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처음 놓인 다리가 1917년 개통된 한강인도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강대교라고 부르는 그 다리가 한강을 배를 타지 않고 건너게 해준 최초의 다리죠.
제2한강교는 1962년에, 제3한강교는 1966년에 착공됩니다. 지금의 양화대교와 한남대교죠.
체 게바라는 "둘, 셋, 더 많은 베트남을 만들자"는 유명한 연설까지 했죠. 실제로 그는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의 콩고와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로 건너가 또 다른 베트남을 만드는 계획을 실천했습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이명박 1970년대에 입사해 12년 만에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던 이명박은 당시의 성공 경험에서 비롯된 토건공사 제일주의 마인드가 골수에 박혀 있다.
영어로는 이 같은 토건국가의 담합정치를 ‘돼지밥통정치(pork barrel politics)’라고 해요. 이런 먹이사슬을 공유하고 그 돼지밥통에 주둥이를 처박는 사람들을 토건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재벌들이 백화점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엄청난 부동산이기 때문이죠. 아파트하고 맞물리는 거예요. 주변에 좋은 백화점이 들어서면 아파트값이 올라가죠. 그러면 아파트값 올라갔네, 기분이다, 하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 또 왕창 사주고요.
프랑스 혁명 당시에 상위 5퍼센트가 전국 토지의 25∼3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프랑스 혁명사에서는 "혁명이 안 일어나면 이상한 것"이라고 기술했지요. 우리나라는 1988년 기준으로 상위 5퍼센트가 전국 사유지의 6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불법으로 사람 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리고 한 거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만들고 보니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투기를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도덕이나 근면 따위는 ‘웃기는 짜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불로소득,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또 그 사람들이 더 높은 아파트를 쌓고, 타워팰리스를 쌓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호의호식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에게 더 준엄하게 따져 물어야 할 죄악이 아닐까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로서 공개념이 굉장히 셌던 나라입니다. "보천지하 막비왕토, 솔토지빈 막비왕신(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이라는 말이 있죠.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하늘 아래 왕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건국강령을 기초한 조소앙 선생이 그 내용을 해설하면서 공개념을 이야기하죠. 즉 "전통적으로 토지는 공적인 소유였다, 우리나라 토지제도는 국유제에 모범을 두었고 문란한 사유를 국유로 전환하는 태도를 가졌다"고 규정했습니다.
건국강령을 기초한 조소앙 조소앙은 건국강령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으로 토지는 공적인 소유였다. 우리나라 토지제도는 국유제에 모범을 두었고 문란한 사유를 국유로 전환하는 태도를 가졌다"고 규정했다.
적어도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국가 이전에 사람, 주권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꾸로 국가가 절대적인 존재로서 국민을 지배한다고 배웠어요.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그렇게 배운 거죠.
또 헌법 전문에 보면 "대한국민이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하면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했어요. 새로 ‘건국한다’고 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계승해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나오는데 이 내용이 제헌헌법으로 이어졌고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제헌헌법 제87조에서 "공공성을 띤 중요 기업은 원칙적으로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할 것을 규정"한 것은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삼민주의에 입각한 중국 두 나라를 제외한 각국 헌법에서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예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헌법이 진보적인 색깔을 띠었다고 강조합니다.
1950년대 집권 여당이던 자유당도 1952년 창당할 때 강령을 만들면서 "우리는 독점경제 패자(覇者)들의 억압과 착취를 물리치고(요즘 운동권에서도 이런 표현은 잘 안 쓸 텐데 그때 자유당이 쓴 겁니다) 노동자, 농민, 소시민, 양심적 기업가 및 기술 있는 자의 권익을 도모하여 빈부차 등의 원인과 그 습성을 해부하고, 호조호제(互助互濟)의 주의로써 국민생활의 안정과 향상을 기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야, 이거 우리가 이렇게 충성할 필요가 없구나, 나도 내 몸 돌봐가면서 충성해야겠다, 살아야겠다, 교훈을 얻은 거죠.이게 우리나라에서 고문이 없어지게 된 과정입니다. 경찰의 인권의식보다는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하다가는 나만 개피 본다는 현실적인 자각이 우리나라에서 고문이 사라지는 계기가 된 겁니다.
"그날 죽고자 한 사람은 대개 다 죽었고 살고자 한 사람은 대개 다 살았다."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애(이요원)가 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시내를 돌면서 방송을 합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계엄군도 더 좋은 마이크, 더 많은 차량을 동원해 방송을 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광주 시민 여러분, 도청이 폭도에 의해 장악되어 있습니다. 이제 계엄군이 작전을 개시하려고 하니 무고한 시민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가주십시오."
신경림 선생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잖아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 거기서부터 힘이 연결되어 100만 명이 모이는 6월 항쟁을 만들어내는 데 딱 다섯 달이 걸렸습니다.
길거리에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죠. 정말 목이 터져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습니다.
10대가 불만스러워한 것이 뭘까요? "내 입에 들어갈 것을 왜 니들이 마음대로 정해? 내가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난리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죠. 이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이 부분이 손상당한 거죠.
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 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습니다. 출마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딱 네 글자로 줄여서 "드러버서"입니다. 정주영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길, 뻑하면 100억씩 달라고 하는데 아무리 재벌이지만 돌아버리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그놈들한테 100억씩 퍼 주느니 아예 그 돈 가지고 자신이 정치를 해보겠다는 거죠. 그때 정주영이 ‘아파트 반값 공약’을 처음 내놓고 ‘공산당 합법화’까지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만 떨어졌죠.
그때 자기 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욕망을 콱 죽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하다가 그 조절장치에 이상이 온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모이는 데가 어딜까요? 뉴라이트입니다. 욕망을 죽이고 한참 달리다 어느 순간 이게 아닌 것 같아, 하고 완전히 브레이크다운 된 친구들이 돌아간 곳이 뉴라이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검찰 고위 간부가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자조적으로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고 했어요. 왜 수사 결론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대답을 했습니다. 허, 자신을 개라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번 촛불시위 끝나고 딱 그 표현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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