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내려가는 길. <동급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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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결론 언급은 없지만,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스포일성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있었다 뿐이지, 사실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는 없는 소설이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파리로 가던 비행기가 1980년 겨울에 산속에 추락하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전원 사망한 가운데, 기적적으로 신생아에 가까운 여자아이가 한 명 살아서 발견된다. 멀쩡하게. 그 한 아이를 두고 두 집안이 서로 자기 집 손녀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한 집은 유서깊고 돈도 많은 명문가, 또 한 집은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집안. 돈으로 해결하려다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결국 그 여자아이는 명문가에 갔으면 리즈로즈가 되었을 것이나 평범한 가정에 들어가면서 에밀리가 된다. 그러고 나서 18년이 흘렀고. 여전히 여자아이의 정체성은 미심쩍은 상태로 남아있고, 이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라고 비밀을 파헤쳐보라고 다른 쪽 집에서 탐정을 돈으로 사게 된다.

 

그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동안 두 집안은 비극 속에 지내야 했다. 부잣집, 그러니까 카르빌 집안은 아이의 할아버지 격이 사람이 두 번이나 쓰러져서 결국 휠체어 신세가 되었고, 아이의 언니였을 수도 있는 말비나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인해 괴상한 아이, 외롭고 삐뚤어지고 성질 더러운, 통제불능의 괴물로 자랐다. 에밀리가 들어간 집인 비트랄 집안도 할아버지는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고, 오빠인 마르크와 에밀리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탐정인 그랑둑은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아이가 만으로 18살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을 일기로 남겨둔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고 하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그 무엇을...

 

**

 

책을 읽으며 문득,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생인손>이라는, 원래는 한무숙이 지은 동명 소설인 <생인손>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드라마인데도 묘하게 생생하다.

 

 

조선 말기, 어느 대가집에 아가씨와 몸종 처녀가 있었다. 아가씨는 착하고 주인어른들도 좋으시고... 그냥 평온한 일상 속에서 몸종처녀가 그집 하인이랑 좋아져서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즈음에 아가씨도 혼인을 했고. (이 아가씨가 서갑숙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동학혁명(?)인가가 나서 하인은 거기 갔다가 죽게 되고 몸종 처녀와 아가씨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는다. 몸종 처녀는 유모처럼 몸이 약한 아가씨 대신 두 딸아이를 다 돌보게 된다.

 

어느날, 주인어른과 아가씨 부부가 다 외출을 했는데, 간난이(몸종 처녀 이름)는 자신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것을 발견한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생인손(손가락에 나는 종기)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가여워서.. 어미는 마음이 찢어지고 순간 이걸 치료하는 동안만 아이를 바꿔치기 해두자, 그래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라는 마음에 아가씨의 딸과 자신의 딸을 바꿔치기해서 눕혀 둔다. 주인어른과 아가씨 부부는 전혀 모르고는 (직접 자주 보지 않았으니 몰랐을 수 있지.. 갓난아이이니) 아기가 생인손을 앓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잘 치료한다.

 

간난이는, 죄책감을 안고 이제는 도로 돌려놓아야지 놓아야지 하다가 그만 시기를 놓치고. 자신의 친딸은 그냥 곱게 커서 대갓집에 시집을 가고 아가씨의 딸은 씩씩하고 당차게 커서 머리를 싹둑 자르고 들어와서는 선교사를 따라 서양으로 나가버린다. 격동시기의 대한민국... 아가씨의 딸은, 대학교수가 되어 당당히 들어왔고 어머니를 찾아 모시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집에 일하러 온 아줌마를 보고는 간난이는 화들짝 놀란다. 자신의 친딸이 몰락하여 찬모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전에 자기 집에서 하녀살던 집이란 걸 알고는, 친딸은 망나니 아들 손을 잡아 끌고 나가며 속닥거린다. "예전에 우리집 하인이었던 게 대학교수라고..." 드라마상으로는... 이젠 80 노인이 된 간난이가 신부에게 고해성사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갓집 마나님이든, 종살이 하는 간난이이든 어머니는 다 같은 어머니인데 신분이 낮으니 유모로서의 소임을 더 잘 해야 했고, 그래서 정작 자기 자식은 제대로 모유를 먹이지도 못하고 종종거리는 어미의 심정이 어땠을까. 얼마나 사무쳤으면 저런 일을 했을까. 그리고 평생.. 자기한테 참 잘해 주었던 주인집에 못할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가슴 졸이며 살았을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마음 아팠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엉켜가던 그들의 운명이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 왔었고. 어머니라면, 자식을 위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걸 지금은 더 절실히 느낀다. 내가 어머니가 되어 보진 못했지만, 평생 딸자식을 위해서라면 늘 희생을 마다 안하시는 우리 엄마를 지켜봐와서 그런 것 같다.

 

 

**

 

이 책, <그림자 소녀>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생인손>처럼 우리나라 역사와 개인의 인생이 잘 버무려진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무칠 내용 정도의 깊이는 아니지만 (직접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이런 스토리를 엮어낸 작가에 대해서 한참 찾아본 기억이 있다. 소설가 한말숙의 언니이기도 하다) 비밀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그렇게 진실에 다가갈수록 비슷하다 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사실 박진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이긴 했지만, 템포가 조금 느려서 찰지게 와닿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마구 죽여대는 이벤트 없이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는 있는 소설가인 것 같다, 미셸 뷔시.

 

 

뱀꼬리) 아... <생인손>을 책으로도 읽어볼까 했더니 이게 그저 단편소설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이젠 절판이 된 책임을 알았다. 아쉽. 다른 소설들도 좋아 보이는데 다시 나왔으면 싶다. 근데 출판사가 평민사...? 아직 남아 있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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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퇴근하여 스타벅스에서 책 읽기 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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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은, 여러 가지 갈래로 확연히 나누어지곤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사다 지로 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다정함이랄까 푸근함이랄까 애틋함이랄까를 느끼게 하는 그런 소설. 나는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를 이전엔 알지 못했었지만, 대략적인 소개글을 보고 아마도 아사다 지로의 작품과 비슷하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집어들 수 있었다. (빙고~)

 

100년이 다 되어가는 쓰가루 지역의 메밀국수집 오모리 식당. 1대의 오모리 겐지로부터, 3대 오모리 데쓰오를 거쳐 이제 4대 오모리 요이치까지 내려오는 '백년식당'이다. 요이치는 아직 식당을 물려받아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소설은 각자의 마음의 소리를 한 챕터씩 풀어나간다. 3대 오모리 데쓰오로부터 시작하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대 오모리 겐지로 갔다가 이것저것 다 실패하고 지금은 도쿄에서 삐에로 일을 하고 있는 4대 오모이 요이치에게 갔다가, 어떨 땐 요이치의 여자친구인 쓰쓰이 나나미에게로 갔다가... 그렇게 각자의 생각과 추억이 교차하면서 이해하고 오해하고 하는 과정들이 참 담담하게 예쁘게 그려진다.

 

 

오모리 겐지에겐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가락이 없었다. 그 때문에 어릴 적엔 친구에게 자주 놀림을 바닸고,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중략) ... 어린 겐지는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분하고 슬퍼서, 손목으로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는 비탄에 잠긴 겐지를 늘 가만히 안으면서 생긋 웃어주었다. 등을 톡톡 편안할 정도로만 두드리며 이런 말도 해주었다.

"이 녀석. 남자가 울면 못써. 발가락쯤 없는 거, 그게 뭐 어때서 그래? 오히려 발가락 외엔 다 가졌으니 넌 행복한 아이란다. 한번 생각해볼까? 발가락이 없는 만큼 넌 천천히, 천천히 걷잖아. 천천히 걸으니 다른 사람이 못 보고 지나치는 걸 발견할 수 있어. 그렇지? 음. 우리 겐지, 오늘은 뭘 가져왔을까?"

어머니가 그렇게 물으면 어린 겐지는 울면서 길가에 핀 꽃 이름을 말하기도 하고, 진기한 벌레 이름을 말하기도 했다. 논두렁 길에서 캔 미나리랑 뱀밥을 어머니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반들반들 빛나는 돌멩이를 내밀기도 했다.

"어머나, 정말 멋진 걸 발견했네. 겐지는 예전부터 행운이 따르는 아이였어."

(p22-23)

 

 

어머니란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많아졌나.. 하면서도 두번 세번 읽으며 아 참 너무 멋진 글이다. 어쩜 이럴까. 이 아이가 '백년식당'의 1대가 된 건 어머니의 이런 푸근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면서 어머니의 이런 말씀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힘이 된다는 거. 나이가 드니 알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무 샐러드를 먹으며 10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사투리가 심한 아버지가 도쿄에 왔을 때, 나는 성질도 고약하게 짜증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창피하니까 아버지는 입 다물고 계세요."

그때 나를 조금 쓸쓸한 눈으로 바라봤을 뿐,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말수를 줄였던 아버지. 약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죄책감에 울고 싶어졌다. 그 죄책감의 흔적은 지금도 내 안에 확연히 남아 있다.

(p71)

 

 

다시 눈물. 부모한테 자식은 얼마나 모진 지. 사실 마음으론 안 그런데 괜히 속상해서 툭 내뱉고는 내내 마음 아팠던 경험이 내게도... 많다. 가끔씩 사무치게 미안할 때가 있다. 이젠 연세가 드셔서 예전처럼 큰소리도 내지 않으시고 그냥 허허 웃거나 쓸쓸하게 돌아서거나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나는 왜 이리 못되었을까. 자책하곤 한다.

 

 

나나미를 알게 된 후 도쿄에 부는 바람의 질감이 조금 바뀌었다. 왠지 동그스름해진 느낌이다. 우리는 도쿄에서 이제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에 마음을 덮는 피부까지 두 배로 두터워진듯 했다. 요즘은 사소한 일로는 더 이상 마음에서 피가 흐르지 않았고, 가끔 푹 찔려서 상처가 나도 함께 슬퍼하거나 웃어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 상처가 달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p127)

 

 

사람이 사람과 함께 할 때 느끼는 최고의 느낌은, 사랑이나 애정이나 하는 어쩌구저쩌구의 강렬한 느낌보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함께 해서 다행이다. 내 얘길 들어줄 사람이 있어 하나 무섭지 않다. 슬퍼도 털어내버릴 존재가 내 곁에 있다. 이런 안도감. 그것은 주변의 공기를 바꾸게 하고 나 자신의 마음도 바꾸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립다, 그 느낌.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인데."

"네..."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감사?"

"그렇지. 어떤 일이든 마지막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만 한다면 모두가 좋은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 고 초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단다."

(p279)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하다고 한 게 언젯적 일이었나 돌아보게 한다. 예전엔 말끝마다 감사를 붙였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귀찮아서 그냥 뭐 그래봐야 하는 마음에서 대충 넘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감사라는 말로 마음으로 마무리하면 모두 좋은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 내게도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에 몇 번 되새김질해본다.

 

이 책에 나온 인물들 중엔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선량하고 성실하고 올곧고 마음깊고 때로 실수해도 포용하고 말없이 믿어주는 사람들 뿐이다. 이런 세상은 책에나 있는 거다.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라고 매몰차게 생각하다가도 이런 세상 하나 아는 것도 좋지 않은가 싶다. 그게 판타지면 어떤가. 모든 일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무미건조하게만 바라본다고 내게 좋을 일이 뭐 있겠는가. 마음에 따뜻한 물결이 일고 그래서 오늘 하루도 좀더 씩씩하게 살 수 있다면 그만이지.

 

마지막 장에 가면 이 백년의 시간이 그렇게 그냥저냥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더해서, 그렇게 이어진 백년이란 걸 알게 된 순간, 가슴에 따뜻함이 다시한번 번진다. 좋은 책이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책은 여러 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게 몇 편 있고. 책도 책이지만 영화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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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신간을 뒤적이다 보니 (으하하. 출근하자마자 신간을 뒤지는 직장인 비연. 회사 미안...) 최근에 개정되어 나온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나는 2003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었다.

 

 

 

 

제목에 맥도날드 가 있다보니 이게 햄버거 가게 얘기? 뭐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대단히 좋은 사회학 책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로,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포장된 대량화와 동일성의 위험성을 '맥도날드화'로 정의하며 전 세계에 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식품 분야에까지 문제의식을 던졌던 작품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의 최신 개정판이다.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화되었던 정세의 흐름을 반영하여 책의 곳곳을 수정하고 보강하여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작품이 된 타이틀의 전면 개정 번역판이다.

최신 개정 8판에서는 노동자들이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라는 관점에서 맥도날드화에 어떻게 지배되는지 집중 탐구한다. ‘합리성의 불합리성’을 고찰하는 동시에 ‘맥잡McJob’에서 드러나는 불합리성과 노동조합, 최저임금, 소비와 글로벌라이제이션 문제에 대한 통찰도 놓치지 않는다. 웹 2.0과 이베이화 등 새로운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맥도날드화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추가된 내용이다. 이번 최신 개정 8판 번역본은 14년 만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는 만큼, 수정 증보된 내용에 대한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된 한글 문법과 언어문화를 반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문장을 손보고 다듬어 완성시켰다. - 알라딘 책 소개 -

 

맥도날드라는 회사가 만들어진 것이 그냥 이게 독특한 프로세스를 가진 사기업의 출현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효율성을 목표로 대량화와 프로세스의 동일화가 시작된 지점이다라고 보는 것이고 이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심지어 세게화로까지 이어진다는 관점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추천.

 

사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난 좀 다른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 맥도날드가 처음 들어왔을 때의 생각. 1호 맥도날드점은 압구정동 갤러리아 앞에 생겼었다. 그 때까지는 웬디스나 롯데리아나 등등의 패스트푸드점만 있다가 2층 건물에 거대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이 들어온다고 해서 생길 때부터 화제였다. 빨간색 아치 모양의 'M'자가 있는 그 가게. 생기자마자 사람들이 버글버글. 지금 쉑쉑버거 만큼은 아니라도 정말 화제였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거기서 만나자고 하는 게 일상적인 일이었고, 그 햄버거 맛이 다른 데에 비해 대단히 괜찮았느냐 라는 건 상관없이 그냥 맥도날드 햄버거가 최고였다. 그 때 만들어진 입맛 때문인지, 난 아직도 햄버거는 맥도날드만 먹는다.

 

신기했던 건, 그 제조과정이 다 보인다는 거였다. 주문을 하면 뒤에서 햄버거가 포장이 되어서 또르르 굴러나오더라는 거지. 오호. 그 뒤쪽에선 단계별로 여러 사람이 순서대로 서서 한명은 야채를 넣고 한명은 고기를 놓고 한명은 포장을 하고... 이것이 제조공정이지 뭔가. 요즘 영화 <Founder>가 나왔는데, 이게 맥도날드가 프랜차이즈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것. 보면 예전 추억과 더불어 재미있을 것 같아 챙겨두고 있다.

 

이러한 맥도날드화에 의한 노동의 통제 등이 이제는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맥도날드화라는 사회현상 자체가 없어질 지도. 요즘 읽고 있는 책 <로봇의 부상>을 보면 아 이제 노동이라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사람을 대체하는 기계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사람은 무얼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로봇, 인공지능, 클라우드.. 이런 대체재들이 지금은 단순반복적인 일을 일부 대체하고 있고 그것도 기능이 완벽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알파고의 예처럼 이제 고도의 작업들도 가능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긴장해야 한다 라고 얘기하고 있다. 잘 몰랐었는데, 심지어 음악과 미술도 자유롭게 하는 로봇들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온 예술의 영역에도 로봇이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맥도날드의 시스템이 가내수공업에 불가했던 제조를 프로세스에 기반한 자동화 시스템을 가진, 혁신적인 제조로 변모시킨 주역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이 혁신에 의해 인간의 기계화, 통제, 단순반복작업자로의 전락이 일어났고 이로 인한 사회적인 현상들이 발생했다고 본다면, 이제 로봇이라는 존재(!)로 인해 그것마저도 없어지는 결과가 생길 거라는 거다.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비용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로봇은 불만이 없고 시키는 대로 하고 지치지 않으니 기업주 입장에서는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에 비해 다루기 훨씬 쉬운 대상일 것이니 이를 대체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거다. 따라서, 인간의 노동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이 두 책을 비교하면서 보면 또 재미있을 것 같아서, <로봇의 부상>을 읽은 후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다시한번 읽어볼까 한다. (흠...시간이 될라나 ㅜㅜ)...아침부터... 이런 긴 글을.. 일하자 비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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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4-2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서 인간 처지에서 일자리 걱정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뭐 자동차 쪽이나 지하철 쪽 귀족노조들이 최강 건재한 한국은 적어도 2045년 이전까지는 (한국이 그때까지 망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 전쟁이 나지 않는 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 조립, 단순 반복, 단순 안내, 빅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 · 예측, 서비스 업무 등등에서는 좀 타격이 있겠지요.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의 일자리 접수는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도 거기에 대해 충분히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그 충격이나 여파를 잘 흡수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인간 일자리의 전면적 접수 혹은 점령 혹은 탈취는 수많은 미래학자, 석학,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제 아무리 현대 과학기술이 초고속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근미래에는 일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인간형 로봇의 완성도가 높아져 가면 갈수록 흥미진진한 (우리가 많이는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 생겨날 것이고, 인간의 기회와 고유 영역이 새로 발굴되고 늘어나기까지(그게 대규모일 것 같지는 않지만)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지난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직간접으로 수없이 증명된다고 봅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은 종전의 산업혁명들과 차원을 달리하죠. 해서 그 혁명의 영향력과 전복력 또한 차원이 다르게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2045년 이전까지 세계를 뒤집어엎어버릴 만큼 급격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봅니다. 요컨대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일자리 위협에 관한 한 (최소한 한국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인공지능 번역기가 요즘 화제인데요. 네이버 파파고든 구글 번역기든 인간 번역가들을 결코 대체하지는 못하리라 봅니다. 물론 앞으로 많이는 발전하겠지요. 하지만 현재 각종 로봇들이 인간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치듯이 그저 약간의 보조만 잘해도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고 봅니다.

비연 2017-04-24 13:22   좋아요 0 | URL
네.. 물론 근간에 일어나긴 힘든 일일 수도 있고 걱정한 만큼의 여파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미리부터 걱정한다기보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게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예측하고 대비하고 (그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하는 행동은 차츰 필요한 것 같구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되구요. <로봇의 부상>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전망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