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기억의 바탕이 되는 정보를 뇌에서 부호화하는 ‘암호화‘, 다음으로 그 정보를 축적하는 ‘저장‘, 마지막으로 저장된 정보를 검색해 재생하는 ‘회수‘. 그러니까 가나에의 기억장애는세 번째 ‘회수‘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외국 어딘가 같아 보인다. 한 남자가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걷는 그림, 남자는 피에로 분장을 하고 피리를 불고 있다. 아이들은 피리 소리에 이끌리듯 걷고 있다.
마키시마는 그 옛날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동화를 떠올렸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이었다.

1284년, 하멜른은 쥐로 인한 피해에 시달렸다. 도시에 쥐 퇴치자를 자처하는 남자가 나타나 도시 사람들과 쥐 퇴치 계약을 맺는다. 남자는 피리를 연주하며 쥐떼를 베저강으로 유인해 전부 빠뜨려 죽인다.
그런데 주민들이 보수를 지불하지 않자 화가 난 남자는 어느 날 주민들이 교회에 간 틈을 타 쥐떼를 유인한 것과같은 방법으로 피리를 불어 도시의 아이들 130명을 유인한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아이들을 동굴 안으로 몰아넣은뒤 동굴 안에서 입구를 막아 버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와 함께 사라진 130명의 아이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민간설화였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면 나도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괴범의 아버지 같은 존재잖아."

이누카이는 예전에 연기학원에서 연기 공부에 매진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에 표정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무의식중에 보이는 행동으로 상대의 거짓을 꿰뚫어 보는 기술을 배웠다. 이 기술은 형사로 직업을 바꾸고 나서용의자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현재 경시청 내에서 검거율 1, 2등을 다투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기술 덕분이었다.

다만 문제도 있었다. 이 기술은 여자를 상대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연기학원 시절, 배역을 따려고온갖 남자들의 버릇을 끊임없이 관찰했다. 애당초 여자는 대상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원인인 듯했다. 여자의 마음에 무지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학창 시절 남자답게 잘생겨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여자들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알아서 다가오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헤어져도 금세 새 상대가 다가왔기에 반성과 학습의 기회도 없었다. 삼십대 중반에 이혼 두 번이라는 불명예도 전부 여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태도 때문이었다.

"아빠, 제발."
날카롭게 주시하는 사야카의 시선에 이누카이는 꿈쩍할 수 없었다.
"꼭 가나에를 무사히 구출해 줘."
"평소대로 전력을 다할 거야."
"전력을 다하기만 해서는 안 돼."
사야카의 말은 가차 없었다.
"나중에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가나에와 엄마는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의 희망이야. 만약 가나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가 절망할 거야."

예방 접종은 후생노동성의 후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후생노동성이 2010년부터 백신 접종 긴급 촉진 사업을 실시하며 자궁경부암 백신을 포함한 해당 백신 접종 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 접종 사업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달려들었다. 접종 대상자인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1학년 여학생은 무료 또는 저가로 접종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4월부터는 예방접종법에 근거해 정기접종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백신을 접종한 소녀들에게서 발열이나 아나필락시스쇼크 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수는 2013년 3월까지 약 1천 2백 건. 그중 백여 건은 장애와 같은 중증 후유증이 남았다. 그리고 2013년 3월에 피해 소녀의보호자들이 모여 ‘전국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자 대책 모임‘을 결성했다.
"가나에의 기억장애도 짐작이 가는 원인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은 딸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제약회사를 고발하는 운동으로 번졌잖아. 그런 운동에는 반드시 반대세력이 존재하지."
"그 반대세력이 가나에 양을 유괴했다는 말입니까?"
"아직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어. 애당초 그 집은 막대한 몸값을 낼 형편도 안 되고,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밖에추측할 수 있는 목적은 가해 또는 음란행위지. 하지만 애 어머니가 사회 고발을 한 인물이라면 또 다른 동기가 떠오르잖아."
"고발 저지・・・・・…."
"현재 쓰키시마 모녀에게 밀려드는 건 동정과 걱정이야.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한 비판은 조용하지. 만약 범인이딸을 인질로 잡고 제약회사를 향한 비난을 멈추라고 요구하면 그 어머니가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아?"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은 종종 신중해. 그리고 신중한 사람은 자신들의 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딸이요. 살아 있었으면 가나에 양과 동갑이었겠군요. 아야코 씨에게 들어 아시겠지만 제 딸도 넓은 의미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희생자였습니다."
"그런 걸 백신 부작용이라고 한다더군요. 하지만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직접 사인이 부작용이 아니니까요. 미사키는・・・・・ 딸은 백신 접종 후 사지 기능 장애를 겪었습니다. 테니스부서 활약하던 아이였는데 안타까운 일이었죠."

약해 에이즈 사건
* 1980년대에 일본에서 혈우병 환자들에게 HIV 바이러스에 오염된 비가열성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해 수많은 에이즈 감염 환자를 낳은 사건.

"제약회사와 후생노동성과 의사. 이 삼각 구도의 유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또 약해 에이즈의 전철을 밟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압살하는 일이겠죠."

무라모토의 온화한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약해 에이즈 사건 때, 최초 보고 사례를 철저히 묵살하고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 확실하게 입막음해 두었다면 후생노동성과 제약회사, 의사를 둘러싼 소송전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관계자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패거리들에게는 블로그 투병 기록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의 상징이 된 쓰키시마씨 모녀가 위협적인 존재일 겁니다."

-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떨어진 돈을 주머니에 슬쩍 주워 담는 사람도 많겠죠.
만약 유괴된 가나에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범인의 행동은 자연히 제한된다. 인질을 살해하려면 그 작업과 사체 처리에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든다. 인질을 살려둔다면 범인과 장소를 특정할 수 없도록 정보를 차단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대단한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이 기여가

"예를 들어 가정 폭력이든 리벤지 포르노든 죄상은 그냥 상해죄나 명예훼손이지만 피해자는 죄상 이상으로 상처받고 두려움에 떨어요. 지금의 법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강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법 같아요. 만약 이번 사건이 장난이나 충동의 연장선에서 계획된 범행이라도 극형에 처해야 해요."

아소처럼 오랫동안 범죄 수사에 몸을 담은 사람조차 인터넷의 악의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일상에 숨어 있는 혼탁한 앙심.
사교적인 미소 뒤에 깔린 잔학성.
그것들이 어떠한 계기로 표출되어 이러한 범죄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끊어낼 수 없다.
언뜻 머리를 스친 범인상에 이누카이는 몸서리칠 뻔했다.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 사례는 현재까지 1천 2백 건 보고됐을 뿐이지만 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해요. 물밑에 가려져 안 보이는 부분이 드러나는 건 2년 후나 5년 후, 아니면 10년 후………. 그때가 되면 피해자는 도대체 몇만 명으로 늘어날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누가 어떤 형태로 보상할 수 있을까요? 생각할 때마다 같은 의료인으로서부끄럽습니다만, 약해 에이즈 사건 때 제약회사나 비가열성 치료제를 승인한 후생노동성나 사건에 관여한 의사나모두 추악한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권력과 욕심에 찌든 자는 어리석어요. 어리석으니 몇 번이나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몇 번이나 같은 추태가 까발려지죠."

"이런 약물 피해 사건은 오래되고도 새로운 문제입니다. 몇 년 주기로 발생하고 의사와 제약회사와 후생노동성의유착이 밝혀지며 관계자가 체포되고 재판이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환자 몇 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마침내 구제가 시작되죠.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미 또 다른 약물 피해 사건이 물 밑에서 진행되는 실정입니다. 즉 해결되는 듯 보여도근본적인 부분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제약회사는 부작용 있는 백신을 계속 만들고, 의사는 의료 수가를 받으려고 의심스러운 백신을 환자들에게 계속 투여하며, 후생노동성은 낙하산 욕심에 백신을 순순히 허가하고접종을 권장하는 구조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말씀드리면 이상이 있는 약은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이런 당연한 말이 입찬소리 같이 들리겠지만, 의사와 후생노동성의 사명은 국민의 건강을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효성이 보증되지 않은 백신을 충분한 설명 없이 권장하는 것은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환자의 이익과는 무관한 논리로 백신 접종을 권장하는 후생노동성과 의료기관은 망국의 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또 그놈의 인터넷인가. 빌어먹을, 마약이니 권총이니 요즘에는 일반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그런 위험한 물건을 살수 있다니. 조만간 인터넷에서 핵미사일도 팔게 생겼어."

"우선 출산이라는 게 시간을 미리 정해 놓는 일이 아니니까 의사가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 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근무 시간이 불규칙해지죠. 게다가 산부인과는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대학이라면 산부인과 안에서 업무를 세분화할 수 있지만, 일반 병원에서는 여의치 않죠. 근무 환경이 그렇게나 혹독한데 대가는 너무작습니다. 의사도 성인군자는 아닙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노동에 상응하는 합당한 수입이 없으면 근로 의욕도 줄어들죠."
"확실히 출산은 시간을 가리지 않죠."

"그리고 출산은 새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서 관계자들은 당연히 크게 기대합니다. 무사히 태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죠. 하지만 현실은 출산에도 위험은 존재합니다. 근대의학 이전 시대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태아가 사산됐으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인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태아나 산모에 타격이 있으면 자칫 의료과실로 소송에 걸려 버립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산부인과 의사는 전체 의사의 5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소송 비율은 전체의 12퍼센트를 차지합니다. 불합리하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마키노 회장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자 이누카이는 몹시 동정심이 일었다. 이누카이는 딸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해서 치료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좀처럼 없지만, 사람의 목숨을 맡으면서 소송 위험까지 짊어진다는 사실은 확실히 가혹하긴 하다.

"산부인과 의사는 글자 그대로 임부를 포함한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고작 보험 점수따위의 당치도 않은 걸 우선시한 나머지 산모나 미래에 어머니가 될 아이들의 몸에 장애를 남길 만한 약물을 투여하고도 수치를 모른다니 산부인과 의사로서 상종 못 할 인간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여성의 적이죠. 달리 표현하면 모든 어머니, 모든 여성이 그들을 증오할 겁니다."

도쿄의 중심가에서는 불법 주차를 볼 일이 적다. 2006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탄생한 주차감시원의 꾸준한 활동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오사카에서는 불법 주차 차량이 당당하게 늘어서 있고 보행자들도 신호를 거의지키지 않았다. 도로에 차가 달리지 않으면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넜다.
"뭐, 반권력이랄까, 옛날부터 나라님이 정한 일 따위 내 알 바냐, 하는 정서가 있어서요."
구게가 변호하듯 덧붙였다.

"분명 오사카만큼 시민이 경찰을 싫어하는 곳도 얼마 없을 겁니다. 저도 갓 순경이 됐을 때 길을 걸어가던 초등학생 여자애에게 ‘짭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구게는 또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방 공공 단체. 일본의 행정 구역은 총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으로 나뉘며  도쿄도(都), 홋카이도(道), 오사카부(府), 교토부(府), 43개의 현(県)이 있다.

옛날 어느 위정자는 인명은 지구보다도 무겁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치적인 고려를 호도하려는 궤변에 불과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무거운 것 따위 현실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아니, 종교나 정치에서 그것은 먼지만 한 가치도 없지 않은가. 이 나라도 그렇다. 정부 기관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여기는 인간이 썩어날 정도로 많다. 그렇지 않고서는 약물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문제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관리관뿐 아니라 건물 위층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인간들의 생각이란 늘 똑같아. 새삼스럽게 내 입으로다시 설명해야 해?"

"그래, 저게 바로 네가 직감으로 알아챈 쓰키시마 아야코가 숨기던 진실이자 무라모토가 내뱉던 거짓말이야. 계획의 세부내용을 짠 사람은 무라모토였어. 협조자를 모은 사람은 쓰키시마 아야코였고, 하지만 이 계획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마키노 아미였지.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그녀였어."

자신을 바라보는 가나에의 눈이 여느 때와 다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은 여전하지만 곤혹스러운 감정도 느껴졌다.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가나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야코가 아크릴판에 손을 대자 가나에도 맞은편에서 손을 맞댔다. 이윽고 아크릴판 너머로 가나에의 온기가 전해졌다.

1796년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을 짜다가 우두에 감염되었던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우두 환자의 고름을 채취해 동네 농부의 어린 아들의 팔에 주입했고, 6주 후 천연두농을 주입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우두접종으로 면역력이 생긴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이렇게 여러 실험을거치면서 우두 균으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인류 최초의 백신인 종두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제너가 발명한 종두법은 천연두 사망자를 줄이는 데 크게 공헌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에 천연두 종식 선언을 했습니다. ‘백신(Vaccine)‘이라는 용어도 ‘소 천연두‘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리올라에 바키나에(Variolae Vaccinae)‘에서유래됐죠.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표주자 나카야마 시치리, 이번에는 백신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해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지각 있는 중국인들 자신에 의해서도 이미 지탄을 받은 바가 있다. 40년 전, 머잖아 있을 역사분쟁을 예감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역대 중국의 대국적 배타주의를 사과하면서 발해가 우리의 옛 땅이었음을 확언한 바 있다. 우리가 연구를 심화시키고 변조 아닌 진실로 접근한다면, 발해가 고구려의 당당한 계승국이며 우리의 정통역사의한 부분이라는 정체성은 더 확연하게 밝혀질 것이다. - P155

이러한 발해이기에 침해를 당할때는 단호하게 주권을 행사한다. 북방의 흑수(黑水) 말갈이 당에 빌붙어  압박해오자 발해는 723년 대장군 장문휴(張文休)가  이끄는 수군 정예 2만을 보내 속전속결로 샨뚱(山東)  반도의 등주(登州)를 공략한다.  자신만만한 국력시위였다. - P159

발해의 당당한 국제성은 이러한 자주적인 국가권력 행사와 더불어상경(上京)을 시발점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뻗은 다섯 갈래의 국제교통망을 통해 진행된 교류와 그 결과로 이루어진 문화의 융합상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5대 국제통로는 상경에서 부여(夫餘府, 현 지린吉林)를 거쳐 거란으로 가는 거란도,  영주(營州, 현 쟈오양朝陽)를 거쳐 중원으로 이어지는  영주도, 압록강을 타고 샨뚱반도로 들어가는 압록도(일명 조공도), 동경과 남경을 거쳐 신라까지 연결되는신라도, 동경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일본도이다. - P160

이렇게 발해는 완비된 국가체제와 주권국가로서의 확고한 국제성을 지니고 사통팔달한 국제교통망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고 문화를주고받은 대제국이었다. 이러한 발해를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지방정권 운운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용서 못할 거역이고 오만이며,
발해사를 정통민족사로 간직하고 있는 우리 겨레에 대한 야멸친 멸시다. - P163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고대사회의 금관은  모두 합해서 10점밖에 안된다. 그중 신라금관 6점과 가야금관 1점을, 그것도 가장 완벽한 것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올 것을 예견한다면, 우리나라는 문자 그대로 ‘금관의 나라‘ 라고 말할 수 있다. - P168

문제는 각개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아직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나, 분명한것은 전부를 두드러지게 하는 입체적인 환조(彫, 봉황)나 어떤 부분만 두드러지게 하는 반입체적인 부조(浮彫, 몸체), 투명한 도안을 나타내는  공간적인 투조(透彫, 받침) 같은 조각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한 공예미술의 결정체이고, 신선사상과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킨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 P181

이상의 몇 가지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같이,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백제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진취성, 그리고 독창적인 금속공예술을  입증해줄 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어우름의 향훈을 듬뿍 풍기고 있다. - P184

중 이 대향로를 첫손으로 꼽고 그 유치를 끈질기게 촉구했다. 그러면서 전시 포스터에 ‘백제금동대향로‘ 사진을 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몇몇 심지 있는 전문가들의 대바른 거절로 이 대향로와영조어전의 반출은 불허되었다. 이것은 정정당당한 대응이었다. 일본역시 천황의 초상화 등 천황 관련 유물은 일절 해외 전시를 금한다. 유물의 존엄은 곧 나라의 존엄이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ㅁ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견해는 함께 구하고 다른 것은 남겨두어 연구하자는 뜻. 중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자성어다.

ㅁ 구동화이(求同化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되 이견이 있는 부분까지 공감대를 확대한다는 뜻

112p.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논리를 들어 견해를주고받았다. 서로의 견해는 평행선을 달릴 뿐, 좀처럼 접점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서로가 학자로서의 심성과 학풍만은 구기려 하지 않았다. 논쟁 끝에 ‘구동존이(求同存異)‘ 하기로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고구려는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가슴속에 마냥 살아 숨 쉬고 있는 실체다. 중국은 이러한 실체를 무시한 채 관변의 힘으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을 가설해놓고 여러 가지 강변과 요설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끌어들이면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냉큼 지워버리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디어 나왔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12. 서울편3,4

밀린 답사기 다 읽고 나니 바로 출간되었다.

밀린 숙제 끝내니 새로운 숙제가....

하늘의 뜻이다?

작은판형이 아닌 예전 판형이라 다행이다.


대전 서점엔 아직 배포가 안되었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10-21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요. 오늘 신간에 서울 완결편 뜬것 보면서 저도 대장정님 생각이 났습니다. ㅎㅎ

대장정 2022-10-21 17:01   좋아요 3 | URL
^^. 신간정보 보면서 저를 생각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감개무량합니다. ㅎㅎ 😊 감사합니다.
 

이처럼 2,000년 전 이 땅에 온 허황옥은 혈연과 불연, 그리고 교류의 인연을 맺어준 메씬저이자 교류인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와함께 있다. 문명은 이러한 메씬저와 교류인들에 의해 알려지며 교류된다. - P84

지구상의 어디든, 고대국가의 건국 과정은 거의 신화로 윤색되어 전해오고 있다. 신화의 주인공은 예외 없이 건국자이며, 신화의 구성은대체로 건국의 기틀이 마련된 후에 완성되는데, 그때까지를 ‘신화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건국신화의 내용은 건국과정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건국신화는 오래 전승되는 ‘왜곡 없는 윤색‘이니, ‘강요하지 않는 신앙‘이니 하는 평을 받는다. - P86

우선 고구려건국신화는 다양한 신화소를 갈무리하고 있다. 천강소(天降素)인 하늘의 신 (해모수)과 물의 신(하백)의 딸의 결합은 천지조화를 말하며 여기에 난생(卵生素)가  얹히는데,원래 천강은 북방유목민들의 신앙이고 난생은 남방농경민들의 신앙이나, 그것이 주몽신화에서는 하나로 어우러진다. 게다가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는 기적(奇蹟素)도 곁든다.  한마디로, 하늘의 도움과 신의 보우를 받는 천조신우(天助神佑)의 신화소가 대단히  돋보이는 복합화다. 이에 비해 로마의  건국신화에는 신화소가 빈약하다. 씰비아가 동굴에서 마르스 신을 만나 쌍둥이 형제를 낳고, 그 아이들이 늑대의젖을 먹고 자라난 것 말고는 별다른 신화소가 없다. - P92

고구려의 옛 땅 옌볜(延邊)은 필자가 나서  자란 고장이다. 거기서 고구려의 떳떳한 후예로 자부하면서 겨레의 역사를 배웠고 겨레의 얼과 넋을 키웠다. - P108

이렇게 고구려는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겨레 모두의 가슴속에 마냥 살아 숨 쉬고 있는 실체다. 중국은 이러한 실체를 무시한 채 관변의 힘으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을 가설해놓고 여러 가지 강변과 요설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끌어들이면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냉큼 지워버리려고 한다. - P112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강변과 억지들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고구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 정체성이란 고구려의 종족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닌 자생의 예맥족계라는 것,
고구려는 조공이나 책봉에 얽매인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 아니라중국 왕조사에는 전무후무하게 700년 이상 장수한 자주독립국가라는것,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하고 발해와 고려로 이어지는, 한민족 역사의 정통국가라는 것, 고구려는 ‘중화문명‘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인선진문명을 가진 나라라는 것 등이다. 고구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다. - P115

역사는 누가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거나 바꾼다고 해서 바꿔지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사실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토주권‘이 ‘역사주권과 다르다는 것은 역사학의 상식이다. 현실적으로 옛 고구려 땅을 지배한다고 해서 그 역사까지 마구 지배할 수는없는 것이다. - P115

역사에서 보면, 한 나라의 생존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즉 그 국제성에 크게 의존한다. 특히 역사의 격변기에는 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성은 국가의 권력행위에서 나타난다. 국제관계에서 권력행위란 다른 나라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과다른 나라로부터의 영향을 거부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행위를 말한다. - P117

우리는 슬기로운 선조들의 창의성과 노력에 의해 인류 모두에게 보편주의적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다. 그중 고구려 문화유산이 가장 뛰어나거니와, 그 가운데서도 고분벽화는 가위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해명에서 벽화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기록은 기록자에 의해 실상이 가감될 수있지만, 벽화만은 그대로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어느 학자는 벽화를 보유하고 있는 민족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민족보다 훨씬 위대하고 강하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그러한 민족 중의 하나다. - P127

이러한 교류상은 멀리 서역과의 교류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벽화에서 보다시피 고구려인들은 서역인들과 같은 유형, 즉 카프탄형 (kaftan, 앞 여밈형, 전개형前開型)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다. 이 형은고대 아시아 유목기마민족의 복식에서 시원하여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포함한 서역 일원에서 널리 유행하다가 마침내 범아시아적인 전통복식으로 정착되었다. - P128

문화에서 유형(類型, type)은 공통되는 문화형식을  말하는데, 그것은 주로 전파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양식(樣式, style)은드러난 문화의 가변적인  표현형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할수 있다.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복식과 서역복식을 양식적 측면에서 비교 · 검토해보면, 다 같이 바지와 저고리를 착용하고, 깃이나 섶, 도련, 소매 끝에 다른 색의  천으로 단(연緣)을 두르는 가연법(加緣法)을 취하며,  고깔형의 모자인 변형모(弁形帽)와 조우관(鳥羽冠) 같은 둥근 모자를 쓰는 등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 P129

그리고 벽화에 나타나는 이색적인 서역인상은 당시 서역과의 인적교류를 말해준다. 안악 3호분의 수박(手搏, 손잡고 겨루기) 그림과 각저총(角抵塚)의 씨름 그림에서 고구려인과 겨루는 상대는 큰 눈과 높은매부리코를 지닌 심목고비(深目高鼻)의 서역인임이 틀림없다. 그림속의 서역인이 우리가 흔히 절에서 보는 수호 담당의 사천왕이나 금강역사 등 험상궂고 우락부락한 상징적 존재와는 달리, 평범한 생활속에서 겨루기를 즐기는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서역인이 고구려땅에 와서 함께 살면서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같은 시기의 북중국 벽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현상으로서, 고구려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서역과 직접 교류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 P130

끝으로, 고구려 벽화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몇 가지 무늬도 알고보면 서역에서 들어온 것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연꽃무늬인데, 연화총(蓮花塚)을 비롯한  고구려 고분에서는 벽화뿐만 아니라 건축장식에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 P132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대중국 교류는 인접한 한 나라와의 유무상통이었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러한 교류상을 갖췄기에 고구려의 당당한 국제성과 고구려 문화유산의 보편주의적 가치가 비로소공인되는 것이다. - P138

고구려는 명실 공히 대제국답게 세계를 향해 가슴을 열고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기원과 계통을달리하는 당대의 다원적인 가용문화(文化)를 적극 수용한  후 그것을 ‘고구려문화‘라는 용광로 속에 용해시켜 특유의 선진문화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완숙시켜 신라나 백제, 심지어 일본에까지 넘겨줌으로써 문명전달의 교두보 역할도 수행했다. - P127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우물이나 사진관, 식당 등에 ‘고구려‘나 ‘발해‘란 이름이 뒤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땅이아니었는데도 ‘고구려‘란 이름이 지금까지 그토록 쓰이고 있는 것은현지인들의 말을 빌리면 고구려와 발해는 ‘그것이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란 뜻이다. 발해의 정체성을 압축한 말이다. - P141

일찍이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朴濟家,  1750~1805)는 "우리나라 선비들이 신라 주 안에서 태어나 그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틀어막아버리니 ・・・・・・ 어찌 발해의 역사를 알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한 바 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거니와 그 무지와무시가 마침내 천여 년을 넘어선 오늘에 와서 그 참역사가 송두리째말소될 위기를 자초하고야 말았으니, 참으로 비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 P142

이것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불완전성이 낳은 후과이기도 하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민족국가 형성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는 일정한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또 하나의민족국가인 북방의 발해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통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국가 분립시대를 연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이른바일통삼한(一統三韓)‘의 내재적 한계성이며, 우리 겨레가  두고두고 반추해야 할 뼈저린 역사적 교훈이다. 그것이 아니었던들, 발해는우리 역사의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며, 발해의 기나긴 수난에 허무한 빌미도 제공되지 않았을 것이다. - P142

우리의 해동성국 발해는 오늘날까지도 그 수난의 역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치욕의 역사를 더 이상 연장시킬 수는 없다. 이젠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귀감을 얻어 발해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오롯하게 밝혀냄으로써 왜곡과 변조를 막아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흙탕을 헤집고 솟아 흐르는 샘물처럼 수난을 극복하는 슬기와 용기가 있다. - P146

우리의 역사 정통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출구는 오직 하나,
지켜내는 일뿐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우리의 민족사 정통에 뿌리박은 발해의 정체성을 명백히 가려내는 일이다. 그 정체성이란한마디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정통 주권국가라는 것이다. - P148

총체적으로 볼 때, 발해의 종족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구성하고 있던 예맥·부여 계통의 고구려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거론되는말갈인이란 어떤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쑹화강(松花江)유역의 속말(粟末) 말갈이니, 백두산 지역의 백산(白山) 말갈이니 하는  것과 같이 지역에 따라 주민 일반을 가리키는 중국 측의 비칭(稱)인 것이다. 쑨진지 같은 중국 학자도 말같은 어떤 민족이나 종족도 아닌 예맥이나 숙신(肅), 고아시아의 3개 종족으로 이루어진 일부 부락군이나 부락연맹 같은 것이라고 하여 말갈의 종족성을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말하는 것처럼 발해는 말갈인들이 세운 지방정권이 아니라, 고구려의 후예들이 세운 고구려의 당당한 계승국인 것이다. - P151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발해인들의 생활문화다. 인간집단의 생활문화는 장시간의 답습과 축적 등 전승을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법이다. 전승 없이 어느 순간에 급조되지는 않는다.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