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 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 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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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을 따르든 간에 신화 속의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만큼 그 미모가 출중했다. 이런 아프로디테의 미모를 심상찮게 여긴 제우스는 자존심 강한 신들 사이에 치졸한 사랑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고 그녀를 신들 중 가장 못생겼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Hephaestos에게 시집보내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 P45

이 ‘천하절색의 팜므파탈 여신 아프로디테와 천생연분인 마초 아레스의 불륜이 낳은 자식만 에로스를비롯하여 다섯이나 되었다고 하니, 오죽했으면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지금도 시칠리아 -Sicilia의 에트나Eina 화산 아래에서 뜨거운 풀무질로 용암을 녹이며 그 화를 삭이고 있겠는가. - P45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이 춤과 노래로 뭇 사내를 유혹하여 웃음을 팔던 곳. 환락과 퇴폐의 역사가 전사들이 흘린 선연한 피 아래 묻혀 있다. - P47

이런 이유로 이곳은, 성지순례를 온 단체 여행자들이 가이드에게서상반된 두 가지 이야기를 듣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즉 성채 아래쪽 코린토스 초기 교회의 자리에서는 교회의 분열과 신자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올라와서는 몸 파는 아프로디테 여사제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교훈을 듣는 ‘말씀의 장소‘가 되는 명예 혹은 불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방탕한 여신과 그를 모신여사제들의 타락이 코린토스의 역사를 질곡으로 밀어넣었던 것일까? - P48

이런 물음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도 또한 윤리적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 P48

하지만 나는 이 땅 아래에 잠들어 있는 겹겹의 무덤들 속에는 단지 그녀들의 향기 나는 허리띠만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 속에서 이성채를 지키다 쓰러져간 전사들의 투구와 이곳을 다스리던 지배자의 왕홀들이 함께 묻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그 한 겹 한 겹의 무덤들모두에 온전한 그리스 역사의 연대기이자, 때로는 용맹하고 때로는 비겁했던 코린토스인들의 전설과 신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야 했다. - P48

로마의 점령
분열과 대립의 대가를 치르다
고대 이후 아크로코린토스 역사의 두 번째막은 로마에 의해 올랐다. 로마 제국은 전 점령지를 통틀어 그리스인에게 가장 관대했고, 나아가 그리스를 흠모했다. - P49

그러고 보면 그리스 땅이야 로마가 점령했을지언정, 정신은 도리어 그리스가 로마를점령했던 셈이다.
로마 시대에 재건된 외벽 위에 올라서서 아래쪽 고대 유적지를 바라보자니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였다네. 하지만 그들이 코린토스에 대해 가진 집착은 유별난 데가 있었어.‘ - P49

"진정한 구원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 법이라네. 모두가 강가에서 발을 동동 구를 때, 누군가는 그 강에 다리를놓지. 나머지 사람들이 그다리를 건너며 ‘구원‘이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바로 그 구원의로부터 구원받는 것‘이거든." -3 - P50

결국 각 도시국가의 대표들이 코린토스 남쪽 나우팍토스 Nauractus 에 모여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로마의 일곱 언덕으로 이주하여, 제우스는 ‘유피테르Jupiter‘로 아프로디테는 ‘비너스 Venus‘로 창씨개명까지 마친 뒤였다. 그리고 태양신 헬리오스 Helios의 불 마차는 그리스를 떠나 이미 로마의 하늘을 밝히기 시작한 후였다. - P50

하지만 그것은 사막에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은 것일 뿐. 물이 있다 한들 모래를 뭉칠 수 없듯, 모래 알갱이처럼 흩어진 그리스인들이 뒤늦게 하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P51

"로마는 그리스 도시의 시민들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로마의 수비대를 이곳에 두지 않을 것이며 공물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스스로의 법에 따라 다스려질 것을 약속한다." - P54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민족은 노예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지, 아무렴, 분열은 반드시 역사의 대가를 치르는 법이야." - P55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을 준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종속을용납하지 않으려는 거부, 사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초월하는 험난한승부, 그것이 바로 저항이라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 그냥 뱃속의 본능을 따른 것뿐이었지." -4 - P55

"사람들이 왜 뱀을 섬기는 줄 아시는가? 이라는 놈은 언제나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 그렇다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간파하는 것이지. 뱀은 늘 어머니인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하는 존재거든.
마치 조르바처럼 말일세." - P58

전설의 샘페이레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신은 이렇게 말한다네. ‘너희가 비록 가장 힘든 오름길에 나서기는했어도 꼭대기에 이르려는 마음에 너무 조급한 나머지 날개 달린 독수리라도 된 듯 산기슭과 등성이는 거치지 않고 곧장 목적을 달성하려고하지 말라. 결코 너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너희는 더 낫지도 않고 더 못하지도 않은 인간일 뿐, 너희에게는 날개가 아니라 다리가 달렸을 뿐이다‘라고 말이지. 델피 신전의 상인방에도 ‘모든 것을과도하지 않게‘라는 신의 경고가 새겨져 있다네. 하지만 그는 달랐어." —5 - P60

"나는 지금 벨레로폰의 잔인한 운명을 상기하며 겁없는 동경을 간신히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다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지. 천국의 뱀이쉭쉭거리는 소리처럼 자만과 경멸이 넘치는 한 목소리가 내 내장 속에서 피어올라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조언을 속삭인다네. ‘징벌의 신의말을 듣지 마라. 두려워하지마라. 너의 눈을 열고 보라! 눈을 꼭 감고보호받으면서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합법적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보다 차라리 끔찍한 비밀을 흘깃 엿본 다음에 눈멀어버리는 편이 더 낫다‘ 라고 말이지." 6 - P60

고대 로마는 코린토스를 폐허로 만든 후 다시 재건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카이사르가 부하들이 살 땅을 이곳에 마련해주려고 재건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코린토스의 지정학적 매력과환락에 대한 추억이 그곳을 다시 로마식으로 재건하고픈 욕망으로치환됐을 것이다. 왜 안 그랬겠는가. 이곳이 바로 부와 환락의 상징이자 그리스의 열쇠도시였으니 말이다. - P68

그리스 음식
독창성과 자부심이 담기다
너무 배가 고파 앞이 보이지 않거나 정신이 혼미하지 않는 한 유적지나 기차역 앞 식당에 들어가는 것은 여행자의 오래된 금기 중 하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정신이 혼미했다.
엄살이 아니었다. 트위터에 밤마다 야식 사진을 올리며 친구들을 괴롭히는 게 내 취미 중 하나일 정도로 먹는 것을 밝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역만리 그리스까지 와서 유적지 정문 앞에 달랑 하나 있는초라한 식당에 불쑥 들어갈 만큼 취향이 없지는 않았다. - P69

웃으며 빵 접시를 들고 나왔다. 아, 단언컨대 나는 그때의 빵맛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은 배고플 때 먹는밥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 P70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유달리 맛있다고 생각했던 그수블라키와 빵 맛이 단순히 ‘시장‘이라는 조미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배가 부른 후에 다시 먹어도 그 맛은 진심으로 칭찬할만했고, 가격마저 착하디 착한 수준이었다. - P70

아무려나 그리스에서는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그대로 남기더라도 일단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가 워낙 고기를 싫어해서 그렇지 음식은 훌륭했다."라고해주는 것이 예의다. 나 역시 게눈감추듯이 접시를 비운 후 정말 흡족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엄지를 세워 보였다. - P72

"예술이란 위대한 현실과의 접촉을 도모하면서, 통찰력 속에서 원천을 찾아내는 일이지. 하나의 환상이랄까. 그러면 상당히 간단하고도힘을 들이지 않으며 모든 세부적인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아들어가 표현 방법을 찾아내게 되거든." ---7 - P76

"그렇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얼굴을 보고는 그것이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를 추출하려고 했다네. 하지만 나는 자동차를 보고도 똑같은 시도를 하지. 인간의 얼굴이나 자동차나 전반적인 현상들의 정수를 추출한다는 행위란, 예술에서 동원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네. 그러나 그 본질은 이 현상들의 뒤에서 장인이 찾아내고, 이 현상들을 통해서 정수를 추출하려고 항상 노력해온 바로 그것이지." ---8 - P77

결국 예술과 기술의 차이는 대상에서 어떤 얼굴을 보느냐 하는 것이다. 즉 남들은 무심결에 지나치는 사물의 이면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느냐 하는 관점의차이말이다. 기술자는 대상을 정교하게 모방하지만예술가는 대상의 본질을 꿰뚫고 재해석하는 사람이며, 그것이 탁월할경우에 예술이 당대를 넘어 영원한 시대성을 얻게 된다는 뜻이리라.
나는 그의 현학적인 말 속에서 일거에 현상을 절단하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매운 통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 P77

"고대의 위대한 시대에는 젊은 육체의 이상형을 창조하던 예술가들이, 어느 순간 무겁고 야만적인 몸을 꾸밈없는 사실주의적 눈으로 보고 묘사하기 시작했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에서 사실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하자 문명이 몰락하기 시작했거든. 그 다음에 과장되며, 사상이 없고, 초인간적 이상이 결여된 헬레니즘 Hellenisan 시대가따라왔던 게지." —9 - P79

"아무렴, 그렇지. 하지만 신앙 그 자체보다 내 마음을 더 매혹시키고 내게 더 많은 용기를 주었던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벅찬 투쟁과 만용과 미친듯한 희망을 품고 신에 도달해서, 신과 한 덩어리 한몸이 되려고 노력했느냐 하는 사실, 그 자체였다네." 10 - P84

"악마는 우리들에게 영혼을 거부하라고 설득하며, 신은 육체를 거부하라고 하지. 언제쯤 그리스도의 마음이 두 야수를 화해시킬 만큼넓어질까?" 11 - P86

원래 그리스인들이 신전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입지였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문명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히 여겼던 게 틀림없다. 동양의 풍수가 그러한 것처럼 그리스에서도 자연과 인간, 산과바다의 조화를 제일 먼저 고려했다. 사실 그리스 신전과 로마 신전의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점이기도 하다. - P87

"아폴론은 세상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꿈꾸고, 초연한 형태로 그것들을 이해한다네. 개체성으로 몸을 숨기며 그는 현상들의 광포한 바다한가운데 꼼짝 않고 소용히 자신 있게 서서, 꿈속에서 열망했던 큰 놀음을 즐기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나 자신이 이룩한제신들의 신비주의적 계보에서 현재를 가장 단순하고 가장 통렬하게 표현할 길을 찾곤 한다네." -12 - P90

"진리보다 더 진실한 것이 무어라 생각하나? 그것은 바로 전설이라네. 전설은 덧없는 진실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하지." —13 - P92

"우리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잉어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네. 아니, 잉어처럼도 아니고, 가파른 절벽에서 절벽으로, 바위에서바위로 건너뛰면서 물의 원천을 찾아 올라가는 늙은 어부처럼 미끄러지고, 일어나고, 주춤거리고, 허리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물을 조금 뜨고, 갈증을 풀고, 또 말없이 떠나야 한단 말일세. 그러면 저 바위들과돌멩이들은 우리를 위한 달력과 이정표 노릇을 할 테고 말이지." -15 - P97

"위대한 예술가란 표면에 덧씌워진 형상을 투과해서 이면에 드리운본질을 본다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즉흥적이고 위선적인 행위너머에 있는 거대한 물결을 발견하는 것이지. 증발해버리는 일상을 불변의 상징물로 재배열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러니 위대한 장인은 영원성과 즉흥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20 - P104

"그런가. 그럴 만도 하군. 낯익은 새파란 바다와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산, 하얀 흙과 돌멩이, 나무와 풀 그리고 낯익은 문, 젊고 낯선 청년들과 이미 나이 들어버린 여자들을 둘러보고, 나는 마치 어떤 오래된 꿈속에서  살아가며, 깊고도 투명한 물을 통해서 그 밑에 가라앉은 전에 내가 알았던 도시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네." —21 - P109

"오른쪽으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는 언제보아도 무심 쾌활하지. 이 바다는 슬픈 기억일랑 간직하지 않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영원히 자기 자신을 활기차게 한다네. 만약 바다가 그 자신의 가슴을 가로지르던 고대의 배들이 남긴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녀의 얼굴은 온통 주름살투성이가 되었을 테지. 바다는 그것을 잊어버리고그리하여 젊음을 유지하는 것일 게야." -23 - P112

고대 코린토스의 땅은 번영의 땅이었지만, 운명의 신 모이라Moira의 실타래는 늘 공정하다. 코린토스 땅은 번영의 땅인 동시에 약탈의 땅이기도 했고, 탐욕의 땅인 동시에 몰락의 운명을 품은 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코린토스는 진정 고대 그리스의 ‘소돔과 고모라‘ 였으며, 스스로덫에 걸려 몰락해버린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땅이기도 했다. - P119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능력보다 대중에게서 공적 헌신성을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 P121

"각 시대는 그 시대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의식하지못하는 법이지. 각 시대는 지나간 시간 속의 사상과 사건들 중에서 오늘의 시대에 동화하고 변화시켜 행동화할 수 있는 것만을 적절히 선택할 뿐이거든."-25 - P125

멀리서봐도 한국 사람들은금세 알아볼 수 있는데 그 비결은 바로 노스페이스 상표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그 문제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으니 아마 그들도 멀리서 나를 보고, "저기 한국 사람이다!"라고 외쳤을지 모른다. - P127

그는 자신이 지닌 성정과는 달리 2,000에 달하는 통찰력 넘치는경구들을 남기기도 했고, 마키아벨리 뺨치는 통치술의 대가이기도 했다. 실제 그가 남긴 경구를 보면 가혹한 독재자라는 평가를 믿을 수 없을 정도인데, ‘평정은 아름답고, 무분별은 재앙의 원천이다‘, ‘불운할 때는 사려를, 행운이 있을 때는 절제를 앞세우라‘, ‘참주제보다 민주제가더 훌륭한 제도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천한 것이며, 명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등 별처럼 반짝이는 격언들이 무수히 많다. - P130

"고대와 현대의 지혜는 영혼에게 필연성의 법칙에 순종하라고 꾸짖지. 지혜는 식물과 짐승과 신들이 다 같이 앞으로 달려나가 정복하고,
정복당하며, 똑같은 방법으로 멸망한다는 비겁한 위로의 말을 통해 필연성을 설명하려 하지. 하지만 빈틈없는 영혼은 그런 위안을 섣불리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네. 왜그러는지 알겠는가? 영혼은 필연성의 법칙에 선전포고를 하려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네." —28 - P138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기 자신을 이상화한 모습을 창조하고, 그것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육체뿐 아니라 생각, 인식, 용기, 행동, 태도 등 모든 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망상으로 지은 집이 아니다. 세상에 망상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없을 테니까. 그들은 성스러움, 고행, 투쟁, 심오한 슬픔 등 전체적으로 볼때 신비롭지만 성스럽기까지 한 존재를 창조하고, 그것을 ‘영웅‘이라 불렀다. 나아가 그들 스스로 그 영웅 혹은 영웅의 삶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그리스 문명이 발화한 원천이었을 것이다. - P142

"영웅이라....... 영웅이 된다는 말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양상을 초월하는 율동에 자신을 종속시킨다는 걸 의미하지." -29 - P146

어쩌면 이런 남의 나라 독립전쟁 이야기야 이방인에게는 지나가면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립전쟁의 영웅을 헤라클레스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그리스인들에게, 그의 입지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장군과 필적할 만큼 큰 것이었다. 그래서 유로화 이전 그리스의 5,000드라크마 지폐에는 그의 얼굴이 들어가 있었고 아테네 국립 역사박물관 앞에는 말을 탄 그의 동상이 세워져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아쉽고도 서운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바로 역사이며 영웅의진실인지도 모른다.

콜로코트로니스 - P150

"고대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릇 영웅이 되려면 그래야할 테지. 다만 거기에 하나 더 보탤 게 있다고 보네. 다름 아닌 상승에대한 의지! 보통 사람들은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을 가파른 오름길을지치지 않고 끝없이 올라가는 의지 말일세. 끝이 보이지 않는 상승의길・・・・・・ 설령 그것이 신의 자리라 할지라도 말일세." - P152

"늙거나 병들었거나 불운이 닥치게 되면, 인간의 내면에선 모든 요소들이 서로 분열하고 맞서 싸우게 된다네. 때로는 육체가 지배하고싶어하고, 때로는 이성이 반란의 깃발을 올리고 도망치려 하지. 그리고 이성은 무감각하게 물러서서 붕괴의 과정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네. 그러나 인간이 어리고 튼튼할 때는 이성도 육체도 같은 젖을 빨면서 쌍둥이처럼 우애롭게 하나로 단결되지 않던가?"-30 - P152

육체와 영혼의 갈등과 분열을 이겨낸 자라. 그럴지도 모른다. 특별한수양을 쌓지 않는 한, 정신이육체를지배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성이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끊자고 결단을 내려도 얼마 안 가서 금세 ‘까짓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고 싶은 것 하고 사는 게 인생 아니든가‘라는 식으로 육체의 유혹에항복해버리기 십상이다.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성적으로생각할 때 결심은 굳건하지만 ‘피곤하면 효율이 떨어지니 오늘 하루만쉬자‘라고 쉽사리 무릎을 꿇고 마는 게 현실이다. 즉 오래된 육체의 습관이나 안락에의 유혹이 이성을 지배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볼 때두려움과 공포 혹은 환락과 평안은 이성이 아닌 육체의 요구에 따른것이어서 우리는 늘 이 둘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공포나 나태 따위는 추호도 없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해냄으로써 결국은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 P153

그들은 상대가 이교도건 피부색이 어떻건 어디에서 왔건 괘념치 않는다. 그곳을 찾아온 주님의양 떼들에게 작은 사랑과 선의를 표시하는 관행일 따름이다. 이 목적없는 환대는 그리스를 여행하는 내내 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원천이기도 하다. - P174

"저들과 나의 차이는 이런 것이라네. 저들은 구원의 길을 찾았다고믿으며, 그것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지.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러한 구원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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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를 품고 그리스를 가다!˝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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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를 품고그리스를 가다!"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

그런 까닭에 이 여행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인도 없이는 불가능한일이었습니다. 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쓴 거의 모든 저작들을 구하여, 읽고 또 읽었습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콜린 윌슨이 그를두고,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 했을 만큼 대단한 문학가였던 그의 소설들은 물론 여행기와 자서전 그리고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각을 좇을 수 있는것이라면 모조리 읽었습니다.  - P6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이 그리스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리스의 참모습은 아닐 테지요. 니코스는 "그리스의 얼굴은 열두번씩이나 글씨를 써넣었다 지워버린 팰림프세스트이다." "라고 표현합니다. 쓰인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게 되어 있는 양피지인 팰림프세스트처럼 열두 가지의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나라 그리스의 속살은 도통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신화나 철학,
정치나 사회, 문학과 예술이라는 하나의 틀로만 바라본다면 그리스의참모습을 찾을 길이 묘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 P7

한 권의 책은 저자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책을쓰기까지 그 저자가 밑줄 그으며 읽었던 모든 책과 깨우침을 준 모든스승들이 함께 쓴 것일 터,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있을 오류는 모두 저자의 몫임을 밝힌다. - P10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 순례>,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 P15

이번 여행을 하면서는 일정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지도 한 장 달랑들고 비행기와 배로 대륙을 건너고 국경을 넘었다. 철도와 버스, 렌터카와 바이크 그리고 도보로 무수한 경계를 넘고 또 다른 경계에 다다르기도 했다. 해 뜨면 떠나고 해 저물면 머무는 ‘노마드‘ 처럼 동가식서가날들을 보냈다. 더러는 낡은 호텔에 묵고 또 더러는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향토사학자나 현지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그리스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가 그리스의 참모습에 한 발짝씩 다가가려 했다. 그런 방랑자에게 매끼를 챙기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종종 한 끼 식사에도 감사하며 길을 재촉한 꽤 치열한 여행이었다. - P16

즉물궁리卽物窮理
곧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는 가르침 - P16

그리하여 책과 논문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삼되, 직접 찾아가 그곳 시간의 무덤에서 들려오는 옛 영웅들의 웅변과 민초들의 함성을 만나고자 했다. 이미 무너진 신전의 잔해를 직접 쓰다듬으며 무너지지 않은 문명의 기둥을 확인하고자 했다. 더디고고될지라도 이렇게현장으로 나아가야만 비로소 내가 만나고자 한 문명과 역사를 온전히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렇게 이해한 그리스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다. - P17

그 공간 여행의 출발지를 펠로폰네소스로 정했다. 바로 이곳 펠로폰네소스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 P18

그런 까닭에 ‘그리스‘라는 미궁의 출발점은 펠로폰네소스여야 했다. - P18

더불어 펠로폰네소스는 헬레네의 고향이다. 아시다시피 헬레네는사상 최초의 팜므파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여인이다. 바다 건너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스파르타의 왕비,
오직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녀의 남편 메넬라오스와 시숙 아가멤논은전 그리스의 영웅호걸을 불러 모아 피의 응징에 나선다. 무참한 죽음과 엄청난 피바람을 무릅쓴 끝에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왕비를 되찾지만, 그녀의 목을 베기는커녕 다시 품에 안고 만다. 헬레네는 마치영웅처럼 귀환했고, 훗날 스파르타에서 여신으로 거듭난다. - P18

바로 그리스, 혹은 그리스인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마른 스펀지처럼엄청난 수용성을 자랑한다. 숱한 이민족의 침략을 받고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어느새 침략자들을 그리스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멋있다고 느끼면 페르시아의 신이건 이집트의 신이건 가리지 않고 올림포스산정에 함께 모시고 경배한다. 심지어 기독교가 그들의 신앙을 완전히대체한 후에도 그 신들의 이름을 살짝 바꾸어 곳곳의 교회에 수호성인으로 삼기까지 한다. - P19

"하느님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하시길! 자, 갑시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5쪽 - P19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 쪽이었다.
시위대가 운집해 있던 그곳에서 은퇴한 약사가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평생 약사로 일하다가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하던 이 노인은
정부의 연금 삭감에 죽음으로 저항한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는 다음날 그리스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나는 조국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조국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아테네에 도착하여 공항버스에서 막 짐을 내리려는 순간,
아테네 민주주의의 심장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스는 지중해의 태양 같은 뜨거운 격정과 말라비틀어진 마른풀 같은 무기력이 공존하고, 처음 만난 여행자를 집으로 들여 재워주는 인류애적인 친절과 백주대낮에 불법체류자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는 야만이 공존한다. 더구나 이곳은 한때 유럽 최고의 깍쟁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후예가 사는 코린토스가 아닌가! - P26

코린토스
번영의 땅이자 약탈의 땅을 가다 - P27

"오래된 조상 아가멤논에서 모레아의 위대한 애국자에 이르기까지고통받는 모레아(모레아는 펠로폰네소스를 가리키는 옛말이다)‘는 재앙과 영광의 충격을 동시에 견디어왔다네. 그러니 그리스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언제나 오래된 어머니인 펠로폰네소스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여기가 바로 그 굶주리고 피에 물든 문명의 뿌리라네." —1 - P28

그러니 이 길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원한 주제였던 ‘금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신과 어깨를 겨루던 당대의 영웅조차도결국에는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는
‘나약한 인간의 실제‘에 대한 내러티브가 담긴 비디오 가이드인 셈이다 - P29

코린토스의 첫인상
생기 없는 얼굴과 마주하다
우리는 코린토스 시청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코린토스에 대한 첫인상은 활력을 잃은 ‘주름‘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 주름은 땡볕에 그을린 농부의 그것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노신사의 그것도 아니었다. 거리는 누추했고 상가도 쇠락했다. 그리스에서 손에 꼽히는 인구와 그 이름에 걸맞은 관광도시라는 느낌은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 P31

결국 손짓 발짓을 동원한 희안한 보디랭귀지와 구글 번역기까지 총동원된 끝에 게츠 한 대를 하루 20유로에 빌릴 수 있었다.
‘신이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실로 멋진 가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9월에서 4월까지의 비수기에그리스를 여행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P33

그리스는 어떤 일이든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곳‘이라 한다. 그리스의 이런 특징을 모르고 이 나라를 방문하면 대개
‘그리스에는 그리스가 없다‘라거나 ‘돌멩이만 보고 왔다‘ 라는 등 불평가득한 후기만 쏟아내기 십상이다. - P34

어쨌든 내가 빌린 차는 유럽인의 체형에 맞춘 액셀러레이터 유격이하데스의 지하 동굴만큼이나 멀었고, 오랜만에 만져본 수동 기어는 연신 딸꾹질을 하며 쉽게 고삐를 내주지 않았다. 나중에 이 문제로 300유로를 배상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바퀴는 굴러갔고, 교차로마다 시동을 꺼트리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구코린토스(코린토스는 코린토스와 1858년 대지진 이후 다시 건설한 신코린토스로나뉜다)의 유적지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 P35

"여기에 올 때마다 나는 레온 스구로스의 섬뜩한 광기가 느껴진다.
네."
"나프폴리오의 영주 레온 스구로스 말인가요?"
내가 되물었다.
"바로 그 레온 스구로스 말일세. 저기 저 성채의 남쪽 벽에서 자신의애마를 탄 채로 뛰어내렸지."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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