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는 당시 독립운동계에서 이미 크게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철저한 민족주의자로서 아나키즘과 역사학자, 언론인으로서의명성 또한 자자했다. 약산과 의열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줄 최적의 인물이었다. 1922년 12월, 약산은 의열단원 류자명과 함께 베이징에 머물던 단재를 찾아가 요청한다. 의열단 정신을 완성해줄 글을 써달라고 재밌는 점은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베이징이 아닌 상하이에서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1923년 1월의 일인데, 단재는 왜 상하이까지 내려가서 글을 완성했을까? - P162

<추야술회秋夜述懷> 신채호
외로운 등불 가물가물 남의 시름 같이 하며
일편단심 다 태울제 내맘대로 못할러라.
창 들고 달려나가 나라 운명 못 돌리고
무질어진 붓을 들고 청구 역사 끄적이네.
이역 방랑 10년이라 수염에 서리 치고
병석에 누운 깊은 밤에 달만 누각에 비쳐드네.
고국의 농어회 맛 좋다 이르지 마라.
오늘은 땅이 없거늘 어디다 배를 말꼬. - P163

단재는 1912년 일제가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도입하자
‘일제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면서 호적 등재를 거부했다. 그리고안타깝게도 1936년 2월 뤼순 감옥에서 옥사한다. 당시 단재는 ‘내가 죽거든 시체가 왜놈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해서 재를 바다에 띄워라‘
는 유언을 남겼다. - P165

백정기 의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백정기 의사. 그의 묘는 현재 효창공원 내 삼의사묘역에 안중근,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묘와 함께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 P180

당시 우당이 만주로의 이동을 결심하자 가족들과 동지들은 우당에게
"가서는 안 된다‘면서 적극적으로 만류한다. 그러나 우당은 ‘살 만큼 살았다‘면서 ‘이 늙은 사람도 이렇게 끝까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길을 재촉했다. 어찌 보면 만주행이 사지가 될 것을 스스로예측한 것인데, 우당은 11월 17일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뤼순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65세였다. 앞서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가 후에는 단재신채호 선생도 사망한다. 우당의 묘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성됐으나애석하게도 허묘 상태다.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 P181

대부분의 밀정이 그러하듯 김달하 역시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변절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제에 부역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지사들의 손에 의해 끔찍하게 처단당했다. 밀정다운 말로였는데, 김달하는 최소 10년 이상 일제 밀정으로 살아갔다. 동지를 적에게 팔아넘기는 독립운동의 암적 존재였으므로 의열단과 이회영의 다물단에서 척결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 P181

"김달하는 문학에서 담부한 재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승훈과안창호와도 친한 교제를 해오던 사이로 관서지방에선 상당히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북경에 머무는 동안 자주 김달하와 만나 토론하곤 했는데 그럴수록 그의 박식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다능에 빠져들어가 점점 마음의 거리낌마저 없어졌다." - P182

결국 1925년 3월 말 오후 이인홍, 이기환이 김달하의 집을 기습하여 처단한다. 이 사건은 다물단과 의열단의 합작품이었다. 약산이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서 이를 자세히 언급하는데, 약산은 ‘1925년 3월, 의열단은이들 밀정 가운데서 가장 악질분자인 김달하라는 자에게 마침내 사형선고를 내렸다‘라고 표현했다. - P182

"조선족 동포이자 현지 연구자인 최용수 선생은 중관촌 부근에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로는 어느 것이 정확한지 단언키 어렵다. 최용수 선생이 추정한 레닌주의정치학교 자리에는 우리의 동사무소와 같은 거민위원회가 들어서 있다." - P191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 이태준
약산에게 헝가리인 마자알을 보낸 사람
영화 <밀정>에 주요하게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이 헝가리인 마자알이다. 폭탄 전문가로 나오는데, 실제로 베이징에 머물던 약산에게 폭탄 전문가 마자알을 소개해준 인물이 있으니,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 이태준 박사다. - P195

"저희가 서 있는 이곳이, 1922년 3월 28일 의열단원 김익상이 의열단원 오성륜, 이종암과 함께 일본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처단하기 위해 의거를 일으킨 장소입니다." - P204

김익상은 4월 1일 그곳에서 예심을 마치고 5월 3일 일본 나가사키로 압송되어 9월 25일 나가사키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공소원에서 사형이 인도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김익상은 마지막까지 그다운 명언을 남기는데, 재판장이 ‘무엇이든 피고에게 이익이 되는 증거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김익상은 ‘나의 이익이 되는 점은 오직 조선의 독립뿐이오.‘라는 말을 한다. - P206

다시 오른 천녕사, 그곳을 찾는 사람들
"일본의 개가 되느니 목숨을 건다" - P218

"천녕사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폐허지로 변하였다. 그러나정문 주춧돌과 두 그루의 오동나무는 옛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건축물의 흔적이 주변에 남아 있고, 현판에는
‘천녕사‘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2019년 8월, 확인한 결과 오동나무 대신 플라타너스가 심어져 있다.) - P218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들은 보통 3개 국어를 한다고 들었다. 육사만 해도 우리말과 일본어,중국어에 능통했다. 이 말은 조선 땅에서 자신의 뜻만 어느 정도 굽히고 일제에 부역하면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인데, 그들은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만 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훈련받았다. 말 그대로 일제의 개가 되느니 고난을 택한 거다. 이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한 일이냐. 늦게라도 술 한잔 올리고 싶었다" - P221

재밌는 점은 육사가 약산을 평가한 부분이다. 석정에게 깊은 애정을 드러낸 육사였지만, 약산에게는 ‘중국의 부르주아계급과 야합한다. 사상이애매하고 비계급적이다‘라는 평가를 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는(공산당과 거리를 둔) 약산이 육사 입장에서는 ‘혁명적 정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 P223

"학우 김시현,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고 계속 이곳에 오나? 그럴바에는 차라리 하구가 낫겠어." - P226

"권 동지, 미안하오. 내가 조국 독립을 위해 몸 바쳐 투쟁했는데반쪽 독립밖에 이루지 못했소. 남은 생은 조국 통일 사업에 이바지해주오." - P229

"일개 판사의 몸으로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모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조선 사람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선언서에도명시한 바와 같이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항쟁할 것이다. - P230

우리 조선의 독립선언은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다. 조선 민중은 굶어 죽고 맞아 죽고 하는 가운데 나 홀로 적국에 들어와 사형선고를 받는 것은 광명이다." - P231

"우리 조국강토에서 일본 침략자를 몰아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일본 침략자를 몰아내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무장투쟁입니다. 상대방이 말로 해서 듣지 않으니 두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두드리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우선 힘부터 길러야 하겠습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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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입혀준 깔끔한 외출복 차림으로 아버지를 따라 전철에 탔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삼반규관이 약해서 쉽게 멀미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버지와 전철을 타본 기억이 없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만 틀림없이 버럭 화를 내셨을 겁니다. 그런 상황을 어린 나이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저는 몹시 긴장했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멀미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누나 둘에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과자를 따로 사주는 부모는 없었습니다. 하물며 아버지가 과자나 장난감을 사다 준 기억은 철이 든 이후로 한 번도 없었으니, 정말 놀랄 일이었지요. 과장이 아니라, 기쁨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곳 말이야. 아줌마는 거기가 무서운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단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훨씬 흉측한 뭔가가 너한테 일어날 거라는 기분도 드는구나."

"그러니까 아줌마는, 너한테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뭐라 말할 수가 없구나. 이해해주렴."

아버지에게는 몹시 혼이 났습니다. 만약 어머니였다면 저를 업고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었거든요.

제 입으로 말하기 뭐합니다만, 어쨌든 저는 성실한 아이였으니까요.

내가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 본점의 모 서가에서 B5 사이즈의 컬러 인쇄 서적을 구입한 것은, 아마 2003년이나 2004년이 아니었나 한다. 그 책의 머릿그림 부분 첫 페이지에 실린, 두 장의 그림을 찍은 사진을 보고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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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입혀준 깔끔한 외출복 차림으로 아버지를 따라 전철에 탔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삼반규관이 약해서 쉽게 멀미를 했습니다.

👀 🤔 삼반규관...
첨들어봤다. 무식하다

삼반규관(semicircular canal)

내이(內耳)를 구성하는 두 평형감각기(平衡感覺器) 중의 하나로 회전 가속도를 감각한다.
세 개의 반원형 관(管)이 서로 수직으로 교차하여 내부에는 림프액이 채워져 있다.
이것을 반규관, 또는 세 개이므로 삼반규관이라 부른다. 세 관에 각기 약간 굵은 팽대부
(膨大部)가 있으며 그 안쪽에는 긴 섬모(纖毛)를 가진 감각세 포가 모여 있다.
몸이 좌우·상하로 움직이면 관 속의 림프액에 흐름이 생기고 반원형 관 셋이 입체적으로 조합되어 있으므로 관에 따라 가속도에 차이가 있어 그에 의해 몸의 움직임이 3차원적으로 파악된다.
모든 척추동물에 있다(원구류는 두 개).
무척추 동물에는 전정기관이 있을 뿐이고 반규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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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 雨中怪談

오늘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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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건물에 흥미가 있었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본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고성이나 성관城館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대다수가 영화용 세트였다고 생각되므로, 나는 실존하지 않는 건물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대학은 건축학과에 진학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현실의 건물에는 이상하게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집에,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된 장소로서의 건물에, 아무래도 나는 홀려버렸던 모양이다.

그곳이 일반적인 장소이기에 무서운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그 집’이 무대이기에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괴이 쪽이 역시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소재가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어느 남자의 유소년기 체험담’이 그야말로 딱 그런 이야기에 해당한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다란 관심을 가진 것은, ‘집’에 관련된 그의 기억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온 괴이에 매료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저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꼭 좀 듣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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