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어제 먹은 맥주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약간 머리가 띵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생각해보았다. 그냥 어제처럼 집에서 뒹굴뒹굴 할까. 오늘은 일요일인데.. 잠시 스친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가 뒤이어 주르륵... 눈 앞에서 올라오는 기분이다. 아 내가 왜 그렇게 일들을 맡았는가. 미친 거 아닌가.. 라며 자책으로 넘어가고. 끙 하고 일어나 씻고 꾸역꾸역 집 앞 투썸에 나왔다. 4,100원짜리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두고 반나절은 이곳에서 뭉갤 생각을 한다. 오늘은 사람도 별로 없네. 아마 내일 하루 휴가 내고 놀러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거다. 평상시라면 이 시간에 사람들이 제법 찼더랬는데 말이다.

 

회사 일에 정을 못 붙이니, 자꾸만 개인적인 일들을 벌이게 된다. 내가 참여해서 의미있는 일, 내가 하면서 즐거운 일들을 찾아 다닌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역시도 흡족하지는 않다. 하게 되는 일들이 다 내가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좋겠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다음의 일들을 기약하며 징검다리 역할로 맡게 되는 일들도 있다. 그 '나중' 이라든가 '다음' 이라든가 하는 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는 채. 조금 답답하고 조금 피곤하고 그런 상태인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자꾸 하니 집중은 되고 그래서 다른 잡 생각은 많이 없어지고 있다. 한가하면 자꾸만 내 속으로 파고드는 성격이라 혼자 좌절하고 혼자 꿀꿀해하고 ... 이렇게 스스로를 파먹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의도에서라면 성공적인(?) 나날들이다. 주중엔 회사 일에 주말엔 개인 일에, 뭔가 다른 생각을 할 틈 자체가 없어지는 듯 하다. 그래. 그거면 되지.

 

어제 엄마랑 맥주 한잔 마시면서 본 TV 프로그램은 삼시세끼였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이지만 가끔 엄마가 볼 때 옆에서 보곤 하는 건데, 이번에 새로 시즌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득량도라는 곳에 가서 먹고 자고 설겆이하고 ... 뭐 이런. 득량도라는 섬 이름을 처음 들어보아서 찾아보니 전남 고흥과 고성 사이 점 하나처럼 있는 섬이라고 한다. 하루 두번 여객선이 왕복하는. 깨끗하고 조용해보이는 곳이라 .. 저런 곳에서 한달만 쉬었으면 좋겠구나 했다. 물론 그 섬에 사는 분들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실텐데 쉬겠다 말하는 것이 좀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요즘엔 여행도 다 귀챦고 그냥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자고 먹고 책보고 산책하고 하며... 한달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마... Burn out 상태인 모양이다.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지친... 이게 며칠 쉰다고, 며칠 여행한다고 복원이 잘 안 되는 그런 상태.

 

아. 일하자. 조만간 그렇게 지내보자 ... 생각만 하며.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 지 잘 모르겠어서... 의미라고까지 하기는 뭣하지만, 내 머릿속을 한번은 비워낼 시기가 필요하다라는 절박한 심정이 있다. 우선 지금 맞닥뜨린 일들을 해결하고.. 차분히 그럴 시간을 만들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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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dokhan 2017-10-1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완전 되는 글입니다 저도 한달만.딱한달만 먹고자고 책일고 일어나다시먹고 책일고ㅡ한가로운시골집 바닥에누워그러고 지내고싶네요.힘내세요^^

비연 2017-10-11 08:49   좋아요 0 | URL
아아. 언제쯤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흑흑. 힘내요 우리!
 

책표지가 이러니..
지하철에서 펼쳐놓고 읽기가 조금 민망하다.

제목도 좀 그런데,
이건 뭐 야한 책이라도 되는 듯한 표지이다.
내용에 이런 장면이 포함되니
이해는 하면서도... 다르게 표현하지 그랬냐 싶다.

책 자체는 흥미진진하고 재미난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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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좋은 말이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게 문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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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실화영화라. 꼭 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인 분이 추천을 다시 해주셔서 어제, 없는 시간 쪼개서 갔다. 이것이야말로 IMAX로 봐야 한다는 말에, 용산에 가려고 타진, 이런... 제일 앞좌석 빼고는 다 매진... 왕십리? 여기도..ㅜ 좌절 끝에 상암 IMAX까지 갔다. 그래도 꼭 IMAX로.. 라는 마음 때문에.

 

일단 이 영화는 IMAX로 보길 추천. 처음부터 그렇게 찍었기 때문인지, 그 화면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쟁 영화라고 우당탕탕 싸우는 걸 기대한다면 오산. 사지에 몰린 영국군과 프랑스군. 바다 건너편에는 영국이 보이고, 지척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은 아니라도 살 곳을 가지 못하는 이들의 사투가 펼쳐진다.

 

사람이 사람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일들.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해변가에서 죽어가고 그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갖은 일을 벌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헌신도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가 느껴졌다. 마구 쏴죽이는 영화보다 더 섬찟한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였다. 전쟁 영화이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역시 놀란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물론 호불호는 있다. 영국군에 편향된 내용이라는, 혹은 마지막에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연설을 날리는 처칠에게서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은 이것인가 라는 자괴감까지.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좋았다. 전쟁 영화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 다가왔다. 많은 대사 없고 많은 전투씬 없이 그저 가끔씩 크게 확대되는 화면에서 공포와 그리움과 처절함으로 가득한 눈과 표정이 클로즈업될 때의 느낌이란. 그렇게 생존해오는 군인들은 살았다는 기쁨보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한다. 수치스러워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쟁은 무엇인가. 전쟁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또 하나는. 배가 바다 위에서 넘어지고 그 주변으로 민간인들의 배가 모여드는 장면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생각했다. 아. 이것은 우리 세대의 영원한 트라우마로 작동할 것 같다. 울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냥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영화가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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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을 하면서 말했다.

 

"아 재미없어. 엄마, 넘 재미없다."

 

엄마, 가만히 계신다...

못들었나? 다시한번 말했다.

 

"일이 힘든 건 오케이인데, 넘 재미가 없어.."

 

엄마, 한마디 하신다...

 

"어째 오래 간다 했다. 싫증 났구나."

 

딩동.

역시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다. 흐흐흐^^

 

 

싫증이 난 거다. 회사를 주기적으로 옮겨다닌 건, 거기에서의 일이 재미없어서이기도 하고, 사람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국 기저에는, 내가 하나에 쭈욱 붙어서 뭔가를 계속 하는 걸 싫어한다는 감정이 자리한다.

 

회사를 들어가면, 처음 2년 정도는 잘 지낸다. 불만도 별로 없고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일도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업무이니 익히느라 정신없기도 하고 해서. 3년째부터는 슬슬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4년쯤 되면서부터는 억지로 다니게 된다. 이 때 가장 많이 옮겼다... 근데 이 회사에서는 무려, 8월 31일이 되면, 6년이다 6년. 한계에 다다랐다.

 

연애를 하는 것도 시작하기가 겁나는 게 이런 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람도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너무 붙어다니고 너무 자주 연락하고 그러면 어느새 싫증이라는 게 슬며시 나는 것 같다. 웃긴 건, 동성 친구한테는 별로 그런 게 없는 반면 이성 친구 (그러니까 애인) 한테는 그렇더라는 거다. 사랑이 식으면서 그것이 싫증으로 변모하는 걸까. 이러니 내가 누구를 만나 쭉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나. 그래서 싱글... 그래서인가? 그냥 운명인가?

 

걱정이다. 싫증이 나니 회사 나오는 게 거의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느낌이라 매일이 우울하고 불행한 것 같다. 이렇게 지낼 필요는 없쟎아.. 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이젠 나이가 훅 들어서 (아 내 나이) 어디 옮기기도 용의치 않다는 게 함정이다. 내가 뭘 많이 바라고 많이 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책 좀 사고, 여행 좀 다니고, 맛난 거 좀 먹고... 가끔 공연도... 켁. 그만두는 즉시 나는 '돈까지 없는' 싱글이 되겠구나. 아. 붙어있어야 해. 어디 갈 데 있을 때 까지는.

 

 

 

맥락없이 갑자기 책 애기. 출근하러 나오는 길에, 그냥 집어 나온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 조금 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 놀라운 책일 거라는 예감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주제 사라마구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처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포루투칼, 콜롬비아. 어쩌면 영미권보다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미국 작가들의 지루하고 영양가없는 글들을 썩 가까이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어쨌든, 이 책 강렬하다.

 

첫 대목부터 그러하다.

 

 

 

 

 

 

 

하나님이라고도 알려진 여호와는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아주 원시적인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이 심각한 과실을 두고 달리 탓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와의 거룩한 명령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두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다른 동물들은 음메든 으르렁이든 개골개골이든 짹짹이든 휘리리든 꼬꼬댁이든 이미 자기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p9)

 

짜증내는 여호와라니. 크크. 뭐라고 비틀어서 나를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자체가, 생각하는 구조가 색다르고 놀라운 나머지 웃게 하는 것이 좋다.

 

... 그래. 일단 책으로 버텨보자. 나에겐 책이 있지 않은가.

 

 

 

이 책, 아직도 읽고 있다. 뭔가 특별한 책이긴 하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진도가 안 나간다. 번역 자체도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고. 이제 2/3 정도 읽었는데, 결말이 이미 드러난 거면 너무 질질 끄는 거 아냐 싶다가도 뭔가 또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동진은 그럴 경우 그냥 던져버리라고도 말하두만, 나는 한번 끝까지 읽어보는 쪽을 택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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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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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0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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