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늘 이런 게 계속되고 있어요. 뭔가를 말하려 해도 늘 빗나가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빗나가거나 전혀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하죠. 그래서 그걸 정정하려면 더더욱 혼란에 빠져서 빗나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려요. 마치 내 몸이 두 개로 갈라져서 쫓고 쫓기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한복판에 굉장히 굵은 기둥이 서 있어서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거예요. 꼭 알맞은 말이란 늘 또 다른 내가 품고 있어서, 이쪽의 나는 절대로 그걸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64쪽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그 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들을 그 손아귀에 넣는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들을 잡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죽음에 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하고
그것은 나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그러나 기즈키가 죽은 밤을 경계선으로 하여, 나로선 이제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죽음을(그리고 삶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적 존재 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 사실은 제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망각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죽음은 심각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숨막히는 배반성 속에서 끝없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확실히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71쪽
(나오코의 편지 中) 「우리들이 이 곳에 와 있는 것은, 그 비뚤어진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뚤어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우리들 문제점의 하나는, 그 비뚤어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각기 사람마다 걸음걸이에 버릇이 있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사고방식, 사물에 대한 견해에도 버릇이 있고, 그것을 고치려 해도 갑자기 고쳐지는 것이 아니며, 무리하게 고치려 들면 다른 데가 이상해진다는 겁니다.
... 우리들은 확실히 자신의 비뚤어짐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비뚤어짐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자기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없어서, 또 그러한 것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이곳에 있는 한 우리들은 타인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며, 타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이 바깥 세계와 전혀 다른 점입니다. 바깥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뚤어짐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거든요.」 -168쪽
「...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 오는 에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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