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진 그 유명한 묘비 앞에서 한동안 묵상을 했다. 묵상을 마쳤을 때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게로 향했다.  - P318

부리나케 우조(그리스의 증류주) 한 병을 사들고 다시 묘소로 돌아와서는 내 앞에 이 섬을 방문했던 이윤기  선생처럼 제단 앞에 술을 부어놓고 큰절을올렸다. 두 차례의 큰절에 이어 반절까지 올리고 나자 주변에 있던 그리스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 P319

"나는 멀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지금 이 의식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떠난 분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풍습이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시 물었다.
"멋진 풍습인 것 같다. 그런데 왜 멀리까지 찾아와 그리스 작가의 무덤 앞에 이런 경의를 하는가?"
순간 조건반사처럼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He‘s my hero(그는 내게 영웅입니다)." - P31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에게도 영웅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친구입니다." - P321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이 우정은 곧 명예고, 거기에 용맹을 더하면 탁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명예를 누구보다 드높인 사람을, 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 P321

탁월함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물론 이런 탁월함이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는정절과 도덕을 지혜롭게 지켜내 여인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오랫동안오디세우스가 나라를 비우는 사이 수많은 구혼자들의 청혼을 뿌리치고, 자신의 신분과 남편의 영지를 지킴으로써 여인의 탁월함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 P322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그 문화를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 태동한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 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 이념을 갖지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26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스파르타 법은 ‘레트라Rhetri‘ 라는 신탁에의해 보호받았다고 하지. 레트라는 입법자인 리쿠르고스가 델피에서 받아온 신탁으로, 법에 신의 권위를 덮어씌움으로써 훗날 아무도 법에 손댈수 없도록 강력한 보호막을 치려고 했던 것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스파르타는 그들의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어.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지." - P345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레오니다스 왕의아내 ‘고르고 Gorgo‘라 할 수 있다. 한 외국 여성이 고르고에게 "세상에서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신네 스파르타 어인들뿐이군요."라고 하자, 고르고는 "남자들을 낳아주는 것이 우리들뿐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듯 전사의 나라 스파르타에서 여성들이 뜻밖의 지위를 가지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강력한 집단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P348

한번은 떠들썩하고 이러저러한 의견이 난무하는 아테네의 민회에 비해 침묵이 흐르는 스파르타의 민회를 보고 아테네의 한소피스트가 "왜 다들 아무 말이 없느냐?"고 비웃자,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을 때도 알고 있는 법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P353

이런 스파르타 전사들도 일단 상대가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절대 뒤쫓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맞서지 않고 달아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적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스파르타 군대를 만나면 꽁지를 빼고 달아나는 게 최선이라는 평판이 나도록 하려는 전략 때문이었다고 한다. - P355

이렇게 볼 때 문명이란 다양성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자유롭게 겨루는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이 발아하여 이룬 결실인 것이다. 이에 비해 획일성은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을 말라죽이고 마는 척박한 토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문명의 발전이란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P359

코린토스는 다양성은 있었지만 그 내용이 문란하여 창조적 긴장이발아하지 못했고, 스파르타는 진중했으나 획일성이라는 척박한 토양을 취했기에 문명의 씨앗이 잉태될 수 없었다. 더구나 스파르타인들은자신들이 정복하거나 이웃한 이들과 어울려 문화의 이종교배를 이루기보다는, 이들을 억압하고 순혈주의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의 동종교배에만 만족하여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않는 스파르타의 오늘은 과거 잔혹한 군국주의가 배태한 초라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돌아보면 유사 이래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억압하고, 그 문화를 말살하며, 가혹한 통지를 일삼는 시기에 문명이태동한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이나 환웅의홍익인간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하나가 되고 공동으로 발전한다는이념을 갖지 않는 한 그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도 문명 그 자체에 재앙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제일의 관광국 그리스에서 아무도 발길을 돌리지않는 스파르타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P360

페르시아의 침공은 반대로 그리스 혹은 서양인들의 가슴에 원한을 남겼다. 이 뿌리 깊은 원한은 먼 훗날 십자군 전쟁에서 다시 활활 타오르면서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게 했던 것이다. 그결과동양의 서양에 대한 증오는 다시 누적되어 오늘날의종교 전쟁과 9·11테러로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원한의 뿌리가 된다. 그러니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쪽 사람들이 되새긴 트라우마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을 터. 바로 그 한마디에 수천 년 묵은 상처가 곪아터지는 파열의 순간을 맞고 말았다. 그만큼 리더의 역사 인식은중요하고, 인간은 정신적 유전자 속에 상처를 기록하며, 이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P364

어쩌면 역사란 일부만 남은 퍼즐을 맞추며 상상으로 정교히 채워가는작업이 아닐까. 대지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 P367

이 두 가지 극단을초래한 것은 역시 탁월함과 엄격함, 문명과 야만을 동시에 품은 스파르타의 법이 분명할 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누구냐? 대체 이 법을 만든 이는?‘ 하지만 이 질문은 허무하기 짝이없는 우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리쿠르고스가 제정했다고 하니 너무 빤한 답이 아닌가. 하지만 다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도대체 이 법이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 P373

그리고 그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법치는 물론군현제에 기반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서로 대립하고 다투기만 하는 학자는들의 소모적 논쟁에 내려진 철퇴라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이룬 통일도 겨우 20년 정도 유지되지 않았던가.
강력한 법치와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중앙집권제를 시행한 제국의운명이 왜 그리 짧았던가?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는 스파르타의 유적지와 진나라의 허무한 운명이 하나로 겹쳐져 머릿속이 복잡했다. - P375

"원래 기요틴 guillotine 을 앞세운 개혁은 쉬운 법이지. 칼을 휘두르며 목을 치면 되니까. 공포정치는 효율적이야. 아무렴 효율적이고 말고. 다만 그 생명이 길지 못할 뿐이지." - P375

다시 말해 사회 속의 개인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 교환하다보면 언젠가는 교환으로 인한 이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균형 상태에 이른다. 이른바 ‘내쉬균형 Nashe equalibrium‘이 그것이다. - P378

이렇게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떤 제도의 수립이나 변화와 발전은 그들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다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marional choice institutionalisen‘ 를 활용하면 인간 사회, 바로 고대 스파르타의 법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 P379

"물론 어떤 제도도 제도 자체로서 완벽하지는 않겠지. 다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비록 제도가 불완전하긴 하지만 굳이 이 제도를 바꿈으로써 얻을 이익보다 바꾸는 과정에서 생길 혼란이나 불이익이 클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들은 계속 그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려고 할 테지. 어쨌든 한 제도가 그 사회에서 오랜 생명을 유지한 데는그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니 말일세." - P379

가장 첫 번째 요인은 바로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볼 때 그 제도를도입함으로써 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 두 번째 요인은 그 제도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 조정자(리쿠르고스)가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 P379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그 제도를 바꿈으로써 빚어질 혼란보다 그대로유지하는 것이 스파르타인들에게 유리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P380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요구가 간절할 즈음 때맞춰 나타난 그는사회의 변화 요구를 읽었던 듯싶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일사분란한 정치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왕정은 유지하되,
시민들의 요구를 민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원로원을 통해서 왕권을견제하고, 이들은 다시 시민이 직접 선출한 에포르에게 감시를 받도록해서, 왕족-귀족-시민 간에 서로 권력을 나누도록 하는 제도를 제안한 것이다.  - P380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스파르타인들만을 위한 법‘은 후대에 플라톤을 비롯한 철학자들,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비롯한 독재자들,
레닌을 비롯한 붉은 혁명가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오늘날도 ‘스파르타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다. - P380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자인 스파르타인의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피지배자인페리오이코이나, 헤일로타이들에게는 영원한 속박과 압제를 가져다주는 사악한 법률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볼 때 그들이 피지배자를다룬 방식이 후대에 등장한 나치보다 가혹했고 일제보다 사악했던 것은 앞서 충분히 설명한 대로이다. 제도의 효율성만 보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을 외면하는 ‘서양식 제도주의‘의 함정은 이미 그때부터 씨앗이뿌려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스파르타식 제도에 비하면 우리나라 상고사의 개국이념은 획기적이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 P381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은 고대 역사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선언이다. 어쩌면 현대에도 찾아보기드문 파격적인 선언일지도 모른다. 지배자가 피지배자의 등골을 빼먹거나 착취하려 들지 않고 앞선 지식과 문명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한다‘는 뜻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민족, 그것도 이미 4,500년 전의 극동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늘 작게만 느껴지던 우리 민족도 대단한 민족임이 분명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서양 문명의 뿌리를 찾아온 이 여행에서 우리 민족의 참모습을 이렇게 또렷하게 떠올릴 줄이야. 이는 여행이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 P382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광이었겠지. 실제로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에게 페르시아 군에 가담하면 전 그리스의 지배권(샤리프)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살아서 그리스인을 다스리는 것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겠다‘며 일언지하에거절했거든. 고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전쟁이란 생존이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였던 셈이지." - P395

하는 아들들에게 ‘네가 방패를 들고 돌아오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그 위에 누워서 돌아오라‘고 했던 인삿말은 바로 죽음으로써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전사들의 임무를 확인시키는 말이었으리라. - P399

하지만 어떤 생명체이든 공포는 본원적 감정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공포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깊은 심연에 자리잡은 것으로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쉽게 제거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아무리 수심이 깊어도 바닥은 있듯 아무리 용감한 자도 공포가 깊이 감추어져 있을 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영원히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없으며, 만약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분노, 흥분, 도취, 탐욕, 애정 등에 의해 순간적으로 극복되는것일 뿐이라고 한다. 즉 영원히 극복되는 공포는 없다는 뜻이다. - P40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주인공은 죽어가는 순간에 이렇게 외친다.
"fear(두려워!"
"fear(두렵다고!"
극중 말론 브란도가 이룩한 세계, 더없이 잔인하고 용감하며 절대적인 신적 공간을 구축한 그의 행동의 이면에는 더 깊은 공포가 자리잡고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모든 전쟁의 본질이다. - P400

"전쟁은 거대한 에로스의 순간이라네. 하지만 이 국면에서는 두 명의 개인이 서로 몸을 섞어 어린아이를 낳는 그런 게 아니지. 두 거대한군대가 서로 만나는 거야. 피와 함성 속에서 한 군대가 다른 군대를 집어 삼킨다네. 여기서 말하는 한 군대는 반드시 새 정자를 가진 남자일테지. 물론 다른 군대는 위축되어 울면서 승자의 씨앗을 받아들여 자신의 피로 그것을 양육하는 여자일 테고."-55 - P401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동성애인이었던 친구의 죽음에서 완벽하게 분출한다. 스파르타인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군영 내의 동성애를 적극 권장했다. 그럼으로써 옆줄에 선 애인의 생명은 나의 생명보다 더 지켜야 하는 저 너머의 애정으로 전환된다. 이런 식으로 스파르타, 즉 라케다이몬인들은 공포를 이기는 막강전사를 길러냈다. - P402

"아름다움은 우리가 공포를 억제하기 위해 혹은 세상을 잊기 위해 복용하는 아편과도 같다네. 우리 주위의 각박한 인생을 보지 않으려고 혹은 현대인의 의무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인공적인 천국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 걸 테지.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아름다움의 정체가 아니겠나. 스파르타는 현실을 왜곡하는 모든 인공적인 것들을 거부했던 거지. 그들은 공포를 회피하기보다 그 공포와 직접 대면하고 공포의 본질과 맞서면서, 공포와 함께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인간의 머리보다 높은 단계에서 신념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이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네." -57 - P403

오늘날 최고의 의무는 용기라고 믿네. 철저하게 무장하고 준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가오는 고난을 위해 옥체야말로 위대한 무기로서단련시켜야 하기 때문이지. 오늘날은 새로운 스파르타의 시대로 들어선 것 같지 않은가. 용기, 검약, 결제, 인생에 의연하게 대처하기 이런것들이 우리 시대의 최대 덕목이 되었으니 말일세, 오늘날 비겁한 사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등은 설자리가 없다네 스튜르타에 멋진 조각상이나 매혹적인 돌 장식을 찾아보려고 오는 자 또한실패한 인생일 돼지, 고개를 들어 타이게토스 산을 한번 바라보시게..
저 산은 현대의 시나이 산이 되었어. 저 산의 가슴에는 오늘날의 잔인한 십계명이 새겨져 있지. 선제공격을 하라. 당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듯이 적의 생물도 아끼지 마라. 당신은 즐거워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태어났다. 너의 신은 전쟁의 신뿐이니라"-59 - P415

전문가들은 고대 그리스군대에서 전력의 핵심은 1.8미터에서 2.7미터에 이르는 재블린 javelin즉 긴 창과 지름 90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방패 아스피스로 무장한 중무장보병 즉, 호플리테스haplies라고 꼽는다. 이들이 보편적으로쓴 전술은 팔랑크스ptualianx로, 여덟 겹의 횡렬대형을 이루어 밀집방진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리스인들의 팔랑크스는 대단히 위협적이어서, 이들이 왼팔로 단단한 나무에 청동을 입혀만든 아스피스를 들고 오른손에 길고 위협적인 재블린을 든 채 발을맞춰 전진하면 상대는 마치 거대한 청동 고슴도치가 돌진해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 P398

실제 이 섬에는 등대 아래 그들이 타고 떠난 배를 묶었다던 녹슨 쇠막대가 남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2,700년 전에 닻줄을 묶었던철봉이 남아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겠지만 전설을 검증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대사처럼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신화는 어쩌면 역사의 한 조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을까?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입을 빌려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P424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안경으로 그리스를 보다 - P42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고 고백할정도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에서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여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대한 여행자‘라 부르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 P430

실제로 그는아테네대학 졸업 후 6년을 제외하고는 집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았다. 20세기 초반 무렵,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모레아를 비롯한자신의 조국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서유럽, 북유럽, 아프리카, 심지어중국과 일본까지 거의 전 세계를 망라한다. 호메로스와 붓다, 니체와베르그송 그리고 조르바가 그의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이라면그의 여행은 특유의 깊이 있는 통찰과 사색을 길어 올리는 샘이었음에틀림없다. 더불어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은 이 장대한 여행을 통해 잉태되고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430

따라서 크레타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비치된 브로슈어 표지에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표현을 제치고
‘위대한 여행자‘ 즉 "The great traveler, Nikos Kazantzakis."라고표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그와 동행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스 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나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안내자를 얻은 셈이다. - P430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 P432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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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이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균형이며, 혼돈위에 얹힌 순간적인평정이지. 한쪽이 조금만 더 무거워도 찰나에 기울어져버리거든."

‘혼돈 위에 얹힌 순간적인 평정‘이라………. 랜턴을 비춘 순간 빛바랜성화에서 느낀 평온 그의 말마따나 그것이 곧 ‘절정‘이었다. - P189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이곳의 유적은 야만에 대한 이성의 끝없는도전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그리스 문명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단련된 육체가 어우러져 피워낸 꽃이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균형을 추구하던 현장이기도 하다. 건강한 육체의 승리자에게는 월계관이 씌워졌고,
위대한 서정시인의 시가 낭독되었으며, 승리의 기쁨은 신화와 함께 은유가 가득한 조각상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고대의 조화는 무너졌고, 오늘날의 경기는 육체적 기능의승리자로서 스타디움의 불꽃놀이처럼 명멸하는 영광 속에 갇히고말았다. - P194

"바로 이 시기에 피어난 그리스문명은 결코 향기도 촉감도 없는 초자연적인 개화가 아니었다네. 그것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진흙을빨아먹으며 꽃을 피운 나무였던 게야. 실제로 진흙을 많이 빨아먹을수록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라네." -35 - P233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맞서 공화정을 유지하려 한 펠로폰네소스반도 내의 거의 유일한 도시였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내에 고립된성과 같았고, 조상들의 그런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시링크스에 쉬 잠들지 않았던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 쉽게는 잠들 수 없는 모양이다. - P250

까페 문을 열고 들어서며 "크리스토스 아네스티 (Christos anesti, 주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까페 안의 사람들이일제히 모자를 벗으며 "알리또스 아네스티 (Alithos anesti,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고 합창했다. 그렇게 인사를 건넨 이유는 그날이 부활마지막 주일이었기 때문이다. - P254

"완전한 균형은 보는 이에게 두려움을 준다네.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이 건축을 통해 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신의 느낌‘ 즉 ‘영감‘은 건축가가 신적 균형과 조화를 구현함으로써만 표현할 수 있을테지. 그리고 그 조화가 신앙의 본질인 성스러운 두려움을 창조하는것 아니겠는가." - P265

신전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매표소에 들렀다. 이번엔 10유로짜리 가이드북을 사기 위해서였다. 역시 20유로짜리 지폐를 내밀며 혹시나 해서 ‘10유로의 잔돈은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전의 그가 싱긋 웃으며 책 한 권과 10유로의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가 연 서랍에는 5유로짜리 지폐와 1유로짜리 잔돈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그가내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아까 잔돈이 없다는 것은 저 멀리 동양에서이곳까지 찾아준 여행자에 대한 그의 호의였던 것이다. 내 가슴에 맺힌 그리스인의 또 하나의 모습이다. - P269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그리스의 도로에서 흔히 만나는 이정표는 연구의 대상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옛날 길손을 괴롭히던 신화속 괴물이 오늘날에 되살아난 것이 바로 그리스의 이정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 P270

이렇게 볼 때 여기 인용한 부분은 《역사》라는 책을 통틀어 헤로도토스가 얼마나 탁월한 역사가였는지 단박에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여기서 보듯 그는 최초의 역사서를 저술한것을 넘어, 자기 민족의 입장뿐 아니라 적대국에서 듣고 본 이야기들까지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우리는 그 덕분에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의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그에 얽힌 신화의 전개 과정까지 알게 되었으니, 역사가의 객관적 진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기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 P279

"바로 그런 시대였다네. 원래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을 정도로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했지. 멀리 북쪽에서부터 밀고내려와 원주민을 복속시킨 도리아인들이 바다를 구경했을 리가 만무했을 테니까. 이에 비해 일찍이 바다를 주름잡던 페니키아인들이 이런 미개한 그리스인들을 상대로 무역도 하고 더러는 약탈도 하는 일이야 특별한 일도 아니었을 게야. 그러다가 그리스인들이 바다로 나서면서 제해권을 두고 서로 충돌이 일어났겠지. 그 압권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었던 게야 - P281

였던 게야. 그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약탈이나 납치 등 돈으로 해결하거나 서로 돌려주고 돌려받으면 끝나는 일종의 국지적 사건이었지그러나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전 그리스 남성들의 로망인 헬레네를 납치한 사건은 단순하지 않았어. 결국 그 사건이 빌미가 되어 그리스 연합군이 대대적으로 트로이를 공격해서 폐허로 만들어버린 것이지." - P282

흑해의 조류가 거꾸로 흐르는 터라 배를 타고 곧장 넘어가지 못한그리스의 선박들은 트로이를 경유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약점을노려 트로이가 비싼 통행세를 물리며 폭리를 취하자. 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생존 차원에서 당시의 묵계를 깨고 연합하여 덤빈 것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 P283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향길에 갖은 고생과 모험을 하는 동안 구혼자들의 끈질긴 구애를 물리치며 남편을 기다려준 왕비‘페넬로페‘ 앞에 거지꼴로 나타나 이렇게 찬양한다.

부인! 끝없는 대지 위의 어떤 인간도 그대를 비난하지못할 것이오. 그대의 명성이 넓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오.
신을 두려워하며 수많은 강력한 인간들을 다스리고법을 준수하는 나무랄 데 없는 왕의 명성처럼 말이오. 42 - P287

즉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디세우스는 모두에게 선물을 남겼지만,
아가멤논은 모두의 것을 앗아간 셈이었다. - P290

어쨌든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에 맞서 민주정을 유지하려 한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의 거의 유일한 도시였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내의 고립된 성과 같았고, 조상들의 그런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시링크스에 쉬 잠들지 않았던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처럼, 그들의 자존심도 그리 쉽게는 잠들 수 없는모양이다. - P294

그들은 현실적이었고, 신을 숭배했으되 무조건 따르지는 않았다.
신이 정해준 운명에 끝없이 도전하며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길 목숨을 걸 만큼 간절히 바랐다. 그 결과 그리스의 많은 영웅들은 마침내 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적 제약으로부터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일찌감치 인간에 눈을 떴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탁월함‘이라 불렀다. - P298

"당신들이 스파르타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제아무리 빛나는 영감이나 높은 이상도 누군가가 시로 쓰거나, 돌에새기거나, 그림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릴것이라는 뜻을 담은 이 말은, 시대를 빛나게 할 높은 이상도 받아들일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절대 팔을 벌리지 않는다는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스파르타에는 호메로스의 시가 영원성을 부여한 헬레네 외에는 실제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보인다. - P300

실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단순히 애정전쟁을 기록한 것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암송될 리 없다. 이 이야기는 신의 정체, 본질, 인간의 숙명과 한계,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장엄함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이런 인간의 부조리와 한계는 파리스가 헬레네의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결투를벌이다가 패배 직전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온 직후, 헬레네와 주고받는 다음의 대화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 P305

하지만 헬레네는 전쟁이 끝난 후 전남편 메넬라오스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목덜미를 움켜쥐었다가도 칼을 버리고다시 품에 안을 만큼 신의 아름다움에 필적하는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쌍방의 수많은 희생을 뒤로 한 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다시 스파르타로 돌아갔으며, 훗날 그녀를 기리는 신전이 세워지고 숭배의 대상이되기에 이르렀다.  - P307

이러한 아이러니는 터무니없는 설정이 아니다. 나는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일리아스의 정통성이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헬레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고 수용할 수없는 것을 수용하며,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 혹은 그리스인들의 특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헬레네이기때문이다. - P308

"인간사에 일어나는 일들을 두고 굳이 목적을 알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신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함께 추구하며 때로는 위기를 맞고 스스로도 투쟁에 휘말리니 말일세. 어느 누구도, 심지어 신조차도알지 못하는 것일 테지. 짙은 안개처럼 본성은 우리도 모르는 깊은 심연 속에 존재한다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허깨비가 아니어서, 제아무리바람이 분다 할지라도 그 안개가 걷히지는 않을 것이네. 그것들은 뼈와살이니………. 한번 만져보시게 존재할 테니까. 신이 우리를 부른다고보나? 아니면 우리가 신을 부르는가? 도와달라고 말이지.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그렇게 신에게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고상승의 길, 오름길을 묵묵히 올라가는 것일 게야." - P308

스파르타
신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신이다
스파르타는 ‘그‘가 펠로폰네소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머문 곳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사려 깊은 문장으로 짙은 애정과 아쉬움을 서슴없이 표현했던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고대 이래로 스파르타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곳이었던 셈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전사들의 도시.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법치와 법의 정신을 구현했던 도시, 세상에서 가장강력한 공동체 연대를 구축했던 나라. 죽음으로 영생을 얻은 레오니다스Leonidas 300명의 전사가 전설로 살아 있는 곳. 스파르타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듯 강렬하기만 하다. - P310

전역 어느 기념품 가게를 들러도 ‘I Love Greece!‘ 보다 ‘와서 빼앗아보라‘라는 뜻을 가진 스파르타 전사의 구호 ‘Molon Labe! 모론 라베 가 찍힌 티셔츠가 더 많이 걸려 있을 정도로 스파르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불도장으로 새겨진 로망 그 자체이다. - P311

저 멀리서 레오니다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와서 빼앗아보라!"
이 언덕에 올라선 침입자들은 정녕 저땅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보무도 당당하게 이렇게 외쳤다.
"자신 있으면 오라!" - P311

추구했던 ‘탁월함‘에 대한 상징적 장면이다. 바로 이러한 ‘탁월함이야말로 고대 그리스 정신의 고갱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Muphates 강 유역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Babylonia,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 나일강의 이집트, 황화의 중국 문명으로 꼽히는 4대 고대 문명은 모두 동양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 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세상의 법과 질서는 모두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 이전의 서구는 야만의 땅이자 야만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정지해버린 야만의 땅에 갑자기 한줄기 번개가 들이치고 문명의 불꽃이 점화되었던 것이다. 처음 이곳 그리스로 떠나올 때부터 가졌던 가장 본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가 다시금 떠올랐다. 왜 하필 그리스였을까? - P314

"그리스에서는 신이 사람의 자리로 혹은 사람이 신의 자리로 가기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고 할 수 있지.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는 세상의 어느 인간도 해보지 못한 비뚤어진 사랑에 몰입했고, 친부살해, 친자살해까지 예사로 일삼지 않았던가. 그리스 신들은 틈만 나면 마셨고, 아름다움을 거루있으며, 질투와 시기의 놀음에 빠져 있었던 인간보다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반인간적인 모델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게야.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든 약점을 신에 투영했으며, 신들이 내린규율 중에 살인이나 배신과 같은 종류 이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신이래야 길거리 시정잡배의 행동보다 별로 나을 바가 없었는데 인간이 그 신의 지시를 따를 리가 없잖은가." - P316

316그 결과 그리스의 많은 영웅들은 마침내 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이렇게 사상과 종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그리스인들은 일찌감치 인간에 눈을 떴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그들은 이것을 ‘탁월함‘이라 불렀다.

《일리아스》를 펼치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최후의 일전을 겨루기직전에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헥토르는 이렇게 제안한다. "둘 중 누가 죽더라도 패자의 시신을 모욕하지 말고 정중히 돌려주도록 하자." 이에 아킬레우스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 P317

"헥토르여, 잊지 못할 자여! 내게 합의에 관해 말하지 마라.
마치 사자와 사람 사이에 맹약이 있을 수 없고늑대와 새끼 양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하고시종일관 서로 적의를 품듯이, 꼭 그처럼나와 그대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우리 사이에맹약이란 있을 수 없다." ―52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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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가 태어나기 50여 년 전 독일에서는 이미 한 명의위대한 천재가 태어났다. 바로 칸트다. 그는 인간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먼저 지식을선험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으로 구분했다. 경험적 지식과달리 선험적 지식은 경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참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 P203

분석적 지식은 논리적인 형식에 의해참인 진술로서, ‘진돗개는 게다‘와 같은 다소 가치 없는 진술이고, 종합적 지식은 분석적인 지식이 아닌 것으로 의미있는 진술이지만 참인지는 알 수 없는 진술이다. 이를 표로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P204

시대를 뛰어넘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넘어야 할장벽은 아주 많다. 그중 가장 어려운 장벽은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집단의 권위와 신념이다. 그 집단의 권위와 신넘은 견고해서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이것을 깨기 위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쌓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집단이퇴조하고, 그러면서 그 신념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 결국 그 신념과 권위는 무너진다. - P206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것이 무너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옳은 일이라도 그것이 시행되려면 무로이는 시간이 필요하며, 결국 옳은 것은 승리한다. 그리고반드시 그러리라 믿고 싶다. - P207

그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슈발리에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군 Group에 대한 개념을방정식 이론에 끌어들여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이담겨 있었다. ‘갈루아 이론Galois theory‘은 수학에서 서로 다른줄로만 알았던 분야와 분야를 연결시켜 서로 만나게 한 수학 역사상 가장 의미 깊은 이론 중 하나다. - P209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성으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발견해내며 시대를 앞선다는 것은 더없이 고독하고 힘든 일이다. 갈릴레이가 그랬고 고흐가 그랬으며,
정약용도 카프카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천재가 그랬다. 그렇더라도 결국 그들의 생각이 시대를 이끌었고, 또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들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누군가가 반드시 있었다. 어쩌면 여러분도 그중 한 사람이될지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 P214

20세기 초의 수학자이자 위대한 물리학자인 칼루차Theodor Kaluza는 책을 통해 수영하는 법을 이론으로 익힌 다음,
실제적인 수영 연습 없이 그냥 물로 뛰어들어 수영했다. 그물이 얕은 냇가였는지 강이었는지 호수였는지는 알려진바 없지만, 나는 그가 목숨을 걸 만큼 이론을 신뢰하고 믿고 행동에 옮겼다고 생각한다. - P215

캄피돌리오 광장 곳곳에는 수학의 성질이 숨어 있다. 혹시 캄피돌리오 광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등변사다리꼴을 떠올리며 여유 있게 거닐어보라. 거장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섬세한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 P219

미켈란젤로는 등변사다리꼴의 성질을 알고 이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믿고 행동으로 옮겼다. 믿는다는일이 상황에 따라서는 단순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믿어야만 행동하고 그것을 통해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나는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깨달았다. - P219

수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수학을 이해하는 데서그치지 않고 수학 이론과 이야기하듯이 감정을 이입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결국 훌륭한 수학자가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일치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조화와 균형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P219

많은 이들이 공부하거나 전문적인 어떤 분야를 연구할 때이론을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믿고실천함으로써 뜻하는 무언가를 꼭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 P220

여기까지의 결과는 수학자들이 쉽게 유도해냈다.
문제는 4차원 공간이다. 해밀턴이 고안해낸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그 당시까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교환법칙이성립하지 않는 4원수의 존재성은 그 자체로 당시 수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 P224

그 대표적인 사람이 ‘피타고라스의 정의‘로 잘 알려져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그는 기원전 500년경, 수학을통해 인간의 개혁을 꿈꾸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한 많은 사람에 의해 피타고라스학파가 형성되었고, 이는 하나의 종교화된 형상을 나타냈다. - P226

피타고라스학파가 분해되고 난 뒤 그들의 연구가 부분부분 전해지다 보니, 유클리드가 나타나기 전 150년 동안은 그 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150년 후, 알렉산드리아의 현인 유클리드는 인류 역사의 가장위대한 작업 중 하나에 착수하게 된다. 그 작업은 바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소중한 연구들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 P227

‘elements‘는 모든 것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라는 뜻이다.
즉 유클리드는 이 책을 기술하면서 단지 하나의 학문 분야를 서술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요소를 기술하기를 원했고, 그것이 곧 수학이라고 생각했다. - P227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당연한 진리라면 그것을설명하는 데 더 이상의 도움말은 필요 없다고 믿었다. - P230

다시 말해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다섯 개 공리를, 한낱지식의 명제로 보지 않고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읽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진리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진리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클리드는 원론』을 통해 수학이라는 한 분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학문 방법,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고자 했다. - P230

그 움직임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격률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다. 인간은 신이 없어도 생각하기 때문에존재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그 생각은그리스의 인본주의를 되살리는 것이기도 했다. - P231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학이 원래 가지고 있던 깊고
역동적인 의미의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며, 이 과정을 통해감동을 갖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가장 큰 목표는 어떻게든지 이 감동을 되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제라도 방법론적인 측면보다 본질을 추구하는 정신에 입각해 수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환경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체득하며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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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학자 크로네커 Leopold Kroneck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자연수를 만들었고, 그 밖의 모든 수는 인간이 만들었다.

이 말은 곧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의 사고를 단적으로보여준다. 인류는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하며 수에서도 자연수->정수→ 유리수 → 실수 → 복소수의 개념을  세워가며 수의 확장을 시도해왔다. - P73

이것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유리수 체계 안에서만 수학을 한다면 수열이라는 매우 중요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수열의 극한값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열을 탐구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수열의 극한 개념은 미분과 적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리수의 체계 안에서는 미분과 적분을 정립할 수 없다. - P76

복소수가 완벽하다면 수의 확장 관계도 복소수의 체계안에서 완전히 해결될까? 물론 아니다. 복소수의 체계도어떤 문제에 봉착해 유기체처럼 다시 성장하고 확장한다.
어떤 것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인간의 탐구과정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 P77

그 답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수도 생명체처럼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왔고 또 성장해간다.
수는 절대 정적이지 않다. 수는 역동적이다. 그래서 수학은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매력적인 학문이 아닐 수 없다. - P78

물론 수학에서 문제를 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요소다. 그러나 문제 풀이를 통해 학생들이 배워야할 점은 문제 해결의 기능을 습득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를 다른 부분으로까지 전이시키는 것이 수학 교육의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또한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검토review하고 반성하는 단계인데,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은 지나치게 많은 문제를 푸는데 집중한 나머지 학생들 스스로 검토하고 반성할시간을 주지 않는다. - P81

마음속 관념이 형태를 찾는 순간
/
아름다움으로 푸는 수학 - P85

수학은 자연현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것뿐아니라 우리 마음속 관념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학문이다. - P86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완벽한 것, 완전한 것을 플라톤은이데아라고 했다. 그는 이데아를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로서 순수한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비물질적이며 절대적인 영원의 실재라고 했다. - P87

수학의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상과 반응하느라,
또한 현실에 적응하느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이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P88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이 변화하기를 바라고 상대방의부족함을 채우도록 요구하며, 상대방과의 차이를 0으로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다름)를 인정하고, 그 사람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학이의미하는 사랑이다. 수학은 비교 우위의 개념을 두지 않고각각의 체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이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P100

추상이란 무엇일까? 피카소는 구체적인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그 현실의 흔적을 하나씩 제거할 때, 지위도 지울 수없는 그 무엇이 바로 추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워도 지울수 없는 그 무엇이 곧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 P101

수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수학이추구하는 개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수학은 보편적인 진술을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별적인 상황에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불변하는 성질일 것이다. - P118

수학을 통해 완벽함을 생각하고,
무한을 생각하고, 신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수학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 아닐까. - P120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P130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 선언을했다. 다음은 그 선언문의 일부다.
현재 미국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주 일부의 노예들은 1863년 1월 1일 이후부터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육해군 당국을 포함해 미국의 행정부는 그들의 자유를인정하고 지켜줄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 P131

학교 현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어떻게 느끼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며 수학을 가르친다면 보다 많은 학생이 수학을조금 더 의미 있게 배우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 수학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 또한 수학이 지향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본질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학 정신은 불완전한 미래를 향해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 P140

인간의 역사는 갈등 속에서도 지혜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피타고라스가 믿었던 숫자의 의미를곱씹으며 숫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숫자를 위한 투쟁의 날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죽음 뒤에 남는 것이라고는 숫자뿐인, 그러한 허망한 삶이아니기를 바란다. - P145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는 순간
/
수학으로 풀어내는 세상 - P153

이 우주 안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미미한 존재100F인 인간이 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의 언어인 수학을읽고자 노력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 P154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남겼다.

움직인다는 것은 환상일뿐이다.

이 문장을 뒷받침하는 그의 제자 제논의 진술을 흔히
‘제논의 역설Zeno‘s paradox‘ 이라고 부른다. 제논이 남긴 여러 역설 중 대표적인 것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다. - P155

모순이 발견될 때마다 다른 패러다임을 적용하고자하는 사회의 노력은 각기 다른 패러다임으로 인해 적잖은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갈등을 통해 사회와 역사가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 P162

문득 "그림은 반드시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며 그려야 한다(To draw, you must close your eyes and sing)"는피카소의 말이 떠오른다. - P165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 가면 항상 내가 할 일을 스스로결정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습관은 후에 나의 연구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 P165

스메일이 초등학교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결정하고 공부하던 시간들이 미래에 위대한 발견을 하는 기반이 되었듯이, 또 모랭이 눈이 안 보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고상상의날개를 펴 심오한 이론을 완성했듯이 자녀들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그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있도록 부모가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 P166

신 - 우주 - 수학 - 인간의 마음 - 인간
이 우주 안에서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의 언어인 수학을 읽고자 노력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 P174

산에 오르는 일은 몸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긴다. 만약에 산에 오를 때마다보상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산에 오르는 자체의기쁨은 사라지고, 산에 오르는 것이 하나의 일처럼 혹은 하나의 숙제처럼 느껴질 것이다. - P181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때 여러 수상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그들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면 열정과 끈기로 오랜시간 연구에 매달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스스로 원해서 하다 보니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 P182

페렐만은 상과 부상 모두를 거부함으로써 돈이나 명성으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의 선택은 외부로부터의 보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현재 그 어떤 수학자들보다 큰 명성을 얻고 있다. - P182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성은 불확실한 애매함을 견디는 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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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 P8

수학에는 감동이 있다 - P9

수학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도 수학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나 자신에게 문제의식을 느끼며 갈등했다. 그렇게 수학에 대한 갈증을 안은 채 나는 유학을 떠났다.
수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공부하면서 나는 서서히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수학의 아름다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들이 오랫동안쌓이고 쌓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됐다. - P9

수학의 모든 개념도 이와 같다. 자연을 통해서, 시를 통해서 감동과 기쁨을 느끼듯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도 그이상의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다. - P11

삶에 수학이 들어오는 순간/사색으로 푸는 수학 - P15

우리는 매일 순간이라는 점으로 이루어진 삶의 도형을만들어간다. 한 사람의 삶은 이 우주 공간에 시간의 축과 더불어 하나의 삶의 도형으로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만들어내는 삶의 점은 무엇인가. 그 점은 어떤 도형을 그리고 있는가. - P16

점 -
멈추어라 순간이여,
그대 참 아름답다 - P17

기원전 300년경,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가 집필한 수학서 『원론Elements』은 이렇게 시작한다.
점은 부분이 없다. - P17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존재가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수학은 ‘없는 것에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부분이 있는 모든것은 수학의 대상이 된다는 보편성을 드러낸다. 오래전 그시대에 어떻게 이러한 생각이 가능했을까? - P17

점의 이야기는 수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의 창세기에서도 ‘공허‘, 즉 ‘없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18

우주 가운데 한 개인의 존재는 티끌처럼 작은 점과 같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생각 역시 하나의 점처럼 미미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생각들을흘려보내지 않고 존재하게 만들면 이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변화와 혁명을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도 한다. - P18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존재이며,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흘러간다는 사실에 때때로 허무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이렇듯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불안정한 존재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불변하는 진리를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욕망일지도 모른다. - P19

다시 점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점을 현재로 대치해보면,
점과 마찬가지로 현재present 라는 순간 역시 부분이 없다. 그렇지만 점이 모여 선을 이루듯이 순간이 모여 시간을 이루고, 시간이 모여 선과 같은 과거를 이루고, 그리고 그 모든것들이 어우러져 우리의 삶을 이룬다.
- P19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살면서 가장아름다운 순간, 붙들고 싶은 순간, 바로 그 지점에서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 P19

멈추어라 순간이여, 그대 참 아름답다! - P20

수학적으로 보면 삶은 지나간 시간의 한 축에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온,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은 시간상으로 이미 지나갔거나 막 지나가고 있다.  - P20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숫자 ‘0‘에 대한 생각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발상 중 하나다. ‘10‘의 경우를 살펴볼 때, 10에서 사용된 0은 빈칸이 되어 1과 다른 수가 된다. 이제 이 빈칸을 채울 수 있다. 여기에 1을 채우면 11이 되고, 2를 채우면 12가 되며, 이밖에 다른 수로도 얼마든지 빈칸을 채울 수 있다. - P23

이렇게 0의 발견은 수의 표현 방식을 바꾸어놓았고, 십진법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했다.
- P24

이것은 인류의 수학적 발전을 급속하게 진전시킨 혁명적 사건이자 위대한 발견이다. 수학사에서의 0의 발견은그 중요성이 자연에서의 공기와 물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그래서 0은 비할 바 없이 중요하지만, 인간에게 무척이나익숙해져서 그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 P24

물론 0을 쓰기 전에도 양수 1, 2, 3, …과 음수 -1, -2, -3,
을 사용하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그 누구도 1과 -1 사이에 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0이 그자리를 채우자 비로소 수가 0을 중심으로 +와 -가 대칭을이루는 본연의 멋진 모양을 갖추었다. - P26

그러나 당연시해온 것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뜻밖의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의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눈부신 과학의 발전도 모두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삼각형의넓이를 구하는 공식은 단순한 과정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도 우주의 심오한 원리가 숨겨져 있다. - P30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두 갈래 길 앞에서 그중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가지 못한 나머지 한 길에 대해아쉬움과 회한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이 잘 표현된 시가 바로 그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 P31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중략)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놓았다‘라고 - P31

‘소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도 우리는 숫자 1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소수를 정의할 때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다.

선택 1: 소수는 1과 자기 자신 외의 자연수로는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수
선택 2: 소수는 1보다 큰 자연수 중 1과 자기 자신 외의 자연수로는 나누어떨어지지 않는 수 - P32

즉 소인수분해의 유일성의 결과가 자연수의 구조를 매우 풍요롭게 해서 이를 바탕으로 자연수 구조의 심오한 특징을 밝혀낼 수 있다. 그래서 수학에서 소수에 관한 정의를
‘선택 2‘로 택하는 것이다. 그 정의가 이루어진 뒤로는 뒤돌아보며 한숨짓는 일은 없다. - P35

(무리수는 두 정수의 비의 형태로 나타낼 수 없는 수, 즉 분수로 나타낼수 없는 수다.) - P35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학에서처럼 삶 속에서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기로에 놓였을 때합리성과 논리성을 꼼꼼하게 적용하는 수학적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우리의 선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선택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겸손함과 긍정의 마음으로 그 선택의 결과들을 성찰하며 다시 일어서는 용기일 것이다. - P36

아치형의 이 강력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바로 힘의 나눔, 협력으로부터 온다. 무거운 돌의 하중을서로 나누어짐으로써 세월을 버틴다. 힘을 더 많이 나누어가질수록 더 많은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아치형 구조 속에는 나눔과 협력의 아름다운 정신이 녹아 있다. - P39

힘이 평행사변형의 원리를 따라 합해지고, 나누어지는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을 벡터vector라고 한다. 여기서 힘은 화살표 모양으로 방향과 길이(무게)를 표현한다.
수학적으로 이 착상이 위대한 이유는 벡터라는 개념을 통해 하중(힘)을 덧셈과 뺄셈으로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루기 어려운 하중이라는 문제를 숫자처럼 덧셈과 뺄셈을 통해 다룰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진정 위대하고도 놀라운 아이디어다. - P40

어쩌면 고대 사람들은 신이 만들어준인간의 발바닥 모양에서 그 비밀을 발견하고 아치형의 건축물을 고안해냈는지도 모른다. - P40

아치형의 나눔과 협력의 원리는 우리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통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이 있다.
함께 나누는 삶, 함께 협력하는 삶은 우리의 삶의 무게를가볍게 해준다. - P41

하나의 다각형에서 다른 다각형으로 계속 변화를 주는데도  v-e+ f = 1이라는 값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v-e+f의 값을 ‘오일러의 수Euler‘s Number‘라고 한다.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일러 Leonhard Euler는 최초로 꼭짓점의 개수, 모서리의 개수, 면의 개수 사이에 수학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것은 수학의 핵심인 위상수학의 서막을 여는 의미 깊은 발견이었다. - P48

역사적으로 보면 외각의 입장에서 도형의 불변적인 성질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은 데카르트로 알려져 있고,
꼭짓점과 모서리, 면의 개수 사이의 관계에서 도형의 불변적인 성질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은 오일러로 알려져있다. - P48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난 모습들,
그 뾰족함은 나를 찌를 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 뾰족함은 더더욱 스스로 깎고 또 깎아 둥글게 만들어야 한다. - P49

뾰족한 돌덩이가 이리저리 구르는 동안 부서지고 깎이면서 동그란 돌멩이가 되듯이, 사람의 성품도 마찬가지다. - P49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지며 세월의풍파와 어려움을 견뎌내다 보면 어느 순간 돌멩이처럼 둥그렇고 부드러운 성품이 되어간다. 바로 그 과정이 인격이성숙해지는 시간이다. - P50

삶에 지쳐 있을 때 우리 자신에게도 위상적인 성질이 변
화하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돌에게는 그것이 구멍이듯이, 자신의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 구멍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우리도 진정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51

"피타고라스 선생님, 당신의 제자는 모두 몇 명인가요?"라고 누군가가 묻자 피타고라스가 대답했다.
내 제자의 2분의 1은 수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4분의 1은자연의 이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 7분의 1의 제자들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고, 그 외에 여성 제자가 세 사람 있습니다.
도대체 제자가 몇 명이라는 말인가? - P52

28

어떤 파티에 남자 99명, 여자 1명이 참석해 남자의 비율이 99%였다. 그런데 파티 중에 몇 명이 떠나 남자의  비율이 98%가 됐다. 몇 명이 떠났을까? - P56

50 - P57

이처럼 양 한 마리당, 돌 하나를 대응시키는 것을 수학에서는 일대일 대응 관계라고 한다. 
이렇게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방법은 인간 근원에 깔린 가장 자연스러운 사고다.
그러나 인간이 수를 세고 셈을 하는 것은 자연 발생적인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꽤나 편리하게 사용해오다 보니그것이 마치 인간의 근원에 맞는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 P59

이 착각을 깬 사람이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 GeorgCantor다. 집합론의 창시자이기도 한 칸토어는 일대일 대응을 통해 유한에서 무한으로 가는 체계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 P59

이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는 신비의 세계인 무한을 마음속에 투영시킬 수 있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무한을 마음속에 그릴 수도 있고, 만나볼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유한해도 수학적인 면에서는 결코 허무하지 않다. - P61

1. 하나에 하나를 대응시켜야 한다.
2. 보내면 반드시 받는 쪽이 있어야 한다.

함수에서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 사람에게이름으로 대응시킬 수도 있고, 나이로도 대응시킬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속한 국가로도 대응시킬 수 있다. 이렇게 대응하는 규칙을 함수라고 하는데, 수학에서 관심이 있는 것은 각 대응 방식에 규칙성이 있을 때다. 둘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규칙을 통해 상호관계의 관련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64

근대에 들어서도 음수의 개념은 있었으나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수를 수직선의 점으로 대응함으로써 음수의 개념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원점을 0이라고 할 때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1, +2, +3, ··· 왼쪽으로 가는 것을 -1, -2, -3,..…으로 나타내, 수가 원점을 중심으로 +, -의  대칭 관계를가지면서 음수가 드디어 수학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칭성을 통해 수는 균형과 보편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 P69

결국 인생은 +가 있으면 -가 있고, –가 있으면+ 가 있는  제로섬  zerosum과도 같다.
이러한 대칭적인 보편성의 개념은 과학 분야와 사회과학 그리고 많은 제반 학문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흥미롭게도 이 당연한 대칭성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다.
탈러는 ‘2-2=0‘이 심리학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연히 만 원을 주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만 원을 잃었을 때의 상심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이 주장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심리적 불균형을 매우 정교하게 실험한 결과 201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 P70

그 이유는 수와 공간의 만남이 수직선에서 이루어지기때문이다. 즉 대수를 대변하는 수와 기하를 대변하는 공간이 기가 막히게 만나 놀라운 모습을 이루는 것이 수직선이다. 서로 다른 구조의 수학이 만나 그것을 더욱더 풍요롭게만든 경우다. - P71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수직선의 수학적 의미와 같지 않을까 싶다. 수와 공간이 만나 아름다운수직선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어느 쪽에도 예속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더욱 가치있고 풍성하게 하는 관계처럼 말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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