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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책읽어주는 남자]는 책이 아닌 영화로 먼저 보게 되었다. 파격적인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 그들의 심리를 엿볼수 있는 이야기 구성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화였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새로이 출간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이책을 읽으며 역시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그의 문장에 빠져들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나는 약간 옴니버스식 구성을 갖춘 영화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한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보다 여러사람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더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책속에도 여러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물론 외르크라는 급진적인 테러리스트였던 한 남자를 중점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지만 주변의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산만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소설 속에는 일제의 글속의 또 한사람의 테러리스트 얀의 이야기가 지금 수감 생활을 마치고온 외르크와 대비가 되어 전개되고 있다. 어느날 죽음과 함께 찾아온 그에 관한 의혹이 한편의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는 느낌을 준다.
책 제목이 주말이듯 이 이야기는 금요일에 모여 토요일 일요일에 이르는 주말에까지의 그들의 갈등과 화해와 새로운 만남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단 며칠밖에 안되는 그 짧은 순간인데도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느낌이나 생각등이 어찌나 잘 표현되어 있는지 그들과 함께 주말을 보낸 느낌이다. 하나의 문장이 좀 긴 산문형식의 글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짤막한 문장과 대화체가 주를 이루고 있어 긴박하고 스릴있게 읽어 내려가게 된다.
테러라 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이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수 없다고는 하지만 무고한 시민을 죽이게 되는건 과연 용서받을수 있는 행동일까? 자신은 옳은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말할수 있을까? 주인공 외르크의 심리 변화와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과 대화를 통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과거 옳고 그른 모든 테러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누나 크리스티아네는 20년만에 감방에서 나오게 된 동생 외르크를 위해 외르크의 친구들을 자신이 마련한 한적한 교외 별장으로 초대한다. 젊은 시절 외르크와 함께 혁명에 가담했던 친구들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하고 변호사가 되어 사회에 속해 살아나가고 있다. 한때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지만 살아가는 동안 생각들이 제각각이 되어 버린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보다 왠지 어딘가 낯설고 어색하고 심지어 날이 서 있는 느낌이다.
특히나 망설임없이 모두가 궁금하지만 속내를 감추고 있는 그들과 달리 사람을 죽인 심정이 어땠냐는등, 감옥살이를 하면서 편하게 지내지 않았냐는등 직선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울리히는 모두를 불안불안하게 하지만 모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름을 떨친 혁명가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주 당돌한 울리히의 철부지딸을 보니 그아버지의 그 딸이란 생각도 든다.
'일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하나로 합쳐질 때아 마찬가지로 전체에서 분리될때도 손쉽게 흩어질 것이라고, 전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우울하게 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어느새 지하실이 말끔해진 것이다.' ---p298
외르크의 혁명을 지지하는 마르코의 등장으로 그들의 관계에는 새로운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친다. 외르크를 배신하고 고발했다고 생각한 인물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가 하면 외르크의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는 이야기등 기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결국 그들은 20여년전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던 그때처럼 지하실에 찬 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행동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개성을 가진 각각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기도 하지만 흩어지는것도 순식간이다. 20여년이라는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공 앞에 그렇게 흩어진 각각의 친구들과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들이 세밀하고 긴박하고 생생하게 전해진다. 하지만 그들을 또 한순간에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이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긴박하고 스릴있게 전개되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