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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ㅣ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맘에 드는 싯구를 베껴 써 보았다.
그만큼 이 시집은 보통의 시집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되새겨 읽어보고 싶은 아니 가슴속에 새겨보고 싶은 싯구들이 많았다.
-난분분하다.-p13
많이 보는 만큼 인생은 난분분할뿐이다. 보고싶다는 열망은 얼마나 또 굴욕인가,꿀욕은 또 얼마나 지독한 병변인가. 내것도 아닌걸, 언젠가는 도려내야 할텐데, 보려고 하지말라, 보려고 하지말라.
난분분,,, 어디서 들어본듯도 한데,,, 많이 본 만큼 인생이 그렇다는건 시인이 그렇단걸까?
-안에 있던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p14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것이었던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엇던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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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우린 정말 타고 있는 촛불을 꼭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는듯 말한다.
불빛은 정말 저 혼자 그냥 타고 있을뿐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따스함이나
그 불빛의 흔들림은 내 마음을 안정되게 해주니 내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시인은 그것조차 허락치 않으니,,,
-나쁜 소년이 서있다.- p17
세월이 흐르는걸 잊을때가 있다. 사는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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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메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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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법처럼, 한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있다.
그가 소년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때가 그리운걸까?
-빛이 나를 지나가다- p20
손목이 부러지고 깁스한지 한달째,,,
남은 한손에 가방까지 들었는데 하필 비가 올건 또 뭔가, 택시의 얼굴이 하나같이 사납다. 글씨야 안쓰면 그만인데 손다치고 나니까 웬놈의 박수칠 일이 이렇게나 많은지, 용서하자, 빛은 어딘가에 도달하기위해 나를 지나쳤을뿐, 어차피 내 손목이나 내 사랑은 안중에도 없다.
왠지 웃음이 나는 시이면서도 왠지 쓸쓸해지는 ,,,
-슬픈빙하시대5-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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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고독안에 뒹굴고 있는 입석들의 폐허다. 인생은
떨어지기전, 떨어지기전,그 간들거림,
왠지 고독이 벼랑끝에 몰린듯한 이 시 참 간들거린다.
-면벽-p38
벽을 보고 누워야 잠이 잘 온다. 그나마 내가 세상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다. 세상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밥이나 먹고 살기로 작정한 날부터 벽보는게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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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해졌다. 말없이 바퀴나 굴리는 낙오자다. 나는, 늘 작년 이맘때처럼 사는.
벽을 등지고 자거나 벽을 보고 자거나 벽쪽 자리가 좋은 나도 낙오자일까?
나 또한 늘 작년 이맘때처럼 살고 있는걸까?
지리멸렬,,,
-생태보고서- p41
강물만 봐도 좋은 날이 있었는데
낙이 사라져 간다.
늘 죽어야 하는 이유만큼 살아야하는 이유도 있었는데
시에는 더 이상 쓸 말이 없고
아픈 다리를 끌고 가는 세월이
회식과 실적과 고지서 같은 것들에
걷어차이며 몇번을 주저 않는다.
시인들도 모이면 아파트 이야기를 한다고 씁쓸해하던 친구 녀석은
아직도 열병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잡동사니 끌고 내려오는 장마가 그렇듯
속세의 마음으로 시 쓰는 친구들과 디카 앞에 선 나는
어차피 비틀댈 것은 이미 비틀대기로 한 것임을
문득 깨닫는다 쉽게 산 사람들의 깨달음은 쿨하고
전쟁한 자의 깨달음은 소멸로 간다.
좆도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좆도 아니었던 것
팔당댐 옆 천막속에 앉아
말없이 민물 매운탕을 퍼 넣는다.
어쩌면 이 시인 현실을 이렇게나 멋드러지게 쓸 수 있을까?
멋지다.
허연, 그는 이제 마흔을 넘은 중년의 나이다.
그래서일까? 마흔을 넘기고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내게 그의 시는
커다란 울림이 되어 심장을 머리를 그리고 그 어딘지 모를 곳을 파고 든다.
푸른색 젊음을 이야기하는 그가 청춘을 그리워하듯 나 또한 그런 마음이며
현실에 몸을 싣고 살아가지만 시 한편으로 이렇게 통하니 그럼 된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