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엌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척해보았다. 내가 죽었다고믿고 그대로 계속 죽어 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나는 벌렁 누워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숨을 꾹 참았다. 물론 하염없이 참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오래 숨을 멈추었다가, 한 번 들이마신뒤 다시 멈추었다.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죽은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텅 비워보았다. - P200

이것이 죽음이라고 나는 생각하려 했다. 이것이 죽음이다. - P200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단순한 어둠이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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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표현을 못하겠어." 그녀는 말했다. "요즘 계속 그래. 정말말을 잘 못하겠어. 무슨 얘길 하려고 하면 항상 엉뚱한 말만 떠올라. 엉뚱하거나, 완전히 반대거나. 그래서 그걸 고치려고 하면이상하게 더 혼란스러워져서 엉뚱한 말이 나오는 거야. 그러다보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려. 마치내 몸이 두 개로 나뉘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한가운데 아주 굵은 전봇대가 서 있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돌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제대로 된 말은 언제나 또하나의내가 갖고 있고, 나는 절대로 쫓아가질 못해." - P25

수업을 빼먹고 당구장이나 가는 고등학생이라면 자살을 해도 별로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 P29

그러나 내 안에 무언지 모를 부연 공기 같은 것이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공기는 또렷하고  단순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형태를 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말이다. - P29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P29

나는 그때까지 죽음이란 것을 타인에게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 확실히 우리를 붙잡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붙잡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생각 같았다. 삶은 이쪽에 있고, 죽음은 저쪽에있다. - P30

그러나 친구가 죽어버린 그날 밤을 경계로 나는 더는 죽음을그렇게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열일곱 살이었던 5월의 밤에 내 친구를 붙잡은 죽음은, 그날 밤 나까지 붙잡았기 때문이다. - P30

플라타너스 잎을 밟을 때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이었다. 그녀가 찾고있는 것은 내 체온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 P32

나는 그녀의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눈을 말끄러미 바라볼 때 드는 느낌과도 같은,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는그런 기분을 어디로 가져갈 수도, 어디에다 넣어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걸칠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하는 말들은 내 귀까지 닿지 않았다. - P42

반딧불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안에 오랫동안머물러 있었다. 감은 눈의 두터운 어둠 속에서, 그 약하디약한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고 떠돌고 있었다. - P47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조금 앞에 있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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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관청이 아전과 군교를 조사하면, 비록 그 일이 사리에 어긋나더라도 수령은 순종하고 어기지 않는 것이 좋다. - P95

상관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 P96

예(禮)는 공손하지 않으면 안되고 의(義)는 결백하지 않으면 안되니,예와 의가 아울러 온전하고 온화한 태도로  도(道)에 맞아야 군자라고한다. - P97

이웃 고을과는 서로 화목하고 예의있게 대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이웃 고을 수령과는 서로 형제의 우의가 있으니, 저쪽에서 실수가 있더라도서로 틀어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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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라고 해야 겨우 십사년전의 일이지만, 나는 어느학생 기숙사에서 살았다. 대학에 갓 들어간 열여덟 살 때였다. - P9

물론 비용문제도 있었다. 기숙사 비용은 자취생활에 비해 월등히 쌌다. 나야 물론 가능하다면 아파트를 빌려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고 싶었지만, 입학금이며 등록금이며 매달 송금받을 생활비를 생각하면 그런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다. - P9

이 기숙사의 유일한 문제점은 문제점이라고 할지 어떨지는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영자가 어느 극우 인물을 중심으로한 정체불명의 재단법인이라는 사실이었다. - P10

기숙사 입소 안내 팬플릿과 기숙사생 규칙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교육의 근간을이루어 국가에 유익한 인재를 양성한다.‘ 이것이 이 기숙사의 창설 정신이다. - P10

그리고 일상생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우익이든 좌익이든 위선이든 위악이든 별 대단한 차이는 없었다. - P11

기숙사의 하루는 장엄한 국기 게양과 함께 시작된다. 물론 국가도 흐른다. 국기 게양과 국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이것은 스포츠뉴스와 행진곡의 관계 같은 것이다. - P11

어째서 밤에는 국기를 거둬들이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밤에도 국가는 멀쩡히 존속하며,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국기의 비호를 받을 수 없다는 건 아무래도 불공평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런 데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신경쓰는사람은 나 정도이지 않을까. 하긴 나도 어쩌다 문득 그런 생각이들었을 뿐이지 깊은 의미 같은 건 전혀 없다. - P13

"나는 지, 지, 지도 공부를 하고 있어." 그는 처음에 만났을 때이렇게 말했다.
"지도를 좋아해?" 나는 물어보았다.
"응, 졸업하면 국토지리원에 들어가서 말이야, 지, 지도를 만들 거야."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소망이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 P15

그때까지 나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지도를 만드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도‘라는 말을 할때마다 더듬는 인간이 국토지리원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도신기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 말을 더듬기도 하고 안 더듬기도했지만, ‘지도‘라는 말이 나올 때만큼은 백 퍼센트 확실히 더듬었다. - P15

"체력이 상당히 좋구나." 국수를 다 먹고 나서 내가 말했다.
"놀랐어?"
"응."
"이래 봬도 중학교 때는 장거리 선수였어. 게다가 아버지가 산을 좋아한 탓에 어릴 적부터 일요일만 되면 등산을 했고. 그래서 지금도 다리 하나는 튼튼해."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녀는 웃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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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自由, Ελευθερία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Den elpizo tipota.
Den fopumai tipota.
Eimai eleftheros.

- Nikos Kazantzakis‘s Epitaph

King Crimson 의 Epitaph 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 임종 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메모에서

시골의사 박경철.
지금 무얼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나보다 훠얼~~씬 더 잘 살고 계시겠지만.
그리스문명 강연도 하시고, 찰스님과 포옹도 하시고 했었는데.
그리스 기행1-문명의 배꼽 그리스 이 나올때 무지 기대했었다. 기뻤다.
이 멋진 책을 앞으로 아홉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두번째 권 초고도 마친 상태라 했으니!
기대는 한없이 컸으나, 이 후 출간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 10년이 지났다.
사람일은 알 수 없다 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 😥

문명의 배꼽 그리스 에필로그 p.432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 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박경철님과 오달수님 이미지가 비슷하다.
나만 그런 것인가? 사진 올리고 싶지만 참는다.

King Crimson 의 Epitaph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brightly glea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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