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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ㅣ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또 다른 제목 : 책의 숲에서 길을 잃다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은 제목처럼 659권의 방대한 독서일기 및 서평이 수록되어 있으며, 유머관련 책부터, 동물,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알 수 있는 책과 러시아 동시통역사 답게 러시아 전반에 걸친 문학 및 역사, 정치를 알 수 있는 책까지 소개했다. 또한 암투병을 하면서 읽은 암 치료법에 대한 다양한 책 소개도 인상적이다. <콩트 쓰기> 책을 쓰기 위해 방법이나 수사에 관한 책 24권과 애도시대의 콩트를 비롯한 각국의 유머집 37권을 읽었다고 하니 다작을 쓴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 몇권의 책을 읽었을까?
아쉬운점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일본과 러시아 작품 위주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점이지만, <공중그네>, <국화와 칼>,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동물농장>, <전쟁과 평화>, <죄와벌>, <안네의 일기>, <작은집 이야기>등은 반가운 마음에 읽고 또 읽었다.
서평쓰기의 절반이라고 표현한 제목 짓기도 도움이 된다. <거짓말쟁이 야콥>을 읽고 쓴 제목은 '강제수용소에 핀 희망의 꽃', <첩보원 마리타>를 읽고 지은 '무대 뒤에서 꿋꿋하게 살아 온 여성의 기구한 반생'등은 책의 내용도 예상할 수 있도록 함축되어 있다.
이노우에 히사시는 해설에서
'서평은 항상 시험을 받는다. 우선 그 책을 쓴 저자에 의해, 그리고 그 서평을 읽고 마음이 이끌려 책을 구입한 독자에 의해 시험을 받는다. 칭찬을 하면 너무 무르다고 뭐라 하고, 날카롭게 평을 하면 아마 평생 원망을 듣고, 적당히 평을 하면 독으로도 약으로도 쓸 수 없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무시를 당한다. 게다가 서평을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원고료는 싸다. 크게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서평을 해 좋은 점이라면 서평용 책을 거저 얻을 수 있어서 마음껏 빨간색 줄을 쳐가며 읽을 수 있다는 점 정도다. 지금 세상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서평은 그 선두에 설 것이다.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서평 쓰는 일은 결코 계속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이러한 어려움에 언제나 정면으로, 그것도 즐거워 하면서 온몸으로 맞서며, 얼마되지 않는 그 문필 활동의 시간량에 비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서평을 남기고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마리여사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이상으로 힘겨운 일본의 대학입시 암기지옥에서 벗어난뒤 20년동안 하루 평균 일곱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니 대단한 독서력이다. 읽는 내내 그녀의 다양한 책읽기와 깊이에 감탄하면서 서평쓰기의 개론서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죽는날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마리여사의 책읽기에 경의를 표한다.
공중그네를 읽고 쓴 그녀의 서평
제목 : 유례없는 캐릭터 만들기에 성공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멋진 공유재산을 갖게 되었다. 일본 문학에 새롭고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타났다. 찰리 채플린, 심술쟁이 아주머니, 후텐의 도라등의 걸작 희극 시리즈에는 웃음의 진원이자 웃음을 이끌어가는 뛰어난 캐릭가 빠질 수 없다. 시리즈의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는 이 캐릭터 창조라는 위업을 오쿠다 히데오는 2년 전에 연작 단편집 <인 더 풀>에서 완성해 이번에 이 책에서 본격화했다.
그 이름은 이라부 이치로. 종합병원의 방탕한 아들로, 느끼하고 뚱뚱하며 다리도 짧은 마더 콤플렉스가 있는 중년 남자. 하는 일은 정신과 의사인데, 실력이 믿을만 한지, 치료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예를 들면, 갑자기 제구력이 떨어져 1루에 송구하기가 두려워진 프로 입문 10년차의 내야수가 병원을 찾아오자, 소파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이라부가 내뱉는 첫마디는 이치로의 사인을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에 함께 캐치볼을 하자고 말한다. "뭐야, 이 남자, 꼭 다섯살 애 같잖아...... "선생님, 나는 카운슬링을 받고 싶어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말로 해서 낫는다면 의사가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필요이상으로 환자들에게 비타민 주사를 놓으려 한다.
방약무인한 간호사 마유미가 미니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담배를 물고 나타나 환자들이 그녀의 F컵 사이즈 가슴에 정신 못차리는 틈을 타 주삿바늘을 꽂는다. 이 순간 이라부의 눈빛이 번득인다.
그런 병원에 환자들이 찾아온다. 파트너를 믿지 못하게 된 서커스의 공중그네 연기자, 뵤족한 것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야쿠자, 의과대학장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 소설을 쓸 수 없게된 여류 작가...... 그리고 결국, 이들은 완치되어 간다.
포복절도할 과정을 통해, 독자는 환자와 함께 인간과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회복해 간다. 왠지 삶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미우리 신문> 2004년 5월 16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고 쓴 서평
제목 : '동토의 지혜'가 번득이는 모험소설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야기의 진행자이기도 한 두뇌 명석하고 야성적이며 섬세한 주인공의 독설로 가득한 문체에 매료되었다. 스밀라 야스파센. 최고 학부에서 빙하지형학, 통계학, 수학을 배운 37세의 독신녀다. 소녀시절 멋진 사냥꾼이자 자유인이었던 카라리트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다 어머니가 실종된 후에는 부호이자 덴마크인 의사인 아버지에게 억지로 끌려와 코펜하겐에서 자란 그녀는 어떤 조직에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 애증이 뒤섞인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보이는 아버지의 조용한 지원도 있어, 그녀는 자유롭고 금욕적인 생활을 보낸다.
그런 고독한 그녀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고 있던 카라리트의 소년이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코펜하겐 항 부근에 있는 창고의 눈덮인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다. 사고사로 보는 경찰의 견해에 대해,"눈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그린란드인 특유의 능력을 가진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혼자서 수사에 나서서, 사건이 수년 전에 그린란드에서 일어난 소년의 부친 사고사와 관련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의문을 풀기 위해 무섭게 돌진하는 그녀 앞에,반관반민의 빙정 굴삭회사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상대로 활동하던 첩보기관과 동남아시아에 걸쳐 암약하고 있는 마약 신디게이트 등 거대한 조직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로부터 불길한 방해와 위협이 다가오며 이것이 또 다른 의문을 부른다. 음모의 핵심에 다가가는 스밀라는 마침내 극비리에 북극해 얼음섬으로 향하는 선박에 숨어든다...
이처럼 전통적인 모험소설의 형태를 답습하는 이 책에 참신한 매력을 불어넣는 것은, 뛰어난 비유로 가득한 주인공의 말과 그 문체에 녹아 들어간 중층적 구조다. 이는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영구동토지대 카라리트의 피부감각이자 지혜이자 철학이며, 계속 잃어 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절망적인 향수이며, 그들이 창출한 독특하고 사랑스런 생활과 문화가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무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기술이며, 그것이 주인공 자신의 개인사와 어우러지면서 그녀의 아물지않는 상처가 되어 신랄하고 가차 없는 서구 문명 비판을 속사포처럼 쏟아 내는 원천이 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 1996.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