행기다. 밤, 밤. 내일 새벽 5시에 떨어지니, 그 피곤은 극에 달하겠으나... 그래도 얼른 갔으면 싶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dys1211 2017-07-0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하노이는 호치민시티에 비해 우리처럼 4계절에 날씨도 상대적으로 좋아서 그나마....

비연 2017-07-08 22:08   좋아요 1 | URL
아. 호치민시티는 못 가봐서.. 이보다 더하다는 말씀..? 하긴 훨씬 남쪽이니 ㅜ

dys1211 2017-07-0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치민에 비하면 하노이의 날씨는 천국 같은 곳인거 같아요.

비연 2017-07-09 06: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ㅠ 호치민시티 가보고 싶었는데 급망설이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