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술술 풀릴 때도 그렇지만 일이 그나마 자꾸 뭔가에 걸려 덜컥거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럴 땐 그저 내가 좋아하는 (스릴러) 작가의 책 하나 잡고 무념무상으로 그 세계에 빠지는 게 제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난 어제, 토요일, 마이클 코넬리의 세계에 들어갔다.

 

 

 

 

 

 

 

 

 

 

 

 

 

 

 

 

 

 

 

재미있다.  마이클 코넬리의 책은 날 실망시킨 적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재미남의 정도가 점점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이란 게 있으니까 그게 충족되면 재미나다고 생각한다. 근데 예전처럼 아 너무 재미있어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건 좀 아쉬운 점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암튼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안 나오게 글을 쓴다, 마이클 코넬리는. (뭥미..=.=;;)

 

이 책 <파기환송>에서는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라는 두 이복형제가 만난다. 거기에 할러의 첫번째 전처인 매기가 합류하고 그들의 딸들인 매들린과 헤일리가 처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그렇게 만나질 것 같지 않던, 일종의 '가족'이 모이게 된 이야기이다. 그 얘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어린 소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죄로 20년간 복역중인 제이슨 제섭이, 새로운 DNA 증거로 사건이 파기환송되어 다시금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이다. 할러는 특별검사로 임용이 되고 (세상에, 할러가 검사!) 전처인 매기가 차석검사로, 수사관으로 이복형인 해리가 들어가서 팀을 이룬다. (흠!)

 

책 대부분이 법정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0년 전의 증인을 찾고 증거를 다시 짜맞추는 과정에서, 변호사와의 신경전, 배심원의 호의를 얻기 위한 전략, 그리고 증인들에 대한 질문들로 내용은 구성된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지루하면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마이클 코넬리가 누구인가. 가족의 문제, 검사와 변호사와 형사의 역할에 따른 갈등, 새로운 사건들, 복병들을 군데군데 잘 배치하여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결말은 좀 찝찝하긴 하다. 아마 다음 책은 해리 보슈가 이 사건과 연결된 내용들을 찾아다니는 게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최근에 <시그널>이라는 드라마에 심취해서 그런지,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토요일 하루 단숨에 읽어내려가면서 마이클 코넬리는 정말 이런 책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라는 약간의 질투와 경외심을 내내 가졌다는 것도 함께.

 

*

 

<시그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좀처럼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로서도 tvN의 드라마들은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막장도 요즘 그런 막장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공중파 드라마들에 식상했었는데, 영화같은 화면과 잘 짜여진 시나리오, 그리고 적당한 사회적 메세지, 쪽대본 없는 환경에서 나오는 배우들의 호연...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tvN 드라마들은 봐도 괜찮겠다 싶은 거다. 그래도 <미생> 정도 가끔 보곤 했었는데 <시그널>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물이라서 그런지 한번 보기 시작하고는 눈을 뗄 수가 없을 만치 몰입하게 되었더랬다.

 

어제 드디어 최종회를 했고... 최종회를 누리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새벽 1시30분의 재방을 택해서 조용히 감상하며 누렸었다. 결말은 열린 결말...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라는 메세지. 그게 왜 이렇게 마음에 아프게 다가오는 지.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책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별로 없어서 부조리와 불의가 판을 치고 그런 것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뻔뻔하게 얼굴 쳐들고 더 잘 살아내는 상태이지만,...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고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의 보상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겠지만... 그게 과연 언제... 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나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통해서, 그렇게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도 말이다, 드라마를 통해서 뭔가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시그널>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날 만족시켜준 셈이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오금이 저리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직함과 한결같음이 결코 쓸모없지 않다는 걸 보여주어서 말이다. <시그널>이 끝나고 나니 참 허전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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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고, 읽고 좋았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좀 과장 보태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외면하고 있었다. 다작도 다작도. 도대체 이 작가는 주 1회 쓰는 거임? 이제까지 읽은 거 대부분 중고서점에 내놓으며 든 생각이었다. 많이 쓰는 게 흠은 아니지만, 그렇다보니 범작도 많고 서점에 쭈욱 늘어져 있는 그 수많은 책들을 보면 어째 품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냥 나의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런.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유명한 데는 그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그 중엔 분명 괜찮은 작품, 보관해두어도 괜찮은 이야기가 있다. 내 책장에도 밖에 내보내지 않은 그의 책이 몇 권은 꽂혀있다. 어디 보자...

 

 

 

 

 

 

 

 

 

 

 

이 정도? ... 그래도 몇 권 되네. 그밖에 가가형사 시리즈도 나쁘지 않았고 갈릴레오 시리즈도 괜찮았지만, 일단 대부분 바이바이. 소장까지는 안하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소장하게 될 것 같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교류 이런 내용이 많기는 하다. 내가 열광하며 보고 있는 <시그널>도 그렇고. 그건 어쩌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드라마와 영화는 항상 한발 앞서 가니까. 그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다 어느 공간에서인가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어쪔 그 사이의 연결끈을 찾으면 소통이라는 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가슴 떨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이름이 나야미(悩み, 고민)과 비슷하다 하여 아이들이 장난삼아 고민상담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거기에 재치있는 답을 해주던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는, 어느새 진지한 고민에도 진지한 답변을 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해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현재와 그 먼먼 미래가 날실과 씨실처럼 얼기설기 엮여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편지로 상담을 하고 답을 받던 사람들의 生이 어딘가에서 접점을 가져 영향을 주고, 결국 상담을 주고받음으로써 많은 인생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방법을 찾아나가더라는 이야기가, 참 훈훈하게 펼쳐져 있다. 잘되었다 못되었다를 떠나서...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더라.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158-159)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뭉클해져 왔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그래서 평범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정성어린 답장이 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뭔가를 남기는 모습들이 좋았다.

 

제일 마지막 편지 내용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읽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마지막에 가서야 봐야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일테니 여기서는 옮기지 않겠다. 책을 덮으면서,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나의 고민을 던지고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곳. 내게 답이 이미 내려져 확신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든, 정말 답을 몰랐어서 물어보는 행위이든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대부분은... 자기가 자기의 답을 안다...) 그렇게 내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면 맹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사람들이 즐비한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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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일본 작가가 하루키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가장 많이 번역되었을 겁니다. ^^

비연 2016-03-06 21:50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루키와 미미여사의 책은 끊임없이 나오는데, 하루키와 미미여사 책은 그렇게 질리지 않는 반면에... 묘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만 질리는 건 뭘까요..? ㅎㅎ 그래도 이 책은 좋습니다.

마태우스 2016-03-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한다기보다 그런 고민을 보낼 곳이 있다는 게 참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고민은 여전하더군요.

비연 2016-03-06 21:45   좋아요 0 | URL
네네.. 마태님. 저도 동감요. 그런 고민을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될 거라는 거요. 벽보고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리고 나에게 답이 온다는 거... 평생 살아도 하는 고민의 양태와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르한 파묵의 <고요한 집> 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있기도 하다. 지금 1권 중간 넘게 읽었는데... 오타 속출인 거 빼고는 - 이거 오래 전 산 거라 이젠 많이 고쳐졌으리라 믿어본다.. - 괜찮다. 오르한 파묵. 멋지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찰스 페로의 책이다.

예전에 읽으려고 몇 장 시도했다가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다 잊어버리고 (까묵었다 는 게 더 잘 맞는 표현인 거 같다..ㅜ) 다시 첫장부터 읽고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원서로 읽고 있다.

그러니까 매우 천천히 아주 조금씩 읽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상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다.

 

 

올해는 독서일기를 충실히 써보려고 했는데 계속 여의치 않고 있다. 좀더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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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게 기록하는 것도 좋습니다. ^^

비연 2016-03-01 22:45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 짧게라도 기록을 계속 해나가는 데 의의를 두는 걸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에세이 잘 쓴다. 그러니까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유려한 문장과 가슴을 파고드는 애잔함이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에세이 잘 썼어 라고 할 때의 그 느낌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으니 이게 정답이다 하진 못하겠고, 암튼 하루키씨는 그냥 그런 올림픽 관련 이야기도 참 재미나게 쓴다. 계속 읽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이 노오란 책을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음도 고백한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나가고. 나의 작은 백팩에 쑤셔박다가 결국 표지를 부욱... 찢어버려서 스카치테이프의 힘을 빌려 밀봉시켜 두었다. 아 그 부욱.. 소리 기분 정말...

 

어쨌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 매일 가지고 다녔다. 심지어 미용실에도 들고 가서 읽었다. 미용실 잡지를 안 좋아해서 가끔씩 책을 들고 가긴 하는데, 남들은 다 잡지 읽는데 나혼자 책들고 있는 게 좀 쭈뼛스러워서 그냥 머리에 안 들어오는 잡지들을 졸다말도 보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이 노오란 책을 떡 올려놓고 오고가며 계속 읽었다.

 

왜? 재밌으니까. 뭐 다른 이유 있겠수?

 

근데 알고보면 이 책이라는 게 그렇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다. 그래서 뭘 먹었다. 어딜 달렸다.. 이런 게 거의 매일 반복된다. 그게 얼마다 도 있고 ... 맥주는 뭘 먹었다, 저녁엔 몇 시에 잤다, 원고는 몇 장 썼다.. 이것도 매일이다. 이런 일상적이며 일기도 아닌 것 같은데 일기 비스므레한 형식의 에세이가 뭐가 좋다고 말이다...

 

시드니 올림픽은 기억에 없다. 무슨 올림픽은 기억에 있니? 라고 물으면... 흠.... 황영조가 마라톤 우승했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정도? (무슨 신석기 시대 얘길 하는 듯한 이 기분이란..ㅜ)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시드니 올림픽을 기억했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결과는 회심의 2루타. 순식간에 2점을 따간 뒤, 예의 노랑머리 4번타자, 김동주가 역시 깔끔한 안타를 쳐서(배트 회전이 빠르다) 승기를 굳혔다. 한국의 동메달이 정해졌다. (p282)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구선수, 아니 이젠 과거형인가.. 암튼 김동주가 안타를 쳐서 우리나라가 야구에서 동메달을 따게 했던 바로 그 대회였던 거다. 웅... 그게 시드니였니? 기억이 안나. 그냥 그런 날이 있어서 내가 무지하게 좋아했던 것만 기억이 날 뿐.

 

하루키의 그 무심하면서도 시크한 표현력은 압권이다. 문장 곳곳에서 그런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피식피식 웃게 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하루키가 좋은 작가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루하고 별로 쓰잘데기 없는 것 같은 올림픽이라는 허영덩어리 소용돌이에서도 그만의 관점에서 뭔가를 엮어낸다는 것일 게다.

 

우리는 모두-거의 모두라는 뜻이지만-자신의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 약점을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다. 그 약점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딘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슬쩍 감춰둘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아 그런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동은 약점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약점을 자신의 내부로 잘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약점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디딤돌로 새로이 구성해 자신을 좀더 높은 곳으로 끌고 가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는다. 소설가에게도, 운동선수에게도, 어쩌면 여러분에게도 원리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나는 당연히 승리를 사랑한다. 승리를 평가한다. 승리는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깊이 있는 것을 사랑하고 평가한다. 사람은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진다. 그러나 그뒤에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p394)

 

그래. 아마 올림픽이라는 것. 승자가 독식하는 그 대회에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승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해도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 기력이 쇠하든, 실력이 안되든, 어쨌든 누군가는 자신만의 약점을 안고 지탱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재화하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된다.

 

Thank you, Murakami 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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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드니 올림픽 야구 경기가 잊히지 않아요. 일본 사람들도 동메달 결정전을 잊지 못했을 겁니다. 축구 한일전만큼이나 야구 한일전도 엄청 화끈하죠. ^^

비연 2016-02-28 18:41   좋아요 0 | URL
아 그랬던가요. 전 그냥 `김동주`가 결정타 친 야구로만 기억했던 듯 ㅎㅎㅎ

컨디션 2016-02-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재미나게 써주시는 비연 님..^^

비연 2016-02-28 18:41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ㅎㅎㅎ 하루키의 책은 더 재미납니다~ 일독을 권해드려요^^
 

 

서경식 선생의 글은 빠짐없이 읽는다. 그의 생각이 좋고 글들이 좋다. 기저에 깔린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이 주는 묘한 서글픔까지도 좋아한다. 이 책도 사둔 지 꽤 되었건만, 뭐가 그리 분주한 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들고 다니기 가볍고 작아서 출퇴근 시간에 가지고 다니기로 낙점. 부제가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이다. 정말 동감한다. 나를 견디게 해주는 건 다른 무엇보다 책이라는 것에. 나도 그러니까.

 

 

 

 

 

 

 

 

 

 

 

 

 

 

 

 

머리말부터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명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에서 반유대주의(넓게는 인종차별주의)는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정열이다"라고 썼다. 그렇다. 이것은 실증서이나 논리적 정합성과는 무관한 하나의 위험한 정열인 것이다. 그런 정열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지성이나 이성을 전제로 말을 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p6

 

이게 어디 비단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주의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집단적인 최면, 맹목적적인 숭앙, 주변에 대한 철벽같은 몰이해와 자기방어 등이 다 해당하는 것일테고... 우리도 이 모든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정열'이라는 말이 새삼 크게 와닿는다.

 

10여 년 전 가토 슈이치는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강연할 때 이렇게 말했다. "더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건 기술을 배우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디로 갈지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하다." - p7

 

마음에 얼마나 와닿는 말인가. 그러나 이 얘기를 강단에서 했을 때 어떤 학생이 말했다 한다. 행선지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라고. 인간의 단편화가 무섭게 진행된 작은 사례이다. 내 의지가 아니라 컴퓨터의 의지로 움직여지는 세상. 그래서 사람들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몽유병 환자마냥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이동을 한다. 사실 끔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당연한 현실이라니.

 

그리고 서경식 선생이 추천하는 첫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이드 음악평론>이다. 이 책을 논하기 앞서 선생은 '서재'라 는 어감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 등에서 보는 영국풍 서재에 대해 강한 동경을 품었다. 높다란 천장까지 짜놓은 유리문 달린 책장에 빽빽이 들어찬 가죽 표지의 책들. 널찍하고 중후한 책상. 앉으면 포근할 것 같은 의자. 낮게 흐르는 바로크 음악... 그러나 현실의 내가 늘 책을 읽는 곳은 잠자리였다. 머리맡에 어지러이 책을 쌓아놓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읽어 재끼는 것이다. 결국 그런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 지금은 서재가 있는데도 괜찮다 싶은 책을 잡으면 책상이 아니라 잠자리로 향한다. 게다가 한심하게도 젊었을 때와 달리 금방 수마에 사로잡혀서 두세 쪽도 읽지 못한 채 잠들고 만다. 즉 나는 더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p20

 

이런. 내 얘기인 줄 알았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으신지. 나도 늘 서재를 꿈꾸지만 현실은 침대에 폭 들어가 누워 책을 읽는 게 일상사다. 으하하. 서경식 선생과 나랑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연말을 보내련다. 아주. .. 좋은 선택이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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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2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에 전기장판 켜놓고 배 깔고 엎드려 책 읽다가 졸음이 오면 바로 잡니다. 최고의 개인 시간입니다. 단점은 불을 끄지 않고 잠을 자면 엄마의 폭풍 잔소리를 각오해야 합니다. ^^

비연 2015-12-26 20:51   좋아요 0 | URL
아... 넘 행복한 정경이에요 . 저도 틈만 나면 같은 자세로 꾸벅꾸벅.. 최고죠. 우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