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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Story - 역사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이야기
닉 테일러 지음, 엄연수 옮김 / 글과생각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His-Story
우리가 살아가면서 익숙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성공하는 것, 남들보다 나아야 하는 것, 돈을 많이 벌고, 시간을 쪼개 쓰고, 사람들이 원하는 멋진 모습을 만들기 위해 365일 늘 다이어트를 하고, 때로는 성형을 하고, 내 취향이 아닌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옷을 사고, 나에게는 딱히 필요 없는 기기들을 사고 유명하다는 곳에 가고, 유명한 것을 가져야 한다.
학교에 가기 전에 한글은 기본에 영어도 하고, 피아노, 미술, 악기, 이제는 한, 두 가지 운동정도는 기본에 학교에 가서는 선행학습 또한 기본, 여러 가지 학원 다니기.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입사, 적당한 나이에 결혼, 내 집 마련, 다시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아이를 낳아 또 적당히 키우기. 중요한 것은 꼭 남들만큼.
우리가 왜 이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는 늘 성공에 목을 매고 앞으로 달려야만 한다. 남들보다 성공한 것은 존경받는 행동을 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사'자 달린 직업을 원하는 것도 결국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라는 것. 남들보다, 내 주위사람들 위에 올라서야 하면서도 또 그 사람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일생의 명령이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이미 세상은 돈과 권력이 지배하고 있고 우리가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남들처럼, 그러나 그런 남들 위에 올라 설 때만 가능하다고 세뇌 당해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이분법 적인 세계, 일방향의 세계, 속도의 세계, '우리'가 아닌 테두리의 것은 배척하고 이용하고 짓밟아야만 하는 세계. 이 책은 왜 우리가 이런 세계에 살게 되었고, 그런 사고방식이 지배해 오면서 우리가 잊고, 버려야만 했고, 그로인해 황폐해진 것들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책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직선이 아닌 순환의 원리, 함께의 원리, 틀림이 아닌 다름의 원리, 이용과 개발이 아닌 상생의 원리, 소유가 아닌 있는 그대로 놓아둠의 원리, 조화의 원리 이런 원리들을 대표하는 여성성이다.
이 세계를 지배해온 남성성은 여성성의 상대되는 원리이다. 남성성은 어느 순간 지식을 독점하고 지혜를 가진 여성들을 이단과 미신으로 몰아 배척하고, 이 땅의 모든 것을 '지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모든 것은 'He' 'His' 그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5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돌아간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보이는 '분리' '이분법'의 시각을 보여준다. 빛과 어둠을, 땅과 하늘을 남성과 여성을 가르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과 불모지를 가르고, 그 울타리 안의 땅과 동물, 곡물들을 가르는 사유재산이 생겨나고, 경쟁과 위계질서가 생겨나고, 자기 것을 잃을까 하는 불안함에 무장 세력이 생겨나고, 더 나아가 아예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군대가 생기고 그로인해 잔인한 전쟁이 시작된다. 또 그들은 획기적인 기술인 글쓰기를 비롯한 지식을 독점하고 돌 판에 규칙을 새기면서 여성들의 권력을 빼앗고 토속신앙과 다신교를 배척하며, 이어 모계사회는 사라지고 가부장제가 승리하며, 모든 부는 아들이 이어받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가 되어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배우고 듣고 이런 시스템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사고와 이런 사고가 만들어낸 사회는 결국 자연을 파괴시키고 동물을 학대하며 황폐화시키고 있는데, 이제 그런 남성들은 지구 밖 우주에까지 그 소유를 넓히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남성들은 실패했으니 그들을 몰아내고 여성들이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로 보자는 이야기, 그리고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 그리고 잊혀진 여성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여성성이 부활한다는 것은 직선뿐 아니라 곡선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춤과 놀이를 즐기면서 모든 동물, 식물, 자연의 생명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를 지지하며 땅과 더불어 가볍게 살아가는 것을 다시 배우자는 것이다.
히즈스토리는 모든 생명이 이 세상을 공유하며 즐길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면서 분리와 소유로 점철된 5000년 세월을 만들었다. 집이든 차는 사는 데만 익숙하며, 끊임없는 전쟁, 고통, 빈곤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만들었다. 이미 세상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자연 이용과 개발의 대상이었던 지구도 곳곳에서 아픔을 얘기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우리는 그 위험을 감지하고 있고, 그 위험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동물의 복지를 생각하고 그 너머 생명의 존귀함을 생각할 때, 유전자 조작의 위험을 얘기할 때, 원자력의 위험을, 강물을 인위적으로 가두는 것 등의 순리의 거스름을 이야기 할 때, 지구 반대편의 가뭄과 가난을 생각할 때, 1일2식, 소식, 채식 등 채우는 것보다 비움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 잃어버린 것, 다시 찾아야 할 것들을 무의식중에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젖어있던 것들,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 것들, 내가 누리기 위해 파괴해야 했던 것들, 편견들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이미 실천하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대립해야 하는 것이 아닌 아름답게 조화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껏 남성성에 치우쳐진 생활과 사고를, 교육을 하고 있었기에 병들게 된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어떻게 조화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많은 분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