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연의 단상들.

 

 

1.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확 퍼졌다. 이제 잠잠해지려나보다 라고 잠시 안심한 사이 어느 구석에서는 그게 퍼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젠 접촉자나 여행자만 관리해서는 안되는 단계에 접어든 듯 싶고... 정말 서로 조심하고 바로바로 병원가서 검사받고.. 이렇게 해야만 잠잠해지지 않을까. 이런 일이 있으면 가장 슬픈 건, 병을 빌미삼은 정쟁과, 미움과, 차별이다. 낙인도 포함. 병에 걸린 사람이 죄인이 아닌데, 몰라서 그랬다면 본인도 굉장히 난처할텐데, 신상을 털고 혐오의 눈길을 보내니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무슨 벌레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물론 검사를 회피하고 보균자/확진자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사람 만나고 다닌 사람들은, 혼나야 마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들도 피해자다. 이걸 지역으로 묶거나 정치의 도구로 삼거나 하는 자들이 가해자다. 병은 잠잠해질 수 있지만 이런 마음의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난 낙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책이 꼭 생각난다. <은유로서의 질병>. 이거 읽고 수전 손택 팬이 되었더랬다. 스스로가 암 환자가 되었을 때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 이렇게 사회적이고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책이었다.

 

어떤 특정 질병을 질병이 아니라 처치하기 불가능한 약탈자나 악으로 간주하는 한, 암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마자 사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p18)

 

권위주의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는 공포, 가령 외계인들의 지구 점령이 임박했다는 식의 절박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 실제의 질병들이야말로 이런 일을 벌이는 데 유용한 재료이다. 흔히, 전염성 질병은 외국인들과 이민자들의 출입을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또한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허위 선전은 이민자들을 늘 질병(19세기 후반의 예를 들자면, 콜레라나 황열병 또는 장티푸스, 결핵 같은 질병) 보균자로 묘사하곤 한다. (p199)

 

 

...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책 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시간 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2. <킹콩>의 원작자가 썼다고 해서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봤는데, .... 진정 심심풀이였노라는 슬픈 이야기.

 

 

나쁘다, 못 썼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너무 평범한 트릭의 스토리. 다 예상되는...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면 딱 맞을 만한 주인공들의 면면과 내용이 아닌가 ...

 

"사람의 살은 베어도 아문다오." 카라가 말했다. "채찍으로 맞아도 그 기억은 지나가고 말이오. 하지만 누군가를 겁먹게 만든다면! 불길함과 불안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상대나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면! 아마 후자가 더 괜챦은 방법일 테지만, 아무튼 그것이야말로 상대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길이라오. 고문대보다도 훨씬 끔찍하고, 화형보다도 훨씬 가혹한 게 바로 두려움이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우스운 일로 여기는 것들조차 아주 끔찍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오." (p119)

 

이 대목에서는 잠시 멈칫. 지금의 상황이랑도 맞는 것 같고... 사람 살면서 맞부딕치는 일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되고. 마음에 뭔가를 남기는 건,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일이라는 거. 그래서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거.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거.

 

 

 

3. 오늘도 어김없이 고객이 갑질을 했다. 너무 열받아서 육두문자로 입에서 욕이 쏟아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갑질을 해도 참 쪼잔하고 구질하고 졸렬하게 한다. 화를 못 이겨 산책을 나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속에서 온갖 상념이 다 지나간다. 아. 이렇게까지 회사생활을 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돈이 아쉽나... 아쉽구나... 젠둥. 그러고는 일어나서 일단 들어와서 가방 챙겨 퇴근해버렸다. 오늘 펄펄 뛰었지만, 내일은 가서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을 나의 비루한 일상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은 날이었다. 그냥 확 던지고 나와야 하는데, 사표를. 모든 직장인들은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닌다고 하지만... 그것도 가끔 위안이 안 될 때가 있다는 게 슬프다. 사표 던지면 누구 손해냐. 고객은 꿈쩍도 안 하겠지. 내가 힘들지 뭐... 이런 생각이 자괴감과 함께 몰아닥쳤던 하루였다.

 

 

 

4. 그러나, 요즘 살이 쪄서 술과 음식을, 특히 저녁의 술과 음식을 멀리 하고 있는 나는, 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쿠스미 티 홀짝 거리며 알라딘에 들어와 있다. 아. 빨래했다. 다 빨아버렸다. 탈탈 털어서 널면서 나의 스트레스도 탈탈 털어져나가길 기대했더랬지... 빨래만 털렸다. 내 스트레스는 피부처럼 남아 있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다가 내일은 금요일. 그래 하루는 날 놓아주자, 라고 나혼자 결정해버렸다. 내일은 집에서 와인과 돈까스 안주라도 먹기로. 기분이 좀 나아지려는 거 보면.. 인간이 갈수록 단순해지는 것 같다. 잠시 슬픔. 아 몰라.

 

 

 

5. <보이지 않는 가슴>은 출퇴근 시간에 짬을 내어 착실히 읽고 있다. 이제 1/3 조금 넘어가고 있다. 사실 경제학자가 '돌봄 경제학'이라는 걸 들고 나올 때부터가 신기방기한 일이다. 주류 경제학을 보면 생산과 효율 이외엔 생각하지 않는데, 역시나 같은 경제학을 전공해도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냐에 따라 이런 책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행위와는 달리 여성의 행위는 비용과 편익의 합리적 계산에서 비롯되거나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하는 일은 본능적이고 도덕적인 일, 자연적이고 신이 부여하는 소명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성이 책임을 받아들이기 거부했을 때 그것은 본성에 배치되고 사악하다고 치부되었다. (p37)

 

 

그렇다. 돌봄 행위의 많은 부분들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직업도 돌봄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좋다고 하자. 하지만, 이 행위에 대한 정당한 평가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걸 뼈저리게 직시하지 않으면 이 돌봄 행위는 영원히 이렇게 본능에 의존하고 마치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양 취급 받으며 행해져야 할 것이다. 심지어, 여성들이 이걸 거부한다거나 보다 인정받기 원할 때,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다루어지는 것.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 이걸 알아야 한다. 누가 자기희생을 여성의 본능이라고 말한단 말이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타주의'일 뿐이다.

 

최소한의 이타주의가 없이는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다.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책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강제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이나 자비로운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보상과 처벌이 아마 필요할 것이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p53)

 

따라서 반드시 필요한 이 이타주의라는 것. 이것의 본질을 보고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보상이라는 것은 돈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업무환경을 제대로 갖춰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 사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돌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훈련, 임금, 노동 조건을 개선하면 이직률은 낮아지고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의 개인적 유대 관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자질을 향상하고 '내부 고발자'가 고용주의 보복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면 노동자가 스스로 돌봄의 질을 선도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떠맡을 것이다. (p104)

 

흥미로운 책이다. 이거 읽다가 지하철 못 내리고 몇 정거장 지나가는 바람에 출근버스 놓칠 뻔 했다. (오 아멘..) 끝까지 읽고 한번 더 페이퍼 혹은 리뷰 쓰는 걸로. 아 배고파. (급반전) .. 이 번잡스러운 세상과 나의 상황 속에서도 유일한 즐거움은 독서라는 것을 얘기하며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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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2-21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병과 아픔이라는 것이 의료과학적인 면으로만 사회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비연님....너무 좋아요 ^^ 수잔 손택이 참 엄청난 일을 하신 분이세요.... 100편의 논문보다 더 값진 책..ㅎㅎ 혹시 관심 있으실까해서 링크 남깁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
http://scienceon.hani.co.kr/533958

비연 2020-02-21 09:48   좋아요 0 | URL
han22598님~ 수전 손택의 이 책은 정말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신 링크 글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하구요. 요즘 같은 때 이런 글들이 더 많이 사람들에게 읽혀야 할텐데.
병보다 혐오와 오해와 배척이 더 무서워지는 요즘입니다.

다락방 2020-02-21 0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오오, [보이지 않는 가슴] 읽으면서 버스 놓칠 뻔 했다니... 버스를 놓치지 않아 다행인 한편 책이 좋은것 같아 좋습니다!

2. 표지만 보고 [트위스티드 캔들]은 자기계발서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용문 읽고 어? 싶어 책 눌러 정보 보니 미스터리 소설이네요. 저는 킹콩 작가가 쓴 자기계발서인줄..
아니 그나저나 2018년에 나온 책이던데 남주가..하오체를 씁니까?!

3. 아침에 맥도날드에 들러 커피를 샀는데요, 일하시는 분중에 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분이 눈에 띄더라고요. 저희 엄마 또래 같았어요. 요즘은 그런 분들 보면서 ‘나도 회사 때려치면 이 일을 할 수도 있겠어‘ 라는 가능성을 봅니다. 저는 전문직이 아니고 또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그만두면 어떻게든 같은 업종 취직은 어려울테고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중에 여러 직업이 있다는 걸 계속 새기고 있어요. 오늘은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였고, 지금은 인천공항 청소를 가장 염두에 두고 있어요. 공항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이건 영어 때문에 계속 망설이던 부분이었거든요. 저는 지금 회사 분위기상 또 제가 지쳐서... 더 오래 하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두고 싶다는 얘깁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2-21 08:18   좋아요 1 | URL
어...저도 어제 딱 (아직 복직도 안 한 주제 예비출근 이틀 풀근무하고서는) 지금 일 때려치면 뭐할까 궁리했어요. 학원강사, 과외선생, 문제집 만드는 출판사, 학습지 교사...아니면 정말 패스트푸드점 등등이나 청소용역 같은 비정규직 밖에 없더군요...

다락방 2020-02-21 08:47   좋아요 1 | URL
나이들수록 앞으로 뭐해먹고 사나를 우리는 똑같이 고민하게 되는군요. 인생은 그런건가 봅니다..

비연 2020-02-21 09:5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저도 어제 그만두자 그만두고 그냥 쉬자.. 하다가 일단 생각 접고 올라오면서 아 뭘 하면 그냥 안정적으로 스트레스 안 받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그 생각을 ‘깊게 아주 깊게‘ 했더랍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어요...

<트위스티드 캔들>은 사실, 번역도 좀 그렇긴 했어요 ㅋㅋㅋ 하오체라니. 읽으면서 어색하기 그지없는. 옛날 얘기라고 그렇게 쓴 건지. 그래도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을.

<보이지 않는 가슴>은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는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그만..ㅎㅎ 이 저자가 어떻게 결론을 맺을 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지 궁금합니다.

비연 2020-02-21 09:52   좋아요 0 | URL
반유행열반인님.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나이들수록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인생이 참.. 사는 내내 힘든 것 같아요.

잠자냥 2020-02-2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은유로서의 질병이,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의 외피를 쓰고 혐오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비연 2020-02-21 09:53   좋아요 1 | URL
그게 무섭습니다. 혐오의 일상화.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이러면 사람 사는 게 너무 무서워지는 게 아닌가. 이런 때일수록 사실을 직시하고 누군가를 탓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고민하고 합리적으로 대안을 내놓고... 무엇보다 서로 협조해야 하는 시기인데 말입니다. 이런 걸 이용한다거나 극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미워집니다..ㅜ

마태우스 2020-02-21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쓰고 싶네요. ˝그 고객이란 작자, 전번 가르쳐주세요. 제가 보복해드릴게요!˝ 참 신기한 게 좋은 고객 100명을 만나는 와중에 한 명의 진상이 있다면, 그 진상 한 명이 100명의 선한 고객을 다 압도해 버린다는 점이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토닥토닥. 그런 와중에도 비연님은 제 서재에 댓글도 달아주시고, 흑. 늘 받기만 하는 저, 부끄러워서 쪼르르 와서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비연 2020-02-23 19:1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감사해요 흑흑흑... 진상 고객은 정말 싫어요...ㅜㅜ
그나저나 마태우스님이 글을 남기면, 진심 반가와서 글을 안 남길 수가 없답니다^^

단발머리 2020-02-22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직장생활을 아주 짧게 해서요. 지긋지긋한 기억 사이사이로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서요.
비연님 글 읽고 있는데, 그 때 힘들었던 제 심정이나 감정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지점이 느껴져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모든 직장인분들!

그나저나 <보이지 않는 가슴> 어서 읽어야할 텐데요. 헤헤.

비연 2020-02-23 19:21   좋아요 0 | URL
시간은, 나쁜 것들은 거르고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남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을 지낼 수 있는 건지도.
전 직장을 여러번 옮겼었는데, 그 때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남더라구요 .
지난 주만 해도 진상 고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데 주말 지내고 나니 좀 견딜 만 해지고.. 사는 게 뭔지.

<보이지 않는 가슴> 열심히 읽고 있는데 2월 안에 다 끝낼 수 있겠죠? 헥헥

단발머리 2020-02-23 19:23   좋아요 1 | URL
이 댓글 읽고 <보이지 않는 가슴> 꺼내러 간 사람, 손!! 🖐

비연 2020-02-23 19: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자자와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은, 주변에는 후한 인심과 깊은 신심으로 명망이 높은 인사이지만, 집안에서는 폭군이다. 폭력적이고 실제 폭력도 휘두르며, 자식과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광신을 강요하고 일과표를 통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었다. 십수 년간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들은 두렵고 공포에 떨었지만 이렇게 사는 것만이 인생이라는 생각 속에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아버지의 칭찬에 마음 푸근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1등은 누가 했니?" 마침내 아버지가 물었다.

"친웨 지데제요."

"지데제? 지난 학기에 2등 했던 애 말이냐?"

(중략)

"거울을 봐."

나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거울을 보라니까."

거울을 받아서 들여다봤다.

"네 머리가 몇 개냐, 그보?" 아버지가 처음으로 이보어를 섞어서 물었다.

"하나요."

"저 애도 머리가 하나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에요, 아버지." (p55, 63)

 

아버지가 정한 일과표에 따라 살아가는 아이들. 대화는 없고 복종만 있으며 웃음은 없고 기도만 있는 집안. TV를 볼 수도 없고 이교도라 칭하는 나이리지아 전통 음악이나 풍습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 이걸 어길 경우 날아드는 폭력. 아버지 유진은 성당에 다니지 않는 자신의 친아버지 파파은누쿠도 이교도라 하며 모른 체 하고 그 옆에 아이들이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 집안에서 신이었다. 천주교의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 자기가 신이었다.

 

"아니퀜와가 내 집에서 뭘 하는 거야? 우상 숭배자가 내 집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당장 나가!"

"내가 자네 부친과 동년배인 건 아나, 그보?" 노인이 물었다. 그가 허공에서 흔드는 손가락은 아버지의 얼굴을 가리킬 의도였지만 가슴께에서만 맴돌다 그쳤다. "자네 아버지가 엄마 젖을 먹을 때 나도 엉마 젖을 먹었다는 걸 아는가?"

"내 집에서 나가!" 아버지가 대문을 가리켰다. (p92~93)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에는 다 부정하고, 특히 나이지리아 전통신앙을 믿는 자들을 악마라 여기는 아버지에게는 노인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그냥 부숴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 "악마가 내 집에 텐트를 쳤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아봤다. "당신은 가만 앉아서 애가 공복재 어기는 걸 보고만 있었어, 마카 은니디?"

아버지는 천천히 벨트 버클을 풀었다. 몇 겹의 갈색 가죽으로 만든 무거운 벨트에 차분한 색 가죽을 씌운 버클이 달린 것이었다. 그것은 먼저 오빠에게, 어깨를 가로질러 내려앉았다. 그다음에는 두 손을 들어 막는 어머니의 위팔, 성달 갈 때 입는 블라우스의 스팽글 달린 부푼 소매로 싸인 위팔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내가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 내 등에 내려앉았다... (중략)

아버지가 오빠와 나를 홱 끌어안았다. "많이 아팠니? 살갗이 터졌니?" 아버지가 우리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나는 등이 욱신거렸지만 아니라고,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죄악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며 고개를 흔드는 아버지는 마치 뭔가에, 떨쳐 낼 수 없는 뭔가에 짓눌린 듯한 모습이었다. (p131, 132)

 

악마는 너다... 폭력적인 인간의 전형이다. 자기가 정한 규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때리고 심지어 벨트를 사정없이 휘두르고 나서 마치 나는 너희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양,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양, 아프냐고 물어보고 울고 살피는 짓. 이런 것에 넘어가 많은 폭력 아버지에게서 엄마와 아이들은 몸과 맘이 썩어간다. 폭력은 그 무엇도 정당화할 수 없다. 사랑해서 떄린다? 그런 건 없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 되었는 지 얘기하고 때린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매에서는 절대 벨트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자기를 주체못하고 상대를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거만하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인간상의 전형적인 행태일 뿐이다.

 

"병원에 입원했었다고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이페오마 고모가 조용히 물었따.

어머니는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초침이 부러진 벽시계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나를 돌아봤다. "우리 가족 성경책 놓는 작은 탁자 알지, 은네? 아버지가 그거로 내 배를 내리쳤단다." ..(중략) "아버지가 나를 성 아녜스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이미 바닥에 피를 다 쏟은 상황이라 의사도 구할 도리가 없었다더라."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느다란 눈물 한 줄기가 겨우 눈을 비집고 나온 것처럼 뺨을 흘러내렸다. (p300~301)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계속 유산을 한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잘 사는 남자가 애를 여럿 낳지 않으면 다른 여자를 보라고 하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며 어머니는 계속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아마도 폭력적으로 섹스를 시도했으리라 예상되고 그렇게 아이가 들어차면 다시 때리고 던지고 해서 아이를 그대로 유산시키곤 한다. 어머니는 이 폭력 속에서도 아버지를 감싸고 집에 돌아가곤 한다. 아. 너무 전형적이다. 너무 전형적이란 말이다.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이 말도 안되는 연계. 가하는 자는 해놓고 매번 용서를 빌고 당하는 자는 그 용서를 또 연민으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이는.. 요즘 그이가 얼마나 힘든 지... 뭐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으아아아악.

 

어찌 보면, 경제적인 자립이 안되는 여성이 남편에게서 떨어져나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자체가 여성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겠기에, 참아야 하는 것이었을 게다. 참지 않으면 가난해져야 하고, 가난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먹고 입힐 수가 없게 되고. 그러니 폭력적인 남편이라도 먹고 살게 해주는 그늘막으로, 그래서 폭력은 그냥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성이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뛰쳐나올 원동력이고,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 자양분이다. 사회적인 능력이 없는 여성일 경우, 이렇게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시몬 드 보부아르도 얘기했었고 레이첼 모랜도 얘기했었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머릿 속에 벙벙 뛰어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 그러나 아버지의 여동생인 이페오마 고모는 달랐다. 나이지리아 국립대학교 교수인 고모는 자유분방하고 대화가 가능하며 무슨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고모부가 차사고 죽고 없는 집에, 남자없이 어떻게 사냐며 주변에서 남자 구하라고 성화를 쳐도 꿋꿋이 혼자 아이 셋을 기르며 가난하게 사는 고모는, 자자와 캄빌리를 그 집에서 해방시켜주고자 자신의 집에 일주일 머물게 할 것을 제안한다. 말이 없고 어른에게 대꾸도 못하고 놀줄도 모르고 음식도 못하고 주고받는 대화에 낄 줄도 모르게 성장한 두 남매에 비해, 고모의 세 아이들, 아마카, 오비오라, 치마는 활발하고 자기 주장이 있으며 의견을 말할 줄 알고 집안일에 적극적인 아이들이었다. 고모는 그런 자신의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고 적절한 말로 대응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주는 사람이었고. 이 속에서 자자와 캄빌리 두 아이도 변해간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맞서게 되고... 결국은 벗어나, 미래를 말할 수 있게 성장해 간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여기에서, 희망과 미래를 뜻하는 것 같다. 흔하지 않은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은수카에 있는 고모의 집에 있던 것이었고 다시 아버지 그늘로 돌아오던 날, 자자가 가져와 옮겨 심어 키우게 된다. 그것이 무럭무럭 자람과 동시에 이 두 남매의 세상도 다른 색깔로 바뀌어 나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나중에 옮긴이의 글을 읽으면 마구 뒤죽박죽 섞이긴 했지만, 나이지리아의 비극적인 역사들도 함께 다루어서, 시대의 비극은 결국 가정의 비극과도 연결됨을 인지하게 한다. 군부독재가 들어서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그 시절.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 근대사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디나,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 어디나,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불행을 잉태하는 씨앗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목까지 차올랐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에 감명깊게 읽은 이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우리에게 기억되기로는 허구헌날 전쟁통이라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 여겨지는 이 곳이, 그렇게 되기 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도 역시 주인공의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바바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최고 부유층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하고 늘 나누는 사람이지만, 아들인 아미르를 늘 못마땅해한다. 강한 남자이길 바라는 아버지의 눈에, 문학을 좋아하고 싸움이나 운동에 능하지 않는 남자아이는, 자신의 자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덥지 않은 존재다. 바바와 함께 성장한 하자라인 하인인 알리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산. 배운 거 없는 아이이지만, 바바는 오히려 이 아이를 더 좋아하고 아끼는 눈치다. 하산과 아미르는 형제처럼 자라나지만, 아미르의 마음 속에는 늘, 바바의 애정을 받지 못한다는 열패감과 하산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의 시선은, 이 두 아이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게 된다.

 

나는 그가 잔에 술을 따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방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얘기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늘 바바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말이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결국 그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아름다운 공주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었던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 것은 조금이라도 그를 닮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바와 같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p31~31)

 

그리고, 바바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라임 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의사가 아내의 몸에서 그 아이를 꺼내는 걸 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걸 믿지 못했을 거네." 그러면서 하산에게 호의를 표하는 것을 아미르는 들어버렸다.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말을. 바바는, <보라색 히비스커스>에 나오는 아버지와 비교할 바는 안되지만, 알게 모르게 아들을 강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닮지 않은 자식.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자식.. 이라는 굴레에서 아미르는 평생 힘들어한다. 나중에 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바바가 왜 그랬는 지 이해하게 되기도 하지만, ... 아버지 혹은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시선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인생을 지배하는 지 느끼게 되었었다. 물론 폭력을 안겼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나이지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이 두 국가 출신의 작가들이 쓴 책은 요즈음의 나를 정말 즐겁게 혹은 슬프게 했다. 여타의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나라들이 아닌지라 그들의 풍습들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픈 역사가 남의 일이 아닌 양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그 속에서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주기도 하고. 하지만 두 소설 다, 마무리 즈음에... 희망을 보여줘서 왠지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요즘 몸도 안 좋고 심경도 안 좋은 내게 괜한 위안이 된다면... 오바일까. 두 작가의 책은 몇 권 더 찾아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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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7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2-17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을 쫓는 아이>를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20-02-17 13:55   좋아요 1 | URL
페크님! <연을 쫓는 아이> 좋은 책입니다. 이 작가의 책이 재미있어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오늘 주문해버린 비연입니다 ㅎㅎㅎ 즐독하시길!

페크(pek0501) 2020-02-17 14:18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분량이 많아도 꼭 구입해 읽어야겠군요.ㅋ

han22598 2020-02-20 0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저도 지금 연을 쫓는 아이 읽고 있어요..우연일지 모르지만 계속 비슷한 책을 읽고 있네요..ㅎㅎ 그래서 왠지...비연님이 그동안 읽으셨던 책들이 궁금해서 조금씩 뒤돌아가면서 리뷰 보고 있는데..많이 겹치네요.오호라......반가워요 :)

비연 2020-02-20 07:55   좋아요 1 | URL
어머어머~ 우리의 독서취향이 비슷한가봐요! 완전 반갑^^
재미난 책 있으면 서로 추천해주어요 ㅎㅎㅎ

마태우스 2020-02-21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 연을 쫓는 아이 샀어요! 오늘 배송됨. 제가 요 몇달 책을 하나도 못샀어요. 장바구니에 쌓여있던 거 어제 확 주문했는데 오늘 집에 오니 와있네요. 뭐부터 읽을까, 갑자기 부자가된 느낌.... 암튼 폭력은 나빠요

비연 2020-02-23 19:30   좋아요 0 | URL
오옷. <연을 쫓는 아이> 샀어요? 와우와우. 읽고 어땠는 지 꼭 알려주세요. 궁금~
책이 집에 한보따리 온다는 건, 참으로 큰 행복인 것 같아요. 행복, 큰 행복~

단발머리 2020-02-22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구절만 읽어도 화가 나네요. 그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너무 불쌍하구요.
전 <보라색 히비스커스> 읽어보고 싶어요.

비연 2020-02-23 19:24   좋아요 0 | URL
<보라색 히비스커스> 추천요! 그 작가의책 다른 것들도 주문해서 보려고 보관함에 두었어요~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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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슴아픈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널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라는 이 말이 가슴에 꽂혀서 한동안 갈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의 불행한 역사를 바탕으로, 두 아이의 우정과 배신과 용서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지는 놀라운 소설이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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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지 않고 버텼던 것은, 정말 넘 힘들까봐 였다. 결국 첫 장을 펼쳤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지게 된 느낌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도, 어렵고 힘들고 비참한 여성이 쓴 게 아니라, 더없이 용감한 한 여성이 쓴 글이었다. 나는 레이첼 모랜, 자기 실명을 들고 이 고통스러웠을 책을 쓴 이 여성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읽는 내내, 이게 현실일까 싶은 내용 속에서도 그녀의 성찰은 빛났고 그래서 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용기를.

 

불타는 건물을 비유로 들 수 있는데, 불 타는 건물을 빠져 나올 만큼 운이 좋았다면 그 집에 불이 났다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옳다. 그래야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이 생긴다 (p424)

 

이 책을 쓴 이유가 이것이라고 밝힌 이 대목에서, 난 눈물이 났다. 불 타는 건물 속에서도 너무나 괴로왔을 것이고 나와서도 여전히 그 고통이 남아 있을 한 여성이 갇혀 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어려운 글을 썼다. 정신병이 있었던 부모를 두고 열네살에 집을 나와,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니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볼 수도 없는 처지에서 7년간을 성매매된 여성으로 지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어쩌면 나도 가지고 있었을 지 모르는 성매매된 여성에 대한 편견 혹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치부했었을 생각 등을 무너지게 한다.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던 10대에는 세상과의 단절감이 너무도 크게 작용한 나머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더라도 내가 가위를 들고 있는 그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에 가서 술을 주문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바에서 서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자리들에는 생득적으로 적절함과 정상성, 품위가 있었고 슬프게도 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품성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p30)

 

이제 겨우 십대 초반인 아이가 세상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소외되고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은 내가 사회에 편입해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봉쇄하고 성매매에 유입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들은, 이 사회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잔인한 일들, 직접 때리고 직접 내치지 않아도 잔인해질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너무나 태연히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구별된 삶이 있다. 사회적으로 용납이 가능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나뉘는데 후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 두 삶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이 두 가지 세계는 엄청나게 다르다. (p108)

 

살아보지 않은 삶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특히나 용납되지 않는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어설프게 나서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레이첼 모랜의 이 책을 읽으면서,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성매매된 여성의 삶이 이 세상의 여성의 삶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확장된 폭력이고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두어서는 안되는 범죄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고, 피해자는 '절대' 이걸 원해서 들어가게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그 세상에 들어갈 구멍을 한껏 열어놓고 그 선택지밖에 없도록 몰아놓고서, 즐긴다느니 있어야 하는 필요악이라느니 이 따위 말을 일삼는 것은, 그것 자체도 범죄다.

 

레이첼 모랜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그리고 함꼐 있었던 여성들의 경험에 비추어 성매매된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진다. 왜 그게 아닌지, 왜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되는 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남성이 가하는 성적,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를 페미니스트의 권리로서의 '자유'로 추구하며 실천하는 여성들은 여성 평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지 않는(혹은 이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결정에 있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성매매 경험 내에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 필수 조건들은 성매매를 무심히 보는 시각에도, 살아낸 경험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306)

 

 

하지만 레이첼 모랜이라는 여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모든 경험과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탈성매매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성매매의 과정에서 괴로왔음을, 그 동안의 시간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성매매된 여성들을 위해 연대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을, 그 대상이 남성이든 여성이든간에 함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얘기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글쓰기로 표면화되기 까지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서 억겁과 같은 시간들을 보냈겠지만, 그 결과로 나온 글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치유되는 만큼이나 계몽적이었다.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성들, 나와 같은 과거를 지닌 여성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남자들을 결코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사는 모두 같은 인간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p426)

 

 

몇 년 전에 읽었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읽은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p268)"

 

이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인터뷰 내용들을 읽으면서 몸서리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쟁 속에서 여성이 당해야 했고 목격해야 했던 일들을 읽으면서 너무나 괴로왔었다. 하지만 알렉시예비치 또한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이런 글들을 쓰고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망하고 포기하려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할 필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레이첼 모랜의 책에 나온 스웨덴의 예처럼, 그리고 이를 따라하고 있는 노르웨이 등의 나라들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되는 여성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들이 있기를 희망한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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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2-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만큼 전염성이 강하다는!! 페이드포 앓이.. 저도 읽고싶어용 ㅎㅎ

비연 2020-02-16 18:33   좋아요 0 | URL
읽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는 책입니다, 쟝쟝님^^
우리가 몰랐고 마치 남의 일인 양 했던 세상이 사실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하는...

다락방 2020-02-17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비연님. 정말 잘 읽고 잘 써주셨네요. 비연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어요. 이 책을 읽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비연 2020-02-17 08: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 제겐 2020년 시작과 동시에 올해의 책이 되었어요. 보기 드문, 가슴아픈, 하지만 놀라운 책이에요. 단발머리님이나 다락방님 아니었으면 이 소중한 책을 그냥 놓칠 뻔 했지 뭐에요 ㅜㅜㅜㅜ

단발머리 2020-02-2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글 읽다가 인용해주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이 정말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침 제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오르고요. 전 <체르노빌의 목소리>만 읽었는데, 그 때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리뷰를 남길 수도 없더라구요. 충격을 받아서요ㅠㅠ
더는 미루지 말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2-23 19:31   좋아요 0 | URL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처음 선택할 때는, 이게 도대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글이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녀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읽는 내내 느꼈었어요.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일들을 하는 작가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들의 경험을 듣고, 그들의 말을 옮기고, 그렇게 그 속에서 맥락을 찾고... 존경스러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영화를 봤던가 안 봤던가. 아마 보긴 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 이 이야기를 책으로 보고 싶다, 이 생각을 언제 했었지? 아뭏든 어느 순간부터 내 책장에 딱 꽂혀 있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남들 인생 일정에 맞추느라 급급하게 지내다가 어느 덧 중년이 되어버린 애벌린은,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는, 그저 먹는 것만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를 모신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쾌한 80대 스래드굿 부인에게서 오륙십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애벌린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한다. 그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러나 용감하게 다른 사람의 편견에 저항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와 루스. 그리고 십시와 빅조지와 온젤과 니니와 스텀프.. 등등의 사람들이 휘슬스톱 카페에 머물며 살아간 이야기.

 

엄마는 이지가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하셨지만, 아빠는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하셨어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건 이후로 이지는 예전과 전혀 딴판이 되었죠. 루스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러다가 루스를 만나고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나는 이지가 버디 문제를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 모두가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슬픔에 잠겨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옳은 일이 아닐 테니까요. 이지가 루스를 만난 것처럼,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쪽 문을 열어 두신답니다. 나는 그분이 그해 여름 우리에게 루스를 보내 머물게 하신 데에는 필시 어떤 까닭이 있다고 믿거든요...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심을, 나 또한 지켜보심을 안다네.' - p56~57

 

신은 정말 그러실까. 한쪽 문은 열어 두실까. 닫힌 문 저편의 아픔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래도 세상 살아갈 힘을 주는 다른 쪽 문을 예비하고 계실까. 그냥 그렇든 안 그렇든, 이 대목이 많이 위안이 된다. 내게도 예비된 문이 있겠지. 내내 슬퍼할 수만은 없을테니까. 그래서 달라질 수 있겠지. 이런 마음이 든다는.. 이지와 루스는 다른 사람의 편견어린 시선 따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을 행복하게 했고. 아마 신은, 그런 것을 예비하신 것일게다.

 

 

애벌린은, 왜 욕설은 늘 성적일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다른 남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싶을 때 보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해 왔던가? 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흑인을 가리키는 욕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듣는 데서는. 이탈리아인들은 더이상 이태리 놈이나 더러운 이태리 놈이 아니었고, 반듯한 대화에서는 유태인 놈, 왜놈, 중국 놈, 남미 쓰레기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자신들을 변호하거나 대항할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들은 여자를 욕의 소재로 쓴다. 왜? 우리를 변호할 단체는 어디 있지?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 - p314

 

여기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성이라는 굴레에 다 몰아넣고 경멸의 대상으로 줄곧 삼고 자신의 수컷성에 대해서는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우쭐함을 가진다. 그러나 여자에겐 뿌리박고 대항할 준거집단이 없다. 저항 한번 못해보고 불공정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여자들은 타자와 대결해서 싸울 수 있도록 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 수단이 없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과거나 역사와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프롤레타리아처럼 노동과 이해의 연대성도 갖고 있지 않다. 여자들 상호간에는, 미국의 흑인이나 게토의 유대인이나 생드니의 르노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공유하는 어떤 장소의 집단성도 없다. 여자들은 주거, 노동,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매이고 아버지나 남편 같은 남자들의 사회적 신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남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에서 분산되어 살고 있다. (p22)

 

일찌기 시몬 드 보부아르도 이렇게 말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째서 가장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 중 하나가 성적 불평등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었다. 연대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 그것은 호소할 목소리를 낼 주체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산발적으로 '분산'되어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공정하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그 조그만 불알 두 쪽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쇄였다. 보다 앞서 가야 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때,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할 때 필요한 신용카드였다. 에드가 아들을 원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다 또 다른 진실이 떠올랐다. 슬프고도 바꿀 수 없는 진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불알이 없으며, 가질 방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 p362

 

애벌린의 이런 자각 아닌 자각에 왠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의 저자인 패니 플래그는 스스로가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남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 곳곳에도 그녀의 생각이 박혀 있다.

 

"그렇지. 게다가 네가 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게 또 있다. 이 땅에는 굉장히 멋진 것들이 있단다. 그것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지.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니?"

스텀프는 진지하게 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잊지 않을게요." - p178~179

 

수많은 불합리 속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따뜻하게 하는 이지의 능력은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나쁜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여성을 때리는 사람, 흑인을 업수이 여기는 사람 등등 사람의 탈을 쓰고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도 사람이지만, 하지만, 굉장히 멋진 것들도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다닌다는 것. 세상을 선의로 바라보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하여 뭉클했다. 스텀프는, 비록 팔 하나가 없는 아이였지만, 이지와 루스의 이런 철학과 지지를 받으며 참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내일 영화도 한번 다시 볼까 생각 중이다. 책을 읽는 동안, 위안을 받았다고나 할까. 어쩌면 나이들수록 비겁한 마음으로 쪼그라져 살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지와 루스의 삶,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의 삶은 문득문득 용기를 준다. 비록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지만, 애벌린이 옛이야기 속의 사람들을 통해 자아를 찾고 변화해나갔듯이, 나도 마치 실존인물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따스함이 번지는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영화를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 내일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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