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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그런 책이 있다. 그냥 읽으려고 냉큼 펴들었다가 그 말들이 너무 주옥같아 한번에 읽기가 미안해지는 책. 그래서 하루에 한 장씩 보물을 대하듯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읽게 되는 책. 그리고 읽고 나면 마음 속 깊이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책. 그래서 몇 주를 내 머리맡에 두고도 전혀 지루한 느낌이 안 들게 하는 책. 이 책은 내게 두 달간 그런 느낌들을 안겨주었던 책임을 고백한다.
120개 문장과 해석이 두 페이지에 딱 떨어지게 정리가 되어 있길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심심풀이로 읽으면 되겠다 했었다. 첫 날 하드커버의 버거움을 감수하고 핸드백에 억지로 넣어 들고 가서 버스 안에 어렵사리 앉아 투덜대며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아..이 책은 이렇게 혼잡한 속에서 대충 읽기에는 너무 값진 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늘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나가며 내 마음을 가다듬고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는 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전이라. 게다가 우리가 흔히 보는 논어니 중용이니 어쩌구저쩌구 하는 중국의 사상가들의 글이 아니라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글 중에서 작가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글들을 1년 열두달의 의미를 따 열두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회심', '경책', '관물', '교유', '지신', '독서', '분별', '언어', '경계', '통찰', '군자', '통변'의 각 장에는 제목에 들어맞음직한 옛 사람들의 글들이 주옥같이 담겨져있다. 무엇보다 옛 글 하면 그저 중국의 오랜 학자들을 떠올리는 '사대적인' 사상을 통감하며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우리나라 고전에 대해 내 조상들의 생각에 무심했는가를 깊게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방법이나 원칙들은 하나 변한 게 없어서 물질적인 풍요가 아무리 번창을 하고 세상 살기가 편해졌다고 해도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글들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내 머리끝을 서늘하게 하는 힘이 있다. 때론 경고를 하고 때론 힐책을 하고 때론 마음을 잘 다독거리는 글들 속에서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백년도 못살 인생에서 나를 잃고 나의 빛을 저버리고 그저 그렇게 지냈을 수도 있는 세월들을 돌아보며 날이 시퍼렇게 선 사람의 생에 대해 고민했었다.
우리는 흔히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외국의 사상, 외국의 인물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뭔가 유식한 것 같고 고상해보인다는 착각도 간혹 하고 꼬부랑 영어를 아는 것은 우쭐해대지만 한글 이전에 조상들이 사용했었던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서양이나 중국의 철학자들 이름은 줄줄이 꿰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늘 헷갈려하곤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토양에서 역사를 함께 하며 살았던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은 내가 모르는 새에 나의 DNA에 새겨져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을 것임을 새삼 느낀다. 나라는 현재의 존재가 과거의 존재들 없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개인은 나의 집안 어른들의 역사를 통해 규정되고 더 크게 보아 한 민족의 역사를 체화하여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우리 조상의 사상이 얼마나 깊고 올곧고 이 시대에도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인가를 느낄 수 있고 글 하나하나에서 전해지는 감동도 클 뿐 아니라 나의 역사의식과 옛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아울러 옛 글 옆에 주석처럼 단 정민 교수의 글들 또한 못지않게 정갈하고 마음을 울리는 글임을 말하고 싶다. 글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글들 자체만으로도 삶에 대한 바람직한 애정이 담뿍 느껴져 가슴이 뻐근했었다.
맨 마지막 장에 조희룡의 글에 덧붙여 쓰여진 저자의 글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 글이 이제까지의 나의 중언부언을 요약하고 저자가 이런 책을 펴내게 된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워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물건이야 전에 없던 것들이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세상 사는 이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정말 새로워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옛것을 적당히 바꿔 새롭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이다. 어떤 새롭고 유용한 것도 옛것 속에 이미 다 들어있다. 파천황의 새것은 어디에도 없다. 고치고 다듬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