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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
존 미어샤이머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1년 10월 18일에 저장
절판
지도자의 거짓말, 그래 인정한다. 대신 말 바꾸기는 없는 거다!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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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역사 읽기의 고갱이는 반성과 결의
온 삶을 먹다- 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
웬델 베리 지음, 이한중 옮김 / 낮은산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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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있게 먹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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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창조적 고독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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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미천한 것, 별 볼일 없는 것, 인간도 아닌 것들의 가치와 의미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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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존재자를 통해 거창한 존재론의 구성하다
신해혁명- 흔들리는 중국, 청나라 말기의 격변에서 중국의 백년사를 읽는다
장밍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얼미디어 / 2011년 10월
17,500원 → 15,750원(10%할인) / 마일리지 8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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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해혁명 100주년, 청을 무너뜨린 차가운 혁명의 현장
시진핑-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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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3억 명 가운데 한 명이 되는 일, 드라마틱하구나
나는 장자다-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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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별난 건 없지만, 그게 또 <장자>의 맛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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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장안의 화제를 넘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나는 꼼수다. 안 그래도 기분 좋은 금요일에 퇴근 시간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나는 꼼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한 고도의 전략 기획 방송 나는 꼼수다. 그분께 헌정하지만 정작 그분이 듣고 계신지는 알 수도, 확인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나는 꼼수다... 

'당신도 꼼수PD가 될 수 있다'는 믿기 힘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메인 카피로 활용한 이 책은 종편으로 절대 갈 리 없는 김용민PD가 정리한 나는 꼼수다의 공략집이라 하겠다. 흥행의 비결을 스스로 분석하고, 나꼼수를 스타일로 격상시킨 자화자찬 구성에 세상 온갖 권력과 맞서 싸운 자신의 무용담까지 결들인 이 책에 가카께서는 흔쾌히 추천사를 하사하셨으니... 그 뜻이 깊고도 놀라워 세계 최초로 여러분께 공개하는 바이다. 

졸라 재밌어, 씨바!! 당장 예약구매!!

예약구매 바로가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1014_iam

 

가카가 쓰는 추천사 

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는 여러분의 각하입니다.
기 팍팍하다며 호소하는
가 꺽인 청년들,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지 마세요.
판을 보시라고요.
천에 널린 게 일자리입니다.

대기업 공기업만 갑니까?
세상에는 일손 못 구하는 중소기업도 많습니다.
명백백한 사실은 허영부리다가는
복한 삶을 자초하는 겁니다.
아주지 않는다고 앙탈 마세요.
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로 다 좋은데 가면 비싼 사교육비 왜 들입니까?

세상이 발전이 없는 건 헛된 평등심리 때문입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니 분수를 알고
어카를 끄는 것부터 해야지 하고 마음 먹어봐요.
'망의 세월', 여러분의 신화도 될 것입니다.

'는 꼼수다 뒷담화', 이런 거 읽는다고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라를 살린 역군의 이야기 '신화는 없다'가 더 감동적입니다.
징한 처세와
식한 돈벌이 기술을 여러분에 알려드릴 겁니다.
시대가 원하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성을 가진 젊은이가 되세요.

일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런하시도록 말입니다. 

 

나는 꼼수다 프로듀싱 노트

얼마 만에 앉아보는 콘솔 석인가. TV와 라디오를 합해 하루에 고정 6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잘 팔리는’ 방송 연사인 나지만, 본의 아니게 접게 된 PD의 꿈을 언젠가는 다시 실현하겠노라고 수차례 다짐했었다. 특정 방송사에 입사하는 방법부터 아예 창업하는 것까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양지 위의 길이 아니었다. 더러는 실패하고, 더러는 단념했다.

남의 스튜디오를 돈 주고 빌려서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녹음하는 것이지만, 지상파 매체가 아닌 스마트폰 이용자에 한정된 서비스이고 아울러 금전적 반대급부는 없으나 PD의 꿈은 결국 실현됐다. <딴지일보> 딴지라디오의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 제작자로서 말이다. 총수 김어준 형과 정봉주 17대 의원, 주진우 <시사IN> 기자 덕이다. 스마트폰 보급대수 2,000만 시대라는 점, 무엇보다도 국민 속에서 뜨겁게 고양되고 있는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 이것이 방송의 밑천이요, 종자돈이다. 그렇게 우리는 4.27재보선 다음날,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마포FM>에서 첫 온에어 등을 켰다.

모든 게 주먹구구였다. 타이틀을 무엇으로 할지도 녹음 1분 전에 정했다. 사실 아이디어가 분분했다. 종국에 채택된 ‘나는 꼼수다’ 말고 ‘나는 가카다’, ‘나는 총수다’(이상 김어준), ‘안녕하십니까 서울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17대 국회의원 민주당 소속 정봉주와 그 추종자들입니다’, ‘대인의 자격’(이상 정봉주), ‘코리아 리크스’, ‘명박허전’(이상 김용민) 등이 물망에 올랐다.
  당일 화젯거리에 대해서는 구두 논의 30여 초 정도만 소요됐다.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BBK 의혹 문제와 맞물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첫 주제가 됐다. BBK 의혹에 관한 한 정치권 최고 권위자가 바로 정봉주 전 의원 아니었던가.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못하겠으나 그 다음으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 이다.

시험 삼아 몇 건 올렸는데, 말하자면 ‘공식 오픈’이니 ‘개국’이니 하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는데, 속칭 ‘난리’가 났다. 청취자의 폭발적인 반응이 집중된 것이다. 그리고 두 달여. ‘초대박’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다. 2011년 7월 7일 9회를 기점으로 아이튠즈 집계 대한민국 전체 1위에 올랐다. 그간 독보적 1위였던 ‘두시탈출 컬투쇼’를 2위로 내려앉혔고, 뉴스 정치 분야의 ‘손석희의 시선집중’, ‘박경철의 경제 포커스’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그러다가 8월 8일 미국 팟캐스트 뉴스·정치 부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8월 22일과 27일 업로드 된 ‘나꼼수’ 호외편과 16회는 이튿날까지 미국 아이튠스 팟캐스트 인기 에피소드 순위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이 아이튠스의 발원지인만큼 이를 전 세계 1위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가 “듣다보면 뒤집어진다. 통쾌하다”(김민식 MBC PD 블로그)고 호평하고, 유명 소설가는 트위터에서 “영상도 없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듣고 있을까”(공지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안에서 “커피숍에서 언니들이 떼로 모여 ‘나는 꼼수다’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네. 그 방송”(ID:nabts)이라고 소개하는 글도 발견할 수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내 강의 듣지 말고 ‘나꼼수’를 들으라”고 강연 중 밝혔다고 한 것도 화제였다. 한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권력 핵심부 인사가 이 방송을 듣고는 “청와대 안에 엄청난 빨대(정보원)가 있는 것 같다”며 염려했다고 한다.

(중략) 

‘나는 꼼수다’가 업데이트되는 날(대체로 목, 금요일)에는 나의 트위터(@funronga)가 몸살을 앓는다. 낮 12시 녹음이고 빨라야 저녁쯤 업데이트하는데, ‘틈만 나면 올라왔나 본다. 언제 들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아침부터 폭풍처럼 몰려온다. 우물가도 아니고 우물가에 가기 전 상태에서 숭늉부터 찾는 분들이다. 그러나 반갑고 고맙다.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며 <MBC>가 자사의 방송진행자로 활동하던 김미화, 김흥국을 내보냈다. <MBC>는 나아가 소속 직원의 대외 발언, 심지어 고정 출연자의 방송 외 자리에서의 주장까지 공정성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한다. 정치적 편향성을 규제받는 제도권 방송의 한계이기도 하겠으나 ‘나는 꼼수다’와 확연히 대조된다. 대중을 계몽하는 방송 대 대중을 존경하는 방송으로 구획되기에 말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하면서 선생님 노릇하려는 <MBC>와, 재담어린 친구의 자리를 선택한 ‘나는 꼼수다’ 둘 중에 누구에게 미래가 있을까.

나는 ‘흥행’에 고무돼 유료 광고를 받고 공개방송과 주 2회 방송을 해보자는 제안을 얼마 전 김어준 총수에게 했다. 그랬더니 김 총수는 ‘배고픈 사람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떠드는 식의 콘셉트를 포기하지 말자’고 답한다. 나의 거품 낀 망상은 그렇게 정리됐다. 고단한 시대를 살며 정치적 혁명을 꿈꾸는 이웃을 위한 ‘뒷담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우리의 본령(本令)을 설정한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2013년 2월까지만 진행된다. 이후에는 그 분이 못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 나라가 IT강국이라고 해도 감옥에서까지 스마트폰을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나는 꼼수다 뒷담화>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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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찾사 멤버 2011-10-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찾사(우물가에 가기 전 상태에서 숭늉부터 찾는 사람들)'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나 반갑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돼지 아들 목사'가 아닌 '목사 아들 돼지'님을 비롯한 나꼼수 제작진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린비에서 펴내는 루쉰 전집 번역자,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공상철 교수의 첫 책 <중국을 만든 책들>, 제목 그대로 중국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텍스트를 선별하여 책이 만들어진 역사, 문화의 맥락을 추적하고 이후 중국 문명사와 중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첫 꼭지는 당연히 갑골문이겠죠. 무늬가 문(文)으로 변한 까닭, 신과 소통하던 언어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로 바뀐 과정, 더불어 문(文)이 어떻게 문화, 문명의 기반이 되어 꽃을 피웠는지 등 갑골문에 얽힌 이야기를 강의하듯 구성지게 들려줍니다. 남은 꼭지들이 너무 기대되는 책입니다. 게다가 저는 일단 책 이야기라 하면 점수를 주고 들어가는 '책바보'니까요. ^^ 

 

   

세계의 무늬 갑골문(甲骨文)
 

길을 떠납니다. 지금부터 떠나는 이 길은 장장 3천 년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되는 ‘중국’이라는 문명사입니다. 이 문명이 걸어간 길, 그 길의 궤적과 굽이를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듬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가다듬어두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정이 그리 만만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 길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시대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꾸었던 꿈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시간의 지층 속에서 이들은 말이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묵묵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기행이란 세계에 말을 거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말을 걸지만, 이것이 세계에 접수될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접수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말들은 불가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 조금은 헐거이 임해도 좋을 일입니다. 어차피 3천 몇 백 년의 시간을 열람해야 한다면, 거기서 꼼꼼한 견문록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테니까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행의 초입에서 얼마간 예비 점검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이 문명을 특징짓는 기본 원리나 힘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문(文)'을 들겠습니다. ‘문’이란 중국 문명을 관통하는 일종의 슈퍼 코드입니다. 이것이 발현되는 과정이 ‘문화(文化)'나 ‘문명(文明)'이란 말의 원래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므로 일단 이것의 의미와 성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여정은 이 코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출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문’이란 무엇일까요?


태초에 무늬가 있었다고?
문명사를 거슬러가다 보면 거기서 으레 만나게 되는 것은 시간의 오리지널 포인트를 향한 모종의 충동입니다. 흔히 ‘태초’나 ‘창세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중국 문명조차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살이의 존재론적 근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런데 『논어』를 읽다보면 그것에 무심한 듯한 언설 하나가 등장합니다.
  “하늘이 어디 말을 하더냐!”(『논어』 「양화(陽貨)」)
  헤브루 종족의 하늘에 ‘태초의 말씀’이 울려 퍼지던 무렵, 고대 중국의 하늘은 이처럼 침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고대 중국의 하늘은 ‘거룩한 말씀’ 대신 신비한 무늬의 형태로 강림했던 것 같습니다. 동방의 하늘이 보기엔 아무래도 사람의 귀보다는 눈이 더 미더웠던 모양이지요.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황하(黃河)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 비늘에 신비로운 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나봅니다. 그로부터 이 무늬에 ‘황하의 도상’, 즉 ‘하도(河圖)'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전설상의 복희씨(伏犧氏)는 이 무늬에 근거해 저 오묘하기 짝이 없는 팔괘(八卦)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어느 날 황하의 지류 낙수(洛水)에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등짝에도 신령스런 무늬가 선연했다는 겁니다. 종으로 횡으로 더해도 각각 15가 되고 대각선으로 더해 봐도 15가 되는 이 신기한 무늬를 사람들은 ‘낙수의 그래픽’, 즉 ‘낙서(洛書)'라 불렀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은 이 마방진(魔方陣)에 의거해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세계 질서 체계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카테고리’의 뜻으로 쓰이는 그 ‘범주(範疇)' 말입니다.
   

중국의 어느 수학자는 지구 문명이 언젠가 다른 행성과 접촉할 때 이 무늬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것이라 우기고 있지만, 아마도 이 전설은 어떤 신종 담론―음양오행설로 추정되는―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도서(圖書)'라는 말이 이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도서’란 세계의 신비한 비밀이 담긴 무늬일 터이고, ‘도서관’이란 그런 무늬가 빼곡히 수장된 장소가 되는 셈인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책에 이런 현묘(玄妙)한 내력이 있었다니 좀 의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어떤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르헤스(L. Borges)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묘사한 ‘육각형의 진열실들로 구성’된 ‘세계’라는 이름의 거대한 도서관 같은 것 말입니다.


갑골문의 발견
사실 이 도서관의 유래에 대해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장서는 얼마나 되는지, 언제 누구에 의해 쓰이게 되었는지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풍문은 익히 들은 바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수장된 책의 종류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것, 우리가 보는 종이책은 비교적 후대에 나왔다는 것, 초기의 책은 목간(木簡) 이나 죽간(竹簡)을 엮어 만들었다는 것, 여기서 책(冊)이라는 글자가 나왔다는 것, 또 어떤 책은 청동기나 비단 위에 쓰여 있다는 것 등등 말입니다. 여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적어도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책 무더기가 저 깊숙한 지하 세계에 감추어져 있었을 줄 말입니다. 거북딱지나 물소 뼈에 새겨진 이 책들은 이로부터 갑골문(甲骨文)으로 명명되어 중국사의 연대기를 훌쩍 앞당겨놓고 말았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商)나라―혹은 은(殷)나라로 불리는 기원전 17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까지 존재한 왕조―의 실체가 이로부터 빛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그 발견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백여 년 전인 1899년, 북경에 왕의영(王懿榮)이라는 한 관리가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학질에 걸려 여기에 좋다는 거북의 골편(骨片, 뼛조각)을 대거 사들였는데, 마침 그 집에 식객으로 있던 유철운(劉鐵雲)이라는 자가 거기서 이상한 글자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그에게 보인 모양입니다. 평소 고대 문자 해석에 일가견이 있던 왕의영은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나라 문자가 거기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으니까요. 이리하여 그것을 구입한 한의원을 통해 골편의 출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문은 금세 퍼져 골편의 출원지 안양(安養) 소둔촌(小屯村)에선 일대 난리가 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나라의 마지막 도읍 은허(殷墟)가 바로 거기였다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해외로의 밀반출은 물론 위조품까지 대량 유통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출토된 골편의 수가 무려 16만여 개에 이르렀습니다.
  갑골문의 대부분은 복사(卜辭)입니다. 복사란 상나라 말기 12명의 왕이 통치하던 273년 동안 가국(家國)의 대소사를 점친 기록입니다. 선왕에 대한 제사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전쟁이나 자연현상, 재해 등등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문명 초기의 형편상 하늘의 의사를 묻는 일은 지고至高의 가치였을 겁니다. 이 일의 중요성은 점에 쓰이는 거북 껍데기를 구하기 위해 거국적인 시스템이 작동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골편에는 남방으로부터 거북이 천 마리를 공납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식으로 사용된 거북이가 최소 1만 6천 마리, 물소는 몇 천 마리라는 게 학계의 통론인데,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러면 점은 누가, 어떻게 친 것일까요? 당시엔 점을 치는 직책을 일러 정인(貞人)이라 했는데, 간혹 왕이 직접 주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점술의 중요성에 따라 정인의 숫자도 늘어났는데, 학자들에 의해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해도 120여 명에 이릅니다. 점술 과정은 거북점의 경우 대체로 이랬습니다. 먼저 배딱지를 떼어낸 뒤 가운데 난 수직선을 기준 삼아 내장이 있던 안쪽 면 양편으로 가지런하게 홈을 팝니다. 껍질이 두껍다보니 열에 잘 갈라지게 하기 위한 조치였을 겁니다. 홈은 두 가지 모양입니다. 먼저 대추씨 모양의 홈을 파고(‘착’鑿) 거기에 약간 겹치게 둥근 모양의 홈을 다시 파는데(‘찬’鑽) 그리하여 홈의 형태는 중절모 모양이 됩니다. 이런 홈이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많게는 수십 개나 패어 있습니다. 거북 껍질이 워낙 귀하다보니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이제 점을 칩니다. 점이라고 해야 나무 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홈에다 대고 지지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지지는 건 아닙니다. 점칠 내용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소리에 담아 표출하기도 했겠지요. 이윽고 달구어진 부분이 ‘퍽’ 하며 갈라지는데, 혹자는 이 소리에서 ‘복(卜)’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균열은 으레 두 방향으로 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유도하기 위해 이중으로 홈을 판 것이니까요. ‘착’에선 수직선이 나오고 ‘찬’에선 수평선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대개 ‘ㅏ’ 아니면 ‘ㅓ’ 모양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물론 뼈의 자연적인 결을 따라 미세한 차이가 발생했겠지요. 이 기본 형태와 미세한 차이가 곧 하늘의 응답인 셈입니다.
  점이 끝나면 배딱지 바깥 면에 ① 점친 날짜와 정인의 이름, ② 점의 내용, ③ 갈라진 무늬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 내용, ④ 점괘가 실현되었는지 여부 등을 새기는데, 앞의 두 항목만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지막 항목은 점괘가 그대로 실행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뒤 추가로 기록한 것인데,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으로 점이 완료됩니다. 그러고는 이 골편을 특정 장소에 한데 모아 보관하고 관리했을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국가문서관리국에 기밀문서를 보관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료를 수장해두는 개념이었겠지요. 주로 갑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도 아마 이런 까닭이었을 겁니다.


신의 언어들
그런데 여기서 정작 흥미로운 것은 해석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지요. 골편에 나타난 무늬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소관입니다. 그것은 뼈의 강도와 결에 따라 달랐을 것이고, 홈의 각도와 꼬챙이의 열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었겠지요. 그러니 같은 사안이라 해도 매번 무늬가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하는 일은 엄연히 왕이나 정인의 몫입니다. 설령 그들이 하늘과 교통하는 능력을 지녔다 해도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신의 의사를 판명한다고 할 때, 어떻게 자의와 주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모든 해석은 사람의 숨결이 투사된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일 수밖에 없겠지요.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 번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씩 반복되었던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TV를 보니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어느 오지의 원주민들은 벌꿀 채취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날은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벌집을 털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산의 신으로부터 작업 허가를 받아내는 방식이 재밌습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희생(犧牲)으로 끌고 간 양의 몸에 경건히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고는 둥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윽고 양이 세차게 몸을 흔들면서 기름을 털어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비로소 작업에 들어갑니다. 신이 이 위험천만한 작업을 허락했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면, 양이 제 몸에 묻은 기름을 털어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를 신의 뜻으로 여기고 태연히 외줄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골편에 드러난 하늘의 의사를 해석하는 일 역시 이런 차원이었을 겁니다. 해석학이라는 학문도 따지고 보면 그 출발은 이랬으니까요.
  그런데 고대인의 해석학에도 제법 노회한 구석은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냥 일방적으로 물어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꽤나 신중합니다. 먼저 긍정적인 방식으로 넌지시 물어봅니다. 그러고는 같은 사안을 다시 부정적인 방식으로 되물어봅니다. 상당히 교묘한 방식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러면 신의 의사를 좀 더 주밀(周密)하고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면 신을 헷갈리게 만들어서 소망하는 대답을 얻고자 했던 걸까요? 다음 사례를 통해 판단해보시지요.

戊戌卜, 永貞.(무술일에 점을 치며 영이 묻습니다.)
今日, 其夕風?.(오늘 저녁에 장차 바람이 불겠습니까?)
貞 : 今日, 不夕風(묻습니다. 오늘 저녁에 바람이 불지 않겠습니까?)3
戊子卜, 貞.(무자일에 점을 치며 각이 묻습니다.)
帝及四夕, 令雨?(상제께서 나흘 뒤 저녁에 이르러 비에게 명령하시겠습니까?)
貞 : 帝弗其令今四夕, 令雨?(묻습니다. 상제께서 지금부터 나흘 뒤 저녁에 비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王占曰 : 丁雨, 不惠辛.(왕이 점괘를 해석하십니다. 정일에 비가 온다. 꼭 신일이진 않을 것이다.)
旬丁酉, 允雨.(열흘 뒤인 정유일에 정말로 비가 왔다.)4
이런 방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직접적인 전략도 있습니다. 신더러 제발 대답을 좀 해달라고 들들 볶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다음의 사례를 보면 그 윽박지름의 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방의 신들도 인간들에게 닦달을 당하느라 꽤나 피곤했을 듯합니다.
貞 : 亥王入.(묻습니다. 신해일에 왕이 들어옵니까?)
于癸丑入.(계축일에 들어옵니까?)
于甲寅入.(갑인일에 들어옵니까?)
于乙卯入.(을묘일에 들어옵니까?)5
更子卜, 何貞 : 翊辛丑, 其侑틌辛, 卿.(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何가 묻습니다. 다음날 신축일에 신辛 할머니께 유제侑祭를 경제卿祭로 지낼까요?)
更子卜, 何貞 : 其一牛.(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소 한 마리로 할까요?)
更子卜, 何貞 : 其.(경자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
丙午卜, 何貞 : 其.(병오일에 점을 쳤는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으로 할까요?)
丙午卜, 何貞 : 其三.(병오일에 점을 치며 하가 묻습니다. 희생양 세 마리로 할까요?)


문명과 문자
위의 사례를 통해 감지되는 것은 하늘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놀이입니다.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고 다투고 화해하는 그런 우주론적 놀이 말입니다. 문명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신이 신성(神性)을 박탈당해왔음을 이야기해줍니다. 상(商)나라의 ‘제(帝)'는 그 자체로 신이었고, 주(周(나라의 ‘천(天)'은 그 자체로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국(戰國) 시대 말엽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자의 일갈(一喝)은 그 전조이자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이제 하늘은 늘 땅을 짝으로 요청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천지(天地)'라는 신종 담론이 대두하게 됩니다. 훗날 한(漢) 제국의 이념적 토대가 되는 이 담론은 자연히 천지지간에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사람에겐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역할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른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이런 관념의 발로였으니, 인격신의 관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람에게 무게중심이 쏠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문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상에선 한창 신의 의지를 인간화된 무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은밀히 수행되고 있었던 거지요. 히브리 사막에 바벨탑이 고도를 더해가던 그 무렵에 말입니다. 이 작업의 고도화된 형태가 바로 상형문자였습니다. 갑골에 새겨져 있던 그 무늬들 말입니다.
  지상의 인간들이 이처럼 독자적 질서를 구축해가고 있을 무렵, 동방의 하늘에선 우려의 목소리와 탄식의 씩둑거림이 꽤나 무성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뿌렸고 귀신은 통곡했다”(『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는 겁니다. 귀신의 통곡은 지상에서 더 이상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회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곡식은 왜 쏟아졌던 것일까요? 그런데 주석을 보면 귀신이 통곡한 이유는 회한 정도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창힐은 처음으로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보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 그러자 사기와 허위가 생겨났다. 사기와 허위가 생겨나자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뒤쫓으며, 농사를 버리고 송곳과 칼을 날카롭게 연마하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하늘은 인간이 굶주리게 될 것을 알고서 곡식을 뿌렸다. 귀신은 문서로 탄핵받을까 두려워 밤새 울었다.”
  서계, 즉 문자가 생겨나자 기만과 사기술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에 의한 귀신 경영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 해석은,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란 것의 본질을 다소 민망하게 짚어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문명과 문화에 공히 밑받침되어 있는 ‘문(文)'이라는 글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문이란 무엇인가
“文은 종횡으로 얽힌 무늬다.”(文錯畵也)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사전은 ‘文’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대 기물에서 이 글자는 주로 두 팔을 벌린 사람의 가슴에 어떤 문양이 그려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때의 문양으로는 ×, ∨ 형태가 일부 있고 대개는 남성의 심벌 모양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껏 의론이 분분합니다. 다만 ‘文’이 “사자(死者)의 미칭(美稱)으로 쓰였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찬미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혈액을 따라 빠져나간다는 당시의 믿음을 고려할 때, 시신의 가슴에 그려진 붉은 무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매개하는 영적 교류의 양식이자 이별의 양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의 ‘글월 문(文)’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일까요?
  비근한 사례들을 통해 이 점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요즘 유행하는 QR 코드 같은 걸 떠올리면 됩니다. QR 코드란 흑백의 격자무늬 패턴으로 정보를 나타내는 이차원 무늬의 그물이지요. 이 그물 속에 넣고 싶은 기본 정보를 다 넣을 수 있습니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이 코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대단히 아날로그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묘하게 신학적인 충동마저 들기도 합니다. 흡사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전자두뇌’ 같다고나 할까요. 이것의 어떤 측면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 ‘무늬’의 우주론적인 성격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사람의 몸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문신(文身)입니다.
  문신도 일종의 무늬입니다. 요즘은 일회용 문신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고대 사회에서는 장식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잔재는 아직도 ‘어깨’와 ‘덩치’ 들의 팔뚝이나 등짝에 남아 있거니와, 거기서도 왜 유독 호랑이와 용이 단골 메뉴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굳이 부연치 않아도 좋을 겁니다. 무력의 신성성을 강변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부적 역시 무늬의 일종입니다. 누런 바탕에 빨간 선의 이 무늬는 과학이라는 잣대에 의해 상당 부분 그 의미가 미신의 영역으로 추방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일부 식당의 문지방 위나 누군가의 지갑 속에서 풍요와 안녕의 염念을 담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시대 문화의 한 양식임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부적 열기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도장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날엔 서양식 사인 문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인감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둥근 도장에 붉은 인주’라는 관념은 아직도 생활세계 곳곳에 건재합니다. (따지고 보면 사인 역시 ‘신의 지문’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지요. 한글 도장과 한자 도장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그 사람의 존재성을 온전히 담아낼까요? 아마 대부분은 후자라고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흔히 ‘도장체’라 부르는 이 문자는 진(秦)나라 공식 문자인 소전(小篆)인데, 상형문자에서 기호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한 형태입니다. 바로 다음에 정립되는 예서(隸書)나 해서(楷書)에 비해 회화적 성격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런 만큼 그 주름에 존재의 흔적이 훨씬 더 진하게 각인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한글 도장이 왠지 밍밍하고 심심해 보이는 이유도 이 흔적의 결핍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명함만은 기어이 한자를 고집하는 기성세대의 취향을 시대착오라고 나무랄 일만은 아닙니다. 일종의 고전적 형태의 아바타(avatar)니까요.


문의 분화 양상
이런 점은 ‘文’의 의미 분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문자의 역사에서 ‘文’은 ‘紋’과 ‘彣’이라는 글자를 파생시키는데, 모두 ‘무늬’라는 뜻입니다. 다만 앞의 무늬에는 실이, 뒤의 무늬에는 깃털이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그 의미가 대개 ‘질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후자는 대개 ‘권력’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실이 갖는 맥락을 따라가볼까요. 원시 방직술의 기본 형태는 먼저 날실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그 끝에 방추차를 매단 다음 가로로 씨실을 얽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날실은 ‘경(經)'으로 씨실은 ‘위(緯)'로 불렸는데, 그러니까 경위란 직물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 얼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얼개는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도 경서(經書)가 있고 위서(緯書)가 있는가 하면, 세계지도를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이 바로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입니다. 왜 이런 계열적 질서가 만들어진 걸까요? 여기서 수직선인 ‘경’이 왜 ‘바이블’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지, 수평선인 ‘위’보다 왜 가치론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서양 문명 역시 글을 의미하는 ‘text’가 직물을 의미하는 ‘texture’와 같은 의미 계열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만은 짚어두기로 하지요.
  한편 깃털의 의미도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는 ‘왕(王)'은 머리에 쓴 깃털 모자를 본 뜬 글자로도 해석되는데, 이때의 머리 장식은 그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추장의 깃털 모자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오늘날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미(美)' 자 역시 사람(大)이 양가죽(羊)을 뒤집어쓴 모습이었으니까요. 중국 운남(雲南) 지방에 남아 있는 어느 암각화는 원시 마을의 일상과 권력관계를 생생히 보여주는데, 여기서 모자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합니다. 게다가 문명이 만개하면 할수록 모자는 더 크고 화려해지는데, 그리하여 마침내 ‘황’皇이라는 대형 모자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모자에 ‘황제’라는 의미를 덧씌운 사람이 진(秦) 시황제(始皇帝)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빛나는 무늬는 하늘과 인간 세계를 매개하는 권능을 상징하게 되었고, 이 상징은 곧바로 현실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엔 이 일련의 의미를 ‘문창(彣彰)'이라는 말로 포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彣彰’에서 오른편의 깃털을 떼어내어 보다 인간화된 무늬로 만드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文章)', 즉 우리가 쓰는 글이었던 것입니다.


인문의 자리
위진남북조 시대를 살았던 유협이라는 사람은 『문심조룡(文心雕龍)』이라는 최초의 문학 개론을 쓰면서 그 첫 문장을 이런 묘사로 시작합니다.
  무늬(文)의 속성은 지극히 포괄적이다. 그것은 천지(天地)와 함께 생겨났다. 어째서 그런가? 천지가 생겨나자 이어 검고 누름(玄黃)의 구분이 생겨났고, 둥글고 네모남(圓方)의 구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하얀 옥을 겹쳐놓은 것과 같아 하늘에 붙어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산천은 비단에 새긴 자수와도 같아 땅에 펼쳐진 형상을 나타낸다. 이 모든 것들은 대자연의 무늬다. 위를 쳐다보면 해와 달이 빛을 발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강이 아름다운 무늬처럼 펼쳐져 있으니, 이는 위아래가 확정된 것으로, 이로써 천지가 생겨난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어울릴 수 있으며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이들을 삼재(三才)라 부른다. 인간은 오행(五行)의 정화요 천지의 마음이다. 마음이 생겨나면서 언어가 확립되었고, 언어가 확립되면서 문장이 분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그러한 이치(自然之道)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 세상 만물에 확대해보면, 동식물은 모두 나름의 아름다운 색채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용과 봉황은 아름다운 무늬와 색채를 통해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호랑이와 표범은 그 얼룩덜룩한 무늬와 색채를 통해 위엄스런 풍채를 드러낸다. 구름과 노을에 새겨진 화려한 색채는 화가의 교묘한 채색보다 더 뛰어나고, 초목의 꽃들은 굳이 자수 기술자의 신비한 솜씨를 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모든 것들은 외부에서 가해진 장식이 아니다. 모두 저절로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文)가 없겠는가.(『문심조룡』 「원도(原道)」)
  이는 고대 문화사의 성장에 관한 아름다운 증언이자 유협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세계지도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혼돈의 세상 속에서 꿈꾼 이념적 지도입니다. 그는 이런 무늬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이 살아가는 난세를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글(文章)의 존재론적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전혀 없는 사물들에도 이토록 무늬가 찬란하거늘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무늬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이 한마디는 사람의 무늬, 즉 ‘인문(人文)’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심에 찬 모색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유협 시대의 이 무늬의 네트워크는, 송나라 때에 이르면 ‘리(理)’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맞이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치(理致)’, ‘도리(道理)’, ‘진리(眞理)’라고 할 때의 ‘리(理)’가 그것인데, 원래는 옥을 가공하기 전에 옥 자체의 결을 면밀히 살핀다는 의미였습니다. 흔히 ‘물결’, ‘살결’, ‘숨결’ 할 때의 ‘결’이 딱 이 의미입니다. 송나라 신진 사대부들은 이 ‘리’를 절대적 진리(天理)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동아시아 중세사에서 6백여 년간 누린 영광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문리(文理)’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 문명사에서 천문―인문―지리라는 우주론적 네트워크의 위상과 의미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의 무늬(天文)와 땅의 결(地理), 이를 사람의 무늬(人文)로 매개하고 전환하려는 모색의 과정이 곧 중국 문명이 걸어간 길인 것입니다.
  이 모색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떼던 그 지점에 무수한 뼈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늘의 의지를 아로새겨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문명사는 이들의 삶과 염원으로부터 성큼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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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모습은 기복과 호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적 차원에서, 후자는 사회적 차원에서 그러하다. 온전한 불교 정신을 절이 아닌 세상에서 삶으로 구현하려 시도하는 순간 불교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공격받기 일쑤다. 과연 붓다와 제자들이 만들고자 한 세상이 이러했을까. 박노자는 이런 한국 불교에 일침을 던지며 아집을 부정하고, 여기(아집)에서 비롯하는 국가, 자본주의, 제국을 해체하는 실천적 불교를 제안한다. 이는 초기 불교 정신에 대한 '해방적' 해석이자,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참 역할을 되살리는 시도다. 언제나 '아, 우리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감각을 명징한 논리로 깨우치는 박노자의 신작 <붓다를 죽인 부처>. 서문과 본문 일부를 공개한다.

 

 

서언 : 해방불교를 위하여!

대개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종교의 교리도 실천도 결국 해석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독교를 봐도 “재판관에게 가지 마라”, “부자가 낙원에 드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기보다 더 어렵다”, “땅에서 재물을 모으지 마라”와 같은 일종의 ‘고대형(型) 공산주의’를 방불케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쪽과, “종들이여, 주인들에게 복종하라”와 같은 부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쪽은 분명히 다르다.

전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레오나르도 보프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해방 신학’으로 귀결될 수 있겠고, 후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부자를 ‘축복받은 이’로 보는 순복음 교회 식 ‘부와 성공의 신학’으로 귀결될 수 있겠다. 해방 신학도 순복음 교회의 기복적인 성공 주의도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각자 나름대로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는 상반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종교를 이해하는 데 기본 경전 이상으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해석’이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초기 불교에 대한 ‘해방적’ 해석의 시도다. 우리 불교가 국가 내지는 지배계급과 유착한 역사가 이미 2,000년을 슬쩍 넘은 만큼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불교는 현실을 따라가며 인정하는 식이거나 지극히 개인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개인의 문제들을 모조리 개인의 악업으로 설명하는 등 탈(脱)사회화, 개별화되었고, 그 문제의 해결책 역시 개인적 차원의 ‘업장(業障) 소멸’에 그친다. 이렇다 보니 불교 하면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복을 비는 모습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런 현실 순응적, 개인 중심의 불교에서는 작복(作福), 즉 선업 쌓기도 결국 개인적 수행이나 신앙 행위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또한 불교의 대(對)사회적 측면 역시 현실을 무조건 긍정하고 재확인하는 ‘국가 수호’, 즉 소위 ‘호국’에 국한되고 만다. 그들에게는 ‘대입 기도’로 고생하는 학부모들도, 서울 삼각산 도선사 명부전에서 걸려 있는 고 박정희 부부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초상화도 별문제 될 것이 없다. 입시 경쟁도 개인의 신앙 행위(기도)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고, 권력이나 재력을 장악한 사람도 “선업을 잘 쌓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긍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아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죄 없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그 아이들이 당한 고통을 두고 스스로 지은 ‘악업’의 결과일 뿐이라 말하며 은근히 워싱턴의 살인마들에게 면죄부를 건네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혹은 입시 경쟁이라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을 두고 “악업을 지은 결과”라 정당화하면서, 고액 과외를 받은 강남 자녀의 ‘무사 통과’에는 “선업을 잘 쌓은 결과”라며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살인마들의 살육도, 소수 부유층 사이의 명문대 간판 대물림도 영구화되고 또 다른 이름 모를 무수한 타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안겨줄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일체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음)인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낳은 고통을 영구화한다는 것은 불교의 근원적 목표와 상반된다. 고통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고통을 이해한다면 이는 ‘나’와 우리 모두의 해탈을 궁극적으로 방해할 뿐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발생시키고 강화시키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나에 대한 집착인 아집(我執), 즉 ‘나’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별개의 것이라는 뭇 중생의 착각이다. 이 착각만큼 반(反)불교적인 것도 없다. 나와 너, 세계가 따로 없으며 모든 것이 상즉상입(相即相入: 모든 현상은 상호 융합되어 있고 인과관계를 이룸)한다는 불교적 진리의 차원에서는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간 아이들도 바로 우리고, 그들이 겪는 고통도 바로 우리의 고통이다.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개인의 악업으로 인한 결과라기보다 우리 모두가 만든 집단적 악업의 업보(業報)다. 인류가 아직도 제국주의라는 괴물을 청산하지 못하고 합리화하고 순응한 결과, 이 괴물은 지금 아프간이라는 머나먼 지구의 한구석에서 우리들의 분신(分身)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입시 경쟁이라는 이름의 지옥도 경쟁의 당사자인 학생 개개인과 학부모들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위계서열을 받아들이고 그 서열을 매기는 기준으로 학벌 자본(academic capital)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 악업인 셈이다. 이 악업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불교적 실천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불교적 실천이란 결국 ‘국가 수호’의 정반대라고 할 우리의 아상․아집에 대한 부정 및 해체며, 거기서 시작되는 국가와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부정 및 해체의 작업이다. 이것이야말로 중생이 겪는 수많은 고통의 상당 부분을 덜어줄 수 있는 집단적 치유의 길이며 집단적 선업을 쌓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해탈과 병행될 수 있는 ‘더불어 하는 수행’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와 사회의 세포 하나하나를 갉아먹는 암(癌)과 같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폐해에 대항해 혁명적 투쟁을 벌이는 것도 집단 전체를 위한 해탈의 경험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혁명이 어려운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우리의 해방을 준비하는 모든 행위가 집단적 치유를 위한 길이라 할 수 있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집회에 참석한다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구체화하여 발표하고 읽는 등의 지적 작업 역시 집단적 해탈을 향한 수행의 일종이라 하겠다.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반대로 어쩌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행동에 동참하며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배우고, ‘남’을 나 자신보다 앞에 두며 나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바로 여기서 자아와 타자의 경계선이 지워지고, 우리의 ‘자아’가 궁극적으로 망상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자아도 타자도 궁극에 가서는 없으며 나만의 행복도 나만의 해탈도 무의미하게 된다. 하화중생(下化衆生: 중생을 교화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어떤 깨달음도 이기적인 정신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중생의 모든 고통이 나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불교의 영혼은 도망가고 없다.

‘해방 불교’에는 사찰도 불상도 기도도 필요 없거나 이차적이다. 해방 불교는 부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되는 것이다.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임하고, 고통의 원인을 파헤치며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치유한다. 고통의 원인을 식별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우리가 현대를 사는 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에 의존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이 작업의 근저에 흐르는 정신은 지난 2,500년 동안 바뀐 게 없다. 자아의 경계선을 넘는 자비의 정신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다. 

  

9장. 한국불교, 전통이 아니라 시대를 만나라

해방적 색깔에서 방편론으로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으로 보면, 오늘날의 폭력적인 현실은 과거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업설’이나 최악(最惡)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방편적으로 ‘차악(次惡)’을 임시적으로 인정해 이용하는 지혜는 분명히 불교의 태생적인 장점일 수 있다. 그런데 단점은 바로 이런 장점의 연장에 있다.

인도의 종교문화 풍토에서 수행자는 보통 특권계급 출신이며, 전사회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아울러 국가·지배체제는 사회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정신적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이런 풍토에서 현실을 방편적으로 수용할 것을 전제로 한 종교운동은 국가·지배체제와 유착할 여지를 언제든지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 운동을 지휘하는 ‘스승’의 의지였다.

붓다 자신과 일부의 직계 제자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부 수행자들은 불평등과 폭력이 없는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들은 속인(俗人)들이 불평등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염원했다. 초기 불교를 보면 그 시대로서는 보기 드문 ‘해방적 색깔’이 뚜렷하다. 바로 이 ‘해방적 색깔’은 불교가 민중들로부터 빠르게 인기를 얻는 기반이 됐다.

그러나 진정한 ‘해방에의 의지’를 갖고 있던 초기 지도자들이 사라진 뒤에는, 현실과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방편론’ 등이 불교가 발빠르게 ‘국가 종교화’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턴 역사적인 상황에 따라 불교 교단의 현실에 대한 순응 형태가 바뀌었을 뿐, 그 이론적인 ‘뼈대’는 그대로 이어졌다. 법현 등 중국 구법승求法僧들이 목격한 소작인들을 부리는 부유한 인도 사찰의 권위주의적 승려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초호화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사찰의 고용자들에겐 노조조차 허용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스님들도 외형적인 모습은 다를지언정 그 생활태도나 이론적인 토대는 같다.


 

불교의 원칙대로

국가의 뜻을 거스를까 염려해,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진실한 불자다운 실천까지 불인(不認)하는 승단(僧團)의 태도를 고치려면 재가 신도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이론적인 기반을 갖춰야 할까? 오늘날 서구에서 “교황보다 더 독실한 가톨릭(More Catholic than the Pope)”이란 말은 지나친 종교 열(熱)을 조소하는 속담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붓다 후대의 제자는 어떤 면에서 붓다 자신보다도 붓다가 제시한 근본 원칙에 충실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붓다가 제시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무엇일까?

불교의 ‘제법무상(諸法無常)’은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쉴 새 없이 달라지고 바뀌고 탈바꿈하는 만큼, 불변하며 고정된 대상물이란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무아(無我)’는 ‘나’라고 보이는 주체 역시 갖가지 요소와 인연이 일시적으로 합쳐져 만들어진 늘 고통받고 바뀌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 둘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자 원리다.

주체와 대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연’에 따라 늘 유동적으로 바뀌면서도 고통을 면하기 어려운 속세에서는 누구의 이름으로도 자신과 남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주어선 안 된다. 어떤 국가, 단체, 운동이 ‘폭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결국 언젠가 그들의 이념이 허구였음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새로운 고통을 추가시킨 행위는 ‘나쁜 원인(惡因)’이 되어 폭력행위자를 비롯해 모두에게 ‘나쁜 결과(惡果)’를 가져다줄 것이다. 수탈기구로부터의 민중 방어라는, 특정 상황에서 진보운동가들이 피하기 어려운 ‘민중 방어적 폭력’이라 하더라도 불가피한 차악은 될 수 있을망정 선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방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더라도 그 폭력의 나쁜 결과를 인식하고 이를 중지시켜 비폭력적으로 대체 할 수 있는 길을 열심히 찾아야 할 것이다.

‘민중 방어적 폭력’도 나쁜 원인을 피하기 위해 출구를 급히 구해야 하는 ‘길이 막힌 골목’이지만, 자본이 부추기는 경쟁이나 국가가 유지시키고 훈련시키는 군대와 같은 억압적인 상설 폭력기구들은 ‘나쁜 원인’ 이외에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국가(특히 군대 당국)와 자본 등 사회적 고통을 제공하는 자들과의 유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교는 죽은 불교다. 그리고 “어머니가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는 붓다의 말씀을 실천할 하등의 능력도, 의지도 없는 불교 역시 죽은 불교다.

붓다가 기존 사회질서와 타협한 부분, 현실에 순응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은 붓다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이자 귀족 출신 남성으로 태어난 붓다 자신의 한계다. 이 한계가 붓다의 기본 교리와 충돌할 경우 우리는 근본 교리의 정신을 선택해, ‘악의 씨’이며 제도화된 폭력으로 기능하는 국가나 소외된 노동을 잉태하는 자본에 대해 비타협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명분과 필요가 있다. 불교 교단이 붓다의 원리를 진실로 실천하려면, 양심적 병역거부, 붓다 자신도 평등한 분배의 전제 조건으로 주장한 부유세 도입, 고질적 불안감이라는 최악의 고통을 심어주는 고용의 비정규화에 대한 반대 투쟁과 대책을 적극 지지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 아힘사(비폭력)는 자본주의적 국가 사회의 제도화된 폭력을 무저항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불교의 아힘사는 제도화된 폭력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이다. 붓다와 그 후대의 제자들이 이와 같은 투쟁을 소홀히 하거나 아예 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정신과 가르침을 배반하는 그들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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