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Rhein(네덜란드어로 ‘레인’)강 하구에 자리 잡은 레이던Leiden은 물 많은 네덜란드 도시 중에서도 유달리 물이 풍부하다. 도시 면적의 약 6퍼센트를 강과 운하가 차지하고, 도시를 관통하거나 에워싸는 수로의 길이는 총 28킬로미터, 다리는 88개나 있다.

레이던 방문객은 유람선을 타고 이 도시를 물 위에서 감상한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 보호에 민감한 네덜란드 도시답게 전기 보트를 임대해서 레이던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니우어레인Nieuwe Rijn과 아우더레인Oude Rijn을 비롯한 운하들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즐거운 경험도 가능하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해안가에 오뚝 솟아 있는 섬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은 멋진 사진 남기기가 여행의 목적인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육지에서 섬까지 길은 물이 밀려오면 바다가 된다. 썰물 때만 걸어갈 수 있다.

몽생미셸의 우글거리는 관광객들을 떠나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브르타뉴Bretagne의 해안 도시 생말로Saint-Malo에 닿는다. 생말로에도 밀물 때 길이 닫히고 썰물 때 열리는 작은 섬이 있다. 이름은 그랑베Grand-Bé, 도시 해안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인기로 치면 몽생미셸과 비교할 수 없으나, 이 섬은 프랑스 혁명이 촉발한 역사의 파도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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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리Coventry는 영국의 유명 관광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여행객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으로 아주 낯선 도시는 아니다. 그것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덕분이다. 이곳은 영문학의 대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고향 마을로, 그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전용 극장도 세워져 있다. 셰익스피어 덕에 번성하는 이 관광 명소에 가려면 코번트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대성당 운영위원장 리처드 토머스 하워드 신부Richard Thomas Howard(1884~1981)는 고민하는 위원들에게 제안한다.
"이 모습 그대로 보존합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도록. 또한 화해의 상징이 되도록."

20세기에 세워진 코번트리 대성당은 자신을 파괴한 적을 용서함으로써 화해를 지향했다. 또한 갈라진 역사의 화합도 추구했다. 인류 구원의 십자가를 가슴에 품은 대성당을 지은 14세기. 하룻밤에 도시 하나를 처참히 뭉개버린 20세기. 고딕 양식과 모더니즘이 같은 석재로 손을 맞잡은 코번트리 대성당은 이 두 시대의 화합을 구현한다.

로마의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56?~120?)는 『아그리콜리아의 삶과 죽음De vita et moribus Iulii Agricolae』에서 자신의 장인인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Gnaeus Julius Agricola(40~93)의 치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그리콜라 총독은 이 사나운 야만인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쳤고, 추장들의 아들들에게 라틴어를 교육했다. 이들은 이내 로마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식 의복을 입고 살았다. 아울러 목욕탕을 즐기는 법도 배웠다.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바스Bath는 영국을 지배한 로마인이 지어준 목욕탕 겸 신전 덕에 생겨난 도시다. 강수량이 풍족한 영국섬에서도 특히 서쪽은 비가 더 많이 온다.

바스 인근 멘디프 구릉Mendip Hills이 받아놓은 빗물은 석회암 밑 지하 3천 미터에서 4천여 미터까지 스며들어 지하에서 지열로 데워진다. 이 물이 다시 석회암의 틈새를 타고 솟아올라와 온천을 이루는 곳에 로마인들은 도시를 세우고 ‘아쿠아이 술리스Aquae Sulis’(술리스의 물)라고 불렀다.

이베리아반도 남쪽을 차지한 알안달루스 무슬림들의 생활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돌 2장 참조). 그러나 이들의 세력권은 기독교 왕들의 공세에 밀려 11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알안달루스의 중심 도시가 코르도바에서 남쪽 세비야Sevilla로, 다시 세비야에서 더 남쪽 그라나다Granada로 내려갔다. 그라나다까지 내어주면 무슬림들은 다시 메마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다.

그라나다의 시인 이븐 잠락Ibn Zamrak(1333~1393)은 알람브라를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이곳에 서서 잠시 아래를 둘러보라.
도시는 신부처럼 물과 꽃을
목에 두르고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아 알람브라(알라가 보호하시길!)
그대는 화관 같은 도시에 얹은
루비 보석이구나!

알람브라 연못의 물소리를 묘사한 아름다운 연주곡이 탄생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19세기 말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1852~1909)가 1899년 자신의 후견인과 함께 그라나다에 여행가서 알람브라를 구경했던 추억을 담아 만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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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북쪽 산 위에는 피에솔레Fiesole라는 자그마한 도시가 있다. 피렌체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근거리에 있는 유구한 역사를 품은 소도시다.

피에솔레는 나이를 따지자면 오히려 피렌체보다 한참 선배다. 피렌체의 건립 연도는 기원전 59년인 반면, 피에솔레는 이미 기원전 283년에도 번듯한 도시였다.

피렌체로 돌아갈 때까지 돌팔매질은 계속된다. 온몸에 무거운 돌을 지닌 채 등에 돌을 맞고 있는 칼란드리노. 그는 오직 일확천금을 긁어모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거금을 손에 쥐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돌팔매질도 기꺼이 감내하리라!’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는 서양 미술사의 스타 화가 중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생산성에서는 쉽게 1등을 차지할 것이다. 그는 1840년에 태어나 1860년대부터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고, 세기가 바뀌어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1920년대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가 남긴 작품은 2,500점에 이른다.

이토록 놀라운 근면함은 가난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1868년 돈 걱정에 짓눌려 센Seine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돈 걱정에서 벗어난 후에도 생산성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남겼음에도 대부분의 작품이 명작 대접을 받기에 그의 창작 능력은 매우 경이롭다.

베로나Verona 시내 건물들의 외벽은 온통 핑크색과 흰색 석회석으로 덮여있다. 이탈리아 유명 도시 중에서도 유독 색깔이 곱다. 베로나는 인근 발폴리첼라Valpolicella에서 나는 이 예쁜 돌들을 가져와 마음껏 건축 자재로 썼다.

아름다운 석조 도시 베로나는 길거리도 사뭇 청결하다. 베로나의 역사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지배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로 얼룩져 있으나, 이들이 남겨준 도시의 외관은 단아하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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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4년. 그리스반도 마케도니아Macedonia의 한 도시. 대로를 지나가는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말 위에 앉아 칼을 든 늠름한 전사들과 선두에서 이 대병력을 이끄는 한 젊은 청년이 보인다. 그의 이름은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필리포이’라는 지명은 그의 부친 필리포스 2세Philippos Ⅱ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부친은 이 도시를 제압한 후 이름을 바꿔놓았다. 아들의 야심은 페르시아를 굴복시킨 후 제국 사방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들을 세우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알렉산드리아, 인도의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이토록 정교하게 만든 도로는 로마 제국 팽창의 핵심이었다. 에그나티아 가도는 특히 중요했다. 가도의 종착점 비잔티움Byzantium까지 총 거리는 무려 1,120킬로미터. 이 도로를 장악해야만 그리스 및 지중해 동편을 지배할 수 있었다.

서기 50년 무렵, 정복의 길 에그나티아 가도는 전혀 다른 정복자들의 발길을 맞이한다. 인원은 겨우 4명. 무기는 전혀 들고 있지 않다. 남루한 옷차림의 여행자들은 소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이다.

일행의 지도자는 이미 중년을 넘긴 유태인. 로마 시민권자이지만, 행색이 남루한 것이 마치 떠돌이 행상 같다. 그의 본명은 사울Saul이나 이름을 파울로스Paulos(바울)로 바꿨다.

이 네 명의 선봉대가 소지한 무기는 칼도 창도 아닌 ‘유앙겔리온euangelion’(복음).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려 이곳에 온 것이다.

‘세상의 보석’. 이것이 1천 년 전 코르도바Córdoba의 별명이었다. 무슬림들이 오늘날 스페인 남쪽을 정복한 후 ‘알안달루스al-Andalus’(오늘날의 안달루시아Andalucía)라고 명명하고 다스리던 때가 있었다. 코르도바는 알안달루스의 중심 도시였다.

711년 용맹스럽고 잔혹한 베르베르인을 앞세워 무슬림 세력은 이베리아반도를 장악했던 기독교인 서고트 왕국을 쉽게 무너뜨렸다.

이탈리아 피사Pisa의 명물 기울어진 탑. 직접 보지 않고도 이미 친숙한 ‘불가사의’다. 흰 대리석 기둥이 원을 이루며 한 층씩 버티고 있는 풍채도 곱지만, 이 탑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기울어졌으나 무너지지 않은 자세 덕분이다. 이 명물은 피사 대성당의 종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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