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동무와 둘만 있어도 비좁은 비트 안에 넷이 있자니 눕지도 못하고 아이를 안은 채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그녀는 벼락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옥남아! 뭐하고 있냐! 애기 울리지 말고 요 너머 골짝으로 가거라!"
분명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 P-1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아이가 한 번이라도 울음을 터뜨렸다면 꼼짝 없이 이 세상 목숨이 아닐 판이었다. 차츰 총소리가 가라앉고 있었다. 다른 동무들은 어떻게 됐을까? - P-1

아무래도 산사람들이 다니는 길 같아 그 길을 따라 걷던 그녀는 무심코 앞을 보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십 미터 앞이 온통 누랬다. 기백 명이 넘어 보이는 토벌대의 누런 군복 때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그녀는 이미 산비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 P-1

면당으로 가기 위해 어둠을 더듬어 길을 나선 그들은 뜻밖에 사오십 명의 빨치산 부대와 마주쳤다. 이현상부대에서 보급사업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무심코 사람들을 둘러보던 그녀는 한 남자에게 문득 눈길을 멈췄다. 근 일 년 반 만에 만나는 남편 최윤호(최규복의 가명)였다. - P-1

고생했다는 말도, 뭐 어쩌라는 말도 없이 잠시 아이를 안고 있던 남편은 훌쩍 일어나 자기 부대 쪽으로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깨어났을 때 남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대신 남편의 분신인 양 서투른 솜씨로 만들어진 새 짚신 한 켤레가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일에 지쳐 남편이 돌아오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고 있는 그녀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던 남편의 손길처럼 발에 꼭 맞는 짚신은 포근하고 따스했다. - P-1

아이와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한편으로는 일제시대보다 더 처참한 세상을 한탄하고 증오하며 그녀는 괴로움에 시달렸다. - P-1

단오 이전에는 아무 풀이나 먹어도 독이 없다던 간부들의 말이 생각나 냇가에 비죽비죽 고개를 내미는 고사리밥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참꽃(진달래)을 따먹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나물을 뜯어먹으며 최대한 쌀을 아꼈지만, 이십 일이 지나자 가져온 식량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사나흘간은 나물만 한 솥씩 삶아 배를 채우거나 물로 끼니를 때웠다. 나물이 독했는지 계속 설사를 하는 바람에 탈진상태가 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처참한 굶주림이 계속되었다. - P-1

굶은 지 십삼 일 만이었다. 밖에서 철썩 하는 쇳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적인가 하는 순간 잠시 정신을 잃었던 그녀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며 흔들어대는 통에 부스스 눈을 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눈도 침침해 흐릿하게 윤곽만 보이는 사람은 적이 아니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락원이었다. - P-1

"동지 여러분! 저 이옥자 동무의 참혹한 모습을 보십시오. 이옥자 동무는 아이까지 딸린 여성의 몸으로 혁명사업에 뛰어든 우리의 귀중한 재산일 뿐 아니라 해방 직후부터 혁명사업에 몸 바친 이현상부대 정치위원 최윤호 동무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이 귀중한 동지를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할 수가 있습니까? 비인간적이며 비인도적인 군책 동무와 지도층의 무책임한 처사를 규탄합니다!" - P-1

아이가 귀엽게 놀수록 그녀의 가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어차피 살아남을 수 없는 운명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아이도 남편도. 누가 먼저냐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그게 언제일 줄은 알지 못했다. 그 이별이 두어 달도 남지 않은 바로 내일모레의 일이라는 것도. 자기 혼자 살아남아 그 아이를 죽인 슬픔이 지워지지 않는 피멍으로, 평생의 짐으로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도. - P-1

"이봐! 없어, 없어. 거긴 내가 다 뒤졌어."
그러자 토벌대원은 그들이 숨어 있는 다래덩굴을 휙 스쳐갔다.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보고도 일부러 피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순사건 이전까지는 군대 내에도 좌익세력이 상당히 조직화되어 있었고, 지리산 토벌대 중에도 동조자들이 있어서 간혹 이렇게 보고도 못 본 체하거나 식량과 총탄을 슬쩍 흘려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 P-1

어디를 어떻게 해서 토벌대가 겹겹이 둘러싼 뱀사골 능선을 빠져나왔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다음날 피아골 군당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다래덩굴 아래서의 그 숨막히던 기억만, 그 다래덩굴 아래만 그녀의 머릿속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걸 그녀는 실감할 수 없었다. - P-1

아이를 낳던 날 방구들을 파내던 경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태어난 날부터 내쫓겼던 아이, 죽는 날까지 울음 한번 시원하게 터뜨려보지 못하고 쫓겨만 다니던 아이, 네 앞에서 결코 부끄러운 어미는 되지 않겠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질긴 운명과 슬픈 이별을 강요하는가. 어미는 그것을 부숴버리고야 말겠다. 이 땅의 모든 어미가 밥을 달라고 우는 아이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야 말 테다. - P-1

50년 봄은 6.25 이후 빨치산이 완전히 궤멸될 때까지 근 7년여의 남한 유격투쟁 동안 가장 참혹한 시기였다. - P-1

며칠 후 뿔뿔이 흩어졌던 광양군당이 다시 합류했는데, 그 사이 사람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합류하지 못한 반은 족제비나 까마귀 밥으로 산에 널려 있을 것이었다. - P-1

해방의 그날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그때쯤엔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수 있겠지. 어쩌면 혁명사업이란 소태 같은 것이 아닌가. 쓰디쓰지만 먹고 나면 몸에 좋은 것. 쓰디쓴 날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해방은 기어코, 기어코 오고야 말 테지. 그러나 살아서 그 서글픈 추억을 되씹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좋은 추억이 되겠다던 김선우도, 영원히 잊지 않겠다던 오금일도 54년 빨치산 최후의 무렵에 적과 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람 좋은 미소만 띠고 있던 구례의 ‘각시순사’ 김병추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 소태처럼 쓰디쓴 혁명의 물결에 그들은 하나뿐인 생명까지 던져버린 것이다. - P-1

잠시 후 군책이 그녀를 불러 이현상부대에서 부른다며 소환장을 내놓았다.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소환이 적당치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행군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할 정도이니 전투부대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 P-1

여순사건 직후 14연대를 주축으로 7백여 명에 이르렀던 이현상부대는 매번 전투에 수많은 병력을 잃고 고작 150명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었고, 부대편제는 이현상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3, 5, 7연대의 3개 부대와 부대본부, 호위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녀는 며칠 후 본부 정치지도원으로 임명되었다. - P-1

자신의 활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기 일이 아주 좋았다. 이현상이 처음 했던 말대로 정말 그녀의 역할은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 P-1

어쩌면 이현상은 아이를 잃고 난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녀로서는 입산한 지 두 해가 다 되어가지만 아이 때문에 체계적인 조직생활을 해보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당에 대한 죄책감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차츰 엷어져갔다. 너무 바빠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 P-1

몸이 약해 늘 비실거리던 그녀도 이제는 웬만한 남자 못지않게 행군을 하고 보초도 설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현상의 그 말없는 웃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 P-1

그러나 적들은 그들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놔두지 않았다. 탄압의 고삐는 나날이 조여 오고 결단의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후방 없는 유격전의 미래……. 지리산 주변의 각 도당들은 몇 남지 않은 인원을 데리고 기아에 허덕이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 P-1

이현상부대야 워낙 탁월한 전투부대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각 도당의 처참한 상황은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 바로 자신들의 운명이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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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시집을 간다. 그녀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 결혼은 꿈에도 생각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거울을 보고 앉아 소담스럽게 잡히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잘 들지도 않는 녹슨 가위로 싹둑 잘라냈다.

"한문을 배워야 마음이 순해지고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 옥남이도 부지런히 글을 익혀서 신사임당처럼 훌륭한 여자가 되거라."

양남진은 훈장이 없을 때면 그녀를 불러 일본말을 가르쳐주었고, 어떻게 해서든 학교를 가야 한다고 그녀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양남진에게 일본말을 배우다 훈장에게 들키는 날이면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받아야 했다.
"옥남이는 조선말을 다 아느냐?"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선생의 코피자국은 양남진의 사각모처럼 그녀를 흥분시켰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부서지고 밀려가는 바닷물처럼 양남진이나 김진환을 보고 있으면 멈춰 있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앞을 향해 돌진하는 신선한 힘이, 생명력이 그녀에게까지 옮겨오는 것 같았다.

신들린 사람처럼 졸라대는 어머니를 말리지 못하고 온 가족이 구례로 돌아온 것은 섣달 그믐날이었다. 이상하게 고향으로 가자고 조르던 어머니는 고향에서 봄을 채 보내기도 전에 아이를 낳다 세상을 뜨고 말았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은 최후의 힘까지 짜내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느껴졌다. 양남진의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던 검정 교복이나 김진환의 강의록에 점점이 떨어져 있던 검붉은 코피의 흔적이 자꾸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살아가기 힘들 것이오. 바보같이 나 기다리지 말고, 몇 해 기다려서 오지 않거든 다른 사람 찾아가오. 내가 가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텐데……. 당장 당신 외가로 가 있으려오?"

"어머니, 우리 관산댁 잘해주씨요이. 관산댁 참 좋은 사람이요, 어머니."
그녀의 친정이 관산리이니 관산댁은 곧 그녀를 가리키는 택호였다. 내내 울먹거리는 시할머니와 시부모에게 활짝 밝은 웃음을 보이며 남편은 곧 그들 곁을 떠나갔다.
"출전용사 최규복 만세!"
"살아오라 김갑동!"
"무운장구!"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갔지만 살아서 돌아오기는 남편이 처음이었다.

그 봄부터 남편은 군청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지만 읍내까지 다니기가 너무 멀어 두어 달 뒤 면으로 옮기더니 무슨 까닭인지 금세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남편은 조금씩 변해갔다. 남편의 귀가시간이 한 시간씩 두 시간씩 늦어져갔다. 드디어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밤을 새웠는지 첫새벽에 충혈된 눈으로 들어온 남편은 아침도 거른 채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매국노 이승만은 미국으로 돌아가라!"
"타도하자 친일파 민족반역자!"
"정권은 인민에게로!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로!"
삐라에는 붉은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남편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예, 좋은 세상 만들라고요."
"해방이 됐는디 또 먼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남편이 그토록 빠져 있는 좌익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남편이야 무슨 일을 하든 그녀는 여전히 층층시하 대가족의 맏며느리일 뿐이었다.

47년 7월 그녀는 남조선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광의면 여맹위원장이 되었다.

"우리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근데 우리가 언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라고 공부도 못했고, 부뚜막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딸자식은 딴 집 식구니 입이나 줄이자고 철도 안 든 나이에 시집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친정에서나 시집에서나 태어나면서부터 종처럼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봉건적 잔재와 계급을 타파해야 합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르르 방으로 몰려들어온 경찰들이 곡괭이로 방구들을 내리쳤다. 백년 묵은 방구들이 곡괭이에 부딪쳐 불꽃을 튀기며 부서졌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 개 같은 놈들. 짐승이라도 이러진 않겠다아 이놈들아!"
시어머니가 바락바락 악을 쓰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단지 목숨만 붙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절망스러운 것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기를 그렇게 만든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기 삶이 아닌 것 같은 시집살이를 하면서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한겨울에 차가운 물 속에 들어앉아 있자니 춥기도 하려니와 장이 상했는지 점점 설사가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피똥이 나왔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광의면당은 천은사골, 화엄사골, 문수골 등 주로 노고단 근처를 넘나들며 토벌대의 끈질긴 공격을 피해 다녔다. 토벌대가 물러간 밤에는 각 마을로 내려가 정보를 수집하거나 비밀조직을 만들고 보급투쟁을 하는 등 당 정비, 강화사업에 주력했다.

좌익 가족은 개보다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박춘산의 어머니를 쫓아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막내 박병주의 나이가 열다섯이었다.

잘 익은 밤송이처럼 단단하고 야무지던 병주는 나중에 남부군 사령관 박종하의 연락병을 지냈는데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 길이 없고 박춘산도, 그의 어머니도, 누이 정숙도 백운산과 지리산에서 토벌대의 총탄에 쓰러져 한 많은 눈을 감아야 했다. 무덤 하나 없이 온 식구가 남녘의 산에 뿔뿔이 흩어져 한줌의 흙으로 썩어간 것이다.

"아니요! 안 봤어라. 형수 안 봤다고라. 나는 산에도 안 갔어라!"
아홉 살짜리 소년은 기어이 형수와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어린 시동생이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느라 어떤 고초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시간만 나면 시아버지와 시동생들이 힘없이 걸어 내려가던 골짜기를 쳐다보았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시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며느리 얼굴 한 번 보았다는 죄로 끝내 총살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등사기를 짊어진 남자가 누구인지, 그가 나중에 그녀와 어떻게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채 두 사람의 짧은 첫 만남은 그렇게 스쳐갔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에는 세 남자의 활기찬 모습과 힘차게 휘날리던 빨간 스카프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등사기를 짊어진 남자는 바로 유혁운이었다.

그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최후의 시기가 지나고 절망에 빠져 새롭게 주어진 삶 앞에서 방황하던 시절에 다시 만나 동지로 연인으로 부부로 살아갈 바로 그 유혁운이었다.

"선생님!"
그녀는 말없이 버선을 내밀었다. 노 동무는 그녀가 내미는 버선을 받아들고 싱긋이 웃었다.
"고맙소. 잘 신겠소. 그런데 내가 버선이 없는 줄을 어떻게 알았소?"

그 뒤로 몇 번 구례군당에 들른 노 동무는 그녀를 보면 다가와 아이를 얼러보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면서 그녀를 격려하곤 했다. 이 노 동무가 바로 그 유명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었다. 그녀는 얼마 후 남부군으로 소환되어 이현상의 측근에서 일하게 된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심지어는 핏덩어리 아이까지도 무참히 짓밟는 것, 그게 바로 적들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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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경찰들은 동부와 서부의 연락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연락선을 잡으면 동부와 서부를 각기 고립시킬 수 있어 토벌작전을 수행하기가 용이해지는데다 정보를 많이 갖게 돼 큰 건수를 올릴 수도 있고, 연락선은 유격부대가 아니니 생포하기도 용이했다. 연락원들은 날마다 연락을 다녀야 하니 일이 고되기도 하려니와 백아산 요소요소에 그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결찰들이 잠복해 있어 사잣밥을 싸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대단한 사람이드만요이. 광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해갖고 시방 총사에 와 있다만요. 두 사람이 탈출을 했다는디, 그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에서 워트케 탈출을 했는가 몰라요. 유격대원도 아니고 당일꾼임서."

수많은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쏴대는데 다행히 총이 목 근처로 스쳐 지나갔다. 옆 사람이 푹푹 쓰러지기에 자기도 죽은 척하고 시체더미 위로 쓰러졌는데 시체가 워낙 많으니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국방군이 사라졌다. 시체더미 속에서 하루 종일 쓰러진 그 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다가 밤이 되자 자기 위로 수북이 쌓인 시체를 걷어내고 그 길로 입산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멸해가는 당과 죽음을 선택했다.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는 어디에도 없다. 역사에도 남아있지 않고 더러는 자신의 호적에조차 남아있지 않다.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아예 살다 간 흔적조차 지워버린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형제를 그렇게 부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당연히 당의 명령에 따라야지요."

"아이, 아가…… 니가 안 죽고 살아 있었냐. 살아 있었어이……."

밥이라도 싸올 것인디, 니를 만날 줄 알았으먼 보리밥이라도 한 뎅이 싸올 것인디…….

김정식은 그 후에도 오래도록 그가 붙잡혀 그날 얘기를 불까봐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날 옆에 같이 있던 친구가 김정식에게 혁운이는 절대 그럴 친구가 아니니 우리 입만 다물면 알 사람이 없다고 계속 달래 주어서 마음을 놓았던 김정식은 훗날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나온 그를 붙잡고 술을 사라며 난리였다.
"나 아니었으면 자네가 시방 여그 서 있을 목숨이 아니네. 내가 그날 총만 댕겼어 보라고."
"아따, 내 총은 어디 있었간디."
"사실 자네가 총을 댕길까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앙가. 나도 총을 쏠까 어쩔까 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대. 하여간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놈이여."

친구고 부모고 없던 그 험난한 시절에도 어디에나 아름다운 사연은 많았다.

8월 19일. 일주일 후면 김춘옥은 산을 떠난다. 1950년 9.28후퇴와 함께 입산했던 만 2년의 산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이다. 과연 그녀가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까. 바깥사회의 고통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총알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 날인가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안일함이나 긴장의 이완이다. 어쩌면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적보다 훨씬 어려운 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다. 숨막히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백운산의 여름은 점점 뜨겁게 타올랐다.

죽고 사는 것도 자신의 자존심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죽는 것은 깨끗하고 단순하고 고결하지만, 그럼 그에게 맡겨졌던 임무는 어쩔 것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임무를 완수하시오, 완수하시오, 완수…….

운명? 그렇다. 이제 그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미처 준비도 끝나기 전에 갑작스레 다가와 버린 일이지만 어차피 그의 임무는 지하조직의 건설이었다. 그의 운명도, 전남도당의 운명도, 이 땅 사회주의운동의 운명도 그가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지프는 어둠을 가르며 보성-화순 간 국도를 달려갔다.

도민증을 만들려면 사진 위에 철인을 찍고 경찰서 관인과 서장의 개인도장이 있어야 했다. 그까짓 것, 하던 홍고는 정말 쉽게 도민증을 만들어왔다. 서장실에 무시로 출입하던 홍고가 서장 옆에서 조는 척하고 있다가 서장이 홍고만 두고 나간 사이 몰래 찍어 나온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일수록 죽음은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권상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신자들의 최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왕규는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는 친일파이며 민족반역자요. 나는 적어도 우리 조선민족을 외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김왕규는 일제시대에 일본정부의 관료로 출세한 친일파요. 그런 친일파가 해방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애국자 행세를 하며 설치고 있소. 나는 그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오. 김왕규는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애국자라 하며 나를 비애국민으로 매도하지만 과연 누가 애국자고 누가 비애국민이오? 내가 취조를 받기 위해 검사 방에 갈 때마다 김왕규는 양담배를 수북이 쌓아놓고 피워댔소.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의 경제를 부흥, 발전시켜야 할 이 마당에 양담배를 피워대다니! 그가 과연 애국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오. 누가 애국자였고 누가 이 민족을 위해 살았으며, 누가 사형을 언도받아야 할지는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형을 선고한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애국적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제의 앞잡이들이 선고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소!

"사내대장부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법이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소인배의 삶이지……."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꿈꾸었던 해방의 날은 멀어지고 당분간 반동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미제의 식민지정책은 더 노골화될 것이고, 권력을 잡기 위해 조국을 미제에 팔아먹은 반동권력의 횡포도 점점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한 후퇴란 없다.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들이 다 죽고 난 뒤, 어쩌면 한 세기 뒤일 수도 있다. 세게 눌린 용수철일수록 더 거세게 튀어 오르듯이 억압당하는 인민들은 언젠가 다시 자신들의 피로써 항거할 것이고, 미래의 새로운 세대는 한국현대사의 초기에 피로 씌어진 역사의 바탕 위에서 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그 밑거름만 되어도 좋다. 자기가 반드시 살아서 그날을 봐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권상수 같은 비겁한 배신자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지 않고 일본으로 가는 밀항 루트를 개척할 수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얼마 남지 않은 빨치산 동지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자책감만이 그를 괴롭힐 뿐이었다.

박영발도 54년 1월 뱀사골에서 적에게 포위되자 권총으로 자결(최근 박영발이 자결한 게 아니라 함께 비트에 있던 주치의 박 모에 의해 사실되었다는 빨치산 출신 박남진의 증언이 있었다. 당시 박영발이 지리산 비트에서 운영한 ‘조국출판사’ 필경사로 일하던 박남진에 의하면 주치의 박 모가 총상을 입은 후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다 1954년 2월 21일 비트 보초를 서던 중 박영발과 무전사, 여성비서 등에게 30연발 카빈 소총을 난사했다고 한다)했으며, 오금일도 김선우가 자폭한 직후 통명산에서 부상당한 채 포로로 잡혔으나 연행 직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남의 최고지도부는 최고지도부답게 장렬한 최후를 맞아들인 것이다.

투쟁인민 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유격대나 당기관으로 배치돼서 사상훈련을 받았지만 노인네들은 사상이랄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좌익보다 우익의 탄압이 더 심하고 자기들이 보고 겪어보건대 좌익들이 더 나으니까 그저 좌익을 따라온 사람들에 불과했다. 죄라곤 그것밖에 없는데도 투쟁인민의 대부분은 무기수였다.

"선생님, 저는 지하조직 사업을 하기 위해 위장자수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저의 임무가 바로 조직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사대부집 아씨처럼 안방에만 갇혀 산다면 사상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대중과 같이 호흡하며 대중을 조직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임무 아닙니까?"

"선생님, 저는 지하조직 사업을 하기 위해 위장자수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저의 임무가 바로 조직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사대부집 아씨처럼 안방에만 갇혀 산다면 사상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대중과 같이 호흡하며 대중을 조직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임무 아닙니까?"

나는 무엇인가? 살아남아서, 세상으로 나와서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철저하지 못한 사상성 때문인가, 아니면 반동의 시대 때문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아무튼 그는 전향을 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김규호는 그대로 특사에 남았다. 그가 사랑했던 많은 동지들은 남녘의 산과 들에서 죽었다. 남한에서의 치열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교도소 특사에 갇힌 채 막을 내렸다. 그의 앞날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과 치욕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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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호남 지역 주요 역사적 사건의 구조적 원인과 저항 전통 분석

1. 개요

가. 목적
ㅇ (수탈과 저항 구조) 호남 지역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중앙 권력의 수탈·진압과 이에 맞선 지역사회의 저항이라는 구조 속에서 분석하고자 함.

나. 대상 범위
ㅇ (주요 사건) 백제 근초고왕대 남방 진출, 정여립 기축옥사, 동학농민혁명, 지리산 빨치산 활동, 5·18 민주화운동을 주요 대상으로 함.

다. 분석 관점
ㅇ (구조 중심) 개별 사건의 전개보다 그 이면에 있는 경제적 수탈, 정치적 배제, 지정학적 조건, 공동체적 저항의 흐름을 중심으로 검토함.


2. 주요 역사적 사건의 전개 양상

가. 고대: 근초고왕대 남방 진출과 마한계 지역세력의 편입

ㅇ (국가 성장 전략) 근초고왕대 백제는 왕권 강화와 대외 정복을 바탕으로 남방 진출을 추진함. 이는 마한 잔여세력을 통합하여 전라도·영산강권의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가야·왜와 연결되는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려는 전략적 성격을 지님.

ㅇ (목라근자 남정) 목라근자는 백제의 동·남부 세력권 확대 과정에서 활동한 인물로 전해지며, 백제의 남방 진출과 마한권 편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음.

ㅇ (지역세력의 저항) 백제의 남방 진출은 일방적 흡수가 아니라, 침미다례 등 서남해안 마한계 세력과의 충돌, 비리·벽중·포미지·반고 등 주변 지역세력의 항복과 편입을 거치며 진행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

ㅇ (잔존과 재편) 근초고왕대 이후에도 영산강 유역 등지에서는 마한계 지역색이 일정 기간 유지된 것으로 보이므로, 호남의 백제 편입은 단기간에 완료된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복속과 재편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타당함.

ㅇ (구조적 의미) 이 시기 호남은 백제의 생산 기반, 남방 진출 거점, 해상 교통망과 연결되는 전략 지역으로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중앙 권력의 확장에 맞선 지역세력의 충돌과 저항이 나타난 공간이기도 하였음.


나. 조선 시대: 정여립 기축옥사와 지역 낙인

ㅇ (사건 개요) 정여립 사건은 모반 고변에서 시작되어 동인계 인사들이 대규모로 숙청된 정치 사건임.

ㅇ (지역적 파장) 이 사건 이후 전라도는 반역향이라는 정치적 낙인을 받았고, 호남 출신 인사의 관계 진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됨.

ㅇ (구조적 의미) 특정 정치 사건이 지역 전체에 대한 불신과 차별로 확대되면서 호남의 정치적 소외 인식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음.


다. 근대: 동학농민혁명과 수탈 구조에 대한 저항

ㅇ (직접 원인)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후기 지방관의 수탈, 삼정의 문란, 농민층의 누적된 불만이 결합하여 발생하였으며,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가 직접 계기가 되었음.

ㅇ (전개 양상) 농민군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세워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봉기하였고, 전주화약 이후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을 추진함.

ㅇ (구조적 의미)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부패한 행정, 불평등한 신분질서, 외세 개입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개혁 운동으로 볼 수 있음.


라. 현대 전기: 지리산 빨치산 활동과 이념 대립의 비극

ㅇ (사건 개요) 해방 이후 정치 혼란과 한국전쟁 전후의 이념 대립 속에서 지리산 일대는 빨치산 활동과 군·경 토벌의 주요 공간이 되었음.

ㅇ (지정학적 조건) 지리산은 넓고 험준한 산악지형을 갖고 있어 은신, 이동, 유격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음.

ㅇ (구조적 의미) 지리산 빨치산 활동은 이념 대립, 국가 폭력, 지역 주민의 생존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현대사의 비극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


마. 현대 후기: 5·18 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 저항

ㅇ (사건 개요)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광주와 전남 일대에서 시민들이 신군부의 권력 장악과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맞서 전개한 민주화 항쟁임.

ㅇ (전개 양상) 시민들은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저항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희생이 발생함.

ㅇ (구조적 의미) 5·18 민주화운동은 지역적 사건을 넘어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 저항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평가할 수 있음.


3. 구조적 원인 분석

가. 경제적 요인: 곡창지대와 수탈 구조

ㅇ (생산 기반) 호남은 비옥한 평야를 바탕으로 국가 재정과 식량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지역임.

ㅇ (수탈 반복) 경제적 중요성은 지역민의 삶을 안정시키기보다, 중앙 권력과 지방 수령의 세금 징수, 부역 동원, 가렴주구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ㅇ (구조적 모순)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었으나, 정작 지역 민중은 수탈과 빈곤을 감내해야 하는 모순이 반복되었음.


나. 정치·사회적 요인: 배제와 저항 전통

ㅇ (정치적 소외) 정여립 기축옥사 이후 호남은 정치적 낙인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지역 차별과 배제 의식을 심화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함.

ㅇ (저항 의식) 반복된 배제와 수탈은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과 공동체적 저항 의식을 강화함.

ㅇ (사회적 축적) 향촌 공동체, 유배지 문화, 농민 저항 경험이 결합하면서 호남에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전통이 형성되었음.


다. 지정학적 요인: 평야와 산악의 공존

ㅇ (평야의 의미) 넓은 평야는 생산 기반이자 수탈의 대상이 되었음.

ㅇ (산악의 의미) 지리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는 혼란기마다 은신, 항전, 유격 활동의 공간으로 활용되었음.

ㅇ (복합성) 호남은 생산과 수탈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항전과 저항의 공간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님.


4. 종합 평가

가. 반복 구조

ㅇ (수탈과 진압의 반복) 호남 지역의 주요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 비극이라기보다 중앙 권력의 통합·수탈·통제와 지역사회의 저항·희생이 반복된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

나. 능동적 역사

ㅇ (저항의 주체성) 호남의 역사는 단순한 피해의 역사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과 사회적 모순에 맞서 공동체의 생존과 자존을 지켜 온 능동적 저항의 역사임.

다. 현재적 의미

ㅇ (민주주의 자산) 동학농민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은 모두 지역적 사건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정의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5. 결론

가. 역사적 성격

ㅇ (복합적 형성) 호남 지역의 역사는 비옥한 생산 기반, 중앙 권력과의 정치적 긴장, 평야와 산악이 공존하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음.

나. 저항 전통

ㅇ (의향의 역사) 그 과정에서 호남은 수탈과 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동시에 불의한 권력에 맞서 공동체적 가치와 자존을 지켜 온 저항의 공간이기도 하였음.

다. 시사점

ㅇ (대한민국사의 일부) 호남의 역사적 사건들은 특정 지역의 피해 서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정의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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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지음 / 필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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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보고]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1권 – 해방의 약속은 왜 산으로 밀려났나?: 분단의 좌절과 남부 산악 빨치산 투쟁

1. 작품 개요

가. 작품의 기본 성격

ㅇ (딸의 시선에서 출발한 기록) 『빨치산의 딸』 1권은 ‘빨갱이 딸’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온 작가가 부모의 삶을 되짚는 데서 출발함. 작품은 한 아이의 수치심과 원망을 통해, 빨치산의 역사가 가족의 삶에 어떻게 남았는지를 보여 줌.

ㅇ (아버지 서사의 중심성) 1권의 실제 중심은 점차 아버지 정운창의 삶으로 옮겨 감. 정운창은 ‘유혁운’이라는 가명으로 전남도당 활동에 들어가고, 산속에서 단순히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해방구를 만들고 조직을 지키려 한 인물로 그려짐.

ㅇ (해방구 건설의 서사) 작품은 빨치산을 단순한 도피자나 패잔병으로만 다루지 않음. 이들은 마을과 산을 오가며 사람을 조직하고, 자신들이 믿은 새 질서를 만들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굶주림과 토벌, 배신과 죽음을 함께 감당함.

ㅇ (부모를 다시 보는 과정) 작가는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고 부끄러워하지만, 정운창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왜 산으로 들어갔고, 왜 끝까지 조직과 동지들 곁에 남으려 했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됨.

ㅇ (비극의 출발점) 1권은 어머니 이옥남의 삶까지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 정운창의 선택과 전남도당 활동, 남부 산악 빨치산 투쟁의 형성과 고립을 중심으로 해방의 약속이 왜 산으로 밀려났는지를 보여 주는 서사임.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작품은 일제강점기 말기, 해방 직후, 미군정기, 여순사건, 한국전쟁과 후퇴, 1951년 이후 토벌이 강화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함.

ㅇ (공간적 배경) 전남 구례·곡성, 광주 등 호남 남부 지역과 백운산, 지리산 등 남부 산악 지대 일대가 주요 무대로 나타남.

ㅇ (빨치산 등장 배경) 해방은 왔지만 일제 때 순사 노릇을 하고 관청과 군대에서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남았음. 미군정은 이들을 반공 질서의 편으로 끌어안음. 가난한 농민과 좌익 활동가, 지역 청년들에게 해방은 약속했던 새 세상이 아니라, 낡은 지배층이 이름만 바꿔 되돌아온 현실로 보였고, 그 분노와 탄압의 압박이 결국 사람들을 산으로 밀어 올림.

ㅇ (산의 이중성) 지리산은 빨치산들에게 피난처이자 감옥이었고, 삶을 갉아먹는 생존의 현장이자 마지막 해방구였음. 그들은 산에서 굶고 쫓기고 죽어 갔지만, 동시에 그 산에서만 자신들의 신념과 존재를 지킬 수 있었음.

ㅇ (서사의 성격) 작품은 거대한 이념사를 다루면서도 학교, 병원, 교도소 면회, 가난한 집, 산중 생활 같은 구체적 장면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고드는지 보여 줌.

2. 빨갱이 딸이라는 이름

ㅇ (낙인의 상처)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빨갱이 딸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음. 그 말은 단순한 욕이 아니라, 친구들 앞에서 숨고 싶게 만드는 굴레였음.

ㅇ (가난과 수치심) 가난은 작가에게 밥이 부족한 문제만이 아니었음. 남들처럼 살 수 없고, 남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다는 감각으로 남음.

ㅇ (부모에 대한 원망) 작가는 부모가 자신에게 가난과 낙인을 물려주었다고 느끼며,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어내고 싶어 함.

ㅇ (질문의 시작)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작가는 묻게 됨. 부모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왜 그들은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갔는가.

3. 정운창과 이옥남의 각자 다른 길

ㅇ (정운창의 길) 정운창은 가난한 농민의 현실과 불평등한 세상을 보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임. 그에게 사회주의는 고급 이론이 아니라, 못 가진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약속에 가까웠음.

ㅇ (조직의 힘) 그는 민주청년동맹과 남조선노동당 활동에 들어가며 점점 개인보다 조직을 앞세우는 사람이 됨. 작고 미약한 개인이 당이라는 조직 속에서 큰 힘을 얻는다고 믿었음.

ㅇ (이옥남의 독자적 삶) 이옥남 역시 자기 삶의 자리에서 전쟁과 이념의 소용돌이를 통과한 인물임. 그는 정운창의 아내로만 설명될 사람이 아니라, 남부군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한 독자적인 빨치산 인물로 보아야 함.

ㅇ (뒤늦은 부부의 연)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한 부부로 산에 오른 것이 아님. 각자의 삶과 투쟁, 감옥의 시간을 지나 뒤늦게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그 관계 역시 평범한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 시대의 격랑이 남긴 인연에 가까움.

4. 해방의 기대와 무너진 약속

ㅇ (해방의 환희) 해방은 억눌린 사람들에게 새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안겨 줌. 못 가진 사람들도 이제는 자기 삶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음.

ㅇ (미군정과 친일 잔재) 그러나 해방 뒤에도 예전 권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친일 세력과 기존 지배 질서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실망함.

ㅇ (좌익 선택의 배경) 작품은 정운창과 이옥남의 좌익 선택을 단순한 사상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와 해방의 좌절 속에서 나온 선택으로 보여 줌.

ㅇ (무너진 기대) 해방은 왔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새 나라를 꿈꾸던 한반도의 민중은 친일 잔재, 신탁과 반탁, 이념의 좌우 대립 속에서 남과 북으로 분열됨.

5. 여순사건과 구례의 피바람

ㅇ (여순사건의 충격) 여수 14연대 봉기는 구례와 주변 지역을 크게 뒤흔듦. 한때는 좌익 세력이 구례를 장악하고, 사람들은 다시 해방이 온 듯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함.

ㅇ (짧은 희망)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음. 군경이 다시 밀고 들어오고, 보복과 색출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의 공간으로 바뀜.

ㅇ (박종하의 등장) 백운산지구 사령관 박종하는 구례 출신 빨치산 지도자로 등장하며, 이후 전남도당 유격대, 곧 남부군 사령관으로 활동하는 인물로 제시됨.

ㅇ (민중의 희생) 이념의 이름으로 싸운 것은 지도부였지만, 피를 흘린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음. 누구 편인지 제대로 설명할 틈도 없이 사람들은 끌려가고, 맞고, 죽어 감.

6. 백운산과 지리산의 빨치산 생활

ㅇ (산의 현실) 앞에서 산이 해방구이자 운명의 공간이었다면, 빨치산 생활 속의 산은 더 이상 상징만으로 남지 않음. 그곳은 배고픔과 추위, 젖은 옷, 부족한 탄환, 부상자와 시체가 뒤섞인 생존의 현장임.

ㅇ (신념과 공포) 그들은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버텼지만, 동시에 죽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음. 신념은 높았지만, 하루하루의 삶은 콩 한 줌과 잠자리 하나에 매달려 있었음.

ㅇ (전쟁과 후퇴) 한국전쟁과 인민군 후퇴 이후 빨치산들은 점점 고립됨. 잠깐 보였던 승리의 희망은 사라지고, 산은 다시 숨고 버티는 공간이 됨.

ㅇ (수도사단의 대공세) 국군 수도사단의 지리산 토벌 작전은 빨치산 세력을 더 깊은 고립으로 몰아넣음. 투쟁은 점점 이념보다 생존에 가까워지고, 산은 그들을 품는 곳이 아니라 조금씩 소모시키는 곳으로 변함.

7. 마지막 여름의 의미

ㅇ (고립의 정점) 1권 후반부에 이르면 빨치산들은 더 이상 앞날을 쉽게 말할 수 없음. 식량은 줄고, 민심은 흔들리고, 군경의 포위는 산허리를 조이듯 점점 가까워짐.

ㅇ (사업 전환의 필요) 산속에만 머무는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오고, 인민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제기됨.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한 자각에 가까움.

ㅇ (푸른 산과 피로한 사람들) 산은 여전히 푸르고 여름은 무성하게 깊어 가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말라가고 지쳐 감. 푸르디푸른 산세와 대비되는 피 말리는 고립의 시간이 1권 후반부의 분위기를 이룸.

ㅇ (마지막 여름의 불안) 그 여름은 평온한 계절이 아님. 인물들은 자신이 산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마지막 여름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끝까지 자신들이 선택한 길 위에 남아 있음.

ㅇ (비극의 문턱) 그래서 1권의 끝은 결말이 아니라 더 깊은 비극으로 들어가는 문턱처럼 느껴짐. 산은 아직 무성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 버틸 수 없는 쪽으로 밀려가고 있음.

8. 종합 소회

ㅇ (부모를 보는 눈) 이 책을 읽고 나면 정운창과 이옥남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움. 그들은 영웅도 아니고 괴물도 아님. 각자의 자리에서 해방의 좌절과 산중 투쟁을 지나온 뒤, 뒤늦게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었음.

ㅇ (딸의 고통) 더 아픈 것은 그 선택의 대가를 딸도 함께 짊어졌다는 점임. 빨갱이 딸이라는 이름은 부모의 과거가 아니라, 딸의 현재를 계속 따라다니는 상처였음.

ㅇ (역사의 잔혹함) 이 작품은 역사가 교과서 속 사건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줌. 역사는 밥상에 앉고, 학교에 따라오고, 병원과 면회실에 나타나며, 끝내 한 가족의 삶을 바꿔 놓음.

ㅇ (해방의 약속과 산) 해방은 새 나라를 약속했지만, 친일 잔재와 미군정, 신탁과 반탁, 좌우 대립 속에서 그 약속은 끝내 제도 안에 자리 잡지 못함. 그 결과 땅 없고 힘없는 사람들, 새 세상을 믿었던 사람들, 탄압과 보복을 피해 쫓긴 사람들은 마을이 아니라 산으로 밀려남.

ㅇ (최종 소회) 『빨치산의 딸』 1권은 빨치산을 설명하는 책이기 전에, 빨갱이 딸이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이 부모의 삶을 다시 더듬어 가는 기록임. 읽고 나면 이념보다 먼저 사람이 보이고, 투쟁보다 먼저 굶주림과 두려움이 느껴지며, 역사보다 먼저 한 가족의 오래된 상처가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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