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가씨들이 속아 넘어가지. 그렇게 관심을 받아 본 적 없을 테니. 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

이런 얄팍한 수는 캐서린에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첫 문장부터 변덕과 모순과 거짓으로 점철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자벨라가 부끄러웠고, 또 그런 친구를 사랑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애정 고백이 역겨운 만큼이나 변명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고, 뻔뻔하게 부탁까지 하다니.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그가 마음에 안 들어요. 결국 우리에겐 다행으로 끝났지만 그가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요. 이자벨라가 산산조각 날 가슴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셈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그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나를 바보로 여긴 게 아니면 이런 편지를 쓸 수 없어요. 그래도 이 편지 덕분에,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더 잘 알게 됐어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요. 허영심 많은 바람둥이 아가씨의 사기가 이번엔 안 먹힌 거예요. 제임스나 나에게 요만큼의 애정도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애초에 만나지도 말았어야 했어요.

"프레드릭에게 처음부터 동기랄 게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쏘오프 양처럼 그도 허영이 가득한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가 더 영악한 부류라 그 허영에 자기가 넘어가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데 그 원인은 찾아내서 뭘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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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꿈은 끝났다. 캐서린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최근 품었던 황당한 공상은 이미 일련의 실망을 겪어 왔지만 헨리의 간결한 이 한마디에 철저하게 깨졌다.

정말 지독하게 부끄러웠다. 정말 쓰라리게 울었다. 그녀 자신도 추락했고 헨리까지도 추락시켰다. 이제 와서 보니 거의 범죄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던 상상력인데, 모든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녀를 영원히 경멸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벌인 일을 계속 곱씹어 보니, 여차하면 놀라 자빠지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든 상상력으로 하나하나의 소소한 정황마다 중요한 의미를 붙여 가며 결국 이 모든 망상을 혼자 만들어 냈고 아예 사원에 오기 전부터 그럴 작정으로 안달하면서 모든 것을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끌고 왔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분명해졌다.

노생거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바쓰를 떠나기 훨씬 이전부터 여기에 홀려서 엉뚱한 짓을 꾸며 왔는데, 이 모든 것이 거기서 미친 듯 빠져들었던 독서의 영향이지 싶었다.

그녀로서는 어떻게 생겼든 옻칠한 건 뭐든 꼴도 보기 싫은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난 잘못을 때때로 환기하는 것이 고통스러울망정 쓸모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이, 당신 감정은 인간 본성에 참 충실해요. 그런 감정을 잘 연구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명색이 시골 마을 유지인데, 지나치게 무심하단 소리를 들을 거다. 몰란드 양, 조금만 시간과 관심을 바쳐서 될 일이라면 이웃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는 게 내 원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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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우리가 살림이 평범하고 소박해서 즐거움이나 화려함을 선사할 수는 없어.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노생거 사원*에서 지내는 데 나쁘지 않도록 해 주지."

노생거 사원! 짜릿한 단어를 듣자 캐서린의 감정은 황홀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감사하고도 행복해서 침착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우쭐한 초대를 받다니! 함께 지내 달라는 부탁을 이렇게 열렬하게! 모든 것이 영광스럽고 뿌듯했고, 현재의 모든 기쁨과 미래의 희망이 다 담긴 초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가겠다고 성심껏 대답했다. "바로 집에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라고.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려 한다. 집, 복도, 안채, 마당, 안뜰, 별채 같은 건 다 없을 수도 있지만, 노생거는 어쨌든 사원이었던 곳이고 바로 거기에 머물게 된 것이다. 길고 축축한 길, 좁은 방들과 버려진 예배당을 매일 가 볼 수 있고, 어떤 전해 오는 전설, 상처받고 불운하게 살다 간 수녀의 끔찍한 기억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려 한다. 집, 복도, 안채, 마당, 안뜰, 별채 같은 건 다 없을 수도 있지만, 노생거는 어쨌든 사원이었던 곳이고 바로 거기에 머물게 된 것이다. 길고 축축한 길, 좁은 방들과 버려진 예배당을 매일 가 볼 수 있고, 어떤 전해 오는 전설, 상처받고 불운하게 살다 간 수녀의 끔찍한 기억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

"형이 쏘오프 양에게 다가가서 고통스러워요, 쏘오프 양이 그걸 받아 줘서 고통스러워요?"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몰란드 씨는 차이를 알걸요. 남자는 다른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흠모한다는 이유로 괴로워하지 않아요.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여자 몫이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군요."
"그럼요. 책에서 읽은 것처럼 멋지고 오래된 곳 아닌가요?"

"‘책에서 읽은 것’ 같은 집에서 나오는 모든 공포를 마주할 준비가 됐어요? 심장이 튼튼해요? 미끄러지는 벽장문과 양탄자를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럼요! 집에 사람이 많으니까 쉽게 놀라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이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안 살거나 버려진 적이 없으니까 미리 알리지 않아도 아무 때나 돌아올 수 있는 곳이잖아요"

사원! 진짜로 사원에 와서 기뻤다! 그런데 방을 둘러보니 그걸 의식하게 하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구로 가득 차있었고 모두 현대적인 취향의 우아함이 넘쳤다. 엄청 널찍하고도 육중한 구식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을 줄 기대했던 벽난로는 겨우 럼포드*였는데, 멋진 대리석이긴 하나 평범한 석판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정교한 영국 도자기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장군이 말하기를 고딕 창문을 굉장히 정성스럽게 관리한다고 해서 특히나 관심이 갔는데, 그녀가 상상했던 것에 못 미쳤다. 뾰족한 아치가 고딕 모양으로 보존된 건 분명했다. 심지어 창문 여닫이조차도 그랬다. 그런데 창틀이 하나같이 너무 크고 깨끗하고 밝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갈라진 틈이나 무거운 돌 재료, 색칠한 유리창과 먼지와 거미줄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금으로 치장한 방 하나를 특별히 언급하다가 시계를 꺼내 보더니 깜짝 놀라며 5시 20분 전이라고 말했다! 마치 뿔뿔이 흩어지라는 신호가 내려진 듯했고, 캐서린은 틸니 양에게 다급하게 끌려가면서 노생거에서는 시간을 철저하게 엄수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앨런 씨 집에서 훨씬 큰 방을 많이 봤겠지?"
"아뇨." 캐서린은 꾸밈없이 대답했다. "앨런 씨의 식당은 이 절반도 안 돼요." 평생 이렇게 큰 방은 처음이라고 했다. 장군은 기분이 좋아졌다. 큰 방이 있는데 굳이 안 쓸 건 없다 싶었다.

저녁은 별일 없이 지났고, 가끔 틸니 장군이 자리를 비우면 훨씬 밝고 명랑해졌다. 그가 옆에 있으면 자잘한 여행의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운이 빠지고 억압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대체적으로 행복감이 더 컸고 바쓰에 남은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불은 한순간 밝아지더니 그만 꺼져 버렸다. 호롱불은 더한 위협에도 안 꺼졌을 텐데. 몇 분 동안 캐서린은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 했다. 완전히 끝났다.

남아 있는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일 가망은 없었다. 칠흑 같은 무거운 어둠이 방을 채웠다. 갑자기 포효하는 거센 광풍이 순간의 공포를 더했다. 캐서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했다. 잠시 고요해지더니 물러가는 발소리와 먼 곳에서 문 닫는 소리가 그녀의 놀란 귀에 꽂혔다.

사람이라면 더는 못 버틸 상황이었다. 차가운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원고가 손에서 떨어졌고, 그녀는 침대를 겨우 찾아 다급하게 뛰어오른 다음 이불 밑으로 깊숙이 기어 들어감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날 밤 눈을 감고 잔다는 것은 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읽으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느라고 이 세상의 모든 잠든 이들을 부러워했다.

아직도 몰아치는 폭풍우는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 냈는데, 바람 소리보다도 더 무서운 소리가 가끔 겁에 질린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눈에 불을 켜고 한 면을 재빠르게 일별했다. 주요 내용에 집중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아님 뭔가 잘못 본 것인가?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삐뚤빼뚤하고 현대적인 글씨체로 써 내려간 면직물 목록에 불과했다! 눈앞의 증거를 믿어야 한다면, 그건 세탁물 영수증일 따름이었다.

종이 한 장을 더 집어 들었지만 약간 다를 뿐 역시나 목록이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다르지 않았다. 셔츠, 양말, 넥타이, 조끼의 목록이 차례로 나왔다. 동일한 글씨체로 쓰인 두 장을 더 보니 우편료, 머리 파우더, 구두끈, 승마 바지 세제 등 고만고만한 품목에 들어간 비용이 적혀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 비밀스러운 방을 조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일요일이었는데, 오전 기도와 오후 기도 사이 시간을 몽땅 장군을 따라 야외에서 걷거나 집에서 차가운 고기 음식*을 먹거나 하면서 보냈다.

아무리 캐서린의 호기심이 크다고 해도, 저녁 식사 후 6시와 7시 사이의 엷어지는 햇살에 기대거나 또는 그것보다 더 밝지만 협소하게 비추는 믿을 수 없는 촛불만 달랑 들고 그 방을 탐험할 용기는 없었다.

추모비를 세워 놨다는 이유만으로는 틸니 부인이 실제로 살아 있을 거라는 의심을 조금도 해소할 수 없었다. 부인의 유골이 잠들어 있는 가족묘로 내려가서 유골이 담겼다고 알려진 관을 들여다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캐서린이 책에서 한두 번 읽은 것도 아니고, 밀랍으로 만든 형체가 등장하고 가짜로 꾸민 장례식을 벌이는 것쯤은 태연하게 해치웠을 것이다.

친구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흘깃 쳐다본 후 그에게 달려간 사이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피신한 다음 문을 잠그고는 다시는 내려갈 용기가 안 생길 거라 생각했다.

"나도 계획보다 일찍 돌아올 줄 몰랐어요. 세 시간 전에 상황을 보니 기쁘게도 더 머물 이유가 없는 것 같더군요. 근데 창백해 보입니다. 내가 계단을 너무 빠르게 올라오는 바람에 놀란 모양이네요. 이 계단이 하인 숙소와 연결되는 것도 몰랐을 것 같은데, 그렇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이웃의 자발적인 감시꾼들이 서로서로를 감시하고, 사통팔달로 뚫려 신문이 모든 것을 실어 나르는 이런 나라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런 짓이 저질러질 수 있단 말인가요?

친애하는 몰란드 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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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독자들 앞에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이 차례로 펼쳐졌다. 매일의 사건, 희망과 두려움, 상처와 즐거움을 각각 진술했고, 이제 일요일의 고통만 묘사하고 나면 일주일이 끝난다.

클리프튼 여행은 사라진 게 아니라 연기되었던 터라 이날 오후에 크레센트를 걷다가 다시 이 주제가 나왔다. 단단히 벼르고 있는 이자벨라와 그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안달 난 제임스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날씨만 좋으면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제 시간에 귀가할 수 있도록 굉장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쏘오프가 승인하자 캐서린에게만 알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틸니 양과 대화하느라고 잠시 떠나 있었다. 그사이에 계획이 섰고,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동의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자벨라의 기대대로 즐겁게 동의해 주는 대신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미안하지만 갈 수 없다고 했다.

캐서린은 난감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강요하지 마, 이자벨라. 틸니 양과 약속했어. 난 못 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하며 몰아세웠다.

마땅히 가야 하고 당연히 가야 하고 거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틸니 양에게 가서 막 선약이 떠올랐으니까 산책을 화요일로 연기하자고 부탁하면 간단하잖아."

희생은 고귀하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친구를 불쾌하게 만들고 오빠를 화나게 만들고 그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계획을 자신이 나서서 망쳤다는 괴로운 자책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편견이 없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그녀의 행동에 대해 확신이 들고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서 다음 날 앨런 씨에게 자기 오빠와 쏘오프 남매가 짜다 만 여행 계획을 털어놓았다. 앨런 씨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따라가려고?" 그가 물었다.

캐서린은 그대로 따랐다. 이자벨라가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안타깝지만 앨런 씨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해 줘서 아주 안심했고 그의 충고 덕분에 잘못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서 진심으로 기뻤다.

클리프튼에 가지 않고 빠져나온 것은 정말 탈출이었다. 그 자체로 너무나 잘못된 일을 벌이느라 틸니 남매와 했던 약속을 저버렸다면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법도에 어긋난 잘못을 저지르고 그럼으로써 또다시 법도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를 뿐이라면 말이다.

"신사든 숙녀든, 좋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형편없이 지루한 사람일걸요. 난 래드클리프의 작품은 전부 읽었는데요, 대부분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유돌포의 비밀』을 읽기 시작하니까 손에서 못 놓겠더라고요. 이틀 걸려 다 읽은 기억이 나요. 읽는 내내 머리카락이 곤두섰어요."

"그 얘길 들어서 다행인 게 앞으로 『유돌포』를 좋아한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을래요. 여태까지 젊은 신사들은 진짜 소설을 엄청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엄청난 생각이네요. 그들이 정말로 소설을 싫어한다면, 그게 더 엄청난 일 같은데요. 남자도 여자처럼 소설 많이 읽어요. 난 수백 권 읽었어요. 줄리아와 루이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몽땅 섭렵했으니까 나와 겨룰 생각은 말아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이것 읽었어?’와 ‘저것 읽었어?’를 따지는 끝없는 싸움에 돌입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럴 때 적당히 뻐기는 미소를 지어 줘야 하는데 말이죠. 당신이 아끼는 에밀리가 이모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날 때 불쌍한 발란코트에게서 멀어지는 것만큼이나 내가 저만치 앞서가며 멀어질걸요. 내가 당신보다 몇 년이나 먼저 시작했는지 생각해 봐요. 당신이 집에서 자수 교본이나 가지고 노는 착한 아이였을 때 난 옥스퍼드에 공부하러 갔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훌륭한 역사가들 편에서 한마디 하자면, 그들이 더 높은 목적이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게 언짢을 수 있고 또 그들의 방법과 스타일을 볼 때 그들은 가장 진보한 이성을 가지고 성숙기를 보내고 있는 독자마저 완벽하게 고문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가르친다’ 대신 ‘고문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 이유는 당신의 어법을 보니 두 단어가 동의어로 쓰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교육을 고문이라 했다고 날 놀리겠지만, 불쌍한 어린아이들이 처음 알파벳을 배우고 그다음 받아쓰기를 배우는 것을 나처럼 지켜봤다면, 오전 내내 그 아이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그리고 불쌍한 내 어머니가 오전이 끝날 때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지금껏 거의 매일 지켜본 적이 있다면, ‘고문하다’와 ‘가르치다’를 가끔 동의어로 쓰라고 허락할걸요."

높은 언덕의 꼭대기에서 본다고 좋은 풍경이 잡히는 게 아니었고, 푸른 하늘을 그린다고 좋은 날씨라고 말할 수 없다니 말이다. 무지가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이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부끄러움이다. 누구와 친하고 싶다면 항상 무식해야 한다. 학식이 쌓이면 다른 사람들의 허영을 부추겨 줄 수 없으니,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를 늘 피해야 한다. 특히 여성은 불행하게도 무엇이든 알고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그걸 감추어야 하는 법.

"내 사고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반가운 친구를 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지게만 해 달라, 있고 싶은 곳에서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있게만 해 달라,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이겁니다. 당신도 같은 말을 하니 진심으로 기쁘네요. 몰란드 양, 우리는 대부분의 문제를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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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나 고통, 두려움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는 대신 글을 쓰는 한 여성이 있었다.” _ 버지니아 울프
“여성의 자존감이 제인 오스틴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_ 가디언
“햄릿이 영문학의 첫 번째 아들이라면, 엘리자베스 베넷은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다.” _ 로라 제이콥스

작가를 말하다,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 문학가로 인정받는다.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 『노생거 사원』, 이 6편의 소설로 200년 동안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위력적인 작가다.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난 오스틴은 8세 때부터 3년간 기숙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줄곧 집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12세 때부터 시와 단편 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해, 20세에는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셋집과 친척 집을 옮겨 다니다 오빠의 집이었던 초턴에 정착한 뒤 창작에 전념했다.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1817년 42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은 세밀한 관찰과 비판적인 시선으로 물질 만능주의와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개인의 도덕의식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전쟁, 영국과 프랑스 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어수선하던 시대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그린 오스틴의 작품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스틴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에게 가려서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오스틴이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20세기 후반에는 수백만 독자들을 몰고 다니며, 영화, 연극, 드라마 등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오스틴의 작품들은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운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을 말하다,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은 오스틴 스스로도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여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경쾌한 작품이다. 오스틴이 살던 시대,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여러 현실의 문제와 사랑 이라는 복잡다단한 주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꿰뚫는 소설이다. 오스 틴의 작품 중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18세기 말 런던 근교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베넷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속물적인 어머니와 무심한 아버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딸들의 결혼을 둘러싼 사건이 펼쳐진다. 오스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선 유머 감각, 조롱하는 듯 비판적이고 섬세한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생기 넘치고 당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다아 시는 서로를 향한 편견과 오해로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이루어 간다.
이 작품 역시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오히려 오스 틴이 그리는 작품 속 시골 사교계는 작가가 속해 있던 시대, 작가가 몸담고 있던 폐쇄적인 사회를 그대로 비춘다. 오스틴은 인물이 품은 속물근성과 배타적인 우월감 등을 세밀한 풍자로 보여 준다.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다아시의 편견. 오만에 사로 잡히고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엘리 자베스가 볼썽사납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던지는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말하다
1. 오스틴의 비혼
결혼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때도 있었지만, 오스틴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오스틴은 21세 때 훗날 아일랜드 대법관이 된 톰 레프토이와 사귀다 헤어졌다.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청혼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27세에는 넓은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의 청혼을 받은 다음 날, 결정을 번복했다. 파혼의 이유는 오스틴이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오스틴은 “사랑 없이 결혼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선택 하고 견뎌야 한다.”고 썼다.
2. 오스틴의 유머 감각
오스틴은 계약을 맺고도 원고 출간을 계속 미루는 출판사에 특유의 유머 감각을 동원해 항의했 다고 한다. 출판사에 보낸 편지 마지막에 ‘Mrs. Ashton Dennis’라고 서명한 것이다. 이 서명의 첫자를 연결해 보면 ‘MAD’. 오스틴은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메시 지를 재치 있게 전한 끝에 작품의 판권을 다시 사들여 다른 곳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3. 오스틴의 이름
오스틴은 비밀스러운 작가였다.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 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틴의 이름을 숨기고 작품을 발표했지만, 다들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 다는 사실이다. 문체의 여신으로 불리는 오스틴 특유의 묘사와 풍자를 어떻게 몰라볼 수 있을까. 이름을 감추어도 작가의 스타일은 남는다.

오만과 편견 : 세계문학그림책
제인 오스틴 원작 · 윤솜 저자(글) · 신진호 그림/만화

몽블랑
Great Writers Edition Fountain Pen
Jane Austen
닙에 새겨진 오스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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