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영화로 개봉된다. 예전 영화에도 여러 유명 배우들이 나왔었는데 (잉그리드 버그만까지!) 이번에도 에르큘 포와로에 케네스 브래너가 나오는 등 호화멤버라고 다들 관심이 크다. 내용 다 알면서도 영화를 보고 싶은 심정을 갖게 하는 것이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매력이다.

 

황금가지에서 새로운 번역책이 나오긴 했지만, 내 기억 속의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를 대변하는 책은 해문 출판사의 그것이다. 물론 지금은 표지도 크기도 좀 바뀌긴 했지만, 예전 어렸을 때 동네 문방구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해문 출판사의 빨간책들은 내게는 거의 보물창고와 같은 느낌이었다. 오며가며 용돈 털어 산 게 거의 100권쯤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아가사 크리스티만 있었던 건 아니고. 집의 책장에 주욱 꽂혀 있었더랬지.

 

요즘은 그걸 생각하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연말이 되어서 그런지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외할머니는 연세가 꽤 드셨음에도 소설 읽는 걸 좋아하셨다. 특히 이 해문 출판사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좋아하셨었는데, 한권 두권씩 가져가셔서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책 다 가지고 가신..^^ 두고 두고 읽으시다가 다른 할머니들한테도 나눠주시고... 묘하게도 내 책들이 돌려읽히는 걸 싫어하던 때였는데 (책보관을 생명으로 여기던 시기) 그런 외할머니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왜 그랬는 지는 모르겠고.. 아마 책읽는 우리 외할머니가 내심 뿌듯했는 지도.

 

며칠 전에는 꿈에 나오셨다. 돌아가신 지 십년 쯤 되셨는데 돌아가실 때에 비해 조금 젊으신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계셨다. 음식 솜씨 좋으셨던 외할머니셔서인지 한상 그득 상을 차려 놓으시고는 외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계시는데 아 그리움이 물밀듯이 몰아 닥쳤더랬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갖가지 음식들도 먹고 싶어지고... <오리엔트 특급살인> 영화 개봉한다는 이야기 듣고는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이 의식의 흐름이라니... 외할머니 뵈러 천안에 있는 묘소에 조만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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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그리운 분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매개체군요. 이런 책은 자주 읽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싶어요.

비연 2017-11-22 23:05   좋아요 0 | URL
저두요... 외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이 영화도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싶기도. 살아계실 땐 극장 같이 간 적이 없네요..

카스피 2017-11-2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을 사랑하셨다는 할머니라시니 마치 미스 마플을 연상시키는것 같아요.외할머니가 저를 무척 아끼셨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꿈속에서 뵌적이 없는것을 보아 아무래도 제가 외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지 못하것 같아 조금 죄송스럽네요ㅜ.ㅜ

비연 2017-11-24 00:19   좋아요 0 | URL
꿈에서 못 뵈어도 늘 생각하시니 사랑하시는 거죠, 외할머니. 전 좋은 손녀딸은 못 되었어서 더 애석하고 그리운 거 같아요. 살아계실 때 좀더 잘해드릴걸 싶어서.
 

 

어제 저녁에 심란한 소식을 듣고.. (아 정말) 갑자기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면서 몇 달동안 미뤄둔 정리라는 걸 시작했다. 밤 10시에. 12시까지. 야밤에. 그만큼 심란했어요...ㅜ

 

미뤄뒀던 정리는 집에 처리 안하고 있던 컴퓨터들을 버리는 거였다. 우리집에 십년 전쯤 산 데스크탑과 모니터와 프린터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고, 예전에 쓰던 노트북이 두개나 그냥 또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이것들을 언제 한번 포맷하고 버려야 하는데 하며 찝찝해하고 있던 참이긴 했다. 불편해서 어제 프린터도 하나 사는 바람에 그나마 없는 공간이 더 복잡복잡해졌고 그래서 아 정리할까 말까 했는데, 심란한 소식... 땜에 팔 걷어붙이고 먼지 뒤집어쓰며 시작. 심란하면 청소하는 여자 비연.

 

데스크탑은 아예 전원 자체가 안 들어와서 포맷 포기.. 뭐 특별한 파일 없었지? 라고 한쪽으로 치우고, 노트북 두 개는 과감히 포맷을 했다. 소니바이오... 이젠 망해버린 소니바이오 (망했다기보다는 다른 데로 넘어갔지 아마) 노트북은 어디서 애프터서비스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켜서 복구를 시켜버렸다. 파일 다 지우고 (물론 이게 복원하려면 복원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윈도우 새로 복구하는 과정을 했다. 왠지 마음이 깔끔해지는 느낌.

 

중고물품을 처리해준다는 '주마'라는 업체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고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 치울 게 또 있네? 나의 오디오. 아.. 저 역사적인 오디오. 이제 완전히 망가진. 내가 첫직장 얻고 처음 월급받은 걸로 구입했던 옛날 옛날 또 옛날 미니컴포넌트. 저것도 이번에 처리하자. 새거 하나 사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왠지 의미를 부여한 물건이었던 지라 (그러니까 첫, 첫 이러니까) 마음이 괜히 짠한 게 사실이었지만.... 눈 딱 감고 처리해주세요~ 에 올렸다.

 

내일쯤 처리가 될 것 같은데, 그러고나면 방에 있는 막 쌓여있는 자료들도 다 정리해야할 듯 싶다. 일년동안 그대로 지냈더니 방이 거의.. 폭탄투하 상태. 내가 여기에서 숨을 쉬고 산다니 가끔 의아할 정도라. 아. 방을 통째로 들어서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구나.

 

요즘 어쨌든 그래서 열심히(!) 버리고 있다. 연말까지 책도 좀더 내놓아야지. 그리고... 식판을 받으러 다시 주문을..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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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22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식판 받았어요. 도자기 재질이라 묵직하더라고요. 후훗.
하나 더 받을까 어쩔까 고민중입니다요.

비연 2017-11-22 08:47   좋아요 0 | URL
도자기 재질이라 묵직하군요... 이런. 더 갖고 싶어지네요! ㅜ

2017-11-22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2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2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2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7-11-23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컴 정리를 하셨군요.오래된 데탑이라면 아마 하드안에 기억에는 없지만 어떤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을지 모르거든요.근데 하드내용을 복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대부분 그냥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더군요.그리고 소니의 경우 컴 사업부가 다른 곳으로 팔렸지만 서울의 경우라면 신사동쪽의 소니 매장등에서 아마 노트북 as를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비연 2017-11-24 00:20   좋아요 0 | URL
결국 하드를 빼내고 노트북을 처분했는데.. 수거해가는 쪽에서 하드 없다고 무상수거해가더라구요 ㅠㅠ
 

 

미카미: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는 배우고 싶은 점이 많습니다. 편집자 메구로 고지는 장서를 늘리지 않으려고, 산 책을 우선 넣어두는 상자를 만든 뒤 그 안의 책을 다 읽지 않는 한 다음 책을 사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구라타: 본래 그 정도로 금욕적이 디어야만 하는군요. 작가 후지모토 기이치는 문고본이 스무 권쯤밖에 안 들어가는 케이스를 가지고 있는데, 책이 그 케이스 밖으로 넘치면 절대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웠다고 하지 않았나요.

 

-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중 p205

 

 

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감탄. 오늘 내가 또 책을 주문했는데... (아 미쳐) 지난 번에 주문했던 12권인가의 책 중 단 2권만 읽었는데 (물론 당연한 게 산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2주...던가...?) 또 주문을 했다는 것이고. 그런데, 산 책을 다 안 읽으면 다음 책을 안 사는 규칙이라니. 심지어 상자를 정해 놓고 그 밖으로 책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관리한다니. 이전 세대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은 사람은 나다... 그러나, 이걸 알면서도 일단 꾹꾹 눌렀던 책들은 주문 하기로... (후다닥)

 

 

구라타: 오프라인 서점에서 나란히 늘어선 표지를 보다가 왠지 책이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좋아요... 그런 경험 없으세요?

미카미: 있죠, 있어요. 운명의 만남처럼.

구라타: 책과 눈이 마주치는 듯하죠. 이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한눈에 반함'이 아마존에는 없어요. "이거 좋아하지?" 하며 추천은 해 줘도, 스스로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분야와 문득 만나는 경험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이죠.. (후략)

 

- 같은 책, p206

 

 

아... 너무나 공감가는 구절이다. 그래서 알라딘에서 신나게 주문하다가도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과 아이 컨택을 하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도 내가 그랬었지. 늘어놓은 책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 아이들이 나한테 뭐라고 말하는 지 듣고 (정신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마시길...ㅜ) 손으로 종이의 촉감을 느끼며 뿌듯해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점심 시간 훌쩍 지난 걸 모를 정도였다. 아. 맞다. 이런 기분. 이렇게 얘기해주니 정말 그거야 라는 생각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르는 작가, 모르는 책이름이 잔뜩 나와도 그냥 그냥 읽게 된다. 그들의 애정의 온도에 반해서. 그리고 어느 순간 나와 일치하는 감정들이 보여서.... 정말 한달만, 어디 가서 못 다 읽은 책들 바리바리 싸들고 가 쳐박혀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확. 감행해버려. 이눔의 직장... 버리고... 그렇게 되면 돈도 버려야 하니...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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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4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1-14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3개월간 순수구매액이 줄어들면 사자.... 하고는 매일 들여다보는데 안줄고 있어요. ㅎㅎㅎㅎㅎ
사고 싶은 책 너무 많아요. 저는 집 책장에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몇 배는 더 많아요 ㅠㅠ

비연 2017-11-14 08:22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도요. 사고 싶은 책이 정말 매일매일 튀어 나오니 어쩌면 좋은 지..
저도 책장에 안 읽은 책들을 보면 한숨이... 그런데도 사고 싶은 책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기니.
락방님. 우짜면 좋을까요 우리..ㅜㅜㅜㅜ

AgalmA 2017-11-20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최고요 저자가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책에도 썼듯이 공간을 다 채우면 정리가 아니라고. 삐져 나오게 되므로 늘 여유 공간을 둬야 한다고... 전자책을 사랑하는 방법이 답이겠지만 책 만큼은 전 물질주의자라ㅜㅜ;

비연 2017-11-21 08:26   좋아요 1 | URL
공간을 다 채우면 정리가 아니라니.. 어제 책장에 책을 막 구겨넣었던 저, 지금 손들고 반성중..
전 전자책은 정말 못 보겠더라구요. 손에 종이 감촉이 없으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느낌이라..ㅎㅎㅜ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박람강기 프로젝트 9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모르는 일본 작가와 책과 영화와 배우가 잔뜩 나와서 재미없어.. 하다가 9장에 가서야, 아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거지 맞아 맞아 라는 심정으로 읽게 되는 책이다. 책을 사고 쌓아두고 그러다 읽고 또 똑같은 걸 사고 이런 일들이 나만 하는 게 아님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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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우울 법의학 교실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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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보다 나은 속편을 찾기 어려운데, 이 책은 전편보다 나았다. 훨씬 밝아진 분위기에 짜임새 있는 구조, 줄어든 장광설, 등장인물들간의 미묘한 관계포착 등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아울러, 죽은 자가 이야기하는 것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 귀를 기울이는 기분이랄까.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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