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작품 대부분, 적어도 그 기저에는 굴곡 많은 그의 다채로운 인생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안데르센은 평소에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동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그만이 가꾸고 누려온 인생역정 대부분이 그대로 작품의 표제가 되고 모티브가 되어 생동감 있게재현된다. 울슐라거의 평전에 따르면 그는 "성공한 ‘미운 오리 새끼‘이고, 고결한 ‘인어공주‘이며, ‘꿋꿋한  양철 병장‘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다. 또한 우울한 ‘전나무‘이기도 하고,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그는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환상적인 문학 시류에 편승하여 항상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기보다 때로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마저 풍기곤했다. - P91

윤후남의 번역으로 『안데르센 동화전집』(2016)을 통해 그의 동화168편 완역본을 펴낸 출판사 현대지성은 다음과 같은 논평으로 책을마무리한다. "안데르센 동화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읽는 책이다. 안데르센 동화는 삶의 모습들을 거울에 비치듯 있는 그대로 비춰줌으로써독자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도록 해준다. 아이들은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즐기면서 이러한 세계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어른들은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보편적 진리와 사회적 진실을 통해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다. 안데르센 동화가 시대를 초월하여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즐겨 읽는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 지니는 이러한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 P95

호학위공(好學爲公, 공무를 위해 잘 배우다) - P110

이혼은 매우 간단하여 부부가 공증인 면전에서 사유를 밝히기만 하면 곧바로성사되었다. 남편이 아내가 바지만 입고 치마를 입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면 그것도 이혼 사유가 되었다. - P134

첫째, 중세 전제주의 국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왕 1인체제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와 부족대회를 바탕으로 하는 집단적 권력구조 등 다양한 국가체제 운영으로 정치사에 값진 경험과 교훈을 남기고 있다. - P148

둘째,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항행보다 500년 앞서 북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함으로써 인류의 항해사에서 개척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 P149

셋째, 비록 약탈성을 면치 못했지만 용두선 같은 선진 전선을 제작, 운용하고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신출 귀몰의 기습 해전법을 창안, 도입하여 적을 제압하고  해상권을 통제했다. - P149

넷째, 영역 내 도처에 교역 거점을 건설하고 전문 무역선에 의해 유럽(동유럽 제외)과 지중해 및 북아메리카 사이에 촘촘한 해상교역망을형성, 활발한 교역활동으로 중세 유럽의 경제적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 P149

다섯째, 정교한 보석 가공술과 장식예술, 비유적 관용구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사가 문학과 뛰어난 가무, 사회적 신분 변경, 겹벽 주택등 비크인들이 사회·문화·생활 분야에 남긴 우수한 유물들은 인류공동의 귀중한 사회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 P149

자타가 인정하다시피 노르웨이는 세계 일등 복지국가다. 그것은적어도 세가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는 최신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정도를 비교 분석하는 발전지수(IDI)에서 단연 으뜸(2009~18, 2014)이고, 둘째는 국민 개인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행복지수에서 2위(2018 2017년에는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마지막 세번째로 연속 6년간(2001~07) 유엔이 선정하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뽑힌것이다. 게다가 1인당 GDP는 최상위권에 속하는 약 68,000달러(2020)에 달한다. 노르웨이는 이러한 계량적 지수를 놓고 덴마크와 스웨덴,핀란드 등 주변의 북유럽 3개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내 자웅을 겨루고 있다. 그래서 이들 북유럽 4개국을 일괄적으로 ‘복지국가‘ 앞줄에 함께 세우는 것이다. - P153

노르웨이의 공식 국명은 노르웨이왕국(Kongeriket Norge 혹은 KongeriketNoreg, 영어로 the Kingdom of Norway)이며 줄여서 노르웨이 (노르웨이어로Nonge 혹은 Noreg)라고 부르는데, ‘북방으로 통하는 길‘이란 뜻이다. 유럽 서북부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연해에 섬들이 무려 239,057개로 ‘다도국(多島國)‘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21,000km나 되는 긴 해안선(피오르 포함)에 에워싸여 삼면이 바다인 해양국으로서 세계 최대 어업국의 하나인 동시에 세계 3대 수산물 수출국의 하나이기도 하다. - P155

근간에 사법부가 공표한 눈에 띄는 한두가지를 소개하면, 노르웨이는 2009년 1월 1일부로 동성결혼법이 공식 발효됨으로써 세계에서여섯번째 동성혼 합법국이 되었다. 또한 2014년 9월 8일에는 사법부명의로 거리에 공고문이 나붙었는데, 내용인즉 네덜란드로부터 감방을 차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수감 공간이 부족해 1,300명의 기결수가장사진을 치고 수감을 기다리고 있으며, 몇년째 네덜란드가 벨기에에 감방을 대여해주는 선례를 따랐다는 얘기가 돈다. 이 희한한 전대미문의 ‘감방 거래‘는 복지국 노르웨이의 민낯의 한 단면을 고백하는성싶다. 노르웨이는 지금 수감 공간을 더 줄인답시고 교도소 보수 작업이 한창이라는데, 이 보수 작업과 ‘감방 거래‘의 상관성에 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1월에 조각된 현 행정부는 보수당(10명)과 진보당(7명), 자유당(3명) 등 3당 출신의 각료 20명이 구성원이며, 총리(보수당)를 비롯해 재무장관과 외교장관, 문화장관 등 주요부서 장관이 모두 여성이다. - P162

‘변덕의 순화‘, 이것이 툰드라에 태를 묻은 비크인들이 그 길 위에 새겨놓은 표지명(標識銘)이며 이글의 제목이  뜻하는 바도 그것이다.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각급학교의 교과서나 시중에서 팔리는 이러저러한 서양사 관련 서적을 펼쳐보면 책제목은 분명 ‘서양....….‘인데 내용은 99%가 유럽에관한 것뿐이다. 통상 서양이라고 하면 지구 서반구의 유럽과 동반구의 남북아메리카를 포함하는 지리적 개념인데 서반구의 서양유럽보다 몇배나 큰 동반구의 서양은 무시당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은 ‘서양…………‘이란 이름을 단 책을펼치면 금방 눈에 띄는, 하도 어이없는 일이라서 본론에 앞서 마수걸이로 내뱉는 한마디 개탄이다. - P25

이러한 개탄스러운 현실은 전혀 무관한 아랍-이슬람사를 서양사속 몇군데에 양념 치듯 대충 끼워 맞춰 서술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로라하는 서양사 명저들을 펼쳐보아도 엉뚱하게 ‘오리엔트‘란 이름으로 고대 아랍사(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역사를 유럽사의 서장(序章)쯤으로 둔갑시키고, 이슬람세계의  성립으로 암흑 속에서 헤매던 중세 유럽세계의 성립을 환치하다가 근세에 들어서는 아랍-이슬람세계를 아예  다루지도 않으니, 이것은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역사 서술체계라 아니할 수 없다. - P25

고흐 스스로가 이 그림을 그린 목적에 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램프 불빛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의 손,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사실을분명히 전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손으로 일군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 P36

감자의 유입은 유럽 사회를 크게 변모시켰다. 감자의 보급으로 식량이 충당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어 산업혁명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인구의 증가는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해외로 세력을확장하도록 충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산업혁명의 기선을 잡고 세계정복 활동을 펼칠 물질적 담보를 마련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더불어 감자의 보급과 풍성한 수확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곡물과식량에 대한 압박감과 의존성에서 벗어나 안정된 음식문화를 누릴수 있게 했으며 유럽인들의 건강한 체질 유지의 밑거름이 되었다. - P36

필자가 앞에서 감자의 유럽 전파의 자초지종을 비교적 상세하게설명한 것은 한마디로 감자의 전파야말로 유럽문명이 지닌 모자이크식 융합성의 축도이기 때문이다. 이 축도를 통해 우리는 이질적 잉카문명이 갈무리한 물질적 요소의 하나인 ‘안데스의 보물‘ 감자가 당초우연히 ‘관상용화초‘의 이름으로 스페인 원정군에 의해 유럽에 알려진 후 장장 두세기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유럽문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당당한 물질적 요소(식량)로 위상을 굳히게 된 과정, 환언하면 이질 문명인 감자의 수용을 통한 유럽문명의 융합성이라는 모자이크화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36

원래 인간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서양인이건 동양인이건 간에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種)에 속하여, 같은 지수의 뇌수량(量)을 가지고 생겨난 이래 불변의 육체적 속성뿐 아니라 정신적 속성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처한 자연환경이나 인문환경이 달라짐에 따라서로 다른 문명을 창출하고 향유해왔다. - P38

공자의 인(仁)과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와 무함마드의 형제애가모두 인간의 정신적 속성에 속하는 같은 맥락의 교조적 가르침이기는하나, 서양과 동양이라는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 설명과치장은그토록 다를 수가 없다. 절대적·배타적 · 원심적·능동적·외향적 논리적 · 분석적 · 개인적인 것이 서양문명이라면, 동양문명은 상대적·포괄적 · 구심적 · 수동적 · 내향적 직관적 · 종합적 관계적인 것이어서 정말로 음(陰)과 양(陽)처럼 대조적이다. 요컨대, 동은 동대로 서는 서대로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 P38

13세기에 마르코 폴로(MarcoPolo)는 동방에 와 직접 본 여러가지 문명적 업적들을 『동방견문록』(IZMilone)에 소개했다. 서양인들은 당대는 물론 이후 수세기 동안 그 내용을 믿지 않았다. 폴로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친구들이 그의 영혼의평화를 위해 이 견문록에 수록된 ‘거짓말‘들을 회개하라고 간곡히 권유했다. 그러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회개는커녕 그가 본 동양의 놀라운 일들을 절반도기술하지 못했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 P41

한편, 근세의 시대정신을 파악했다고 자부한 철학자 헤겔(G. W. F. Hegel)조차도 "중국이란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으니, 근세 이전 동서 간에 존재한  격색성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P41

인간의 심적 활동을 동양의 개념으로는 정관(靜觀,  영어·프랑스어contemplation, 독일어 Beschauung)이라고 하는데, 이는 실천적 태도를 버리고 내외의 대상을 조용히 심적 혹은 영적으로 관찰하는 활동을 말한다.  - P43

정관에는 지관(止觀)과 관조(觀照), 사유(思惟)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 P43

지관(산스크리트어 amatha-vipa yana, 불교 용어로 定慧·寂照明)이란 온갖 망념(念)을 버리고 맑은 지혜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종교적 명상과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 P44

관조(영어 enjoyment, 프랑스어 jouissance,
독일어 Genuss, Betrachtung)란 대상에 대한 직감에 의해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예술적(미적) 감상이 이에 속한다.  - P44

사유 (영어 thinking, 프랑스어 pensée, 독일어 Denken)란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과 표상을 마음속에서 구분, 결합하여 판단을 내리는 이성의 작용으로서, 학문이 그 전형적인 표현이다. - P44

일반적으로 동양문명은 지관과 관조를 근간으로 이루어진 문명이고, 이에 비해 서양문명은 사유를 근간으로 이루어진 문명이다. 자고로 지관이 인도인들의 세계관이라면 중국인들의 세계관은 관조다. 그래서 인도문명은 종교성이 강하고 중국문명은 예술성이 뛰어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반면에 서양은 주로 사유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해왔기 때문에 다분히 학문적 경향을 띠고 있다. - P44

이와 같이 동양문명이 지관적이고 관조적인 것에 비해 서양문명이사유적일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바로 상이한 자연환경에 있다. 동양의 자연은 천부적으로  인간에게 혜택을 주고 생업에 용이한 생활조건을 제공함으로써 동양인은 자연과 갈등하거나 대립하기보다자연에 순종하고 자연을 찬미하게 된다. 따라서 정적인 지관과 관조를 자연관과 철학관, 인생관으로 채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렵고변화무쌍한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과 투쟁하고 대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서양인에게는 이러한 온정적 가치관보다 의지적 사유가 필요했다. - P44

여행이란 설렘의 연속이다. 번번이 새로운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여행에 이골이 난 사람도 그 설렘이란 매번 더하면 더했지덜한 법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묘미이고 매력이기에 주책없이 오늘도 팔질(八, 여든살)이 넘은 노구를 던져 유럽일주라는 장도에 감히 나서게 된다. 특히 이번 길은 평생 숙원이던 종횡세계일주의대미를 장식하는 장도이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게다가 이역만리낯선 곳에서 말로만 듣던 외손녀를 만나 여행 안내를 받는 행운이 찾아왔으니 그 설렘은 더할 수밖에 없다.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양사의 통념에 의하면 5세기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로마제국의몰락을 계기로 유럽의 역사무대가 지중해에서 유럽대륙으로 옮겨가면서 명실상부한 유럽세계가 성립되었다. 이 새로운 세계에는 전래의 그리스·로마문명과 외래의 기독교 및 게르만적 문명요소가 융합된 이른바 ‘유럽문명‘이 형성되었다. 30여개 문명을 탄생시킨 인류의5~6천년 문명사에서 유럽문명은 생몰년(生沒)으로 보면 가장후발한 문명으로서 그 역사는 고작 1,500여 년밖에 안 된다. - P4

미지의 세계는 더 말할 나위 없거니와 어지간히 안다고 하는 세계도 눈에 초롱불을 켜고 답사하면서 찬찬히 살피는 견문(見聞)과 밖에서 귀동냥으로 얻어듣거나  책갈피에서 어설프게 익히는 전문(傳)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겉치장에 이골이 난 유럽 같은 ‘문명세계‘를 거닐다보면 그러한 괴리를 현실에서 더욱더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괴리는 겉치장에 감춰진실상, 즉 민낯을 제대로 가려냈을 때만이 발견 가능한 것이다. - P5

흔히들 민낯이라고 하면 허구나 위작을 함께 연상하고 부정적으로만 이해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어원으로 따지면 ‘민‘은 꾸밈이나덧붙임이 없다는 뜻의 접두사로서, 민낯은 화장을 하지 않은 본디 그대로의 얼굴을 가리킨다. 이렇게 민낯은 왜상(歪像)이나 허상이 아닌,
실상이나 본연이라는 긍정적 함의를 지닌 보통명사다. 그런데 허구나 위작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그 의미가 부정 일변도로 와전되어버렸다. 따라서 필자는 졸문에서 그 함의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관계없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에 한해서는 일괄 ‘민낯‘이란 표현을 쓰려 한다. - P6

이것이 필자 나름대로 짚어본 유럽문명의 현주소일진대, 애당초무엇이 그 민낯이고 또 어떻게 하면 그 민낯을 제대로 드러낼 것인가가 난제로 떠올랐다. 책제목의 선택부터 그러했다. 문명사적 시각에서 아시아를 ‘문명의 용광로‘로, 라틴아메리카를 ‘문명의 보고‘로, 아프리카를 ‘문명의 요람‘으로 규정짓기는 그 문명의 단순성과 투명성으로 인해 비교적 쉽고 단출했다. 그러나 원래부터가 스펙트럼이 다양한 융합적 성격을 지닌 유럽문명에 한해서는 결코 가볍게 단정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고 끝에 가까스로 짜낸 것이 ‘문명의 모자이크유럽을 가다‘이다. 문명교류사적으로 유럽을 ‘문명의 모자이크‘로 윤색한 셈이다. - P6

학여불급(學如不及)을 재삼 되새기며
2021년 10월 30일
옥인학당에서
정수일 - P9

3) 유럽은 6대주 가운데서 지세가 가장 낮은 대륙으로 평균 고도가340m에 불과하며, 고도 200m 이하의 평원지대가 전체 면적의 60%나되어 6대주 중 평원 비중이 가장 높다.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해 우랄산록까지 이어지는 대유럽평원의 너비는 수천km에 달한다. 이대평원지대는 몇개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품고 있다. 평원이 많은 만큼 산지는 흔치 않으며 높은 산도 몇 안 된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지대는 총면적의 2%에 불과하다. - P17

8) 주지하다시피 사계(斯界)에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유럽 사상과 문화의 2대 근원이라는 주장은 마냥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실상 이 두 사상의 발상지와 성숙지는 유럽이 아닌 서아시아 일원(오리엔트, 오늘의 팔레스타인과 이란)이며, 후(後出)한 ‘유럽사상‘과는 어느 모로 보나 직접적 연유성이나  계승성이 희박하다. 이 때문에 유럽 사상과 문화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2대 근원설‘은 증빙성이 약한 가설로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지론이다. 굳이 유럽사상의 근원을 추적한다면 유입 사상인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이 아니라 에게문명이나 그리스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할 것이다. - P20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문명은 그 생성 과정에서 교류를통해 이질적인 세계의 여러가지 문명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마치화폭에 착지한 각양각색의 현란한 모자이크처럼 다채롭고 찬란한 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역사가 이러한 사실들을 명백한 문헌 기록과 확실한 유적·유물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문명 ‘중심주의‘나 ‘우월주의‘의 주창자들과 추종자들은 이를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 P20

그러나 오리무중으로 지지부진하다가 18세기에 이르러 러시아지리학자 따찌셰프(Tatishev)가 드디어 한가지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는 서로 다른 수자원의 원천과 식물의 분포라는 자연지리적 환경의경계를 근거로 우랄산맥 -우랄강(2.534km)-카스피해 - 흑해-보스포루스 해협(터키)을 기준으로 하는 경계 설정을 주장했고 그 설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남북 길이 2,000여km에 평균높이 300~500m의 나지막한 우랄산맥이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경계로 공인되고 있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계선상에 경계탑 혹은경계비를 세웠는데 그 수만도 44개에 달한다. - P21

문명은 교류 과정에서 각이한 접변(接變,  acculturation)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접변은 크게  선과(善果)와 악(惡果) 의 두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두 문명의 교류 접변으로 인해 각이한 문명요소가 긍정적 · 건설적으로 혼합되어 순기능적인 선과를 나타내는 현상을 융합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피전파문명의 해체나 퇴화같은 부정적 · 파괴적인 역기능을 초래하는(악과) 현상이 있는데, 여기에는 점변으로 인해 피차가 아닌 제3의 문명이 형성되는 융화融化 deliquescence)와 일방적 흡수로 나타나는  동화(同化, assimilation)의 두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명교류의 성격이나 결과는 이상의 세가지 접변 현상에 근거해 판단한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컨닝 페이퍼
I am dying to
to quit. ‘일을 관두다. 때려치다‘
라고 할 때는 quit 이라는 동사를씁니다. 
quit my/this job을 한덩이로 묶어서 알아두세요.
I am dying for - P41

잠깐만요!
I am dying to do ~ vs. I can‘t wait to do ~I am dying to do ~ 가 강렬한 욕구 자체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면, I can‘t wait to do ~는 이미 앞으로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이지만, 한시라도 빨리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기분을 나타낸답니다. 그래서 여친을 한시라도 빨리다시 만나고 싶은 기분은 I can‘t wait to see her again. 이라고 나타내면 되지요. wait for 다음에 명사를넣어서 쓸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한시라도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표현하려면, I can‘t wait for myvacation. 이라고 하면 되는 거죠, can‘t wait to do can hardly wait to do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그대와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표현하고 싶다면, I can hardly wait to marryyou. 라고 하면 아주 훌륭하죠. - P41

컨닝 페이퍼
I want to · 일을 하다 말고 잠깐
‘쉬다, 휴식을 취하다‘ 라고 할 때는
have a break 또는 take abreak를 써 보세요.
drink beer
leave this world. 괴로울 때나우스개 소리로 곧잘 하는 ‘지구를떠나고 싶다‘는 말은 물리적으로지구라는 행성을 떠나서 다른 행성으로 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살고 있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니까,  그 속뜻에 맞춰 영작을 해야겠죠?
want to
to find • 우리말로는 올해는 여친/남친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식으로 쓰지만, 영어에서는 찾는다는의미의 find 를 써서 find a girlfriend/boyfriend로 쓴다는사실, 꼭 알아두세요. - P39

0컨닝 페이퍼
a new cell phone • 우리말을1:1 식으로 대입해서 ‘새로‘에 해당되는 영어단어를 찾고, ‘장만하다‘에  해당되는 영어단어를 찾지는 마세요. 전달하고자 하는 우리말의본질적인 개념과 영어표현의 개념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I want - 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공국사탑비
  원공국사 승묘탑비는 돌거북 받침대와 용머리 지붕돌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비신은 가늘어 날씬한 편인데, 받침대와 지붕돌은 꽤 큰 편이어서 안정감을 주며 조각 기법도 매우 치밀하다. 돌거북의 머리는 거북이 아니라 양의 머리처럼 조각한 것이 특이하고 목을 바짝 세우고 입을 꽉 다물어 야무진 느낌을 준다. - P357

원공국사 승묘탑
  원공국사 승묘탑(보물 제190호)은일제강점기 때 서울에 살던 일본인이 훔쳐서 서울로 옮겨간 것을 회수해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현재는국립중앙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있다. - P359

어째서 21세기 사람들은 1,000년 전 솜씨를 따라가지 못하느냐고 힐난을 보내니 우리 시대 문화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을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다. - P361

지금은 제주도에 살고 있는 장선우 감독이 한창 영화에 열을 올리고있을 때 거돈사터를 무대로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서울대 이애주 교수는 "달밤에 여기서 춤 한번 춰보고 싶다"고 했고, 음악 애호가들은 "여기서 야외음악회가 열리면 환상적일 것 같다"고 했다.
언젠가 석양 무렵 거돈사터에 왔을 때 나도 그런 꿈을 그려보았다. 석축에 관객들이 둘러앉아 불상 좌대를 무대로 삼아 음악회를 열어보는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 떠오른 레퍼토리는 이생강의 대금산조, 이애주의 살풀이춤, 김덕수의 사물놀이였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한 명 데려올까 생각하니 불현듯 떠오른 것은 야니(Yanni)의 피아노 연주였다. - P361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지광국사 현묘탑비는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비석이다. 조각이 섬세하고 비문 글씨도 뛰어나 가히 국보라 할 만하다. - P369

지광국사 현묘탑비의 디테일
  지광국사 현묘탑비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이자 천하의 명작이다. 특히 탑비의 조각이 더없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우리나라 조각에 이처럼 섬세하고 화려한 것이 있었던가 싶다. - P371

지광국사 현묘탑
  지광국사 현묘탑비 바로 곁에 서 있었던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은 높이 6.1미터의 승탑으로 팔각당이라는 기본형에서 벗어난 대단히 화려한 2층탑이다. 일제 때 일본에 반출된 것을 되찾아 경복궁에 세워놓았지만 한국전쟁 뒤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이를 다시 짜맞추어 간신히 복원해놓았다. - P373

다산 정약용도 유배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담배라고 하며 이렇게 읊었다.

요즘 새로 나온 담바고
유배객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지
살짝 빨아들이면 향기 그윽하고

淡婆今始出
遷客最相知
紐吸涵芳烈 - P378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처럼 간들간들
객지의 잠자리 언제나 편치 못한데
봄날은 왜 이리도 길기만 할까

微噴看裊絲
旅眠常不穩
春日更遲遲 - P379

그리고 고별연 마지막 연기를 내뿜으면서 소월이 애절하게 노래한「담배」라는 시를 아련히 그려보았다.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 P379

비두리라는 시골 동네
길이란 묘해서 나올 때보다 들어갈 때 멀게 느껴진다. 초행일 때는 특히나 심하다. 나올 때는 길을 잃지 않지만 찾아 들어갈 때는 행여 길을 잃을까 어리벙벙해지기도 한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있고, 길도 잘 닦여답사 다니면서 헤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1980년대만 해도 지방도로는 비포장길이 많았고 특히 폐사지 가는 길은 거의 다 흙먼지 날리는 비좁은 길이었다.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어 길을 잃기 일쑤였는데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큰 버스를 되돌려 나오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P381

"우리는 비두네미라고 하는데 군에서 저렇게 써 붙여놓았구먼. 동네이름은 비두리라고 합니다."
"왜 비두리라고 해요?"
그러자촌로는 길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비석받침돌거북이가 하나 있어서 비석 비(碑) 자에 머리 두(頭) 자를 써서 비두리(碑頭里)라고 불렸다오." - P382

비두리 귀부와 이수
  비두리 귀부와 이수(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0호)는 규모도 웅장하거니와 귀부의 귀갑문과 이수의 운룡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우람한 몸체의 목에 돋은 비늘이 선명하고 고개를돌린 모습까지 사실적이다. - P383

당 태종의 글씨를 집자한 진공대사탑비
 진공대사 탑비에는 당 태종글씨의 멋이 잘 드러나 있다. 신운이감도는 듯한 리듬이 있다. 이런 명비이건만 크게는 두 동강으로 잘려나가원주 반절비라고 불리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P397

자신을 낮춰 말했지만 그것은 겸손이었다. 왕건은 진공대사의 행적을 일일이비문에 밝히고 난 뒤 대사의 열반을 애도하는 대목에서는 이런 비유로표현했다.
지금 비록 스님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 진실인 법제(法體)는 길이남아 있도다. 전에는 물이 고이니 고기가 찾아옴을 기꺼워했건만 이제는 숲이 없어지니 날아가는 새를 슬퍼하도다.
학식이 얕은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그리고 왕건은 대사를추모하는 명(銘)을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었다.
보배를 감추고 법인(法印)을 알았도다.
자비의 그 배는 풍랑에 빠졌고지혜의 등불은 그 빛을 잃지만은빛 석등의 불꽃은 영원히 비추리. - P399

염거화상 승탑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이 흥법사터에서 불법 반출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실패한 후회수돼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 승탑은 흥법사터에서 옮겨왔다고 전하지만 절터에서는 그 원래 자리가 확인되지 않았다. - P401

조선 초기 성종 때 대학자인 서거정은 우리가 다녀온 법천사와흥법사 등 남한강변의 사찰을 여행하면서 지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법천사의 뜰에서는 탑을 보며 시를 읊고
흥법사의 대 앞에선 비석을 탁본하네

法泉庭下詩題塔
興法臺前墨打碑 - P402

문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동고속도로에 문막휴게소가 생기고부터다. 그러나 문막은 본래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상에서 원주의 초입이 되는 오래된 마을이다. 문화재 조사에서 첫 단계인 지표조사를 할 때는 우선 나무부터 살펴본다. 근처에 오래된 느티나무가있으면 마을이 있었다는 증거이고 감나무가 많으면 민가가 있었다는증거다. 그리고 해묵은 은행나무가 있다면 마을 역사가 그 나이만큼 올라간다는 뜻이다. 문막에는 흥법사의 연륜과 맞먹는 은행나무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67호인 ‘반계리 은행나무‘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1495-1번지)다. - P402

아쉬움이 있다면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인지라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답사객들에게 그것을 아쉬움으로 말하자 곁에서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던 동네 어른이 내 말을 가로채면서 나섰다.
"이 은행나무가 수나무라는 건 맞는 말이여. 그래서 은행을 맺지 않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여. 그러나 이 은행나무가 있어서 사방 10리 안에 있는 은행나무 암컷 100여 그루가 실한 은행을 맺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고마운 일인감, 서운키는 뭐가 서운하단 말이여!"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동네 신목에 와서 흠을 잡느냐는 호통이었다. 그때 답사회원들은 반계리 촌로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박수는 분명 깊은 향토애를 나타내는 촌로에게 존경의 뜻으로 보냈음이틀림없다. 그러나 항시 답사 질서를 지키라고 회원들을 야단치면서 엄하게 굴던 인솔자가 보기 좋게 녹다운된 모습이 고소해서 박수 소리가 더커졌다는 것도 내가 잘 안다. - P405

비두리나 문막에서 겪었듯 시골 촌로들의 향토애는 참으로 귀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반계리 촌로의 일갈 이후 나는 그동안 언필칭 객관적으로 말한답시고 그야말로 ‘남의 동네 얘기하듯‘ 해온 걸 미안하고 죄스럽게 생각하며 다시는 답사길에 남의 동네 가서 아쉽다느니 어디 있는무엇에 비해 못하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을 아는 데까지 30년이 걸렸다. - P405

나옹선사가 지었다는 「참선곡」은 오늘날까지 널리 수행의 지침으로 되어 있다.

하하 우스울사 허물 말 우스울사
엇지하야 허물인가 본래공적 무상(無常事)를
누설하야 일렀으니 엇지 아니 허물인가 - P430

나옹선사 진영
  고려시대 마지막 고승이었던 나옹선사의 영정이 여러 폭 전하는데 그중 가장 우수한 것은 현재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된 것이다. 나옹선사의 사리는 둘로 나누어 나옹선사가 주석했던 양주회암사와 신륵사에 승탑으로 모셨다. - P431

나옹선사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청산은 나를 보고(靑山要我)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要我以無垢聊
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

(이 시는 다른 스님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중국 한산(山)스님이지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나옹선사가 지은 것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P4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