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헤겔이라는 거목이 독일 출신이어서 그런지, 철학 하면 독일, 독일 하면 철학을 떠올리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도 그런가 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독일 철학사를 다룬 책을 찾아보면 대략 이 정도인데, 앞서 말한 명성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던 차에 잘 알려진 독일 현대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부터 현대의 요나스와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독일어로 수행한 독일 철학의 역사 전체'를 정리한 <독일 철학사>를 썼고, 곧 한국어판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도착해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입수했다. 옮긴이의 말 일부로 비토리오 회슬레가 누구이면, 이번 책이 어떤 내용인지 간략히 소개하고, 본문 1장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독일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를 미리 공개한다.

 

 

 

 

 

 

 

 

 

 

 

 

 

 

[옮긴이의 말]

비토리오 회슬레는 누구인가?

저자 비토리오 회슬레는 1960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나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진리와 역사—파르메니데스에서 플라톤까지의 발전에 대한 범례적인 분석에 비추어본 철학사의 구조에 관한 연구〉(1984)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이〈진리와 역사〉로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로부터 “2500년 서양 철학사에서 드물게 나오는 천재”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후 뉴욕 신사회연구소의 교수, 에센 대학의 교수 및 하노버 철학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노터데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3년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 아카데미에 초빙을 받기도 했다.
  회슬레는〈진리와 역사〉이후 교수 자격 취득 논문인〈헤겔의 체계—주관성의 관념론과 상호 주관성 문제〉(1988)를 비롯해《생태학적 위기의 철학—모스크바 강연》(1990),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1990), 《근대 세계에서의 실천철학》(1995), 《철학사와 객관적 관념론》(1996), 《도덕과 정치—21세기를 위한 철학적 윤리학의 기초》(1997), 《객관적 관념론, 윤리학, 정치학》(1998), 《철학과 과학》(1999), 《플라톤 해석》(2004), 《철학적 대화—시학과 해석학》(2006), 《이성으로서의 신》(2013) 등의 수많은 저서와 편저서 그리고 논문과 강연을 통해 이론철학과 실천철학, 철학의 역사, 철학적 신학, 과학과 예술을 비롯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펼치고 있다. 회슬레의 저작은 대부분 출간하자마자 유럽과 미국의 철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여러 언어로 옮겨졌으며, 몇몇 경우에는 회슬레의 주장을 주제로 연구 논문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회슬레의 저서와 논문으로는《죽은 철학자들의 카페》(김선희 옮김), 《헤겔과 스피노자》(이신철 옮김), 《환경위기의 철학》(신승환 옮김),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이신철 옮김), 《헤겔의 체계 I》(권대중 옮김),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나종석 옮김),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이신철 옮김)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회슬레의 철학 사상에 대한 여러 연구 논문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옮긴이는 지금《철학적 대화》를 번역하고 있는데, 방대하고 난해한 저작이긴 하지만 하루빨리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독일 철학사》개괄
회슬레는 이《독일 철학사》에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독일 철학의 역사에 대한 개관을 제공한다. 요컨대 독일 철학사의 진행을 유럽에서 이뤄진 그 밖의 철학사와 분리하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정당한지에 대한 물음을 해명하는 데서 시작해 몇 세기에 걸친 철학의 도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원전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독일 철학 전체에 대한 해석인데, 옮긴이가 알기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부터 현대의 요나스와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독일어로 수행한 독일 철학의 역사 전체에 대한 서술은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철학사 구상의 전개다.
  회슬레의 이러한 새로운 독일 철학사 구상에 따르면, 독일 철학의 특수한 도정은 중세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서 종교 개혁을 통해 새로운 강조점을 제시하는데, 종교 개혁은 바로 그것이 지닌 반-철학적 논점으로 인해 사유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며 독일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는 철학과 문헌학의 결합을 산출한다. 라이프니츠와 칸트 그리고 18세기 후기 정신 과학의 정초는 피히테와 셸링, 헤겔의 독일 관념론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의 전제이다. 독일 관념론에 이어 쇼펜하우어,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및 지금까지의 이성 형이상학의 급속한 해소가 뒤따르며, 프레게와 논리실증주의, 신칸트학파와 후설 현상학에서의 철학의 새로운 근거짓기는 20세기 초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도로 서술된다. 그에 이어 20세기 전반부의 국가사회주의 철학(마르틴 하이데거, 아르놀트 겔렌, 카를 슈미트)과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 독일연방공화국의 철학(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카를-오토 아펠, 위르겐 하버마스 그리고 한스 요나스)이 따라 나오는데,‘독일 정신’의 역사 전체에 대한 회고로 이해할 수 있는 이《독일 철학사》는 흥미진진한 서술과 핵심을 찌르는 판단을 결합하는 가운데 마침내 21세기에 독일 철학의 생존과 관련한 조심스러운 회의로 끝을 맺는다.

 

 

 

[1장.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독일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아이는 독일인이 작가와 사상가의 민족이라는 것을, 최소한 그랬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 철학은 전 세계에 독일의 음악과 문학작품 못지않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물음에‘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독일어로 말하는 수많은 철학자가 존재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들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이 P로 시작되는 수많은 철학자가 존재하지만, ‘이름이 P로 시작되는 철학자들의 역사’는 특별히 의미있는 기획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거기에는 정신적 유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개별적 대상, 가령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적인 것과 논리 정연한 발전을 인식함으로써만 그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다수의 사람이 공동 주제로 연계되어 있어야만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8/7∼BC 348/7)에서 프로클로스에 이르는 고대 플라톤주의의 역사는 플라톤에 대한 특수한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 및 제도와 구별되는 사람과 제도의 역사다. 그러나 모든 독일 철학자에게 그리고 오로지 그들에게만 공통된 어떤 것, 예를 들어 하나의 방법과 하나의 주제가 존재하는가? 최소한 독일 철학의 발전은 고유한 법칙을 지닌 자기 내부에서 완결된 생기 사건이었는가?
  마지막 물음에서 시작하자면, 대답은 명백히 부정적이다. 철학사에서 의미와 연관을 추구하는 사람, 철학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유럽 철학사를 하나의 통일로서 고찰해야만 한다. 〈근세철학의 역사에 대하여(Zur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라는 자신의 1827년 뮌헨 강의를‘철학에서 국민적 대립에 관하여 ’라는 장으로 끝을 맺은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은 분명히 종교적 진지함과 선험주의(Apriorismus)를 독일 철학이 두 개의 매우 중요한 이웃 철학, 그러니까 프랑스 철학 및 영국 철학과 구별되는 점으로 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참으로 보편적인 철학은 하나의 개별 국민의 소유물일 수 없다. 어떤 하나의 철학이 여전히 참된 철학이 아니라고 가정해도 좋을 것이다.”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 1770∼1831)과 셸링을 프랑스에 알린 프랑스 철학자 빅토르 쿠쟁은 애국주의적 촌뜨기들로부터 적을 조국에 끌어들인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 정당하게도 철학에는 진리 이외에 다른 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는 카탈루냐 사람 라이문두스 룰루스 없이는,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는 프랑스 사람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와 네덜란드 사람 바뤼흐 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없이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스코틀랜드 사람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과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사람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이 세 사람 모두는 서로 다른 형식으로긴 하지만 고대 철학의 고유한 사유와도 관련이 있었다. 아니, 그리스도교 중세 철학과 관련해서는 이슬람과 유대 사유의 영향도 중요했다. 이를테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28)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와 똑같이 자주 마이모니데스 및 아베로에스와 대결하지만 또한 페르시아 사람 아비켄나와도 대결하며, 지구화한 우리 세계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보다 더 자주 다른 문화권의 사상가들에 대해 논의한다. 요컨대 독일 철학의 고유한 역사를 박제화하는 것은 사유의 세계 공화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시 연관들을 보지 못하게끔 하거니와, 그렇게 만들어진 독일 철학의 역사는 분명히오직 세계 수학의 비자립적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는 독일 수학의 역사와 비슷하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독일 철학자들에게만, 또는 최소한 그들 모두에게만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확실히 18세기의 독일 철학 거의 전부는 계몽(Aufklärung)의 결정적 이념을 수용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의식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계몽은 그 분야 최고의 새로운 역사학자인 조너선 이즈라엘이 보여주었듯 철저히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그러한 이념은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향작용사적인 연관과 실재적인 이념사적 상호 관계는 여러 국민을 포괄했다. 역으로 개별적인 독일 철학자들은 서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가령 무엇이 칸트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결합하는가? 두 사람 각각을 흄과 결합하는 것이 둘을 서로 결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러므로 ‘독일 철학(deutsche Philosophie)’이란 다름 아닌 정신적으로 수준 높은 동일성을 창출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과 독일 국민국가의 욕구에 힘입은 인위적인 구성물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떠오른다. 《독일 정신과 기지(Deutscher Sinn und Witz)》(1828)나 《독일 고전 사상가들의 정신(Geist deutscher Klassiker)》(1850)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이 19세기 전반부에는 여전히 드문 반면, 그 세기 후반부에는 독일 통일과 관련해 늘어나고〔《독일 정신과 독일 검(Deutscher Geist und deutsches Schwert)》(1866), 《엘자스의 독일 정신과 독일 특성(Deutscher Geist und deutsche Art im Elsass)》(1872), 《독일심정과독일정신(Deutsches Herz und deutscher Geist)》(1884)〕20세기 전반부에는 그야말로 홍수를 이룬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독일 정신을 추구한 것은 우리가 오늘날 기껏해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만 다루는 책들, 이를테면 히틀러를 후원하고 그에게서 경탄을 받은, 유대인 출신의 잘 알려진 반유대주의자 아르투르 트레비취의 《독일 정신 또는 유대교: 해방의 길(Deutscher Geist—oder Judentum: der Wegder Befreiung)》(1919) 같은 책들뿐만이 아니다. 아울러 에른스트 트뢸취와 한스 바론 그리고 에른스트 로베르트 쿠르티우스 같은 뛰어난 학자들도 독일 정신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그사이 독일 정신을 다룬 저술이 뜸해진 것은 단지 국가사회주의의 재앙하고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재앙 이후 독일 정신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기록은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Doktor Faustus, das Leben des deutschen Tonsetzers Adrian Leverkühn, erzählt von einem Freunde)》(1947)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유럽연합 같은 초국가적 통일체가 형성되고 그 본질이 지구화인 시대의 자기 이해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획기적인 전환은 다만 오늘날의 독일 철학에 대해 일군의 외면적으로 결합된 대상들 그 이상인 독자적 형성물로서 언급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런 점이 또한 과거에 대해서도 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독일 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다면 바로 그게 과거의 것인 까닭에, 이제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좀더 먼 거리와 객관성을 가지고 추적할 수 있다. 사실 중세 말 이래의 다양한 서유럽 문화를 연구하는 정신사학자는 몇몇 유럽 문화에서 세계에 대한 일정한 문제 제기와 접근 방식이 다른 문화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쉽지 않다. 분명 모든 문화에는 항상 다른 문화의 주된 흐름에 자신의 것에 대해서보다 더 가까이 놓여 있는 예외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의 문화에 종종 다른 문화의 그것과는 다른 세계관적 주된 흐름 같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다. 이런 점은 바로 곁의 이웃보다는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자주 의사소통하는 인터넷 시대에는 급속히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술 문화에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들과 정신적으로 결실 있는 모든 직접적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런 점은 다수의 그러한 상호 작용에 대해 또한 문자성(文字性)의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아니 20세기에 들어서까지도 타당하다. 확실히 다른 문화에서 온 책과 다른 나라 학자와의 편지 교환은 중세와 근세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는 자기 문화에 속한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에 비해 양적으로 열등하다. 아니, 근세 역사가 결코 정신적 지구화의 연속적 증대에 의해 규정받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중세와 비교해 근세의 특징을 이루는 의사소통과 운송 수단의 진보에는 다른 한편으로 중세와 근세 초기의 공동 학문어(Wissenschaftssprache)인 라틴어의 상실이 맞서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학문어인 영어의 발생 덕분에 현대는 많은 측면에서 19세기보다 중세에 더 가깝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흄은 독일어를 못했고, 칸트는 영어를 못했다. 1820년대에도 오로지 아주 소수의 영국 지식인만이 독일어를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근대 언어 중에서 프랑스어는—물론 중세의 라틴어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지배적이지는 않았지만—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교양인들의 공용어였다. 어쨌든 에드워드 기번도 자신의 첫 번째 책을 프랑스어로 썼다. 흄이 비로소 자기의 주요 저서를 영어로 집필해야겠다고 확신한 것은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후 영어의 중요한 미래를 예언한 셈이다. 국민이 일차적 동일성 요소로 떠오름에 따라 의도적으로 강화된 언어 장벽이 국민국가의 시기에 철학적인 국민 문화를 산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연적이다. 이런 점은 철학이 복잡한 방식으로 전체로서 문화와 결합되어 있는 만큼 더욱더 그러하다. 왜냐하면 개별 인간의 최종 목표의 해명은 물론 집단의 그것도 철학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의 계몽철학이 분명히 유럽의 계몽철학과 공동의 특징을 지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독일어 사용을 넘어서 그것을 이웃 나라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특수한 형태화를 획득했다는 작업가설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런 점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독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인구가 가장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종교적 신앙 고백, 즉 독일 정신을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게 주조해낸 루터교 출신인 만큼 더욱더 개연적이다. 그들의 성장 배경인 루터교는 또한 칸트와 니체에게 공통된 특징 가운데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앞의 사상가로부터 뒤의 사상가로의 이행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유일한 징검다리 인물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독일인이었다.〔독일 정신을 형성한 루터교의 엄청난 중요성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종종 베를린에서 지냈고, 가령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독일어로 인용한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를 편입할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키르케고르는 독일어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특수하게 덴마크적인 환경에 대한 지식 없이 오로지 칸트와 헤겔만을 다시 수용해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이 책의 관심사를 설명했다. 목표는 독일 철학에 대한 간결한 개관, 이를테면 항공사진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러면서 이 철학을 다른 유럽 국민의 철학과 구별 짓는 특유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 정신에는 결정적으로 정신 개념(Geistbegriff)에 대한 추사유(Nachdenken)가 속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일 철학의 모든 전환에서는 그것 없이는 역사를 현실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럼직한 발전 노선이 명백해야 한다.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독자는 일차적으로 전문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교양 시민이다. 이 책은 예를 들어 수학자와 법학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까닭에, 그때그때마다 그런 분과에 속하는 어떤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해를 포기했으며, 비록 내가 이차 문헌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인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용문의 정서법을 현대화했다. 사후에 출간한 텍스트의 경우 비록 잘 알려져 있는 제목이 나중의 사람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잘 알려진 제목에 따라 인용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박식한 세부 사항이 아니라 커다란 노선이다. 독자는 이차 문헌의 또 다른 책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독일 철학의 고전적 사상가들 자체에 대해 읽도록 고무되어야 한다. 내게 본보기가 된 것은 하인츠 슐라퍼의《독일 문학 소사(Die kurze Geschichte der deutschen Literatur)》(2002)였다. 물론 나는 항상 하인리히 하이네의 따라잡기 어려운 천재적 저작《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Zur Geschichte der Religion und Philosophie in Deutschland)》(1834)를 염두에 뒀다. 하겐 슐체21의 뛰어난 역사학적 논고《도대체 독일 역사는 존재하는가?(Gibt es überhaupt eine deutsche Geschichte?)》(1998)가 지금 이 1장에 미친 영향은 명백하다. 내 책은 철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제하지 않으며, 복잡한 기술적 논증에 대한 서술을 의식적으로 포기한다. 철학에서는 그러한 논증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러한 논증도 문제되는 까닭에, 이 책은 철학사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념사학적이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철학이 불러일으키거나 개념화한 의식사적 변화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책을 독문학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여기서 독문학(Germanistik)은 단순히 독일 문학만이 아닌 독일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학문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또한 언제나 거듭거듭 독일 문화의 다른 성취, 특히 다른 문화의 그것과 다르고 독일 철학과 어렵지 않게 연관시킬 수 있는 문학과 정신과학의 다른 성취도 참조한다. 그에 못지않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독일 철학사와 정치적 역사의 연결이다. 독일 정신의 종교적 전제는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데, 나는 독일 신비주의로부터 종교개혁으로의 도정과 루터교의 고전 독일 철학으로의 변형 및 19세기에 이루어진 독일의 탈그리스도교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 책은 또한 서유럽 근세의 틀 안에서 독일 문화의 특수한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이것으로 짧은 이 개관을 규정하는 두 가지 선택 기준 가운데 하나를 언급했다. 그러나 무엇이 독일 철학의 특수한 도정을 해명할 수 있는 저작들을 선택하는 출발 자료인가? 도대체 무엇을 독일 철학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이 단순한 물음의 어려움마저도 독일이 뒤늦게야 정치적으로 통일되었다는 점, 아니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일연방공화국 외부에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독일어를 말하는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결합 지절로서 언어에 관해 말한 것에 근거해 내게는 언어가 가장 중요한 정의 기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물론 첫째, 오스트리아 철학자들도, 심지어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처럼 독일어로 저술하는 헝가리 철학자까지도 독일 철학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둘째, 오늘날에는 독일에 속하지만 그들의 시대에는 독일 민족의 신성로마제국 일부인 영토에 살았던, 오로지 라틴어로만 저술한 철학자를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독일 출신 중세 철학자 중 압도적 다수가 여기서 의미하는 독일 철학에 속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이념에 따라 고유한 하위 그룹을 형성하기에는 다른 중세 철학자들과 충분히 구별되지 않으며, 또한 고전 독일 철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독일의 철학적 언어를 최초로 창조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중요한 예외다. 따라서 여기서 의미하는 독일 철학은 주로 1720년부터 2000년까지의 시대를 아우른다. 나는 1770년부터 1930년까지의 특별히 혁신적인 시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물론 나는 분명 일차적으로는 독일어로 저술했지만 그와 더불어 때때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특히 격식을 차린 학문적 기회에 여전히 사용한 오랜 학문어인 라틴어와 유럽의 문화어인 프랑스어 또는 새로운 학문어인 영어로 쓰기도 한 사상가들의 비독일어 저작도 언급했다. 칸트의 라틴어 저술이나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의《철학의 빈곤(Misère de la philosophie)》(1847) 그리고 한스 요나스(Hans Jonas, 1903∼1993)의《생명의 현상(The Phenomenon of Life)》(1966)은 모두 독일 철학사에서 분리할 수 없다. 라틴어로 쓴 자격 논문은 독일 대학의 본질적 구성 요소였다. 프랑스, 벨기에, 영국으로의 망명과 프로이센 국적 포기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계속해서 독일 문화에 뿌리박고 있었다. 아울러 독일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지막으로 요나스는 앞서 언급한 자신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협력했으며, 마침내 자신의 마지막 위대한 저작을 모국어로 저술했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나는 단지 이따금씩만 독일어로 글을 쓴 두 철학자를 여기서 다뤘다. 한 사람은 자신의 저작 대부분을 (학문적인 대중이나 학자는 아니지만 교양을 갖춘 대중을 위해)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저술한 라이프니츠다. 왜냐하면 그의 사유는 칸트 철학의 출발점을 형성하며, 아니 누구보다도 라이프니츠에 의해 고무된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가 독일의 철학적 전문어를 형성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정의한 언어적 의미에서 독일 철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도저히 건너뛸수 없었다.
  사람들은 만약 우리가 언어적 기준 대신 영토적이거나 민족적 기준을 근저에 놓는다면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쿠자누스와 라이프니츠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독일어가 그들의 모국어였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가 본래의 프로이센이 속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를 결코 밟아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전적으로 도외시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준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위적 경계를 긋고 있다는 반론을 반복할 수 있다. 국가를 포괄하는 공통된 학문어가 존재하는 한 정치적 형성물에 따른 경계 긋기는 대단히 자의적이다. 독일 철학자들을 결합해주고 또 사람들이 독일 정신의 개념을 추구할 때 염두에 두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추정은 어떤 인과적 메커니즘이 이 정신의 주창자들을 결합할 때에만 처음부터 잘못이 아니거니와, 그러한 것은 언어에 의해, 그것도 철학에서는 모국어가 아니라 학문어에 의해 가능해지는 특별히 집중적인 수용이며 아울러 계속해서 그러하다. 존재론적으로 일차적인 것은 민족이 아니라 개인과 그들의 (사실상 종종 사회적으로 공유한) 속성이다. 오로지 공동의 언어적, 종교적, 정치적 지배 같은 사회적으로 공유한 속성의 증대에 근거해서만 민족 같은 어떤 것을 형성할 수 있으며, 또는 그것들이 쇠퇴할 경우 다시 해소될 수 있다.
  우리는 독일의 역사를 1871년의 독일 통일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1800년 이래로 강력한 독일 국민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많은 이들이 공동의 국가를 열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한편으론 이웃 나라들의 발전에 의해 환기되었고, 다른 한편으론 가령 1760년 이래로 독일어권 문화가 그것을 다른 유럽 문화와 구별해주는 길을 발견했다고 하는 느낌을 표현했다. 이 새로운 길은 독일 역사의 이전 시기를 다시 수용함으로써 생겨난 게 아니었다. 독일 중세나 심지어 초기 게르만에 대한 포괄적 관심은 19세기에야 비로소 이뤄졌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중고지 독일어(mittelhochdeutsche) 문학보다 그리스, 라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문학에 대해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잘 알았다. 아니, 그는 엄청나고도 천부적인 언어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중고지 독일어 읽기를 배우는 수고를 무시했다. 독일 정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도발적으로 그것이 1750년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그 이전 것 위에서, 특히 루터교 위에서 구축되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비록 루터교가 종교적인 것을 중세에는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국민적인 것과 결합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운동이며 단지 이차적으로만 국민적 운동이었다. 독일 정신과 관련해 여기서 주장하는 연대는 또한 외부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19세기 초 이후에야 비로소(1813년 독일에 관한 스탈 부인의 유명한 책이 출간되었다) 유럽은 단지 중세의 숭고한 유물인 신성로마제국의 전통적 담지자로서 독일 민족에 대해서가 아니라, 특수하게 독일적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독일이 프랑스, 에스파냐 또는 영국의 양식에 따른 근대 국민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그토록 어렵게 만든 것은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담지자라는 그러한 영예로운 특수 역할이었다. 독일은 제국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다른 커다란 국가들과 전적으로 동일하게 정치적이었다. 유럽연합의 시민인 우리가 오늘날 국민국가의 시대보다 더 많은 존경의 눈길을 지니고 바라보는 제국의 그리스도교-보편주의적 기획은 독일이 가령 프랑스나 영국보다 더 강력하게 과거에 사로잡히는 동시에 유토피아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뒷받침했다.
  만약 우리가 세계 발전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중심이 2500년이 지난 후 유럽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21세기 초에 지난 천년을 되돌아본다면,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유럽의 커다란 국민들 가운데 독일이 일정한 정신적 헤게모니를 행사한 마지막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전성기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유럽의 주도적 문화였다. 16세기에는 에스파냐가 지도적인 힘이었다. 17세기에는 우위가 프랑스로 넘어갔으며, 프랑스는 물론 18세기에 영국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중요한 조역을 담당했다.) 각각의 국민 문학에서 정점으로 여겨지는 다른 유럽 국민의 저술가들은 단테처럼 중세에서나 카몽이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처럼 근세 초기에서 유래한다. 그에 반해 독일은 16세기에 극문학에서는 한스 작스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1800년경에야 비로소 문학적 걸작들을 산출했다. (오직 러시아만이 그보다 더 늦게 따라왔다.) 독일 문화의 역사는 최소한 문학과 철학에서는 가장 뒤늦은 서유럽 문화의 역사다—조형예술에서는 틸만 리멘슈나이더와 알브레히트 뒤러가 1500년경 최상의 것을 성취했으며, 하인리히 쉬츠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7세기와 18세기 초 독일 음악에 세계적 가치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빛나는 문학적 성취와 철학적 성취의 동시성에 고전 독일 철학의 특수한 매력을 위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놓여 있다. 이 철학은 그 시기의 다른 유럽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과학과 계몽의 문제 지평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의 이웃 나라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본원적 위대함을 지닌 문학의 형성과 동일한 시점에 전개된다. 처음에 인용한, 작가와 사상가의 민족으로서 독일인이라는 널리 회자되는 말은 물론 독일인의 높은 교양 수준을 일반적으로 특징짓기 위해 19세기에야 비로소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 말이 철학적 발전과 문학적 발전의 밀접한 결합을, 즉 이러한 형식으로는 이전에 오직 그리스에서만 존재했고 헤겔과 셸링 그리고 횔덜린32의 청년기 우정이 본보기로 보여주는 그러한 결합을 지시한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더 이상 유럽의 것이 아닐 천년의 첫머리에서도 어째서 독일 철학사의 새로운 이야기가 의미 있는지에 대한 본래적 근거는 오로지 그리스인들의 그것만이 능가할 수 있는 이 철학적 전통의 비상한 질이다. 물론 이는 강력하지만 거친 가치 판단이므로 독자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즉 독자는 이 책에서 독일 철학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겠지만, 반은 에세이고 반은 역사학인 이 책은 독일 철학을 의식적으로 그 정점으로서 독일 관념론에 비추어 해석하며, 불가피하게 지금 이 저자의 철학에 의해 각인되어 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선택해야만 하거니와, 내 두 번째 선택 기준은 사실상 철학의 질이다. 여기서 완전성은 결코 추구하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것들에 집중하고자 하며, 그저 자신의 시대에서만 영향력이 컸던 학교 철학자들을 무시하고자 한다. 호라티우스가 시인들에 관해 말하는 것, 즉 사람들도 신들도 그들에게 평범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더 높은 수준으로 철학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게다가 오로지 고전적 사상가들만이 세대를 포괄하는 독일 문화를 형성했다. 여기서는 오로지 중요한 통찰을 획득했거나 최소한 독일 문화의 특성에 빛을 비추어 그들이 없다면 독일 문화의 발전 과정이 그럼직할 수 없는 사상가들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한 철학자의 중요성을 이루는가? 철학은 진리와 관계하며,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는 한 철학자가 처음으로 일정한 진리를 인식했을 때 그에게 높은 지위를 돌린다. 그러나 동시에 철학은 아주 복잡한 시도이고 그 속의 진리는 무언가 아주 다층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한 철학자가 물론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서 밝혀졌지만 오직 바로 그것에 관여하고자 한 그의 용기 덕분에 그렇게 밝혀진 사상을 끝까지 사유했을 때에도 그를 중요한 철학자로 인정해야 한다. 현상의 발굴, 자기 시대를 개념화하는 능력, 철학적 타당성 요구에 대한 반성, 개념 형성의 섬세함, 논증 분석의 정확함, 학문의 성과에서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간취, 현실의 다양한 영역 간의 다리 놓기, 짜임새 있고 많은 경우 문학적으로도 빛나는 텍스트의 저술은 그 모두가 오로지 드물게만 통합되어 나타나는 철학적 덕목이다. 정의(Gerechtigkeit)는 위대함을 많은 경우 방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서로 정반대인 두 사상가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가치 판단은 불가피하게 주관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확신은 그 자체가 나중에야 비로소 형성된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다. 최소한 독자는 이 책의 끝에서 어떻게 그러한 확신에 도달했으며, 왜 그것이 자명하지 않은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저자의 주도적인 인식과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런 독자에 대해서는 그것이 철저히 개인적인 것임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독일어를 외국어로 배웠으며 독일의 언어, 문학, 철학 그리고 정신과학에 대한 열광적인 습득은 내가 루터교 종교 교육을 향유한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채웠다. 10여 년 전 이래로 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과 결혼해 살며 미국의 유수한 가톨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독일에 대한 나의 눈길은 더 이상 내부적인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물음, 즉 어떤 요인이 독일 철학을 인류사에서 두 개의 가장 매혹적인 철학 중 하나로 떠오를 수 있도록 했는가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933∼1945년의 도덕적-정치적 대재앙이 생겨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외국인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회슬레와 내 친구들인 칼 아메릭스, 롤런드 갈레 그리고 특히 노터데임 고등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지내는 동안 비판적으로 읽어준 케어스텐 더트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 여기서도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는 만큼 성공한다>로 한국 사회에 번뜩이는 제안을 하며 본격적인 저작활동을 시작한 김정운 전(前)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며 파격을 선보였고, 이후 각종 방송과 대중 강연으로 머리 스타일만큼이나 발랄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꾸준히 전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때 문득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 공부에 열중하던 그가 '에디톨로지'란 개념을 제안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야기를 듣고자 만났지만, 그는 끊임없이 내게 다시 질문을 던지며 '삶과 지식의 편집 가능성'을 둘러싼 유쾌한 대화를 이어갔다.

 

늘 그렇듯 선생님 책에 대해서는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반응이 엇갈리는데요. 이번 책에도 비슷한 반응이 있던데요.

 

내용에서는 혁신성을 원하면서 형식의 파괴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이중성 때문이라고 봐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자유롭고 편한 걸 원한다고 하지만, 막상 정말 그런 삶을 원하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막상 대답이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제가 교수를 그만둘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면서도, 밥벌이의 구심점이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존경받는, 정년이 보장된 직업에 대한 집착, 이게 없으면 내 인생이 유지가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죠.

 

교수라는 직업을 떠남과 동시에 한국이라는 생활의 근거지를 떠나셨단 말이죠. 한국 중년 남성에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말이죠. 계기가 뭘까요?

 

일단 화가 많이 났어요. 당시 제 삶에 대해서요. 엄청 바쁘고 돈도 잘 벌고 찾는 곳도 많고, 그런데 이게 재밌지가 않은 거에요. 삶의 주도권을 뺐겼다는 느낌, 아무도 그걸 빼앗아가지 않았지만,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지 못한 느낌 그리고 소모되어 간다는 느낌도 들고. 저는 기본적으로 비겁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일단 도망을 갔죠. 그런데 도망을 가서 생각을 해보니까, 삶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답은 간단해요. 싫어하는 걸 자꾸 해서 그런 거죠.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걸 적어봤어요. 그런데 1번이 뭐냐. 학교에서 학생 가르치는 게 제일 싫은 거에요. 그러고 나니까 양심에 가책이 생기더라고요. 나는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교수를 한 거죠. 그만둔다고 하니 주변에서 정년까지 보장받았는데 왜 그러냐 이래요.  몇 년만 더 있으면 연금도 나오는데 왜 그만둬. 그러니까 더 기분이 나쁜 거에요. 내가 고작 그것 때문에 교수를 하나. 그럼 학생은 뭐냐.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난 거에요. 내가 비겁하고 겁이 많으니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겁에 질리면 어느 순간에 확 하고 뒤집는 순간이 있어요. 그렇게 충동적으로 그만두고 꽤나 후회했죠. 할 때는 멋있었죠. 그런데 뭐 하지 이제.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만두는 게 중요한 건데, 그만두고 나니까 고정적인 수입도 없고, 뭘 하고 살아야지, 이런 걱정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한 6개월 지나니까 제대로 된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내 삶은 뭔가 잘못됐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떠난다는 행위 말이에요. 세계일주를 한다든지 해외여행을 간다든지, 이런 방식의 시도가 많은데, 선생님께서는 그간 해오던 공부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셨단 말이죠.

 

공부가 제일 즐거운 거니까요. 한국문화에서 공부의 즐거움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꾸 여행으로 결론을 내리는데, 여행은 일시적이잖아요. 공부하러 여행을 가는 건 정말 재밌어요.

 

쉼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이전과는 다른 공부에 대한 욕망이었던 거군요.

 

삶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걸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 그게 즐거운 거죠.

 

문화심리학,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이전에는 많이 들어보지 못한 말인데요. 이것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문화심리학은 1990년대부터, 발달심리학에서 피아제의 이론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유럽의 심리학자들이 인지발달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피아제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 거예요. 발달단계에 제때 이르지 못하면 문제라고 보는 건데, 이걸 다르게 본 사람이 비고츠키에요. 그런데 제 지도교수가 비고츠키를 유럽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거든요. 비고츠키가 남긴 저작을 번역해서 유럽에 소개한 리더가 제 지도교수였어요. 이게 독일에서 벌어진 사회냐, 문화냐 논쟁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전자는 보편성을, 후자는 다원성을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문화에는 차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피아제 식 인지발달구조로 설명하면 문화적 차이가 발달 수준의 차이로 설명이 된단 말이에요. 이걸 암묵적으로 우리가 재생산해왔다는 거죠. 문화심리학은 이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창조는 편집이다.”이번 책의 핵심 문장인데요. 보통 편집이라고 하면 에디팅이라고 하는데, 에디팅과 에디톨로지,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네, 질적 차이죠. 물론 에디팅도 창조적인 작업이죠. 어떤 편집자가 작업하느냐에 따라서 책도 전혀 다르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부분을 그간 기술적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했기 때문에 문제였던 거죠. 스티브 잡스가 창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데, 이전의 관념대로 생각하면 잡스가 새롭게 만든 게 뭐가 있을까요? 없단 말이에요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를 잘 편집한 거거든요. 마우스로, 터치로 말이죠. 에디톨로지를 한다는 건 메타언어를 배우고 사용할 줄 안다는 거예요. 창조적 사유는 메타언어를 쓸 줄 아는 거예요. 예를 들면 윷놀이, 떡국, 한복. 이 세 가지를 얘기하면 뭐가 떠올라요?

 

명절이죠. 설날.

 

그럼 떡국, 윷놀이, 한복. 이 구체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설날이라고 하는 메타언어를 내가 갖게 되는 거잖아요. 명절, 축제. 이렇게 말이죠. 개개의 정보를 기억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요. 이걸 엮는 메타언어를 내가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걸 한국 사람이 보면 바로 나오지만, 서양 사람이 보면 메타언어가 안 나오잖아요. 이게 문화적인 거죠. 이런 걸 엮어서 우리 머릿속에 구성되는 게 문화적 기억이에요. 이렇게 하면 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생각이 풍요로워지거든요. 이게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거죠. 책 후반부에서 데이터베이스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걸 다루다 보면 태그처럼 정보의 내용이 어느 맥락에 속해 있는지 지정해주거든요. 주소록을 정리할 때도 나이나 직장 이름이 아니라 자기만의 분류 기준을 세울 수 있잖아요. 이게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거예요.

 

창조라고 하면 전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걸 생각하기 마련인데, 말씀하신 창조적인 작업은 단순한 작업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그런 생각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창조에 거품이 생긴 거죠. 천재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창조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창조는 스티브 잡스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런 거지같은 생각이 어디 있어요.

 

본문에서도 말씀하셨지만 한국사회에서 창조는 전통적 의미처럼 신 같은 전능한 존재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용어가 끼치는 영향도 있겠다 싶은데요.

 

맞아요. 창조적인 것과 창조. 우리는 창조를 하는 게 아니라 창조 같은 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창조적이란 말을 쓰는 거죠. 그래서 창조 경제라는 용어는 틀린 거예요.

 

그런 점에서 편집이란 용어도 생각해봐야겠는데요. 짜깁기라고 할까요.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이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것도 짚어봐야죠.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인데. 옛날에는 다 짜깁기죠, 편집이고. 다 표절이죠. 그런데 그때는 지적재산권이란 개념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개념이 생기면서 범위를 정하는 데에 기준이 생기니까 짜깁기나 표절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생기고, 그러니까 창조적인 작업이 더 어려워진 거죠. 그래서 그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위해서 누구나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창조는 편집이다. 이런 선언을 한 거예요. 그리고 이걸 에디톨로지라고 한다. 이게 핵심이죠.

 

지식의 위계나 권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에디톨로지라는 개념과 의미, 내용 역시 책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서 전달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네이버 지식인 같은 경우, 그 효용성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통해 확산되는 지식의 근거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단 말이죠. 이렇게 볼 때, 여전히 공인된 지식, 검증받은 지식 혹은 검증받은 자가 말하는 지식. 이런 부분은 여전히 존재한단 말이죠.

 

그건 어쩔 수 없지요. 과도기니까요. 저도 그런 과도기적 상태를 이용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고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내가 어떤 주장을 펼칠 때 그 근거로서 내가 그간 밟아온 과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미래 지식의 구성 방향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얘기해야죠. 나도 기존의 지식 체계, 지식 권력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교수를 그만두고 대학이 더는 지식 권력의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갖고 있는 기능이 끝났으니, 새로운 지식 구성의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자. 게다가 한국이 아이티 기술이 발전해 있으니, 이걸 잘 찾아보면 지식의 종속, 지식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1년에 천만 원씩 하는 비용을 들여서 듣는 대학 수업이라는 거, 지금 이런 강의 내용,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 무료로 들을 수 있잖아요. 이걸 교수들도 알아요. 이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 이런 얘기에요.

 

이런 구조적 한계에 대한 고민이 있죠. 그런데 그걸 타파하는 방식이, 현재 대학 구조 안에서는 통섭이라고 표현되는 방식이 최선인 것 같아요. 이런 게 대체로 기존의 구조는 그대로 두고 다리를 놓는 정도의 방식이잖아요.

 

그런데 다리가 안 생겨요. 서로 갖고 있는 언어 체계가 다르거든요.

 

그런 시도는 결과물을 내기 위한 목적성이 많이 느껴지는데, 에디톨로지는 결국 재미잖아요. 과도기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지식의 영역에 들어가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출구는 여기에 있다고 보시는 거죠?

 

이미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 보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는데, 내용과 체계가 정말 놀라울 때가 많단 말이죠. 이런 가능성을 숨 쉬게 해줄 수 있는 제도의 노력이 필요한데, 학문의 틀 내에서는 이게 어떻게 가능할 것이냐, 저는 이걸 고민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제도라는 게 애초 있었던 게 아니라 어느 시기에 만들어지는 거란 말이죠.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하면, 나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주변부 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해요. 에디톨로지라는 학문, 이제 시작이니까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누구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에요. 시작하면서 과정을 거치면서 구조를 갖추고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고 인정받는다면, 어느 때부터는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거지요.

 

 

 

 

저는 지식이란 개념에 관심이 많은데, 지식을 정보와 정보의 관계라고 정의하셨잖아요. 이렇게 보면 결국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 중요하게 되는데, 이렇게 보면 1부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서 2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가 자연스레 연결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1부에서는 마우스가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적 발견으로 언급되는데, 발상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우연히 그 생각을 한 거예요. 계층적 지식이 파괴되고 네트워크적 지식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게 아니지만, 그걸 가능케 한 게 바로 마우스라는 건, 새로운 생각이죠. 하이퍼텍스트가 어떻게 가능했느냐, 마우스였던 거예요.

 

지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묻고 싶은데요. 지식의 성격을 검증 가능성, 반증 가능성, 편집 가능성으로 구분하고 편집 가능성이 높은 지식이 좋은 지식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앞서 지식을 정보와 정보의 관계라고 정의했잖아요. 이러고 나니까 새로운 지식이 쉽게 만들어진단 말이에요. 여기에서 편집 가능성이 뭐냐. 어떻게 구성되었느냐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지식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념을 다른 곳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바로 편집 가능성이에요. 그래서 그 예가 프로이트인 거예요. 프로이트가 왜 위대한 편집자냐. 이드, 에고, 슈퍼에고라는 편집 단위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여기저기 갖다 쓸 수가 있는 거지요. 왜냐하면 지식은 있는 걸 발견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구성해나가는 거거든요. 찾아내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라고요. 주체적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편집의 가능성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만들어낸 지식의 체계보다 중요한 건 그 체계를 구성하는 편집의 단위 그리고 그 단위에서 생기는 편집 가능성이란 말씀이군요.

 

맞아요. 그렇다고 모든 곳에 가져다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을 펼칠 때 편집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죠.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가 만들어낸 편집의 단위 덕분에 인간의 의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냐는 말이죠.

 

2부에서 지도나 원근법 이야기 모두 재미있었는데, 재현의 시대에서 편집의 시대로,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에서 늘 지적되는 문제가 재현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여전히 이게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요. 개별 단위가 얼마나 확실하게 구성된 것이냐 하는 문제요.

 

일면 타당한 비판이에요. 그런데 저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과 사실을 연결시켜주는 편집이 그동안 너무 폄하되어 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근대가 분류와 사실 확인의 역사잖아요. 분류를 하고 가장 작은 단위까지 확인하면 해결이 될 거라 믿은 거죠. 그런데 해결이 됐나요? 하나도 해결이 안 된 거예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실 자체가 확인이 안 된다고요. 양자역학이 그렇잖아요. 자연과학도 이런데 인문학에서 사실 확인이 가능하겠어요? 다 해석이죠. 그런데 자꾸 진실을 말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실체적 진실을 이야기해요. 사실 자체가 편집의 결과라는 말이에요. 내가 밥을 먹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밥을 먹었다는 걸 왜 기억하죠? 종일 계속 일이 일어나요. 그런데 우리는 그 가운데 의미 있는 사실만 뽑아내요. 이런 해석, 편집의 차원이 전제되어야 사실이 설 수 있다는 말이에요. 재현의 능력이 전제가 되어야만 창조가 가능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피카소가 기본기가 잘 되어서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보세요. 현대미술에서 재현은 이미 끝난 문제잖아요. 사진기가 재현하잖아요. 수공업자가 되어야만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2부에서 공간의 편집도 중요하게 다루시는데, 편집 역시 어떤 목적에서 하느냐가 중요할 텐데, 공간의 문제로 들어오면 지식의 편집과는 다르게 물적 공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잖아요.

 

물론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그렇게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집 인테리어를 왜 해요? 그게 효율과 상관이 있나요? 우리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어요. 그걸 부정하면 안 돼요. 저는 현실의 즐거움, 실현 가능한 행복을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행복하고 재미있어질 수 있는 공간의 편집에 대해 안다는 건, 말씀하신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필요하고, 또 그걸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거라고 봐요.

 

에디톨로지가 현실에서 구현되고 발현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개인 차원이 우연적 결과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런 개인이 존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 차원에 대한 고민이 궁금해지거든요.

 

중요한 건 맞아요. 그런데 제 경험상 그건 운이에요. 제가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제가 의도한 게 아니에요. 저는 행복한 심리학과 교수가 되고 싶었을 따름인데, 꼬이고 꼬이면서 이렇게 된 거예요.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물론 말씀하신 사회 차원에서의 조건은 투쟁하고 싸워서 얻어내야 할 영역이에요. 그건 기본권의 문제라고 봐요. 그런데 나한테 왜 그런 목소리를 안 내느냐, 이런 목소리도 있는데, 저는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전제가 갖춰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갖춰졌을 때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여전히 필요하거든요. 마치 예술가들이 우리가 또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처럼,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걸 할 수 있어야 지금 조건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변화를 위한 힘을 모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적어요.

 

네. 큰 이야기는 정리가 된 것 같으니까, 마지막으로 기술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의 가능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 그리고 언어, 중요하지만 많은 이가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인데요.

 

네, 좋습니다. 우선 언어. 저는 쉰부터 일어 공부했어요. 그래서 <보다의 심리학> 번역도 했어요. 관심이 있으면 하게 되어 있어요. 문화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죠. 관심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를 포기하는 거예요. 그게 외국어가 아니라 해도 무엇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떤 언어가 필요한 거니까요.

 

 

 

 

관심을 끝까지 추구하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 지금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곳까지 가면 만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런 말씀인 거죠?

 

맞아요.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 진짜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되요. 그리고 편집의 가능성과 유연성에 대해서는 기록이 첫째 조건이에요. 습관으로 만들어야 해요. 데이터베이스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에요. 기록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갤럭시 노트를 권하는 게, 기록에 있어서 기가 막혀요.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결과를 이미지로 잘라서 바로 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할 수 있거든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도구가 어디 있어요. 친구한테 좋은 글이 와요. 그럼 그냥 잘라내서 저장하면 돼요. 그걸 저장하는 도구는 에버노트구요. 이렇게 데이터를 쌓다 보면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도 생기고, 이걸 관리하기 위해서 메타언어를 익히게 되거든요. 이 메타언어에 익숙해지면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재미나게 듣기 시작해요.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엮어서 이야기하니까요. 이 책도 그 결과죠. 이걸 쓰기 위해 제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겠어요. 데이터를 축적하다 보면 기존의 지식 영역이 설명하지 못하는, 담아내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걸 엮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예요. 에디톨로지도 그런 과정의 결과이고요.

  자기의 관심을 끝까지 추구해나가면 내 현실의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고, 그걸 과감하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요. 교수직 따위야 이런 마음도 생길 수 있고요. 제가 유학 다녀왔을 때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겠어요. 저도 교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좌절했는데요.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 내 진정한 관심을 추구하다 보니까 교수직 따위야, 누구나 관둬, 누구나 은퇴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교수는 정년이 길어서 나쁜 직업이에요. 정년이 길면 새로 시작할 수가 없어요. 빨리 끝나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데, 교수는 그러질 못해요. 정년이 길어서. 그래서 은퇴한 교수가 제일 불쌍하다고 하는 거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에서는 작고 강한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상반기에 열 곳의 출판사를 선정하여 구간, 신간 구매하시는 독자에게 쿠폰과 적립금을 지원해드리고,

분기마다 두 종의 책을 선정하여 스페셜 북펀드로 독자에게 홍보를 하고,

알라딘에서 일정 부수를 구입하여 전국 각지의 작은 도서관에 책을 보내려고 합니다.

관련하여 열 곳의 출판사 가운데 매월 한 곳을 선정하여 '이 출판사를 응원합니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큰 출판사처럼 많은 헤택을 드리진 못하지만 여러분의 응원 댓글, 알라딘의 10문 10답 인터뷰 등을 통해

깊이 있게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래 주소에서 이벤트 내용을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2013_publish_8

 

------------------------------------------------------------------

10문 10답은 애초 100문 100답으로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대개 5명 이하인 출판사의 업무 마비를 우려하여

10문 10답으로 핵심만 간추렸습니다.

10문 10답을 살펴보시고 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출판사에서 성심과 성의를 다해 답글을 달아주실 겁니다.

또 압니까. 깜짝 선물을 드릴지.

그럼, 각설하고 10문 10답 내용을 공개합니다.

 

 

 

1. 출판사 이름이 ‘뿌리와이파리’입니다. 어떤 의미인지요. 농담으로 왜 꽃이나 열매는 없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에 대한 답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출발점은 우리 사회의 ‘뿌리없음’에 대한 문제제기. 지식과 정보를 담은 매체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 사회의 문화적․지적 풍토에, 독자들의 인문주의적 소양에, 나아가 일상생활 안에 녹아든 ‘철학하기’에 이바지하는 튼실한 뿌리와 무성한 이파리를 찾고 만들어가는,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 그것이 되는 것이 목표이자 소명.”(『한국의 출판사 2011』의 소개글) 이게 공식적인 답변인데, 그냥 간단히 1000살쯤 먹은 멋진 나무를 떠올려주세요. 그리고 꽃과 열매 등등은, ‘생략’입니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와 꽃과 열매와…’는 너무 길잖아요? (나중에 커지면 자회사 이름으로 쓰자는 숱한 ‘줄기’와 ‘꽃’, 심지어 ‘잔뿌리’들이 준비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실은 ‘뿌리’와 ‘이파리’의 압운도 염두에 둔 건데, 트위터에 ‘뿌리’ ‘와이파이’로 읽었다는 분이 꽤 있는 걸 보면 실패인가 싶기도 합니다.


2. 몇 분이 함께 일하고 계신가요.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서 맡고 계신지 소개해주시고, 덧붙여 뿌리와이파리 출판사만의 자랑할 만한 문화나 분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편집주간과 편집자 두 사람이 제1팀 인문, 제2팀 과학, 제3팀 ‘(가장 넓은 의미의) 좌파적 모색’ 각각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좋은 책, 제대로 만든다’는 각오와 자세야 어느 출판사나 있을 테고, 그 밖에는 딱히 내세울 게 없네요. (편집자가 뿌리와이파리 아무개 사장 밑에서 1년을 버티면 ‘어딜 가도 잘나간다’는 데이터는 있는 듯한데, 이건 ‘자랑’ 아니겠지요?) 

 
3. 여러 번역자 선생님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기획 활동을 하시는 걸로 압니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뿌사모’는 ‘뿌사버리는’ 느낌이라 제 마음대로 ‘뿌리와이파리를아끼고사랑하며무엇을이바지할것인가를생각하는사람들의모임’(뿌아모)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을 뿐, 사실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모임입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서 책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가르침을 받고 싶은 분들을 매달 첫 금요일 저녁에 한 자리에 모셔서 생맥주 한잔 하는 거예요. 뜻 있고 시간 나는 분들 누구나 편하게 오셔서, 뿌리와이파리 돌아가는 얘기도 간단히 듣고, 모임 이름처럼 ‘생각’을 나누거나 그냥 술 마시며 놉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처럼 기획도 하고, 가끔 의기투합해서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 어느 날 툭 튀어나온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유럽 문화사』 공역진을 엮듯이 구체적인 일도 진행하고요.


4.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120여 종의 책을 펴내셨습니다. 정말 꾸준하게 책을 내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이런 어려운 질문을…. 어느 매체에 답했던 대로 옮깁니다. “글쎄. ‘가장’은 모르겠고, 나름 ‘의미 있는’ 책은 거의 대부분이라고. 애착이라. 『돈가스의 탄생』은 부제대로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라는 아주 재미있는 주제, 1,028쪽짜리 『THE LEFT 1848~2000―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는 위기 혹은 침체에 빠진 한국 좌파의 비판적인 성찰에 도움이 될 책, 이 책과 함께 ‘베개형 출판’(?)의 흐름을 연 1,295쪽짜리 『다윈 평전』은 어느 출판사 대표 말씀처럼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빛낸, 안 나왔더라면 한국 출판계 퍽 쓸쓸했을’ 책, 진화적 게임이론의 세계적인 연구자 최정규 교수의 책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우연한 만남이 낳은 멋진 책,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역사를 보는 다른 눈을 열어주는 책, 진화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40년 묵은 궁금증을 풀어준 『삼엽충』과 『공룡 오디세이』가 특히 마음에 들고(판매부수는 특히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삼엽충』은 ‘21세기 첫 10년간 가장 아까운 과학책’으로도 꼽히기까지), 『유럽 문화사』 다섯 권은 ‘내가 만약 2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이 훨씬 풍요로웠으리라’ 싶은 조~금 자랑스러운 책. 기타 등등.”

 
5. (4번에서 당연히 언급하시겠지만) 아마 <유럽문화사> 이전에 독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은 <The Left>일 텐데요. 이 책은 내용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독특한 장정과 눈에 띄는 표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시고, 이 책에 대한 소회도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고, 책이 언론에 소개된 그 주말에 민주노동당이 쪼개진 그때, 큰 흐름에서 근본적으로 되짚어보아야 할 시기여서 주목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책을 준비할 때는, 예상판매부수가 편집이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떨어져서 마지막에는 700부까지 갔더랬습니다. 도서관 400부, 일반 독자 300부요. 첫 해에 3000부, 지금까지 6000부 넘게 나갔으니, 행복한 오산이고 역시 ‘출판은 타이밍’입니다. 제목은, 되도록 영어를 안 쓰고 뽑아보려고 애썼지만 6개월 동안 고민을 해봐도 ‘레프트’밖에 없었고요, 표지와 장정은 온전히 디자이너 조혁준 님의 공입니다. 이 책과 다음해의 『다윈 평전』으로 ‘책만사’의 올해의 책 대상을 연이어 받으면서 두꺼운 책(제 용어로 ‘베개형 출판’)이면 좋은 책이냐는 힐난(?)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6. 시리즈로 보면 오파비니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최근 시리즈 열 번째 책 <공룡 이후>를 내셨지요.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와 그간의 진행 과정,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 역량상 특히 과학 분야는 넓게 다가갈 수가 없어서 ‘뿌아모’와 함께 뿌리와이파리의 과학책에 대해 시장조사와 토론을 한 결과가 ‘우선 진화 시리즈’였습니다. 아직도 한심한 소리를 늘어놓는 이들이 있지만 진화는 이미 ‘론’을 넘어서 ‘학’이고, ‘지금 여기, 우리’를 살피는 데에도 꼭 필요한 기본 교양입니다. 어폐가 있지만 이를테면 ‘우주의 진화, 지구의 진화, 인간의 진화’를 담는 책을 한 권 한 권 찾아 시리즈로 엮어왔고요, 앞으로도 ‘진화’할 수 있는 한 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꿈처럼, 한국인 필자가 쓴 진화 책을 내는 날이 오겠지요.


7. 초기에 내신 책들 가운데 품절이나 절판 도서가 여럿 있는데요. 여러 인문사회 출판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지만,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독자가 찾지 않는 책. 원칙적으로 세상보다는 출판사와 기획자 탓이겠지요.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갈까, 고민입니다. 둘째, 어떻게 해도 독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책. 도서관(정책)을 비롯한, 거기에 맞는 틀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셋째, 특히 번역서에서, 5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고, 그것도 첫 계약 때보다 낮은 계약금은 안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나 횡포를 부리는) 관행. 5년이 지나서, 첫 5년 동안만큼 팔릴 책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과연 누구를 위한 관행인지, 이것은 절판을 강요하는 잘못된 틀이라고 봅니다.  


8. 출판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하나씩 꼽는다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 돈(아니, 제 능력) 때문에 인간에 대한 예의는커녕 상처만 남긴 숱한 장면들. 기뻤던 순간, 『유럽 문화사』로 처음 상금 있는 상(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아 공역자들의 노고에 보답(?)했을 때, 그리고 작년 말 『시사인』 별책부록에서 뿌리와이파리가 ‘편집자들이 신뢰하는 출판사’ 공동 5위(?)로 꼽혔을 때.


9. 10년 후,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우리 사회 ‘인문 출판’의 중요한 하나의 그물코.
 

10. 알라딘 작은 출판사, 작은 도서관 지원 사업에 대해 한 말씀 전해주시고, 함께 선정된 다른 아홉 군데 출판사에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그저 크고 작고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작은’ 싹이며 나무들이 다양하고 다채롭게 어우러진 세상이 풍요로운 세상일 겁니다. 출판사도 도서관도, 튼실하게 힘을 기르고 따뜻하게 뜻을 나누십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2013-06-1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뿌사모... ㅎㅎㅎ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다산과 연암이라는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로 18세기 지성사를 새롭게 그려낸다. 두 사람의 사상적 지형뿐 아니라 최근 저자가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의역학의 관점에서 다산과 연암의 기질적 특성까지 한데 아우르며 이야기를 펼쳐내는 터라, 기존의 사상사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이 펼쳐질 거라 기대해본다. 고미숙이 왜 이 둘을 함께 묶었는지, 어떤 의문을 품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는지를 저자 서문을 통해 살짝 엿보기로 하자. 참고로 이 책은 6월 14일 금요일에 출간되고, 예약판매 기간에 구매한 독자에게는 다산과 연암 머그컵 세트를 드린다.

 

 

예약판매 이벤트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30523_two

 

 

 

 

입구 : 그들을 둘러싼 세 개의 ‘미스터리’

 

하나,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몇 번을 생각해도 이상한 노릇이다. 그들은 왜 한번도 만나지 않았을까?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는데 말이다. 당파 혹은 학맥이 달랐기 때문일까? “형적이 드러남을 꺼려서 서로 소문은 들으면서도 알고 지내지 못하며, 신분상의 위엄에 구애되어 서로 교류를 하면서도 감히 벗으로 사귀지는 못”하는 그런 관계였던 걸까? 하지만 둘은 그런 장벽 따위를 훌쩍 뛰어넘은 대문호 아닌가. 게다가 박제가・정석치・이서구 등 둘의 절친한 벗들이 겹친다. 그럼 이 사람들이 양다리 혹은 들러리에 불과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둘의 ‘사이’엔 정조대왕이 있었다. 정조가 누구던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부를 정도로 지적 자신감이 충만했던 ‘호학군주’ 아닌가. 사대부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고, 사대부들보다 더 많은 글을 썼던 제왕. 그래서 ‘문체반정’이라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필화사건’을 주도한, 다시 말해 문체와 권력의 긴밀한 맥락을 간파했던 인물이다. 그때 연암은 문풍을 타락시킨 배후조종자로 찍혔고, 다산은 정조의 이념적 나팔수였다. 이 정도면 서로가 서로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꼈을 텐데…… 몰랐을 리는 없다. 절대로! 그럼에도 그들은 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을까? 사대문 안 종로통을 수없이 오갔을 그들의 발걸음은 왜 번번히 엇갈렸을까? 대체 왜?

 

 

 

 

 

 

둘, ‘노 코멘트’에 담긴 뜻은?
무척 궁금하긴 하나, 저 질문은 그다지 심오한 편은 아니다. 일단 전제에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친밀할 거라는, 그래서 깊은 교류를 주고 받았을 거라는, 아니 그랬으면 참 좋겠다는 우리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동시대의 톱스타들은 서로 친할 거라고 간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서적 거품’이 개재된 것이다.
  거품을 빼고 둘의 동선을 체크해 보자. 연암과 다산의 나이차는 25세.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연암이 한창 청년기의 방황을 겪고 있을 때, 다산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였다. 연암이 거리에서 벗들과 어울려 중년을 통과하고 있을 때, 다산은 과거의 문턱을 넘기 위해 분투하는 수험생에 불과했다. 연암의 명성과 의론이 장안을 뒤흔들고 있을 때, 다산은 성균관 태학생으로 정조대왕이 제출하는 과제들을 수행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니 당연히 엇갈렸을 수밖에. 하지만 이 또한 성급한 판단이다.
  이 시대는 세대간 장벽이 그닥 높지 않았을뿐더러 학술과 문장을 통한 상호교류가 왕성했던 시절이다. 박제가는 서얼 출신에다 한참 어린 나이에도 연암을 찾아가 ‘사우관계’를 맺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다산은 왜 연암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꼭 제자가 되진 않더라도 당대 최고의 문호인데 한 번쯤 찾아가 내공을 가늠해 보고 싶지 않았을까……, 당파와 학맥이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을 법한데 말이다(원래 반대편 진영에 있는 대가에게 더 호기심을 느끼는 법 아닌가).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 서로 엇갈리던 둘의 동선이 마침내 교차하는 시점이 온다. 연암이 쉰이 다 되어 늦깎이로 ‘생계형 관직’에 나섰을 때, 그때 다산은 ‘왕의 남자’로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이때 둘의 궤적은 사뭇 중첩된다. 문체반정과 수원 화성 축조, 천주교 사태 등 정조의 치세를 장식하는 주요 사건들에 둘은 직・간접으로 연루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더 놀랍게도 서로에 대해 ‘노 코멘트’ 했다. 연암의 글 속에 다산의 흔적은 없다. 다산의 글 속엔? 아주 없지는 않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지어 20여 가지의 환술을 기록하여 놓았다. 이 이치를 안다면 지사의 말이 망령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참 까칠하다. 연암을 마치 동시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에도 더러 『열하일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연암 사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인데다, 인용한 부분도 하나같이 수레와 벽돌 등 기술지와 관련된 것들뿐이다. 다산의 ‘박람강기(博覽强記)’라면 『열하일기』는 물론이고 『연암집』 전체를 통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생략되었다. 특히 연암의 기발한 상상력과 호방한 문체에 대해서는 완전 노 코멘트!
  연암은 다산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다산은 연암에 대해 ‘차갑게’ 언급했다. 이 침묵과 냉대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는 대체 무엇일까?

 

 

 

 

셋, 이렇게 ‘다를’ 수가!
여기서 잠깐 되짚어 보자. 이 냉랭한 기류가 미스터리가 되려면 어떤 전제, 아주 강력한 전제가 필요하다. 즉, 앞에서 말한 대로 둘은 만나야 하고, 서로 지적 교감을 해야 한다는, 혹은 그랬을 거라는! 왜? 연암과 다산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문장가요 경세가니까. 유사 이래 연암보다 더 탁월한 문장은 없었다. “그의 문장은 천마가 하늘을 나는 듯”(김윤식)하다. 한편, 다산은 방대하다.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정인보)다. 한 사람은 질적으로, 다른 한 사람은 양적으로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 이런 대단한 인물들을 동시에 배출했다니, 18세기는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시다. 그러니 둘을 연결하고 싶은 욕망이야 지극히 당연하다.
  알다시피, 18세기에는 연암과 다산 이외에도 수많은 별들이 각축했다. 홍대용과 박제가, 이덕무와 이가환, 이옥과 김려 등등. 그런데 연암과 다산은 물론이고 이들까지도 몽땅 동질화하는 개념이 하나 있다. ‘실학파’라는 범주가 그것이다. 실학이란 조선후기에 일어난 지성사의 새로운 조류를 지칭하는 담론이다. 이 개념의 등장과 더불어 연암과 다산은 그 자장 안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그 담론적 배치는 대략 이렇다.
  조선후기 실학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으로부터 비롯한다. 성호는 중농학파, 그 뒤를 잇는 연암그룹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설파한 중상학파, 그리고 다산은 이 양대 흐름을 집결한 경세치용(經世致用)학파라는 게 기존의 통설이다. 연대기적으로야, 성호-연암-다산으로 이어지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시간적 선후가 논리적 선후를 결정짓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담론의 배치에 담긴 건 두 가지 욕망이다. 하나는 역사를 연속적 선분으로 잇고자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역사는 더 나은(혹은 더 많은) 것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 연속성과 진화론!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표상이기도 하다. 다산학의 방대한 스케일은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에 딱! 알맞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겐 늘 연암과 다산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있다. 욕망이 표상을 낳고 표상은 다시 욕망을 키워 가는 과정을 충실히 반복한 셈이다.
  하지만 보라! 둘의 초상화를. 둘은 참 다르다. 한 사람은 거구에 비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작고 단단하다. 내뿜는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 신체적 차이만큼이나 둘의 인생궤적 또한 판이하다. 당파나 이념의 차이는 차라리 부수적이다. 문체와 세계관, 사상과 윤리 등의 차이는 마치 평행선처럼 팽팽하다.
  ‘어쩜 이렇게 다를 수가?’ — 이 질문은 ‘그들은 왜 만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보다 훨씬 심오하다. 후자는 그들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전제하지만, 전자는 그들의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이 질문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온다. 하나는 경이로움이다. 동일한 연대기 안에 이렇게 상이한 기질과 벡터를 지닌 천재가 공존했다니, 진정 놀랍지 않은가. 조선왕조는 물론이고 전 세계 지성사 그 어디에서도 이런 팽팽한 맞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권위로부터의 해방이다. 연암과 다산이 하나의 이미지로 오버랩되면 무지하게 엄숙해진다. 엄숙주의는 권위를 낳고 권위는 차이를 봉합한다. 거기에서 우상이 탄생한다. 그런 식의 우상화는 연암과 다산, 모두를 박제화시켜 버린다. 고로, 가차없이! 타파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연암과 다산의 생애를 하나의 평면에서 동시적으로 조망해야 하는 이유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연암과 다산은 따로 논의되었다. 그렇게 연결하려 애쓰면서도 왜 늘 따로(!) 이야기한 것일까. 혹시 둘이 지닌 불연속성과 이질성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아가 그걸 감당, 아니 직면하기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 모든 질문들이 그렇듯이, 연암과 다산이라는 화두는 결국 우리 자신의 발밑을 겨눈다. 즉, 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꼼짝없이 가두고 있는 인식의 봉인 — 특히 차이의 봉합과 전통의 우상화에 대한 — 을 해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솔직히 좀 떨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나나맛우유 2013-07-1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구입했는데 기대되네요... ^^

푸른희망 2013-07-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고미숙님 책은 다 사서 보고 싶어요..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사 놓으면 너무 뿌듯해서...^^
 

알라딘에서는 작고 강한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상반기에 열 곳의 출판사를 선정하여 구간, 신간 구매하시는 독자에게 쿠폰과 적립금을 지원해드리고,

분기마다 두 종의 책을 선정하여 스페셜 북펀드로 독자에게 홍보를 하고,

알라딘에서 일정 부수를 구입하여 전국 각지의 작은 도서관에 책을 보내려고 합니다.

 

관련하여 열 곳의 출판사 가운데 매월 한 곳을 선정하여 '이 출판사를 응원합니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큰 출판사처럼 많은 헤택을 드리진 못하지만 여러분의 응원 댓글, 알라딘의 10문 10답 인터뷰 등을 통해

깊이 있게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래 주소에서 이벤트 내용을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2013_publish_3

 

 

------------------------------------------------------------------

10문 10답은 애초 100문 100답으로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대개 5명 이하인 출판사의 업무 마비를 우려하여

10문 10답으로 핵심만 간추렸습니다.

10문 10답을 살펴보시고 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출판사에서 성심과 성의를 다해 답글을 달아주실 겁니다.

또 압니까. 깜짝 선물을 드릴지.

그럼, 각설하고 10문 10답 내용을 공개합니다.

 

 

 

 

 

 

 

 

 

 

 

 

 

 

 

 

 

 

 

 

 

 

 

1. 출판사 이름이 ‘교육공동체 벗’입니다. 특이한 이름인데, 무슨 뜻인가요?

교육공동체 벗의 ‘벗’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입니다. 한국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모든 교육 주체들은 누구나 교육 때문에 고통스럽고, 경쟁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교육의 병폐는 더 심화돼 가는데 이 현실을 직시하고, 대화하고, 새롭게 모색하는 노력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교육운동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주체가 되어 만들어 보고자 한 게 바로 ‘벗’입니다.

 

2. 출판사 모토가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공존공생의 삶’인데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신다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자본의 위력 앞에서 무릎 꿇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특히 지금 한국의 출판 지형에서 매체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유수한 매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상황에서 저희가 교육 매체를 창간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매체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구조가 필요했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각자 권리와 의무를 나누어 가지는 한 식구로서 만나고자 했기에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벗의 재정은 순수하게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조합비, 그리고 책을 통한 수익금만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절실히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이 있으면, 특정한 자본에 기대거나 시장에 포섭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벗을 통해서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몇 분이 함께 일하고 계신가요.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서 맡고 계신지 소개해주시고, 덧붙여 교육공동체 벗 출판사만의 자랑할 만한 문화나 분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벗의 사무국 식구는 모두 6명입니다. 출판사로서 작은 규모는 아닌데, 일의 가짓수가 좀 많은 편입니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격월간 매체 《오늘의 교육》도 내고 있고, 벗이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이른바 ‘조직사업’(^^)이라는 것도 해야 합니다. 편집, 회계, 조직사업 등 각자가 주력하는 분야가 있긴 하지만 함께 달려들어 해내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여름, 겨울 조합원 연수나 총회를 치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포럼이나 읽기 모임을 주최하거나 참여해야 하고, 매 점심을 해 먹고 매달 매체나 회지를 만들어 발송하는 일까지……, 저희끼리는 이른바 ‘전인 노동’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직장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ㅠㅠ)
  출판사로서 벗은 좀 특별한 곳이지요. 주력하고 있는 영역을 교육출판이라고 규정짓는다면 그중에서도 ‘출판’보다는 ‘교육’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출판편집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교육운동의 한 주체로서 정체성도 있는 것이지요. 좋은 교육이 좋은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좋은 책 역시 좋은 삶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벗은 일터이자 삶터이고, 내 일이 내 삶과 내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는 곳입니다.

 

4. <오늘의 교육>이라는 격월간 잡지를 펴내시는데요. 잡지에 대한 소개와 자랑 부탁드립니다.

처음 매체를 만들 때 지향했던 가치는 ‘집단지성이 만들어 내는 협력적 저널리즘’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소극적 독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 필자로 참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역 읽기 모임들이 활성화되고, 편집진과의 소통도 활발해지면서 담론도 다양해지고 조합 매체로서 《오늘의 교육》의 위치도 좀 더 확고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의 교육》에서 가장 빛이 나는 글들은 단연 조합원들이 쓰는 현장성 있는 르포들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언론들이 이른바 ‘성역 없는 저널리즘’을 많이들 지향하는데 사실 쉽지가 않지요. 하지만 《오늘의 교육》은 조합원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성역 없고 신랄한 글쓰기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 글들이 모여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학교의 배반》라는 단행본으로 엮이기도 했는데, 학교 현장을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라는 평들이 많았습니다.

 

5.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잡지 외에도 단행본을 11권이나 펴내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이건 어떤 편집자가 대답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긴 한데요(^^), 그래도 역시 맨 처음 낸 《교육 불가능의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어느 출판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출판사를 시작할 때 첫 책을 어떤 책으로 내느냐만큼 중요한 일이 없잖아요. 저희도 그랬어요. 벗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책이어야 했고, 그래서 그만큼 많이 숙고하고 시간도 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교육》에서 펼쳐냈던 ‘교육 불가능’이라는 담론을 중심으로 첫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벗이라는 출판사의 색깔을 명료하게 하는 데는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6. 교육공동체 벗에서 제시한 ‘교육 불가능의 시대’는 이제 하나의 개념어가 되었습니다. 이 개념에 대해 조금 쉽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독자들, 특히 교사 독자들은 ‘교육 불가능’이라는 담론을 불편해합니다. 교사들에 대한 일종의 평가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처음에 ‘교육 불가능’이라는 담론을 시작한 데는 학교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의미가 컸습니다. ‘학교야 힘내라’, ‘선생님이 희망입니다’ 따위에 숨어 있는 위선과 기만이 근본적 사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은 현실을 정직하게 보는 데서, 그리고 현실의 교육 불가능성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교육 불가능’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희망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7. 주로 교육 관련한 책을 펴내시고, 저자 분들이 대개 현직 교사이신데요. 교사 분들과의 네트워크라든지 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든지 출판 외에 특화된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현재 벗의 조합원은 820여 명인데, 교사의 비중이 80% 정도이고, 학부모나 청소년, 대학생, 일반인들의 비중이 20%가량 됩니다. 아무래도 교육 전문 출판사이고, 조합원들의 다수도 교사이다 보니 교사들의 참여가 많긴 합니다. 벗에서 작년 여름과 겨울, 2회에 걸쳐 진행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총 20회)이라든지, 작년에 충남 홍성의 교육농(農)연구소와 함께한 <교사 농사학림> 같은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교사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자작업장학교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이 시대 교육 포럼>은 2011년부터 진행해 왔는데, ‘교육 불가능’,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담론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현장의 교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 왔습니다. 그 외에도 부산지역모임에서 민주시민공원과 교사아카데미를 기획한다거나 광주지역모임에서 5.18재단과 5월연수를 공동 진행한다거나, 괴산증평지역모임에서 청소년인문학교실을 꾸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읽기모임들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활동들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8. 출판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하나씩 꼽는다면.

‘신생’ ‘마이너’ 출판사로서 겪는 어려움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할 것 같아요. 협동조합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출자금과 조합비 등을 통해 초기 자본은 어렵지 않게 모았는데, 출판 시장으로 진입하는 데는 장벽이 높았던 것 같아요. 회계나 제작, 영업에 대한 유경험자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인쇄소나 제지 회사, 서점 등과 거래를 트고 단가를 조율하고 하는 문제는 항상 어려웠던 것 같아요. 기뻤던 순간은, 역시 책이 많이 나갈 때였겠죠. 가장 기뻤던 순간이 있다기보다는, 아직도 매일 아침 주문서를 보며 일희일비를 반복하고 있답니다. ^^

 

9. 10년 후, 교육공동체 벗 출판사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좋은 책들의 목록이 빼곡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과나 실적에 대한 압박을 가지고 밀어내기식 출간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10년 후에도 벗의 색깔을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협동조합으로서 다른 출판사들은 하지 못하는 다양한 시도나 실험을 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자와 출판사가 갑과 을로 계약을 맺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서로 주인으로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라든지, 이른바 돈이 될 만한 책이 아니더라도 조합원들의 소중한 기록이나 증언들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주류 출판 문화와 다른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 협동조합인 벗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자 또 과제입니다.

 

10. 알라딘 작은 출판사, 작은 도서관 지원 사업에 대해 한 말씀 전해주시고, 함께 선정된 다른 아홉 군데 출판사에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저희 같은 작은 출판사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프로젝트입니다. 벗을 만들기 전에도 저는 알라딘만을 이용했습니다.(ㅋ) 다른 아홉 군데 출판사들의 면면도 반갑고요. 이미 잘 알고 지내는 곳들도 있는데, 4월의 출판사 난장의 대표님이 하신 말씀처럼, 술 한잔 할 자리가 마련된다면 마감 ‘재끼고’ 기꺼이 달려갈 용의가 있습니다.(^^b)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석규 2013-05-0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육공동체 벗 응원합니다. 교육운동도 벌이고 출판도 하고 바쁘지만 희망을 열어가는 곳이라 더욱 애정이 갑니다.

진주 2013-05-09 15:58   좋아요 0 | URL
김석규 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 주세요. ^^

새내기선생 2013-05-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공동체 벗! 언론협동조합 벗!... 지식의 공동체!!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