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땅과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 뿐.  - P151

결국 우리는 이해하게 되지. 먼지 알갱이 하나가 다른 먼지들을 바라보는 식으로 존재하는(무한을 곁에 두고)이곳에서 이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는 실제로 밀레의 그림 속 인물들임을. - P151

황혼 무렵 양떼의 귀가는 어제 내가 들은 교향곡의 피날레 같았지. - P151

1884년 초반 고흐의 어머니는 다리를 다치는데, 이 기간 동안 고흐는 어머니를 돌보며 부모와 어느 정도 화해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세탁실에 아틀리에를 만들면서 그 지방의 직조공들을 소재로 여러 점의 습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또한 농촌지역인 뒤에넌이 지니는 예술적 가능성에 매료당한 그는 많은 풍경화와 농부들의전원생활을 담은 그림을 그린다. - P153

이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에 불안감을 느껴 두 사람의 관계에 긴장이 감돌게 되지만,
그래도 예술에 대한 둘의 대화는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 밝은 색조 사용과 혁명적인 기법으로 파리에서인기를 누리던 ‘인상파 화가‘ 그룹에 대해 고흐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도 테오를 통해서인 듯싶다. - P153

안트베르펜에서 그는 새로 문을 연 레이크스 미술관에 전시된 옛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며, 1886년에는 안트베르펀 아카데미에 등록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의 거친 표현방식과 독학의 습성은 전통을 고수하는 엄격한커리큘럼과 양립할 수 없었기에 그는 갑자기 이 과정을 그만두고 1886년 3월에 예고도 없이 파리에 나타난다. - P153

반 고흐가 쉴새없이 썼던 편지가 이 시기부터 1888년 초까지는 뜸해진다. 편지를 주고받던 상대인 테오와 함께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그 시절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변화로 미루어, 그가 인상파 핵심 그룹의 화가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에밀 베르나르, 조르주 쇠라 같은 화가들인데, 특히 쇠라의 점묘법은 반 고흐의 성숙한 화법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 P153

난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그대로 화폭에 옮겼어. 초라한 흙바닥 방 안에서 베틀 앞에 앉아 일하는 직조공과창문, 그리고 어린이용 의자 등이지. - P160

내가 그린 데생들을 두고 네가 한 말이 있지. 그것들이 아주 훌륭해서 밀레나 도미에의 작품과 나란히 둘 수 있다면 너 역시 기꺼이 떠맡겠노라고, - P165

4월에 네게 보낼 작정이었던 데생들을 이달 들어 이미 그려두었단다. 겨울 정원, 가지 친 자작자무,  포플러나무 길, 쇠새를 그린 데생이야. - P165

색채의 법칙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놀랍단다. 우발성이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야. - P171

이론과 교육은 본질적으로 항상 무용하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지. - P171

다른 계절에서 느껴지는 풍요롭고도 단순하며 보기에도 좋은 효과를 여름에서는 찾기 어려워. 봄은 부드러운 녹색의 어린 밀과 연분홍빛 사과 꽃을, 가을은 노란 나뭇잎들과 보랏빛의 대비를 연상시키지. 겨울은 검은 형체들이 있는 눈을 의미해. - P173

여름이 황금빛 구릿빛 밀 안에 든 오렌지색 요소와 다양한 푸른색의 대조라고 치자. 각 계절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려면 마찬가지로 각각의 경우에 보색의 대조(빨강과 초록, 파랑과 오렌지색, 노랑과 보라, 흰색과검정)를 이용할 수 있을 거야. - P173

[1885년 4월 5일]
요 근래 일어난 일 (아버지의 죽음)로 인해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부터 한 주 내나그림에만 몰두했지. - P179

인상파 화가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몰라. 하지만 누가 이 유파의 주동자인지, 농촌 생활과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누구를 중심으로 모여드는지는알고 있단다. 다름 아닌 들라크루아, 밀레, 코로 같은 화가들이야 좀 서툰 표현일지 모르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이래, 말하자면 데생이나 색채 사용에서 규칙이나 원칙, 혹은 근원적인 진실들이 어떤 개인들보다는 존재한다는 느낌이지. 무언가 진짜를 찾아냈을 때 기대게 되는 그런 진실들 말이다. - P181

"복합적인 색조란 무엇인가? 중성적인 색조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팔레트를 가지고 직접 보여주는 편이 나을 거야. - P183

무엇보다 그림 안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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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이지의 저택’ 안의 이 별관은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동기로 세웠을까?

"에도가와 란포 말인가요? ‘소년 탐정단’ 시리즈 중에 아마 그런 책이 한 권 있죠?"

"『기면성의 비밀』. 기면성은 괴인 40면상의 아지트였다죠?"

‘기면관’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린다고 해도 될 만큼 기묘하고 으스스한 장식이었다.

‘의학박사 후리야기 산테쓰’로 말하자면 그 유명한 『흑사관 살인사건』의 등장인물이 아닌가? 60년도 더 전에 오구리 무시타로가 창조한 가공인물의 ‘환생’을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머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생과 마찬가지로 첫 참가자입니다. 이것도 오니마루 씨에게 들은 정보인데 경찰이라나 뭐라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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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제독의 빅토리호, 쿡 선장의 엔데버호도 참나무로  만들었고, 영국왕립 해군의 공식 군가의 제목 또한 참나무의 심장(Heart of Oak, 용맹스러운 마음)」이다.  - P179

나폴레옹자신도 종국에는 어느 쪽이든 대륙의 가장 강한 세력이 적들과 동맹을 맺는 익숙한 전략에 그 자신도 결국 보기 좋게 당하게 되지만 말이다. 나폴레옹의 사례야말로 거의 모두에게 해당됨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 P180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 14개의 영국령 섬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 가운데 적어도 한 군데 정도는  해가 뜨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한밤중에 케이맨 제도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제도)는 어두컴컴하겠지만 남태평양의 핏케언 제도는아직 한낮일 것이다. - P183

그렇다고는 해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끝은 있게 마련이다. 대영제국의종말의 서막은 나중에 만나게 될 두 세력이 부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두 세력은 바로 독일과 미국이다. - P183

힘의 균형추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 P183

21년 뒤 아찔한 낭떠러지 앞에 아슬아슬하게서 있던 유럽은 또다시 발을 헛딛고 만다.  - P184

이번 전쟁은 야만성 면에서도 이전 전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리고 아예 대영제국의 허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 P184

한쪽 발은 미국에,
한쪽 발은 EU에 (그러나 깊지는 않게) - P186

당시 영국이 저지른 일련의 판단착오들 가운데 하나는, 이집트를 침공해서 수에즈 운하를 점령해 그것을 국유화하려는 이집트정부의 결정을 철회시키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사전에 미국에 알리는 것을 생략한 것이다. 화가 미리끝까지 치민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당장 영국군을 철수시키도록 했다. - P187

1962년 미국행정부 내 특별 고문인 딘 애치슨은 "영국은 제국을 잃었지만 자신의 역할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뼈아픈 지적이다. - P187

1963년 영국의 첫 가입신청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
"잉글랜드는 사실상 섬나라이자 해양 국가로서상호 교역망과 시장, 공급망 등을 통해 다양하고가장 먼 나라들과 이미 연결돼 있다. 또 영국은기본적으로 공업과 상업 활동을 추구하며 농업부문은 아주 미약하다. 영국이 하는 일들은 모든부분에서 매우 뚜렷하며 독창적인 관습과 전통에기인한다." - P189

브렉시트 이후
혼성 전략이 필요해지다 - P192

2016년 이후 영국은 본능적으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힘을 감안하면 이 행동도 이해가 간다. - P192

그래도 친구는 있다 - P196

최고의 강국은 아니어도 차상위 강국으로 - P199

북아일랜드 관광청에 따르면 TV 시리즈인「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주요 촬영지가 됐던몬산맥, 케언캐슬을 비롯한 여러 장소를 보러2019년 한 해 동안 35만 명이 찾아왔다고 한다. - P200

영국 해군은 예전에 비하면 심하게 위축되긴했지만 최신예 항공모함 2척과 전 세계에서 가장앞선 구축함 6척을 보유하면서 여전히 가공할 함Unusunda대를 갖추고 있다. 영국에 도달하려면 먼저 이들부터 상대해야 한다. - P201

스코틀랜드가 절교를 선언한다면? - P202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될 겁니다. 파슬레인과쿨포트를 이용하지 않고 영국의 다른 곳에 전략적 전쟁 억제를 위해 필요한 시설들을 다시 건설하는 것은 사실상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할 듯싶습니다." - P203

그런데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파탄의 종착역이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재 영국에 속한 북아일랜드에서 슬슬 달아오르고 있는 아일랜드와의통합에 대한 찬성 여론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아일랜드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거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뒤 1922년에 건국되었다. 이는 죽어가는 대영제국의 질질 끄는 으르렁거림의 시초였다. - P205

"영국은 바다에 자리잡은 섬집단인데, 그 바다가 거대한 대륙의 앞바다이며 맞은편 해안이 들쭉날쭉하다는 단순한 사실에는 엄청난 중요성이담겨 있다." - P206

매킨더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은 그 안에서 침략을 정당화할 구실을 찾는대신 지정학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P207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한 지 두 세기 반이 지난지금 영국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할 수 있는한 많은 곳에서 말이다. 대영제국 이후, 그리고브렉시트 이후 그들은 친구이면서 대등한 입장이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론 늘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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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마시고, 화장실을 짓고, 법을 만드는 친구들이 해협을 건너오기 전까지 브리튼은 역사가이뤄지고 있던 곳의 변방에 있는 그저 춥고 축축하기만 한 커다란 섬일 뿐이었다. 이곳에는 읽고쓸 줄도 모르는 야만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한마디로 무언가를 배우는 대신 서로 싸우는 데만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족들 말이다. - P170

만화 『갈리아 사람 아스테릭스』가 오늘날 프랑스라는 조그만 땅을 지키는 얘기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정작 켈트족의 브리튼에서는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 P170

반면 로마가 잉글랜드 남부의 여러 부족을 평정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로부터 20년 후에도 로마 군단은 잉글랜드 동부에 살았던 이세니족의 부디카 여왕이 지휘하는 거대한 반란 세력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 P170

팍스 로마나가 사라지자 다른 침입자들이 밀고 들어오기가 한층 쉬워졌다. 처음엔덴마크와 독일 북부 방향에서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이 들어왔다. 이들이 정복한 지역은 로마인들이 점령했던 지역과 대충 비슷했다.  - P171

그리고 늘그랬듯 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 지역 부족들의거센 저항에 부딪히다 보니 동쪽과 서쪽이 다시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 P171

이제 노르만족과 그들이 영국에서 가장 널리알려진 연도인 1066년으로 올라가 보자.
그해, 훗날 정복자 윌리엄이라는 호칭을 얻게되는 노르망디의 대공 윌리엄이 영국해협을 건너와서 남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대를 물리친 뒤 런던으로 진군하여 스스로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 P173

그 중 존 왕은 내전을 피하고자 1215 년에 왕권을 제한하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서명하는 데 동의한다. 이헌장은 이후 근대 법체계를 마련하는 토대가 된다. 평민들의 권리는 한 발짝도 개선되지 못하던시대에 마그나 카르타는 지금까지도 영국의 정치적 논쟁에서 거론되는 자유를 상징하는 문서가되었다. 또 미국의 헌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P174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관 중 한 명인 데닝  경은 이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헌법문서"라고 칭하고 있다. - P174

엘리자베스 여왕은 잉글랜드를 부흥으로 이끈 군주였다. 그의 치세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월터롤리가 주도한 발견과 해적의 시대, 스페인 함대격파, 그리고 셰익스피어로 기억된다. - P175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양측을 위한 윈윈 전략 - P176

여기서 다양한 전략이 나온다.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패권국이 출현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늘 힘의 균형을 추구해 왔다.  - P176

요컨대 그와 같은가능성이 대두하면 그 반대편에 서는 식이다. 이른바 역외균형 전략(강대한 세력이 아닌 세력을 지원하여두 세력 간의 긴장을 키워 반대편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전략을펼치는 것은 섬 전체를 확실하게 통제하겠다는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 P176

해상권을 장악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제국 - P178

역시 핵심은 해상 패권이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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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할 ‘나쁜 소문’

A씨에게

기면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저,박수지 역

세상에는 자신을 꼭 닮은 사람이 반드시 세 명은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진위는 잠시 제쳐두고 시시야 가도미鹿谷門는 그 남자를 만나기까지 그 정도로 자신과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미로관의 살인』은 시시야 가도미가 지금의 필명으로 발표한 첫 번째 소설로, 말하자면 추리소설가 데뷔작이다. 1988년 9월에 간행되었으니 벌써 만 4년이 지났다.

휴가 교스케의 첫 작품 『너희는 그 짐승의 이름을 부르지 말지어다』는 그해 초에 출간되었다.

현실에서 ‘미로관 살인사건’이 일어난 건 1987년 4월이니 벌써 5년 반 전의 일이다. 이제 와서 그 사건과, 그것을 ‘재현’한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마음은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이쪽 귀가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대신 가주셨으면 해서요. 저 대신 그 모임에 참석해주세요."

"제가 대리로 출석해도 되는 겁니까?"

"조건이 맞는 몇 사람을 초대해서 1박 2일을 함께 보내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그것뿐인데 참가자 한 사람당 무려 200만 엔이나 사례금을 준다고 해서."

"그렇게 외진 곳에 세운 건물치고는 상당히 훌륭한 저택입니다. 집주인이 취미로 수집한 진기한 가면을 전시해놓았는데 건물 자체도 상당히 특이합니다. 가면관假面館인지 기면관奇面館인지,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더군요."

그는 때때로 그 꿈을 꾼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하지 않은 그 끔찍한 꿈을.

첫 느낌은 캄캄한 암흑이다.

뭐랄까, 몹시 무기적無機的이고 지독하게 냉혹한, 살아 있는 인간과는 동떨어진 느낌의 그 얼굴을 보고…….

악마.

여기가 정말 도쿄일까? 이렇게 깊은 산골 구석도 도쿄 도라고 부르나?

사실 도쿄는 넓다. 23구區 말고도 많은 시市가 있고, 군郡과 촌村도 있고, 외딴섬까지 있다.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오늘 이런 산속의 외진 곳까지 올 줄이야…….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도쿄라고 하면 여하튼 대도시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도코 역시 그랬다. 대학 진학을 위해 3년 전에 상경하고 나서도 그런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쿠타마나 히노하라촌 같은 지명을 들어도 그게 자신이 아는 시골이나 산촌이라는 풍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벌써 4월인데도 마치 한겨울처럼 추웠다. 오는 도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도착해보니 건물 지붕이며 숲의 나무들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아아, 긴장된다.

……아아, 진짜. 너무 긴장된다.

"니즈키 씨를 위해 준비한 가면입니다. 회장님이 계실 때는 반드시 착용하십시오. 회장님께 민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노면能面*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가는 눈. 구부러진 눈썹을 앞으로 모으고 코 아래에는 옅은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귀공자 가면 같기도 하고 ‘젊은 남자’ 노면 같기도 했다.

* 일본의 전통 가무극인 노(能)의 가면. 남자, 여자, 노인, 신령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가면 컬렉션룸입니다. 저택의 첫 주인인 가게야마 도이치 님이 동서고금의 다양한 가면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고 들었습니다."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수상한 단체의 위험한 집회 같은 거 아니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그 이모가 하쿠산에 있는 가게야마 집안 본가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오늘 이 일도 원래는 이모의 일인데, 일주일 전인 지난달 27일에 갑자기 그녀가 도코에게 연락을 했다.

가게야마가 대답했다. 가면으로 가려져서 표정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 예상했던 위압적인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온화하고 다정한 인상까지 받았다.

"본인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할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늘 밤부터 내일까지 열릴 그 모임의 성격이 예사롭지 않다는 건 분명해졌다. 일본 땅이 아무리 넓다지만 과연 이런 기묘한 모임이 또 있을까? 도코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오늘 모임에 있어서 여러분이 지켜주셔야 할 규칙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가면입니다."

다행히 의심하는 눈치는 안 보였지만, 지금부터 내일 오후에 해산할 때까지 계속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아사카에 사는 신인 작가 휴가 교스케로 행동해야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적잖이 불안했다. 그나마 ‘반드시 가면을 써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창문 자체에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바깥쪽이었다. 굵은 쇠창살이 세로로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마치 감옥처럼.

이곳은…… 이 저택은, 그렇다. ‘나카무라 세이지의 관’인 것이다. 과거에도 시시야가 관련되었던 몇 개의 관…… 십각관, 수차관, 미로관, 시계관, 흑묘관과 마찬가지로 그 나카무라 세이지의 손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니까…….

7년 전의 쓰노지마 섬의 ‘십각관’ 사건 이후로 친구가 된 가와미나미 다카아키가 재작년에 단독으로 쳐들어간 구마모토의 ‘암흑관’. 그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저택에서 한 기이한 ‘체험’ 속에서 그가 목격했다던 기괴한 가면 이야기였다.

문에 자물쇠가 없었다.

손잡이와 일체형의 실린더 열쇠는 물론이고 문고리 하나 달리지 않았다.

호텔 객실이 아니니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창문의 쇠창살이나 마치 감옥 같다는 휴가의 말을 생각하면 문에 자물쇠가 없다는 건 역시 이상했다.

"저 안 깊은 곳에 주인의 침실이 있습니다. 안채에는 방이 두 개 있는데 앞쪽을 ‘대면對面의 방’, 뒤의 방을 ‘기면奇面의 방’이라고 부른다지요. ‘귀신의 가면’의 귀면鬼面이 아니라 ‘기이한 가면’의 기면奇面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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