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혼란스러우니 책도 참 번잡스럽게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어느 순간인가부터 한 권만 쭈욱 파고드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종류도 다른 책들을 다 붙잡고 가는 일은 흔치 않다. 덕분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헤매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게 맞는 건지.

 

 

 

 

 

 

 

 

 

 

 

 

 

 

 

 

 

 

 

 

우선은 이 네 권으로 압축된다. <GDP는 틀렸다>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썼고 내가 진정 관심있어하는 분야인데, 진도는 잘 안 나간다. 머리가 복잡하니 뭔가 진지한 생각을 해야 하는 책이 머리에 착 달라 붙지 않는 모양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정말 복받은 나라이다 그런 생각을 우선 많이 하고 있다. 대통령(혹은 정권)이 이런 지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그 연구를 뒷받침하다니. 앞단에 사르코지 대통령의 서문이 있는데 감동이다.

 

<인투더 워터>는 어제인가부터 집어든 책이다. <걸 온더 트레인>의 작가, 폴라 호킨스의 책이다. <걸 온더 트레인>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의 책이었지만 나는 막 좋다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이 책 <인투더 워터>는 어쩐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대어서 다시 같은 작가의 책을 사고야 말았다. 처음 몇 십 페이지를 읽은 결과는.. 잘 모르겠다 이고. 이거 대충 알 만한 내용 아닌가 라는 느낌도 있고. 일단은 읽어봐야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다 만지작거렸을 책이다. 구성이 좀 독특해서 마르케스의 ,미로 속의 장군>을 일관된 주제로 책에 대한 내용을 쭈욱 풀어내고 있다. 중국 사람 (정확히는 타이완 사람)이 써서 문체가 좀 머리에 쏙쏙 박히지 않는 느낌이긴 하지만, 꽤 재미난 책임은 틀림었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 망고 빙수와 딩타이펑 음식점으로 잘 알려져 종일 한국과 일본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타이베이 용캉제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2층 카페가 하나 있다. 이 책의 저자 탕누어가 자신의 아내이자 타이완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소설가 주톈신과 함께 매일 출근하는 공간이다. 탕누어가 카페에서 일하는 건 맞지만 카페 직원은 아니다. 좁은 집에서 온 가족이 다 작가인 여섯 식구가 함께 살다보니 두 사람에게는 고정된 책상이 없어, 대신 이런 공간을 작업실 삼아 주 5일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출근’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이거 찾아내서 한번 가보고 싶다. 고정된 책상이 없어서 카페에 가 일을 한다니. 이건 뭐 나중에 명물 카페로 이름 매겨질 곳이 아니던가. 좁은 집을 옮기기 보다 고정 작업실을 이렇게 외부에 두는 방법도 맘에 들고..ㅎㅎ

 

<나의 첫 인테리어 쇼핑>은 필요에 의해 읽는 책이다. 곧 독립을 하게 되어서 (그렇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인테리어라 할 것도 없는 수리를 하게 되었는데 아 이게 이만저만 발품을 팔아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처음엔 도배와 페인트만 하지 뭐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으악. 게다가 세간살이 다 사야 하고... 내가 예상한 것의 2배 이상의 돈이 들어가게 생겼다. 이렇게 해서 한동안 회사에 또 매이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조금 좌절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큰 결심을 한 만큼 끝내야 하는 일이라 올케가 소개해준 이 책을 읽게 된 것. 7월말쯤 옮기게 될 것 같은데.. 그 때까지 머리 꽤나 아프게 생겼다. 흠흠. 물론 돈도 꽤나 쓰게 생겼고. (아. 내 돈)

 

 

.....

 

 

회사 와서 일하기 싫으니까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며 이런 글 올리고. 누가 볼까 두렵다...라고는 하지만 이미 여러 사람 지나가면서 보았을 것 같기는 하네. 아 이제 일로 돌아가자. 일로,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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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의 원칙인데, 어제 그제는 두 권을 읽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틀 내내 계속 집순이로 지내면서 야구 보고 밥 먹고 자는 거 외에는 책만 읽었다는 이야기. 왜냐고?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어서.

 

 

 

 

 

 

 

 

 

 

 

 

 

 

 

 

 

해미시 멕베스 순경 시리즈는 33권이 나와 있다는데 이번에 나온 이 <잔소리꾼의 죽음>으로 딱 1/3이 번역되어 나온 셈이다. 11권. 갈수록 흥미진진이다. 사실 작은 마을에서 그 얘기가 그 얘기고 나오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그런데 재미가 있다 이거다. 입체적인 사람에 대한 묘사, 엉뚱하기까지 한 해미시 순경의 행동들, 이번에는 프리실라와의 헤어짐과 순경으로의 강등이라는 인생 최대의 시련 속에서 휴가를 떠나는 해미시 순경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딜 가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건, 당연히 이 시리즈를 유지하는 바탕이지만, 해미시 순경도 참, 운도 없다 싶다. 잔소리꾼이라기 보다는 아내에 대한 폭군에 가까운 남자가 살해를 당하고, 그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몇 안되는 사람들이 용의자가 된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비밀들이 흥미진진하고 결국 밝혀진 범인은.. 사실 애잔함까지 느껴졌더랬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 아. 정말.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안 되는 그 반전. 여러분, 그냥 읽어보시라. ㅎㅎ

 

 

 

 

 

 

 

 

 

 

 

 

 

 

 

 

 

이번에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시리즈의 첫 말이 '해'가 많은 건 우연일까. 해미시 멕베스, 해리 홀레, 해리 보슈... 흠... 뭐 암튼간에 내가 좋아라 하는 이 시리즈는 이제 회를 거듭할 수록 힘들어지는 우리 보슈 형사의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어느덧 노회해지고 세상에 대한 이해도 넓어진데다 아빠로서의 면모까지 겸비하게 된 모습이 나쁘지만은 않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당하고 그 속에서도 진실을 찾기 위해 버둥거리는 그의 자세는, 사실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하기도 하고.

 

근데 이번에 읽은 <드롭>에서는 좀 거슬리는 번역 부분이 있었다. 사건을 해결하려다가 만난 해나 라는 여의사. 둘이 서로 마음에 들어 사귀기 시작했는데, 분명 이 관계는 평등한 관계여야 하는데, 남자는 줄곧 반말을 쓰고 여자는 줄곧 존댓말을 쓴다.


해나 - “악은 어디에서 오나요?”
해리 -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해나 -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요. 당신은 거의 날마다 악과 대면하잖아요. 그 악은 어디에서 오는 거죠? 사람들은 어떡하다 악해지는 거죠? 악이 공기 중에 퍼져 있나요? 감기에 걸리듯 악에 걸리는 건가요?” 

 

어째서 남자는 "~지?" 이런 투인데, 여자는 "~요." 로 일관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왜? 같이 반말을 하던가, 같이 존댓말을 하던가. 영어 원문을 보고 싶을 정도다. 영어 원문도 이럴까?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영어가 그런 식으로 나뉘나?

 

해나 - "악은 어디에서 오지?

해리 -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해나 - "당신이 하려는 일 말야. 당신은 거의 날마다 악과 대면하쟎아. 그 악은 어디에서 오는 거냐고? 사람들은 어떡하다 악해지는 거라고 보지? 악이 공기 중에서 퍼져 있나? 감기에 걸리듯 악에 걸리는 거냐고?"

 

이래야 공평한 거 아닌가? 아주 거슬렸다. 번역하는 분이 이들의 관계를 왜 이렇게 설정했는 지 난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둘은 연인이고, 그 전에 직업적으로 만난 업무적인 사이이고, 따라서 평등한 관계인데, 마치 남자 어른이 사춘기 아이에게 말하듯 하는 이런 투. 마음에 안 든다... 내가 까칠해져서 인가? ㅜㅜㅜ

 

그 외에는 이 책, 좋았다. 이전과 같은 흡인력이 있다 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었고, 해리 보슈의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보여주는 다른 매력이 드러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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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17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주말마다...!

비연 2018-04-17 17:04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ㅋ
 

 

 

 

 

 

 

 

 

 

 

 

 

 

 

 

 

꽤 오랜 시간 읽었다. 하나하나 새겨가며 읽어야했기도 했고 최근 저녁마다 약속이 있어서 책 읽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이 책 오늘 좀더 읽고 자야지 하다가도, 씻고 누우면 피곤해서 책을 떨어뜨리기 일쑤인 나날들이었다. 즐겁기는 했으나 지나고 나니,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나고 다닐 이유가 있는가 싶어 내심은 조금 착찹한 마음마저 든다. 아마 내가 요즘 많이 외로운 모양인가. 들어오는 약속을 거부함없이, 바로 이번 주, 아니면 다음 주 이렇게 약속을 잡고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런 식으로 약속을 잡아대니 주중에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뜻없는 행위들이었다 라는 반성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다.

 

 

다음으로 '자기의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Frederik van Eeden)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로 길섶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 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며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 425~426 pp

 

 

책의 말미에 적힌 이 단락을 읽고 왠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요즘 상태가 안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워낙 시달리고 있는 최근인지라, 이 말이 너무나 위로가 되어서인 게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20여 년의 무기징역수 생활을 겪었던 (20대에 들어가 40대에야 겨우 세상에 나온)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라, 말씀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 지도 모르겠다. 오랜 인고와 깨달음과 성찰의 시간을 거친 후 내린 결론...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 남의 말에 굴복하지 마라. 남의 논리에 휘둘리지 마라. 너는 너일 뿐... 그게 자유(自有)로운 인간이며 이 세상에 올곧게 살아 있는 자부심이다 라고 전하는. 어제까지 받은 숱한 상처들이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돌아가신 선생님의 마지막 책을 읽으며, 그 책의 가장 마지막에 적힌 이 말,

 

'감사합니다.'

 

를 보면서 나 또한 하늘나라 저편에 계신 선생님께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 책이 좋은 건, 마치 내 사정을 아는 것처럼, 이리 다가오는 글들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내게 던저지는 글들. 위로의 글들. 그리고 그 다가옴에 반응하는 나를 바라보는 게 좋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미 세상에 없지만 (가끔, 지금 살아계셨다면 어떤 메세지들을 주셨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남기신 글들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자신감을 가지게 하니,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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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4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 말씀도 비연님 글도 너무 좋네요. 여태껏 미뤄놓은, 집에 있는 책이라 뒤로 한 스스로를 탓합니다. ㅠㅠ

비연 2018-04-14 11:52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저도 나오자마자 샀었는데 이제야 읽었네요ㅠㅜ 시간될 때 한번 찬찬히 읽어보실 것을 추천...
 

 

 

 

 

 

 

 

 

 

 

 

 

 

 

 

아 정말. 며칠 전에 책 사서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 책이 나와 버렸네. 요 네스뵈의 책. 무조건 사는 책.

이거 또 주문해야 하나? 좀 참았다 살 걸. 못 참고 질러 버린 날 원망하는 중이다 ㅜㅜ

 

요 네스뵈 책. 제 책장에 다 꽂혀 있습니다... 중고로도 내보내지 않고 전부 꽁꽁 넣어 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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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4-12 2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럴 때가 있어요. ㅋㅋ

비연 2018-04-12 21:43   좋아요 1 | URL
흑흑흑 정말 타이밍이 ㅠㅜ

[그장소] 2018-04-13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렇게 잘 모아뒀으니 , 다음권을 놓치기 어렵죠 .. 더더욱~^^

비연 2018-04-13 12:12   좋아요 1 | URL
제 말이요...ㅜ 괴롭슴다..ㅜㅜ

꼬마요정 2018-04-13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으.. 특히 낱권으로 모았는데, 세트 박스로 나올 때 정말 머리 뜯고 싶죠 ㅎㅎ

비연 2018-04-13 12:12   좋아요 2 | URL
헉. 꼬마요정님. 그거에요 그거에요. 세트 박스 나오면 그걸 또 사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니까요..ㅜ
 

 

어제 저녁에 퇴근을 하는데 정말이지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이 몸이 (심지어!) 날아가는 줄 알았다. 여기저기 나무가 뚝뚝 꺽이기도 하고... 정말 이 정도면 버스도 날아가겠어 라는 심정으로 옷을 여미고 굳건히 걸어야 했다. 도대체 날씨가 왜 이런 것이냐. 4월인데도 손이 시리게 춥지를 않나 (이게 꽃샘추위?) 갑자기 바람이 확확 불어대질 않나.

 

아침에 출근한다고 현관을 나서면서 엄마한테

"아 정말, 어제 바람 넘 불어서 짜증 엄청 났었어." 라며 투덜거렸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러게. 이맘때면 꼭 그렇게 바람이 불어서 꽃들을 기어이 떨어뜨리는구나."

 

흠? 순간 놀랐다. 이 짜증많고 까칠한 딸은 바람 분다고 육두문자(ㅜ) 쓰면서 욕을 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 짜증을 못 버리고 있는데 엄마는 그 바람이 봄꽃을 떨어뜨린다고 말씀하시다니... 우리 엄마, 너무 시적이시다. 어떨 때 보면 우리 엄마가 문학 공부를 해서 글을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고 이미 훤해진 (요즘은 새벽 6시에도 훤하다) 길을 걸으며 나무들을 바라보니 아.. 정말 꽃이 많이 떨어졌고 그 위에 잎새들이 달리고 있었다. 봄이.. 지나가고 있구나....

 

그렇게 바람을 뚫고 삼성역 어느 인근에서 만난 사람들은 십 몇년 전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지인들이었다. 간간히 연락하긴 했지만 만나기는 참 오랜만인 분들이었다. 여전한 모습.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들은 언제 봐도 느낌이 그냥 그리움, 친숙함인 것 같다.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 근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웃고 떠들고... 사람 사는 게 참... 알 수 없다 라는 생각도 하면서 앞으로의 인생도 알 수 없어 그런 생각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 그 직장의 사람들은 참 우수한 사람들이었고 개성이 뚜렷했었다. 대부분이 바라바라 다른 데 가서 근무하고 있고 몇몇은 몇 번이나 직장을 옮겼고 또 어떤 사람은 지리산에 도를 닦으러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기 퇴사를 해서 사업 비스므레한 걸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40 넘어 박사 받아 학교로 가기도 하고.... 얘기해보니 다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일면 안심이기도 했다. 안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별탈없이 안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 괜한 안도감.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예전 사람들 소식도 많이 궁금해지고 (할머니냐..ㅜ) 앞으로 제 2의 인생에서는 이들과 가끔씩으 교류하며 지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쭈욱 가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왠지 그 때 그 사람들이랑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때 다들 나이대가 비슷비슷해서, 저녁마다 자주 모였더랬다. 우리 아지트도 있어서 늦게 끝나고 가도 거의 매일 거기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어느 날은 기억이 난다. 김광석의 '그날들'이라는 크게 틀고 (그 날 그 아지트에 우리 밖에 없었다) 같이 부르던 날. 또 어느 날도 기억 난다. 데낄라 시켜놓고 보드게임 같은 거 돌아가며 하면서 (칼 꽂다가 어느 순간 인형이 튀어오르는 그런 거) 걸리는 사람한테 술 먹이며 깔깔거리던 날. 또 어느 날도 기억나네. 술을 한껏 마시고 나왔는데 그 중 한 명이 거스름돈 받아 나온 지폐를 하늘에 막 던지던 그 날... 어제 만나고 오면서 이런 저런 날들에 대한 기억으로 뭉클해졌었다. 물론 세찬 바람과 비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걷는라 지금처럼 부드러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 따뜻했다.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시간을 어느 이상 같이 보내는 사람들은 대충 어느 정도나 될까.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 곁에 두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싫어도 만나지는 사람들은 몇 명 안되겠지... 그 사람들이 누구냐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일 테고. 그 안에는 가족도 포함일테고... 그래서 가족이 제일 중요한 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상은 대부분 가족일 것이니... 지금 내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자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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