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번트리Coventry는 영국의 유명 관광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여행객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으로 아주 낯선 도시는 아니다. 그것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덕분이다. 이곳은 영문학의 대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고향 마을로, 그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전용 극장도 세워져 있다. 셰익스피어 덕에 번성하는 이 관광 명소에 가려면 코번트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대성당 운영위원장 리처드 토머스 하워드 신부Richard Thomas Howard(1884~1981)는 고민하는 위원들에게 제안한다. "이 모습 그대로 보존합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도록. 또한 화해의 상징이 되도록."
20세기에 세워진 코번트리 대성당은 자신을 파괴한 적을 용서함으로써 화해를 지향했다. 또한 갈라진 역사의 화합도 추구했다. 인류 구원의 십자가를 가슴에 품은 대성당을 지은 14세기. 하룻밤에 도시 하나를 처참히 뭉개버린 20세기. 고딕 양식과 모더니즘이 같은 석재로 손을 맞잡은 코번트리 대성당은 이 두 시대의 화합을 구현한다.
로마의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56?~120?)는 『아그리콜리아의 삶과 죽음De vita et moribus Iulii Agricolae』에서 자신의 장인인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Gnaeus Julius Agricola(40~93)의 치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그리콜라 총독은 이 사나운 야만인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쳤고, 추장들의 아들들에게 라틴어를 교육했다. 이들은 이내 로마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또한 로마식 의복을 입고 살았다. 아울러 목욕탕을 즐기는 법도 배웠다.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바스Bath는 영국을 지배한 로마인이 지어준 목욕탕 겸 신전 덕에 생겨난 도시다. 강수량이 풍족한 영국섬에서도 특히 서쪽은 비가 더 많이 온다.
바스 인근 멘디프 구릉Mendip Hills이 받아놓은 빗물은 석회암 밑 지하 3천 미터에서 4천여 미터까지 스며들어 지하에서 지열로 데워진다. 이 물이 다시 석회암의 틈새를 타고 솟아올라와 온천을 이루는 곳에 로마인들은 도시를 세우고 ‘아쿠아이 술리스Aquae Sulis’(술리스의 물)라고 불렀다.
이베리아반도 남쪽을 차지한 알안달루스 무슬림들의 생활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돌 2장 참조). 그러나 이들의 세력권은 기독교 왕들의 공세에 밀려 11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알안달루스의 중심 도시가 코르도바에서 남쪽 세비야Sevilla로, 다시 세비야에서 더 남쪽 그라나다Granada로 내려갔다. 그라나다까지 내어주면 무슬림들은 다시 메마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다.
그라나다의 시인 이븐 잠락Ibn Zamrak(1333~1393)은 알람브라를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이곳에 서서 잠시 아래를 둘러보라. 도시는 신부처럼 물과 꽃을 목에 두르고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아 알람브라(알라가 보호하시길!) 그대는 화관 같은 도시에 얹은 루비 보석이구나!
알람브라 연못의 물소리를 묘사한 아름다운 연주곡이 탄생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19세기 말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1852~1909)가 1899년 자신의 후견인과 함께 그라나다에 여행가서 알람브라를 구경했던 추억을 담아 만든 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