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발견했을 때, 한 여자분이 아래쪽에 깔린 것처럼 보였어요. 근데 자세히 보니까 그분 밑에 어린 여학생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감싸듯이 어머님이 위에서 감싸준 거예요. 온갖 파편이 박혀 어머님은 피투성이였지만 아이는 거의 아무 상처도 없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부인과 따님이에요, 라고 그는 말했다.
"그 얘기를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헤이스케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뚝 끊겼다. 동시에 그는 울고 있었다. 꺼억꺼억 소리내어울고 있었다.

"모나미는 이 인형을 애지중지했어. 잘 때도 항상 이불 속에서 껴안고 잘 만큼. 그러니까 나도 항상 곁에 둘 거야. 그러면 당신 아내라는 것도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에 헤이스케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자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이 테디베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나오코가 인형을 껴안으면서 말했다.

"그런 게 아냐. 자립적인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겠다면 그건 괜찮지. 내가 싫었던 건 자립하지 못한 여자가 어쩔수 없이 전업주부로 들어앉는 구조야. 남편이 싫어졌는데도 오해하지 마, 이를테면 그렇다는 얘기니까 단지 먹고살기 힘들어서, 나가기가 겁이 나서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 식으로 사는 건 모나미는 하지 말아줬으면 했던 거야. 남자에게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니, 너무 비참하잖아. 나는 진짜 운이 좋았던것뿐이야. 당신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아니라 다른 몹쓸 남자였다면 어땠을까 싶더라고. 결국 내 행복이라고 해봤자 모두 당신에게 걸린 거였어."

갑작스럽게 표현할 길 없는 고독감이 엄습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에 혼자 덜렁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나오코의 모습은 이제 없다. 단지 그녀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다른 세계를 걸어가고 있다. 이곳에 존재하는 건 나뿐이다.

동시에 화가 솟구쳤다. 자신이 부조리한 일에 희생된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대로죽어가는 것인가.

헤이스케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음경이 서서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 좀 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왜냐면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나에게 아내라고는 없다. 성의 기쁨을 서로 나눌 상대도 없다. 내게 있는 것은 단지 기묘하게 일그러진숙명뿐이다….
하시모토 다에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는 애써 외설스러운 망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했다. 자위하려고 했다. 사실 이 사진을 보면서 몇 번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잘 되지 않았다. 그의 손 안에서 그 자신은 급속히 힘을 잃어갔다.
포기하고 사진을 책 틈새에 다시 끼웠다. 그대로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규칙 하나를 깨면 두 번째, 세번째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야. 결국 엉망이 되겠지. 예전의 내 인생이 그런 식이었어. 결국 초등학교에서 전문대까지 14 년씩이나 학교에 다녔으면서도 살아가기 위한 방도를 하나도 배우지 못했어. 나는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그런 깊은 후회를 되풀이하는 건 절대로 싫어."
그리고 깔끔하게 깎아낸 사과를 네 개로 자르고 포크로 쿡 찍어 헤이스케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 사과를 먹으면서 예전의 인생이 그토록 후회로 가득했었나, 라고 내심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부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공부 이외의 세계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던 미니 오디오를 싹싹 닦아 음악도 들었다.
"이 세상에 멋있는 게 진짜 많아. 돈도 별로 안 들이고 행복해지는 거, 세계관이 확 바뀌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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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출연(1 사진, 의대교수 役), 비밀. 안녕, 아빠

!

예쁜 히로스에 료코

이제 책을 읽어보자

OST 다케우치 마리야
˝천사의 한숨˝ 天使のため息
たけうちまりや, 竹内まりや,
Takeuchi Mariya

한없이 선량하게 생긴 저 스키타 헤이스케 (코바야시 카오루)를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

아내와 딸 모두 빼앗기고ㅠㅠ 어찌 긴 밤 보낼꼬
불쌍해서 우이할꼬

우....
역시 영화와 책은 많이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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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1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게이고옹 ^^

대장정 2022-10-01 14:59   좋아요 2 | URL
관동의과대학 교수역 10초정도 출연하네요^^, 목소린 30초정도<<😁😁
 

<나는 다양한 여행길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서로 아주 비슷했다. 남자들과 여자들 말이다.> 그에 비해 나 자신의 경구는 이러하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서로가 그러하리라 믿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서로에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만일 똑똑하지만 대단히 똑똑하지는 못한 남성의 지성을 여성에게 옮겨 준다면, 그녀는 대번에 대단히 똑똑한 여성으로 여겨질 것이며, 일반적인 조직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포드같은 여성이 나온다면 세계적인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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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1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20년 가을, 에드워드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아널드 베넷이 『우리 여성들: 성(性) 불화에 관하여Our Women: Chapters on the Sex-discord』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인습적인 여성 비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해, 10월 2일 자 『뉴 스테이츠먼 』 지에 데즈먼드 매카시가 <상냥한 매>라는 필명으로 상당 부분 동조하는 서평을 실었다. 이에 대해 울프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반론을 폈고, 10월 9일 자 『뉴 스테이츠먼 』지에는 울프의 편지와 그에 대한 <상냥한 매>의 답변이 나란히 실렸다. 이 지상 논전은 울프의 좀 더 긴 편지로 이어졌다.

<나는 다양한 여행길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서로 아주 비슷했다. 남자들과 여자들 말이다.> 그에 비해 나 자신의 경구는 이러하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서로가 그러하리라 믿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서로에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세계 문학은 어떤 여성 시인보다 위대한 남성 시인을 적어도 50명은 보여 줄 수 있다.> (그렇다, 새뮤얼 버틀러처럼 『오디세이아Odysseia』의 저자가 여성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마도 에밀리 브론테 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여성 소설가도 아직 남성들의 위대한 소설에 필적할 만한 소설을 쓰지 못했다.> ( 대체로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동의하기에 좀 더 의구심이 따른다.)

<도대체 어떤 여성도 이류 이상의 회화나 조각, 이류 이상의 음악을 창조하지 못했다.> (그렇다. 여기서 기준은 세계적인 걸작임을 기억하라.)

<어떤 여성도 비평에서 최고 수준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

<어느 누가 유명한 여성 철학자를, 또는 일급의 과학적 발견을 한 여성을, 또는 어떤 분야에서든 일급의 일반화를 이룩한 여성을 들 수 있는가?> (들 수 없다. 다시금 기준을 상기하라.)

만일 똑똑하지만 대단히 똑똑하지는 못한 남성의 지성을 여성에게 옮겨 준다면, 그녀는 대번에 대단히 똑똑한 여성으로 여겨질 것이며, 일반적인 조직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포드같은 여성이 나온다면 세계적인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렘브란트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으며, 여성들이 경주에서 2등이나 3등은커녕 6등이나 7등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친밀함이란 재능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무엇보다도 친밀함을 소중히 여기는 능력을 뜻한다.

바이닝거는 모든 훌륭한 도덕적・지적 자질을 M에게, 모든 나쁜 것을 W에게 귀속시켰다. 그 가정에 따르면 여성들은 대다수의 남성보다 자기 안에 W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나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뉴턴은 소농의 아들이었고,
허셜은 독일 군악대의 일원이었으며, 패러데이는 대장장이의 아들이었고, 라플라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만일 그들의 동시대인 가운데 어떤 여성이 그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서 그들만큼 지적인 열정과 능력을 타고났다면, 그녀가 그들만큼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이유를 나로서는 찾을 수 없다.

지성과 완두콩밭 한 뙈기만 있으면, 수도사가 멘델이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성취가 적었던 것은 대부분의 여성이 교육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탁월한 여성의 수가 늘어나고 그녀들이 훌륭한 업적을 이룬 것은 교육 덕분이다.

뉴턴은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문법 학교에 다녔고, 농장에서 일하기를 거부하자 성직자였던 한 숙부가 그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말고 대학에 보내도록 권해 준 덕분에 열아홉 살 때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갔지요(『국가 전기 사전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32 참조). 말하자면 뉴턴은 1920년대에 뉴넘 칼리지에 가고 싶어 하는 시골 변호사의 딸이 부딪혔을 정도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베넷 씨, 오를로 윌리엄스 씨, <상냥한 매> 등의 글로 인해 한층 더 좌절할 필요는 없었지요

여성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상냥한 매>도 이제는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말해야겠습니다. 119년도 아닌 19세기에 왜 여성들의 발전에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 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의 모든 활동이 장려되어, 남성들만큼이나 자유롭게 그리고 조롱당하거나 얕보일 우려 없이 생각하고 발명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여성들의 핵심적인 활동이 항상 존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 존중받기가 훨씬 더 쉬우니까요.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해 <상냥한 매>는 짧게 답했다. <만일 내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저해된다면, 나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알라딘 eBook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버지니아 울프) 중에서

여성과 소설1

이 글의 제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즉, 그것은 여성과 여성이 쓰는 소설2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여성과 여성에 대해 쓰인 소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애매함은 의도적인 것이니, 여성 작가를 다룸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폭넓고 탄력적인 태도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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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84)는 3세 때 부터 글을 깨치고 8세 때는 화석정(花石亭) 에서 팔세부시(八歲賦詩)를 한 천재였다.  13세에 진사 초시에 장원급제한 이후 15세에는 다른 사람에게 배울 게 없다며 스승 없이 조광조를 사숙하다가 백인걸 문하에 들어가우계 성혼을 만나 평생지기가 되었다. 16세 (1551)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묘막 생활을 하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뇌하며 불교 서적을 읽고 흥미를  느껴서 모친의 삼년상을 마친 뒤엔 금강산 마하연에 들어가 석담(石潭)이라는 법명을
얻고 승려 생활을 했다. 그때 율곡의 나이는 불과19세였다. - P460

그러나 1년 뒤 결국 불교나 유학이나 도를 찾아가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솔개 날고 물고기 뛰는 이치는 위나 아래나 같은 것/이는 색(色)도아니요 공(空)도 아니라네" 라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시를 짓고 하산했다.  20세(1555)에 하산해서는 다시 성리학에 열중해 23세 때 58세의 퇴계 이황을 찾아가서 물음을 구하기도 했다. 이때 퇴계는 율곡이 불교에서 과감히 벗어나 유교로 되돌아온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같은 글을 주었다.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속이지 않는 것이 귀하고,
벼슬에 나아가서는 일 만들기를좋아함을 경계해야 한다.
持心貴在不欺
入朝當戒喜事 - P460

퇴계를 만난 바로 그해 겨울 율곡은 생원시 별시(別試)에서 장원했고 29세(1564)에는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이로써 율곡은 13세 이후 모두 9번 장원으로 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후 호조좌랑으로 벼슬길에 올라 대사간을 몇 번이나 지내며 경륜을 펼쳤고 한때는 파주 율곡으로 물러나 학문에 열중하기도 하다가49세(1584)에 세상을 떠났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피란길에 한탄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5천원 권 지폐에 그의초상을 담아 기리고 있다. - P461

율곡 이후에 배향된 이들은 모두 율곡학파의 노론계 학자였다. 김장생과 조헌은 율곡의 제자였고, 김집은 김장생의 아들이자 율곡의 사위였으며, 송시열과 송준길은 김장생의 제자이자 김집의 제자였다. 박세채역시 김집의 제자였다. - P462

탁영 김일손과 남명 조식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와 퇴계학파의 학봉김성일, 서애 유성룡,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 우 정경세 등은 문묘 배향이 추진되었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 P462

"천리마 꼬리를 잡고 가는 파리도 천리를 간다." - P464

안회는 비록 독실하게 공부하기도 했지만 공자라는 천리마 꼬리를붙잡았기 때문에 그 덕행이 더욱 드러났다.
여기서 사마천이 천리마 꼬리에다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당나라사마정이 『사기』의 주석으로 쓴 『색은(隱)』을 보면 ‘기미창승(驥尾蒼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기미‘는 천리마 꼬리고 ‘장승‘은 파리다.
파리가 천리마 꼬리를 잡으면 천리를 간다. 
蒼蠅附驥尾而致千里 - P465

이것을 속되게 풀이하자면 실력 없는 자는 천리마 꼬리라도 붙잡고같이 가는 수밖에 없다는 인생의 한 처세술일 수도 있다. 이는 첫째 뒤통수만 보고 달리면 둘째는 될 수 있다는 상업적 ·외교적 기술보다 한수위다. 실력이 없으면 천리마 꼬리를 잡는 것이 상책이 아닐 수 없다. - P465

大小人員 過此者 皆下馬
크건 작건 이곳을 지나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 - P476

성균관 답사를 이 하마비에서 시작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곁에 있는 영조대왕의 탕평비(蕩)에서 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영조 18년(1742)에 세운 이 탕평비에는 영조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나오는  말을 풀어서 친필로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
두루 아우르고 치우치지 않는것은 군자의 공적인 마음이요,
比而弗周 寔小人之私
(비이불주식소인지사의)
치우치고 두루 아우르지 못하는 것은 곧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 - P476

‘탕평‘이라는 말은 『서경』 「홍범(洪範篇)」에 실린  이상적인 정치를펴기 위한 9가지 규범 중 다섯번째에 나오는 말이다.

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평평하다. - P476

영·정조시대의 문예부흥을 기리며
탕평비 앞에 서면 영조대왕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일어난다. 누가 뭐래도 영조는 80여 평생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창경궁 흥화문 앞으로 나아가 백성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여론의 힘으로 균역법(均役法)을 강력히 추진했으며, 정신병 탓에 사람  죽이기를 일삼는 사도세자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어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아비로서 슬픈 결단을 내리는 등 평생을 탕평치국에 바쳤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손자(정조)에게 효(孝孫)이라는 도장을 새겨주면서  유세손서(諭世孫書)에 이렇게 당부를 남겼다. - P479

아! 해동 300년 우리 조선왕조는 83세 임금이 25세 손자에게 의지한다. (…) 아! 내 손자야! 할아버지의 뜻을 체득하여 밤낮으로 두려워하고 삼가서 우리 300년 종묘사직을 보존할지어다. - P479

정조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를 안정시킴에 온 정성을 다했다. 규장각을 세워 학자를 곁에 두고 국정을 운영했다. 정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술잔을 내려주면서 "100리 가는 사람이 90리를 반쯤으로 생각하듯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 P479

인재를 씀에 있어서는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에서 냇물이 만 개여도 거기에 비친 달은 하나인바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치며 달이 각기그 형태에 따라 비추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얼굴과 기량에 맞게 대하는것이 군주의 자세라고 했다. - P480

정조가 이처럼 사람을 아꼈기 때문에 이 시대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문예부흥을 이루었다. 정치에서 번암 채제공, 문학에서 연암 박지원, 사상에선 다산 정약용, 미술에선 단원 김홍도가 나왔다. 번암과 연암과 다산과 단원이 위대하다면 이들을 낳은 정조시대도 위대한 것이다.
이리하여 영조시대에 일어난 문예부흥은 정조시대로 이어졌다. - P480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고 물으면 태평성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역사상 그런 시대는 없었다. 까마득한 옛날, 증명되지도 않는 요순시대라고 상상할 뿐이다. 그래서 문화사가들은 태평성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한 시대의 치세를 칭송하는 최대의 찬사는 ‘문예부흥기‘다. 서양 역사에서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동양 역사에서는18세기 청나라 강희·옹정·건륭 연간이 문예부흥기라는 명예를 갖고 있다. 문예부흥기의 국정철학은 ‘경국제민(經國濟民) 문화보국(文化保國)‘
여덟 글자로 요약된다. 즉 나라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구제하고 문화로서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 P480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8세기 3분기 석굴암·불국사·에밀레종으로 상징되는 신라 경덕왕 때, 12세기 2분기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고려 인종때, 15세기 2분기 한글을 창제하고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세종대왕 때,
그리고 18세기 후반기 영·정조시대가 문예부흥기였다 - P480

돌이켜보건대 우리 역사상 네 차례 나타난 문예부흥기는 영·정조시대 이후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그것을 어떻게 문예부흥기로 승화시킬 것이냐가 우리 시대의 과제인데 나는 영조시대의 예술적 성취를 정조시대가 이어간 모습에서 그 해답의실마리를 읽어본다. - P481

영·정조시대 회화에 등장한 진경산수·풍속화·문인화라는 새로운3대 장르는 영조시대에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능호관이인상 등 양반 출신의 지식인 화가들이 선구적으로 개척한 것을 정조시대에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송 이인문 등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 출신의 전문화가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영조시대 그림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예술적  고뇌가 서린 내용상의 깊이가 있고 정조시대 그림엔 정교한 테크닉이 두드러지는 형식상의 완결미가 돋보인다. - P481

이를 비약해서 말하자면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제시한 진보적 내용을 능력 있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기술관료들이 형식으로 구현해낸 것이었다. 지난 세월 우리가 쌓아온 값진 경험을 토대로 이제 능력있는 진정한 엑스퍼트(expert, 전문가)들이 경국제민과 문화보국의 자세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면 혹 후세 사람들이 우리가 살던 이 시기를 문예부흥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영광과 사명이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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