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에쿠우스

2018. 3. 1. ~ 4. 29.

대학로 TOM 1관

2018. 3. 11. Today's Cast


마틴 다이사트 - 안석환, 알런 스트랑 - 전박찬, 헤스터 샬로만 - 이서림,

프랭크 스트랑 - 유정기, 도라 스트랑 - 김효숙, 질 메이슨 - 한은비, 젊은 기수 - 노상원,

너제트 - 배은규, 코러스 - 김강헌, 조형일, 채종국, 이동훈, 신동찬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공연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연극 에쿠우스가 그랬다.
지금 TOM에서 하고 있는 에쿠우스는 너무나 가볍다고 느껴졌고, 알런은 섹슈얼리티의 압박 또는 심리적 압박때문에 말의 눈을 찌른 어른같은 아이가 아닌 그저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질 메이슨과 알란이 옷을 모두 벗는 장면은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질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옷을 벗고 있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공연을 보는 내내, 몇 년전 발렌시아 시청 근처 공연장에서 봤던 에쿠우스가 생각났다.
딱 5명의 인원 이었지만 공기마저 멈춰있던 압박감. 무게.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던 질의 노출과 섹스신을 통해, 비록 모든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런이 받았던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던 오늘의 무대와는 달랐다.

물론 연출과 배우의 해석에 따라 같은 희곡이라고 관객이 받는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에쿠우스는 나의 타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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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닭쿠우스

2018. 3. 7. ~ 18.

대학로 나온씨어터

 

2018. 3. 9. Today's Cast
알란 - 이기돈, 다이다이박사 - 정나진, 아빠 - 김문식, 엄마 - 손고명,
하스타 - 김태훈, 부원 - 곽동현, 메리조이 - 최주연, 작가 - 이철희

 

 

 

사실. 노들에서 하는 궁리소 차담회가 3월 9일인줄 알고 일이 끝난 후 혜화에 갔었다.
근데 알고보니 차담회는 3월 30일 금요일.
혜화까지 온 김에 하릴없이 집에 가고싶지 않았던데다, 연극 닭쿠우스를 매우 보고싶었던터라 그냥 나온씨어터로 향했다.

때마침 공연을 보러 간 날에 관객과의 대화를 해서 나는 배우와의 대화를 하고 왔다.

극 초반은 에쿠우스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에쿠우스 비틀기나 에쿠우스의 충남 홍성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에쿠우스 비틀기라기 보다는 연극 관객모독이 생각났고, 알란이 아닌 다이다이를 위한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를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고 어느 정도 작가/연출의 의도도 있었다.

누구나 꿈이 있을 텐데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아니면 스스로 벽을 만들어 '닭장'으로 상징되는 좁은 공간에서의 삶을 사는 사람을 위한 연극인지, 꿈을 쫓는 사람을 위한 연극인지, 꿈을 잃은 사람을 위한 연극인지 확실하지 않다.
단지 공연을 보면서 현실에 갇혀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나를 가둔 것이 무엇인지 갑갑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배우는 8명, 관객은 배우보다 많은 11명이었다.
- 관객 중 몇몇이 연극계 종사자(현재 공연하고 있는 에쿠우스의 배우라던가, 국립극단에 올라갈 극의 연출 등)이 있었지만.

질문에 주로 답변을 하던 사람은 작가이자 연출인 이철희 연출이었지만 알란의 이기돈 배우와 다이다이의 정나진 배우도 답을 했었다.

내가 했던 질문은 아니지만 일부러 연극 에쿠우스와 시기를 맞춘거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나왔던 답은 "우연"이었지만, 꽤나 기적같은 우연이었다.

질문하고 싶었던 내용이 많았지만, 극장 문을 닫아야해서 더 긴 시간 하지 못한것이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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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Pick It Up_Reboot

2018. 2. 3. ~ 3. 4.

극장 동국

 

눈먼 돈, 현금 10억을 가지기 위한 사람들의 혈투.
눈먼 돈이니까 쉽게 차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인간 여럿이 댓가를 치른 연극.

비자금이 필요했던 국회의원, 돈을 더 벌고 싶었던 사채업자 김사장, 이 둘은 잡기 위한 경찰은 그렇다치고 댓가 없이 10억을 가지겠다고 달려든 인간 쓰레기는 어째야했을까?
- 경찰은 할 일을 할 뿐이지만 국회의원은 김사장은 원래 쓰레기.

그리고 홍은 왜 이유없이 LSD&쿠키에게 10억을 훔치라고 한거지?

많은 이야기와 사람이 나온 연극이었고 재미있게보았지만, 10억을 쫓다 죽은 사람만 남았을 뿐 결국 모두 얻는 것 없이 죽음을 맞이해버렸다.

경찰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수첩만 들고 도망간 철가방만 겨우 목숨을 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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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와일드패밀리

2018. 2. 2. ~ Open Run

대학로 미마지 아트센터 물빛극장

 2018. 2. 7. Cast
오민상 - 김대형, 오민중 - 류기범, 이순경 - 정다혜, 노숙자 - 오수혜, 들개 - 이재원

 

 

최근들어 공연을 통 안 보고(혹은 못 보고) 있다. 의도치 않게 공연 관람 횟수가 줄어들었다.

2월 들어 본 무대공연 연극 와일드 패밀리. 대구에서 시작해서 서울까지 올라온 연극이다.

연극 와일드패밀리의 장점은 1. 웃기다. 2. 시끌벅쩍하다. 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시끄럽고 왁자지걸하고 웃기고.
최근에 보았던 연극과 뮤지컬이 대부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라 공연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공연을 보고나면 기분이 우울했었는데 모처럼 공연을 보고 난 뒤에 기분이 좋았었다.

공연을 보면서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단위가 아니라 같이 살고 함께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민상, 오민중, 노숙자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었지만 서로를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이 세 명(+오순경)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게 된 것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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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헬멧

2017. 12. 19. - 2018. 3. 4.

2017. 12. 29. Cast 정원도 손지윤 양소민 이호영 김도빈

아트원씨어터 3관

 

 

피곤하고 긴 하루의 끝. 연극 더 헬멧.
Room. Seoul. Big.- Room. Aleppo. Big.

독재의 한국, 서울과 전쟁의 시리아, 알레포.
어차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독재정권이 생긴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살기 위해.

서울에서는 어떤 사람은 민주주의를 위해 화염병을 던졌고 어떤 사람은 강제로,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싶어서 백골단이 되었다.
알레포에서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 한복판에서 살고 가족을 잃었다. 가족을 잃어서인지 아니면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날이 서 있었고 모두 괜찮지 않아 보였다.
서울도 알레포도 모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서울의 사람은 거짓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어쩔 때는 그냥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투쟁을 하거나 백골단처럼 보이지 않았다. 학생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군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2017년 현재. 전두환도 노태우도 살아있고 백골단은 다른 형태로 남아있다. 정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이용했다. 2017년의 투쟁은 1987년과 1991년의 투쟁과 맞닿아있지만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투쟁의 이미지만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알레포는 힘겨웠다. 죽은 가족을 놓지 못하는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모두 힘겨워 보였다. 그 캐릭터가 화이트 헬멧이건 기자이건 군인이건 간에.

백골단, 화이트 헬멧, 시리아의 정부군. 이 셋 모두 옳지 않다. 틀렸다. 다른게 아니고 틀렸다.
어떤 종류의 화, 복수, 전쟁은 모두 틀렸다. 전쟁과 복수의 한복판에서 용서와 웃음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죽음과 고통이 익숙해서인지 이런 연극을 보아도 쉽게 눈물이 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질 뿐이다. 내 주변에 있는 관객이 많이 울었었다. 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왜 우는 걸까? 평소에 슬픈 일이 없는 걸까? 아니면 죽음과 고통이 드물었던 걸까? 누구 때문에 우는 건가?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른이 되고 싶은 게 꿈인 아이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죽은 아이 대신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화이트 헬멧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축구공이 아닌 곰인형을 좋아했던 아이를 사랑했고 그저 평범하게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정부군 때문에? 근데, 제일 힘들었던 건 아이를 잃었던 화이트 헬멧이 아니라 친구 옆에서 그를 지지하고 끝까지 희망을 주려도 했던 다른 사람 아니었을까?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웃고 있었던 사람.

죽음과 고통 속에서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을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사람이 웃고 있던 이유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웃음으로 고통을 감추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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