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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표지그림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얼마나 어떻게 달콤한 그녀의 도시를 그려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한장 한장 넘긴것 같다. 결론은 그다지 달콤하지만은 않은.. 달콤하지만 쌉싸름하기도한 아니 쌉싸름보다는 씁쓸한..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의 그녀의 도시였던것 같다.
서른한살 오은수대리의 옛남자친구의 결혼식, 그날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달콤한 사랑이 되어줄 태오를 만난다. 그러나 일곱살이나 어린 태오를 그녀는 현실속 사랑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김영수를 만나게 된다. 이름처럼이나 평범하기 그지 없는 김영수... 그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유준과의 장난스럽고 짧은 프로포즈를 제외하면 저 두사람으로 이야기 된다.
그녀에게는 세친구가 있다. 유희, 재인, 유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부분들이였던것 같다. 난 은수처럼 일반 직장을 다닌적이 없다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딱 한번일정도로 난 남들과 다른 시간대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직업을 가졌었다. 스물일곱살에 결혼을 해 노처녀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었고, 스무살때부터 친정하고는 늘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명절에 한번씩 가는 것으로도 충분했었다. 선을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지금 만나 함께 살고 있는 이사람을 제외하고는 늘 주변 인물이였고, 결혼을 두번이나 한 오빠가 있지만 새언니는 없다. 그러나 내게는 유희, 재인, 유준과 같은 친구들이 있다.
유희, 자기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은 잘 생각할줄 모르고 같은 말을 해도 완화해서 할줄을 모르고 생각나는대로 다 해버린다.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 학원강사를 천직으로 알고 6년째 일하고 있던 내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그녀는 "나도 학원강사나 해볼까" 라고 말하며 내 직장을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곳으로 전락시켜버렸다. 학창시절 내내 남자친구가 있던 그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와서는 "남자친구가 없는 사람은 이 외로움을 몰라" 라며 당시 뜨거운 연애를 해본적이 없던 내게 위로 받을수 없다며 내 위로를 뿌리쳤었다.
재인, 똑똑하고 자기일 알아서 잘 처리하고 쉽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은근히 풍기는 그녀의 너보다는 내가 수준이 좀 더 높지! 내가 너보다는 좀 더 알지! 하는 식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함부로 충고하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내가보기엔 자기도 그렇게 잘 살고 있는것 같지 않은데 나를 향해 그렇게 살면 안된다며 충고를 한다. 이건 이렇게 해야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고... 자기 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듣기 싫다.
유준, 애인도 아니면서 애인의 역할까지 해주는 친구. 여차하고 달려가면 받아줄것 같은 친구. 그런 친구가 있었다. 서로의 새로 생긴 애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며 축하해주고 축하받고, 헤어졌을 땐 위로 해주고 위로 받고, 결혼과 함께 그런 관계도 끝을 냈지만... (일부러가 아니라 남편이 이젠 나의 모든 위로와 축하를 전적으로 해주니 더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그놈도 내 친구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 더 이상 엮이지 않기로 자연스럽게...^^)
여튼..이런 친구들이 아픔도 주고, 짜증도 주고, 때론 기쁨도 주고 그러면서 내 주변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 직장, 가족, 친구 이야기가 이렇게 적절하게 잘 믹스 될수도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소설들을 읽다보면 주제가 사랑이면 사랑, 가족이면 가족! 이렇게 정해져 있기때문에 어느것 하나씩은 결핍된 상태로 제시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오은수 라는 한 인물이 주제인듯 소소한 주변 이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보여주고 있다. 꼭 내게 일어날법한 이야기들로 구성된건 아니지만 어딘지 모를 공감대가 어딘가에는 걸쳐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든,친구든, 사랑이든. 직장이든 간에...
김영수의 이야기 부분에서 아니 대체 이걸 어떻게 끝을 맺으려고 이런식으로 허무맹랑하게 벌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보면 그것이 현대의 도시의 특성인 익명성에 대한 주제를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고 싶다던가. 나를 버리고 싶다던가..
한 사람의 내면 묘사에 치중하는 386 세대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지는 신선하고 즐거운 25-35 (소위 과거 x세대라 불렸던 세대) 세대의 베스킨라빈스 31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