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에 잠시 240번 버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원래 이 일에 대해 올렸던 게시글과는 그 진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아이가 4살이 아니라 7살 정도이고 엄마가 어쩐 일인지 아이가 없어진 걸 10초쯤 뒤에 깨닫고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 그런데 그 때 버스가 손님을 내리기엔 부적절한 그러니까 사고가 날 만한 장소였던 지라 10초쯤 뒤에 길 쪽으로 대어서 내려준 것.... 버스기사가 부도덕하고 불친절했다거나 서로 욕설을 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아 그래. 진상은 그랬던 거구나. 하지만 아직도 모호한 게 많다는구나. 하고 평범하게 듣고 얘기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한마디를 했다.

 

"그 엄마가 버스 안의 CCTV는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네요?"

 

흠?

"아. 뭔 일이 있었나?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라고 대꾸했더니 갑자기 조용히 있다가 한마디 다시 덧붙인다.

 

"맘충이라고 있죠? 그런 거죠."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화가 갑자기 치솟았다.

 

"그런 단어는 쓰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었는 지도 모르고, 또 여성한테만 그런 류의 단어들을 붙여서 규정짓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되네요." 라고 말했더니 막 짜증을 내면서 자기도 경험을 해봤지만 정말 그런 엄마들이 있다는 둥, 그렇게 불려도 뭐라 할 수 없다는 둥...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내가 "그런 사람은 있겠지. 하지만 그런 '명사'로 규정당하는 건 항상 꼭 여자들이다. 이건 여혐의 일환이고 그래서 이런 단어를 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하니 하는 말이.

 

"아. 되었어요. 여기서만 그 단어 안 쓰면 되죠? 난 절대 동의 못하지만 여기서는 안 쓰도록 하죠."

 

이 대화가 어제 오늘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라서 속에서 막 뜨거운 화의 기운이 올라오곤 한다.

 

 

마태우스님이 이 책을 내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이런 제목으로 이런 내용으로 책을 내다니 용감하신 마태우스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대화를 나눈 상대 남자는 40대였고 배울 만큼 배웠고 상대적으로 여자라고 누구를 혐오를 한다거나 차별을 하는 동료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충격이었던 것 같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교수가 여성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며, 여혐을 일삼는 남성들의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를 알려준다.

‘된장녀’, ‘김치녀’, ‘맘충’ 등 여성혐오를 표현한 단어들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으며, 남성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글에 동조하거나 그들의 행태에 침묵하는 이들은 많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가 대학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이 남성들로 하여금 분풀이할 대상을 찾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만한 약자, 즉 여성이 분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유리천장과 독박육아처럼 불평등한 여성의 삶이 존재한다. 혐오와 차별을 없애달라는 여성들에게 ‘여자도 군대 가라’며 역차별 운운하는 남성들의 주장이 억지에 불과함을 역설하며 남성들의 각성 또한 필요함을 강조한다.  - 알라딘 책 소개 中

 

남자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이게 '여혐'의 한 양태라는 것도 모르고 마구 내뱉는다.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성차별적 요소를 간과한다. 그런 얘길 들을 만하다고 자기는 상식선에서 판단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틀렸다고 얘기하면 화를 낸다.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간다고 짜증을 낸다. 자신의 바닥을 보려 하지 않는다. 억지를 부리면서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매번 피곤하다. 마태우스님의 이 책을 사다가 안겨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남자가 이런 얘기를 한다. 좀 깨달아라. 라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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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7-09-14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화가 많이 나셨겠네요.. 요즘의 이슈들은 너무빨리 소비되어져서 오전에 화제가 되었던 이슈가 오후엔 또 다른 이슈로 대체되어지고.. 너무 빨리 떴다가 너무 빨리 잊어버리다보니 어쩌면 개중에는 확인이 아직 완전히 안된 일들이 화제거리가 되었다가 나중에 다른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채로 이미 잊혀지는 경우도 많기도 하죠. 그래서 이슈들이 너무빨리 소비되어지는 요즘현실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이라고 붙이는 것이 사람을 벌레로 규정짓는게 재미로만 생각하기엔 선을 넘어간 것 같아서 너무 싫어요. 대부분 이런 식의 분류가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 생겨난 재미와 비하의 표현으로 쓰는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커뮤니티 특성상 구성이 남초이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구요.. ㅜㅜ

비연 2017-09-15 08:55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저도 동의해요. 요즘 이슈들은 빨리 소비되기도 하고 그래서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에게 일파만파 너무 빨리 번지기도 해서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발생하는 이슈들에 대한 확인없이 그냥 막 내지르는 언론의 태도나 지나치게 거기에 대해 표피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구요... 여성들에 대한 이런 표현들은 사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서글퍼지는 일입니다. 이런 식의 그릇된 규정화, 막무가내의 비난 등이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라는 막막함도 있구요... 그 동료, 지금도 제 앞에 앉아 있네요..ㅜ

사실만 말하자 2017-09-15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막고 눈가리고 빼액빼액 여혐하지마~!
군바리 꼰대 한남 이건머냐?
맘충이란 단어가 모든 여자을 지칭하는 말이냐?
맘충이란 단어가 모든 엄마을 지칭하는말이냐?
일부의 잘못되고 이기적인 아줌마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맘충이란 말이 사실 여러맘카페에서 혐오적으로 들린다고 스스로 자신을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있다.
맘충이란 단어을 제일 만이 쓰는 사람이 남자라고?
사실 미혼여자들이 제일 많이 쓰고 실제 인터넷 글중에 맘카페의 글들이 거의 맘충이란 단어을 스스로 쓰고있다.
맘충이란 단어가 최초에 어디서 만들어 졌다가 아니라 무개념 아줌마을 맘충이라고 부르고 맘카페에서 제일만이 쓰이고
있다는거 모르지? 어린 여성같은데 한번쯤은 바른소리도 하면서 살아라
그런 편향된 우김으로 살면 너또한 그소리을 듣게 될것이다. 그말을 하는 사람이 꼭남자일거 생각하냐?
그리고 귀막고 눈가리고 빼액빼액 하지말고 기사을 찾아 눈깔로 보고 글을 써라
국민들 대부분이 이미 실을 알고 거기에 말을 하는데 맘카페와 일부 여성들이 그걸또 무분별하게 여라라고 감싸냐?
도둑넘감싸면 너도 도둑넘이고 살인자 감싸면 너도 살인자되는거다.
행실의 자잘못을 따진후에 엄마던 여자던 찾아라
우리사회에서 여자라고 모든 도덕을 모든법을 아우르고 막가파로 살려고하냐?
그런 생각이 지금 맘충의 전형인거 모르냐?
성동구 맘카페 같은데 가서 봐라 도저희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더라
사회가 아무리 지 꼴리는대로 살아도 된다지만 아닌건 아니잔아

비연 2017-09-15 15:21   좋아요 1 | URL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사실만 말하자‘면..
1. 저는 ‘어린 여성‘이 아닙니다. 나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2. 제게는 ‘눈깔‘은 없습니다. ‘눈‘이 있을 뿐입니다.
3. 저는 ‘남자‘를 욕한 적은 없습니다. 누구든 상대를 작은 지식으로 규정하는 ‘사람‘을 경계한 겁니다.

이상입니다.

다락방 2017-09-15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위에 댓글 너무 후져서 제가 다 부끄럽네요...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비연 2017-09-15 22:34   좋아요 0 | URL
쩝...유구무언..입니다...

이하라 2017-09-1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이 여혐은 아닐겁니다 병역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의무이니까요 군가산점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역차별임에도 분명하구요 여성들 스스로도 그런 인식을 서서히 하고 있기에 최근 이슈가 된 여성의 군복무도 의무화해달라는 여성들 스스로의 청와대 청원도 있었던 것이겠죠 게다가 맘충이란 표현은 저는 알게 된게 며칠되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그런 표현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여성들이 더 사용하고 있을듯 합니다 직업이 있는 여성들이 전업주부를 무시하며 처음 사용한 신조어가 아닌가 싶네요

비연 2017-09-15 22:37   좋아요 1 | URL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잘 읽었습니다. 아울러, 직업이 있는 여성이 전업주부를 무시하며 처음 사용한 신조어가 맘충이라는 건, 좀 지나친 억측이 아닐까 싶네요.

hellas 2017-09-16 0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겪으신 일도 화가나지만 댓글도 정신이 아득해지네요. 여적여 프레임으로 못박고 싶은걸까요. 얼마전 여성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했었는데 몇몇 남성분들이 여성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성간의 질투에 대해 더 빈번한 일 아니냐고 말하더군요. 나는 뒷짐지고 엣헴 할테니 너희들끼리 좀 싸웠으면 하는 심리인지 ㅡㅡ

비연 2017-09-16 22:39   좋아요 1 | URL
이런 류의 이야기들에서 참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2017-09-1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6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마열 2017-09-19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베충으로 부터 시작된 단어가 ‘충‘ 이란 단어죠. 여자한테만 여혐이라는 이유로 ~충이라고 부르는건 아닙니다.

그 버스기사는 자살까지 생각했고,
딸아이들은 울면서 인터넷에 해명을을 적었답니다, 그리고 저 여자는 형사고발을 진행 하였던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맘충이라고 할까요?

특정부류에 규정을 지어라, 혹은 짓지마라. 라고 말하기 이전에
왜 세상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이 되었는가, 왜 저런단어가 나올까를 먼저 생각해봤으면 좋겟습니다.


비연 2017-09-19 13:54   좋아요 1 | URL
잘 읽었습니다.

다만, 어느 사안이나 fact를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고
자기가 보는 혹은 아는 내용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생각해보면, 토요일과 일요일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게 된 것도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싶다. 주 5일제를 적용하는 회사들에 다녔지만, 항상 일에 부대껴서 주말 하루는 나가야 했었던 것 같고, 그렇게 회사 일을 하지 않더라도 정신없이 사람들 만나느라 허덕거리며 다녔던 적이 많았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것도 '나의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내가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나의 일을 차분히 하는 시간들을 즐기게 되면서부터 '나의 시간'이 온전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요일은 대부분 집 앞 투썸플레이스에 나온다. 노트북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그냥 책 한권만 들고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엄마를 불러서 팥빙수라도 하나 먹고 들어가기도 한다. 일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알라딘을 도닥거리기도 하고 어떨 땐 이메일 정리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이 평화로움이 너무 좋다... 라는 생각이 오늘따라 많이 든다.

 

 

 

에드 맥베인의 소설을 사두고 바로 읽지 않는 것은, 반칙이다... 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에 구매한 책 중에 제일 먼저 잡아 들어서 결국 어제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이 그리 길지 않고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으며 상당히 일반적이고 시시한 농담들이 수없이 오고가는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읽기 전에 꼭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맞아 이거야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미국 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수위의 대화체 구성, 통통 튀기는 대화 속의 유머와 해학, 경찰을 '직업'으로 가진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 유혈이 낭자하거나 대단한 추리나 엄청난 액션이 나오지 않아도 이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푹 빠지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류는 이런 책인 것 같다. 아 에드 맥베인의 책을 이렇게 열심히 내주는 피니스 아프리카에에게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찔끔찔끔 여기저기서 일관성 없이 나오던 이 시리즈를, 꽉 다잡고 쭈욱 내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거 중간에 안 내게 되면 서명운동이라도 할 참이다. 87분서 시리즈를 전부 내주세요! 라고.

 

 

오늘은 할 일이 꽤 많다. 이젠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일정에 쫓기고 있는 터라 아침에 작심을 하고 노트북만 하나 달랑 들고 왔다. 책을 들고 오면 자꾸 책을 읽게 되니, 과감히 일 다하고 집에서 읽으리라 하고 가방에서 빼버렸다. (훌쩍) 바빠지면 여기저기 다니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묘한 심정인지라, 괜히 가을여행에 기웃기웃거려보기도 하지만... 추석 때 부모님과 여행을 일주일 가기로 예약되어 있으니 (예약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멀리도 못간다ㅜ) 그거 하나 바라보고 열심히 이 일들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라고 굳게, 굳게... 마음을 다지고 나왔노라... 여기서 선포. (ㅎㅎㅎ)

 

다음 책은 뭘로? 잠시 고민하다 나왔는데, 아무래도 읽다 만 <백치>를 다 읽어야겠다 해서 다시 꺼내놓고 나왔다. 상권 거의 다 읽어가던 중에 다른 책들을 읽느라 저기 멀리 밀쳐두었었다는. 내친 김에 하권까지 완독해봐야지. <백치> 다음엔 <악령>을 읽고 싶은데, 그렇게 긴 호흡의 독서를 시간이 허락할 지 모르겠다. 한 달만 어디 쳐박혔다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다시 한번 품어보며... 이제 일하자.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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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11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외출중에 이 글을 보고 ‘나도 빨리 까페가서 책 읽어야지, 그리고 그러고 있다고 댓글 달아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그냥 집에 돌아왔어요. 책은 무겁게 계속 가지고다니고.... 집에 와서 책을 읽으려 햇지만 한 장 읽으니까 꾸벅꾸벅 잠이 오고.. ㅠㅠ
제 주말은 그래서 책 한 장도 안읽고 날려버렸어요 ㅠㅠ

비연 2017-09-11 2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락방님 댓글에 웃음이~ 그런 날이 있어요. 책을 낑낑거리고 들고 다니다가 그냥 집에 오는 날. 어제가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정말이지, 요즘은 책 읽는데 왜 이리 졸린 걸까요. 꾸벅꾸벅ㅜ
 

 

아침에 스타벅스를 오면 대부분 조용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여기 스타벅스는 지하에 공간이 있는데, 아 내려오는 순간 안심했다. 아. 조용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잠시. 뒤이어 남녀 한쌍이 내려와 크게 떠들기 시작했고 할아버지 한분이 내려와 전화를 큰 목소리로 하기 시작했고, 여자 두명이 내려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사람들이 스타벅스라는 공간을 다방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소리를 조금 낮추어서 하면 안되나.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이어폰을 챙겨오지 않은 스스로에게까지 짜증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

 

어쨌든.

 

최근에 두 권의 책을 연거푸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묘하게 찾아보게 된다. 100년도 전의 사람이고, 약간 고풍스럽고 어색한 어투이고, 그 사상 또한 고루함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생각의 방식이랄까. 내용의 참신함이랄까. 읽으면서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현암사에서 나온 책들을 하나하나 다 모으고 있는데... 이 책은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된 에세이집이다. 단편도 한꺼번에 쓴 게 아니라 초창기부터 사망하기 바로 전 해까지 띄엄띄엄 쓴 것들을 한데 모은 것이고, 표제인 <긴 봄날의 소품>은 그 중 하나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쁘지는 않으나, 아주 좋지도 않은 그만그만한 에세이였다. 소설과는 달리 소세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챦았고. 특히 마지막 단편 <유리문 안에서>는 그 이듬해에 사망하는 소세키를 생각하면, 뭔가 쓰는 내용마다 애잔함이 스민다고나 할까. 알고 보면 이런 것이겠지. 자주 아프고 그래서 자주 병석에 누웠던 소세키인지라, 주변 사람들 주변 동물들 등등에 대한 감상들이 조금 남다르다고나 할까. 죽음에 대한 생각들도 그렇고.

 

 

 

이런 류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안 읽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회찬 국회의원이 김정숙 여사에게 선물을 했다 하고... 지난 번에 경주 내려갔을 때 들렀던 '어서어서'라는 서점의 주인장도 옆에서 보니 극구 추천을 하길래, 그래, 그럼 한번 읽어볼까 하고 사두었던 책이다... 반나절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과 내용이었다. 그냥 TV 프로그램의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그 나레이션을 읽는 느낌이랄까. 원래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 지 글 쓰는 것이 읽어 내려가는 데 부담스럽게 쓰지는 않으나, 대단히 임팩트가 있거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좀 실망스러웠다.

 

내용이 술술 넘어간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주인공 김지영이 살았던 시대보다 조금 앞서 살았던 사람부터 김지영 세대까지의 우리나라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들. 이제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라고 해서 가르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기대도 없고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부담을 같이 안기도 싫고... 여성들의 자아는 커지고 있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디에나 만연한 폭력적 상황 (말이든 신체접촉이든)에 노출되어 겁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

 

학교에서 회사에서 당했던 '여자'였기 때문에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분개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뭐라 딱 부러지게 말도 못하고 끼리끼리 모여 욕이나 하며 속을 풀던 우리들. 지금 같았으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들도 그저그렇게 눈감고 지나가야 했던 나와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소화가 안되는 기분이 되었었다. 이제는 아니겠지.. 라고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상승되고 어디를 가든 잘 해내는 여성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결혼은 불평등하고 출산은 부담스러워하며 육아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런 것들의 평등이 이루어지 것인지 생각하면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대단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으나 읽어볼만은 하다 라고 얘기해보련다. 이런 책들이 나오면,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냥 잊고 지내던 것들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래서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읽는 사람이 나같이 여자인 경우, 특히나 저런 시대를 겪었던 여자인 경우는, 상당히 소화가 안될 정도의 갑갑함을 안고 읽게는 되지만.

 

이제 일을 좀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벌인 일들이 많아 주말마다... 내가 생각해도 고생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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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2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2년생 김지영》의 반 정도 읽었는데요, 여자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날만한 남자들의 안이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책을 남자들도 읽어보면 좋을텐데, 반은 이해를 못하거나 나머지 반은 페미나치가 좋아할만한 책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비연 2017-09-02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남자들 중에는 이 책을 읽고, 다 이해하지만 (과연?) 남자들도 힘들어... 라는 반응들이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사는 건 다 힘들죠...) 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내용들을 담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아쉬운 부분이에요. 이 책의 결말에서 그거 여실히 보여주죠. 그래서 책을 덮을 때 참... 씁쓸합니다.
 

 

어릴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중학교 때, 유난히 가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 때만 해도 가요는 무슨, 팝송이 최고지 라는 분위기여서 나는 사실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좀 시시하게도 생각했었고... 늘 코웃음만 치는 내게 어느날, 그 아이가 이 노래 들어보라며 들려준 노래가 있었다. 억지로 이어폰을 꽂고 듣기 시작했는데, 그 때의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팝송이나 기타 등등의 외국어로 된 노래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가슴 속에 저릿함이 아프게 스치고 지나가던.

 

그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조동진의 '제비꽃' 이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땐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땐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마치,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읽는 듯한, 시적이고 감성적인 가사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미롭던 목소리. 그냥 읊조리는 것 같은 그 스타일이, 마음에 쿡.. 박히는 것은 참 묘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에도 조동진의 노래는 가끔씩 들었었고... 가슴 아픈 날, 그런 날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었다. 펑펑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맺히게 하는, 그런 노래를 조동진은 불러 주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던, 그 가수가 며칠 전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흔. 아직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 참 허무하게 세상에서 사라졌구나 싶어서 마음에 구멍 하나 뚫린 기분이다. 때마침 날도 선선해지고... 가수는 사라져도 노래는 남고, 그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내게 스산함을 안겨 주겠지... 이 또한 생각해보면, 참 허망한 일이구나 싶고.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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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3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젊은 편(?)이라서 조동진의 노래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그의 노래들 중에 가장 좋아하고, 생각날 때마다 듣는 곡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연 2017-08-31 17:31   좋아요 0 | URL
‘행복한 사람‘... 저도 좋아해요! ^^
근데 갑자기 ‘젊은‘ 편이라는 말에, cyrus님은 어느 연배일까 궁금해졌다는 ㅎㅎ

cyrus 2017-08-31 17:32   좋아요 0 | URL
호돌이가 나왔던 해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이제는 아재 소리 듣는 나이입니다.. ㅎㅎㅎ

비연 2017-08-31 21:05   좋아요 0 | URL
오호~ 정말 젊으신데요!^^ 글의 농익음으로 봐서는 훨씬 나이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어요~
 

 

 

 

여름이 한창이었던 때.

경주 황리단길 주변에서.... 사진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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