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사랑영화이지 않을까! 하고 본 영화~

그러나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였다.

어떤 사랑이 가장 옳은것일까..라는것을 보여주면서도..

가슴아픈 영화였다.

감옥에 있는 지극정성의 남자와....그 정성으로 되살아난 식물인간 아가씨..

그러나..그녀는 그를 알조못한다..

눈물이 날만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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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종일...air기타라는 음반만 되니어 들었다.

정말 멋진 기타음에...뻑!! 갈것같았다.

내가 기타를 치고싶어했던건..대학교 3학년때..

노래를 할때 피아노로 반주하며 부르는 친구들이 부러웠으니 돈이 안되던 관계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것..

몇개의 코드로 한곡을 완성하여 불렀을때.하늘로 날듯한 기분이였다.

 

그리고..다시금 기타소리에...내 맘을 빼앗긴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최훈씨를 만나고서 부터였다.

아직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지는 못했지만...지금 귀에 울리는 레드제플린, 디퍼플...

바로 그의 음악일듯하여..기분이 매우 좋다!

 

며칠내에..그가 공연하는 라이브 카페에 가려고한다

살아있는 전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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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제 기술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시리즈 집필한 소설가 안정효
2003.12.23 / 김영진 편집위원 

소설가 안정효는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단구의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사랑과 그걸 글로 옮겨 적고 싶은 욕심을 말했다. 거기에는 누구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정신의 높은 키가 있었다. 보증할 만한 할리우드 키드로 성장기를 보낸 그는 저명한 소설가의 이름을 얻은 지금 다시 과거의 영화들을 더듬으며 한 시대의 영화 기억의 고고학이라 할 만한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안정효에게 들어본 어떤 할리우드 키드의 추억, 그리고 현재의 영화에 대한 생각.

“할리우드 키드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는 했었다. 버트 랭카스터나 리처드 위드마크가 나오는 어떤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뒤늦은 소식이 미국이나 일본의 잡지를 통해서 전해지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1년이나 2년이 지나야 우리나라에 수입되었고, 몇 년 늦게 막상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단성사나 중앙극장이나 수도극장 같은 개봉관에서 상영을 한 다음 또 몇 달이 지나야 ‘재개봉관’인 경남이나 명동이나 성남극장에 간판이 붙었으며 그리고서도 반년이 더 지난 다음에야 드디어 시골이나 변두리 삼류 극장에서 필름이 낡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화면으로 보통 사람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를 보고는 했다.” - <전설의 시대> 서문 중에서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은마는 오지 않는다>, <미늘의 끝>의 작가이자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한 150여 권의 소설을 번역한 명번역자 안정효가 소리 소문 없이 이제까지 존재한 숱한 지역과 장르의 영화들을 꿰는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과 역사’ 시리즈 책을 거듭 펴내고 있다. <전설의 시대>로 시작된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 연작은 <신화와 역사의 건널목>, <정복의 길>, <지성과 야만>, <밀림과 오지의 모험>, <동양의 빛과 그림자>, <영화 삼국지> 등으로 채워져 있다. 안정효의 집필 속도는 놀랍다. 2002년 3월에 이 시리즈의 첫 권인 <전설의 시대>를 펴낸 후 최근 작 <영화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쓰는 틈틈이 7권의 책을 냈다. 그는 내친 김에 ‘영화와 연극’을 주제로 서너 권가량의 책을 더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영화를 주제로 한 책 한 권을 이미 써둔 상태이고 장편 소설을 탈고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영화에 관한 책 집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앞서 인용된 <전설의 시대> 서문에 쓰고 있듯이 안정효는 자신의 소설 <할리우드의 키드의 생애>에 묘사된 그대로 전형적인 전후 세대의 할리우드 키드다운 성장기를 보낸 작가다. ‘군대갈 때 책상 서랍에 치워두고 간 수천 점의 영화 포스터와 프로그램 안내지를 잃어 버린 것이 아까워서 지금도 악몽을 꾼다’는 그는 지금도 보증할 만한 영화광이다. 서재에 명작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진열해 놓고 틈만 나면 다시 볼 만큼 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과 역사’ 시리즈는 현재의 영화에 관한 에세이집이 아니다. 영화 지식과 정보의 만물상이라 할 이 책은 안정효의 구상에 따르면 앞으로 나올 영화와 연극 시리즈까지 합쳐 모두 3만여 편의 영화를 언급할 예정이다. 현재 주목을 끌고 있는 영화에 관한 서술 대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가 할리우드 키드 시절에 본 영화들을 위주로 사념을 펼쳐가는 기억의 고고학에 가까운 성격의 글로 채워져 있다.

“나는 20세기 영화만을 쓸 것이다.”

안정효는 그가 어린 시절 본 영화 체험과 현재의 영화 체험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변두리 삼류 극장을 전전하며 개봉한 지 서너 달이 지나서야 비가 죽죽 내리는 낡은 필름으로 고금의 명작을 접하고 그것들의 이미지가 달아날까봐 경건한 마음으로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붙잡으려 애썼던 ‘제의’에 가까운 영화 관람 체험에 사로잡혔던 안정효 세대의 할리우드 키드들에게 아무 때나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 최신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며 영화 관람 중에 툭 하면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몰상식한 관객을 목격할 수 있는 요즘 극장가가의 풍경은 타락한 시장 좌판 같은 것이다. 안정효가 ‘헐리우드 키드...’ 시리즈에서 거듭 환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영화관에서의 기억이다. 서양의 아무개 여배우가 팬 레터에 대한 보답으로 젖가슴이 살짝 비치는 선정적인 사진을 답장에 끼워 보냈다는 유의 사춘기 소년들이 즐겼을 법한 가십 거리부터 고전기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매 웨스트가 어떻게 스스로 쓴 음탕한 대사들로 상대역들을 농락하며 시대의 도덕을 제압하는 요부로 올라설 수 있었는지에 관해 슬쩍 분석을 보태는 번역자의 안목을 엿보게 하는 대목도 있고 <춘향전>이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역사를 일별하는 가운데 이 텍스트의 진짜 악인은 변사또가 아니라 이몽룡일지도 모르며 춘향은 봉건 시대의 열녀상이 아니라 신데렐라적인 출세 욕망에 집착했던 현실적인 여인일 것이라는 식의 분석을 보태는 소설가의 견해에 이르기까지 ‘헐리우드 키드...’에는 다양한 얼굴로 존재하는 집필자 안정효의 존재감을 여러 각도로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영화에 미친 듯이 빠져 들어 열병을 알았던 성장기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할리우드영화에 도취한 나머지 영화와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영화광의 식민화된 의식을 비판하는 시선을 함께 녹여 놓았지만 ‘헐리우드 키드의....’ 연작 시리즈를 관통하는 문제 의식은 또 다르다. 안정효가 영화를 보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경배했던 성장기 시절에 나왔던 대중 영화의 통속성과 그가 성인이 된 이후의 대중 영화의 통속성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과 역사’ 시리즈의 부제에 ‘문학과 역사’란 방점이 붙는 것처럼 이전 시기의 대중 영화의 이야기 원천은 문학과 신화였다. 안정효는 “나는 20세기 영화만을 쓸 것이다. 21세기의 영화는 관심이 없다. 요즘도 좋은 영화가 있지만 대개는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그는 지난 시절의 영화의 통속성, 문학과 신화의 자장권 안에 있었던 시기의 영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지만 이제 문학의 품을 떠난 현대 할리우드의 대다수 대중 영화에는 흥미도, 애정도 없다고 말한다.

문학과 신화와 겨뤘던 영화들의 연대기

‘헐리우드 키드의...’ 시리즈의 최근작인 <영화 삼국지>에 실린 한국과 일본, 홍콩, 대만, 중국의 영화를 비교하는 대목에서도 안정효는 홍콩 무협영화나 그것의 아류작으로 나온 국적 불명의 한국 액션 영화에 대해서는 한심하다는 듯한 톤으로 마지못해 서술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 키드지만 그 이후의 할리우드 키드의 세대와는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사랑하고 숭배했다. 문학자로서의 그는 문학과 통하는 그 무엇을 지닌 지난 시대의 영화에 여전한 향수를 느낀다. 존 포드와 윌리엄 와일러와 하워드 혹스가 영화를 만들었던 고전기 할리우드영화를 비롯해 숱한 신화로부터 영감을 빌어와 싸구려 스펙터클을 만들었던 1960년대 초까지의 헐리우드영화는 여전히 문학적 감성의 영향권에 있었다.

“영화는 예술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기술로 시작한 것이다. <열차의 도착>이라는 뤼미에르의 영화는 그저 열차가 도착하는 풍경을 보여준 것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기해서 돈을 내고 영화를 봤다. 그 당시의 영화는 활동 사진이었다. 그게 곧 구경거리의 효력이 다하니까 이야기를 집어넣어 장편 영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늘날에 영화는 다시 기술로 돌아간다. 대다수 대작 영화는 기술의 발전 덕분에 현란하게 꾸미는 개량된 활동 사진이다.” 안정효가 말하는 영화 예술은 곧 이야기가 있는 영화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콩쥐와 팥쥐, 심청에서부터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피그말리온, 허먼 멜빌, 유진 오닐 등 동서양 고금을 통틀어 회자된 신화와 문학 작가들과 겨루거나 거기서 빌어온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정효는 완고한 영화광이지만 한때 가장 강력한 이야기 매체였던 20세기 영화의 종말을 가리키는 그의 시각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안정효가 당대의 통속성과 늘 타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부한 가부장제의 면면이 그대로 드러났던 김승호 주연의 서민 풍속 영화를 논하면서 그는 <마부>, <박서방> 등 1960년대 초에 인기를 끌었던 김승호 주연의 서민 풍속 영화가 당대의 윤리적 한계를 노출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에 갇혀 살았던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 시대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성취에 주목한다. “<셰인>에서 주인공이 총을 쏘는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런데 그 딱 한 번의 폭력 행사가 수십 번의 폭력 묘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말하는 안정효에게 조지 스티븐스의 유명한 서부극 <셰인>은 서부 영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대단한 영화지만 또한 그는 <올리버 스톤의 킬러>와 같은 현대 활극 문제작에서도 로빈 우드의 전설과 희미한 연관이 있는 동시대적 통찰이 드러난다는 것을 꽤 높게 평가한다.

‘헐리우드 키드의...’ 시리즈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보너스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이 국내 개봉 당시 제목이 <환상>이었다던가 하는 따위의 소소한 사실 고증이다.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은 한국 개봉 제목이 <인생의 낙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에 의존하지만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쓰고 나서 알게 된 영화계의 유명한 할리우드 키드 정종화 씨와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간혹 잘못된 자신의 기억을 교정한다. “정종화에게 툭 하면 전화한다. 근데 정종화도 모르는 게 많다. 내 기억으로 한국과 미국의 최초의 합작 영화는 <서울의 정사>였다. 말이 합작 영화지 여기서 돈을 조금 대고 촬영만 여기서 했던 영화인데 정종화는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집의 자료를 찾아 보니까 그 영화와 관련된 포스터가 발견됐다.”

작가에게 게으름은 죄악

‘헐리우드 키드의...’ 시리즈는 일단 책을 펼쳐 들면 술술 읽힌다. 어떤 대목은 정보 제공에 주력하기도 하고 가끔 힘을 줘서 분석하기도 하는 이 책의 서술 기조가 관객의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효는 이 책을 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두세 시까지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오후에 잠시 쉬었다가 저녁 때 지인을 만나는 일이 없으면 또 글을 쓴다. ‘일인 회사’의 사장인 작가의 처지에서 게으름은 죄악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이 놀러 와도 사전 약속이 아니면 만나주지 않는다. 술 먹는 친구들도 다섯 명을 넘지 않고 술집도 늘 한군데만 간다. 그는 문단 교분 관계에 관심이 없고 위대한 작가들을 말로 후려치며 잘난 척하는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글을 쓰는 게 낫다는 생활 원칙을 수십 년 동안 지켜 왔다.

안정효에 관한 전설적인 일화는 숱하게 많다. 대학 시절 이미 영문 소설을 쓸 만큼 영어 실력과 언어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기자 생활을 접고 오로지 번역 작업에 몰두했던 시절에는 번역만으로 돈을 벌어 집을 샀으며 외국 소설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식의 일화를 만들어 냈다. 안정효 본인은 ‘그게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웃어넘긴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번역과 소설 집필을 빠른 속도로 해 낸다. 그는 ‘한 달 만에 한 권씩 책을 내는’ 작업 리듬을 꾸준히 지켜 왔고 평생 마감을 어겨 본 적이 없다. “내 삶의 원칙은 첫째도 집중, 둘째도 집중”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내년까지 베트남에 관한 장편 소설을 탈고할 것이라는 계획을 들려주었다. 지난해에 모 방송의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하얀 전쟁> 촬영 때 가본 이후 10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은 그는 베트남 해방 전쟁의 영웅인 지압 장군을 만났다. 프랑스에 맞서 호지명과 함께 독립 운동을 했던 지압 장군은 프랑스가 철수했다는 사실을 호지명에게 알렸던 순간을 회고하며 그때 호지명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이 우리의 다음 상대가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안정효는 “지압 장군과 대담할 때 그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고 그에 비례해 내 존경심도 우러났다. 그런 사람들과 우리가 싸웠다. 월남은 부정 부패로 망하고 있었고 우리는 베트콩과 싸우러 이미 지게 될 전쟁에 투입됐다. 그때는 죽이라고 보내 놓고 지금은 친구가 돼서 사업 잘하라고 다독인다. 이념이 뭔가, 전쟁이 뭔가. 우리가 사로잡혔던 이념 중에 원래부터 우리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생각을 기초로 현재와 과거의 베트남을 아우르는 소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할리우드 키드의 꿈

실례지만 안정효는 영화에 관해 말을 할 때보다 자신의 소설에 관해 말을 할 때가 훨씬 재미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과는 달리 할리우드 키드의 환상을 귀중히 여기는 한편으로 거기서 빠져 나와 인생의 빛과 그늘을 성찰할 수 있는 소설가가 됐다. 그의 영화 사랑과 기억은 늘 과거에 고정돼 있지만 결국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종착지는 그가 소설을 쓰는 욕망의 종착지와 다르지 않다. 현실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꿈을 꾸는 것이다. 그의 꿈이 낡았다고 불평하지 마라. 그의 꿈은 언제고 우리의 심장을 향해 날아올 강력한 화살을 품고 있으니, 소설가이자 여전히 자신을 할리우드 키드라고 주장하는 그의 지혜를 한 번쯤 경청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김춘호 기자

출처 = 필름2.0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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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하루 2005-11-1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본 최고의 한국영화로 난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를 꼽는다
고1때 본 이 영화는..나에게 영화는 문학의 또다른 표현방법이라는걸 처음 알게해주었다
알고보니 동명 소설이있었다.소설이 더 신나고 잼났다..^^
 

괜찮아를 보았다? 읽었다?

저는 보았고 태양님은 읽었다고 봐야겠지요

저는 그림중심으로 봤고 태양님은 글중심으로 봤으니..

 

알고보니 울동네..더군요!

태양님과 함께 한번 다녀오기로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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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할까...
999일 되던날..오후..
뭘하면 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을까...
한참 한참을..고민하다가 결정한것은 [사비나미술관]의 점심 프로그램이였습니다.
예전 [즐거운 문화읽기]에서 지은언니가 맛나게 떡과 김밥을 들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람을 하는것을 존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상깊게 남아서...홈페이지를 찾아 확인해 보니!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런치 프로그램이 있다네요!
그래~~ 이거야!!!
결정을하고 관람비와 식사비를 입금한 후...다음날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잠도 잘 못이루었답니다... ^^;;

1000일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태양님께 양복을 입고 11시 50분까지 안국역 1번출구로 오라고 주문을 하였습니다.

미술관이라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입으라는것이 아니라..우리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고 서로를 존귀한 존재로 다시금 높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였지요 
태양님은 영문도 모른채....그러겠노라고 하고..양복을 입고 출근을하였습니다.
저도....그나마 맞는(살이 너무 쪄서...맞는 옷이 없음) 정장을 차려입고 안국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제가 먼저 도착하여 태양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태양님이 물어봅니다  '어디 갈건데??'
저는 대답했습니다 '미술관~~'
태양님 '........?? 왜 미술관에 가??'
전 대답했습니다. '나는 미술관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거야!'

이 사비나 미술관의 런치 프로그램 제목이 바로 [나는 미술관에서 점심을 먹는다!]
랍니다...잠시..인용을 한것이지요! ^^


미술관에 들어가서..런치 프로그램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 갤러리에 자주가지만 이렇게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면서미술 관람할 기회는 없잖아!

게다가...김밥을 들고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라 먹어가며 감상하는거니..얼마나 좋아!!'
라고 설명하자...태양님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고 신나고..또 배도채우며 든든하게 미술감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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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하루 2004-02-2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즐거운 1000일의 행사였습니다.
늘 오늘처름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