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저 자신에게 왕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차라리 해방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해방자라는 칭호야말로동료 시민들이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칭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55

고 자부하면서 "세상에는 가장 멍청한 바보가 세명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 두번째는 돈끼호떼, 그리고 바로 나 볼리바르입니다"라고 자신을 우직하게 원칙만을 고수하면서 봉공멸사(奉公私)한
‘멍청한 바보‘에 빗댄다. 볼리바르, 그는 멍청한 바보였기에 해방자가될 수 있었으며, 해방자였기에 멍청한 바보와 같은 짓을 감히 할 수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위인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 대해 엄격한 사람이다. - P56

씨몬 호세 안또니오 데 라 싼띠시마 뜨리니다드 데 볼리바르 뽄떼이 빨라시오스 블랑꼬(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isima Trinidad de BolivarPonte y Palacios Blanco)라는 긴 이름을 가진 볼리바르 - P56

"우리는 인디오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인도 아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 사이의 중간인종이다" - P62

"당신들이 나에게 준이 120만페소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서 페루에 있는 전체 노예들을 매입해 자유로이 풀어주고 싶소. 만일 한 나라가 국민으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나라를 도와 독립을 쟁취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라고 말하면서 그 돈으로 노예들을사서 해방시켰다고 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 P64

전쟁터를 떠돌아다녔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틴아메리카 헌법의기초를 세웠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 원인을 볼리바르는 스스로 "혁명을 위해 몸
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인간 볼리바르의 솔직성이다. 
만년에 그는 자주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구술한 글 
속에는 "아메리카는 이제 통치가 불가능하다. 
(・・・) 마치 혁명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바다를 경작하는 것처럼"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현실에 대한 좌절과 실의, 그리고 고뇌의 표출이다. 한 끄리오요 지성인의 한계라고 말해두자. 자신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한 볼리바르는 1830년 12월 17일, 조용히, 그러나 쓸쓸하게 향년 47세로 한생을 마감한다.  - P67

입관을 준비하던 프랑스 주치의는 고인이 입고 있던 셔츠(유일한 셔츠)가 심하게 해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해진 셔츠 하나만을 남기고 라틴아메리카와 ‘결혼‘한 풍운아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났다. 슬픔에 잠긴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제2해방자의 강림을 기다려야만 했다. - P67

더러는 이 ‘멍청한 바보‘ ‘해방자‘의 한평생 행적을 볼리바르주의‘로 묶어보려고 하지만 신통치 않아 보인다. 볼리바르는 20년 동안불굴의 투지로 암울한 식민통치에서 베네수엘라와 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나마 등 여섯 나라를 해방시킨 강성(强性)의 사건창조적 위인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는 방황하기도 하고, 명예와 돈을 초개처럼 버리며, 노예를 해방하고, 헐벗은산에 나무를 심게 하며, 하나밖에 없는 해진 셔츠를 입고 이승과 작별하는 연성(軟性)의 고매한 인도주의자다. 이 두 성품을 올곧게 갈무리하고 조화시킬 때만이 영생하는 볼리바르의 초상을 재현할 수 있을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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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짐없이 렌즈에 담았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얻는다"라는 신조를 굳건히 간직한 채세계를 누비고 있는 이 ‘보헤미안‘
에게는 어디를 가나 무엇이든 렌즈에 담아내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고 보람이다. - P276

근간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한마디가 금과옥조처럼 회자인구 되지만, ‘보이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얻는 것‘이 있어야지. 떠나면서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남미 고대문명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흥미진지하고 유익한 이 박물관에 축하를 드린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4일." - P276

통상 마주앉음은 믿음과 공유, 소통과 격려에서이다. 그 마주앉음이 위인과일 때, 그 의미는 배(倍)가 된다. 여기 그러한 마주앉음이 있다. 2012년 7월 4일, 칠레 발빠라이소 언덕 위 빠블로 네루다의 고택에서다. 네루다는 칠레 중부의 포도주 산지인 자그마한 마을 빠랄(Parral)에서 자갈을 실어나르는 기차의 기관사였던 아버지와 교사인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 P279

약 한시간 동안의 참관을 마치고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라틴아메리카의 영혼을 불사른 네루다를 기리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4일." - P281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
와서 보라
거리에 뿌려진 피를,
와서 피를 보라
거리에 뿌려진! - P285

네루다는 결코 문약(文)한 시인이 아니라, 시대의 소명을 한몸으로 받아 안고 불평등한 사회불의를 고발하고 무도한 권력자들에 대항하는, ‘피를 부르는 저항의 시인, 민중의 시인이었으며 한 시대의횃불이었다. - P290

빠블로 네루다는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서 자신의 한 평생을 이렇게 함축했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 P291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진군하리라." - P292

체 게바라의 길을 찾아서
‘체 게바라의 길‘은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물이며 표상인 체게바라의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영생으로 승화시킨길이며, 만민이 우러러 따르는 길이다. - P434

이 길을 찾아가는 데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갈래 길이 있다. 
넓은 의미의 길은 볼리비아 땅 어디에서나 게바라가 생을 마감한 라이게라(La Higuera) 마을까지 가는 길일 것이고,
좁은 의미의 길은 바예그란데(Vallegrande) 에서 라이라 마을까지의 52km(읍 중심에서는 60km) 길이다. 이 52km 길은 게바라의 유구가헬리콥터로 운구된 길로, 흔히들 말하는 ‘체 게바라의 길‘이다. - P434

체 게바라의 길

이 길은
어둠 가셔내고
해돋이 맞이하는 길

이 길은
가시덤불 걷어내고
강강술래 하는 길 - P446

우리 함께
걷고 걸으며
넓혀가자 다져가자

그대의 한 길벗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17일 - P448

간호사 쑤사나가 ‘눈을 뜬 채로영면한 체 게바라는 예수처럼 강직한 눈빛과 수염, 장발을 하고 있었다‘라고 회고한 것이 훗날 그를 예수와 같은 반열의 성인으로 신봉하게 되는 진원(源)이 되었다. - P462

확언컨대, 체 게바라가 ‘소아(小我)‘의 일체를 버리고  그토록 활기차고 낙천적으로 ‘위공(爲公)‘의 길, 그래서 ‘영생의 길‘을 터놓은 것은 아버지 에르네스또가 말한 바와 같이 ‘진실에 대한 광적인 애정‘을 품고 ‘리얼리스트‘가  되어 몸소 살신성인했기 때문이다. 구경에 그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지조를 지켜냈다. - P463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끼호떼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000 - P463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기고 박물관 문을 나섰다. 
"사건창조적 인간‘ 위대한 체 게바라 동지의 세계변혁정신 영생불멸하리라! ― 그대를 표상으로 삼아온 한 동양인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17일 오후."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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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숙원이란 첫째로, 학문적으로 해상실크로드의 환지구론(環地球論)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고증하려는 것이다. - P18

다음으로 그 숙원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구지욕(求知慾)이다. - P19

그런가 하면 서구 식민주의자들의 악의에 찬 작간으로 인해 여지없이 난도질당해온 라틴아메리카의 중세는 중세대로 혼미와 역설說)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그 본연이 밝혀질 것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서구 식민주의자들은 ‘미개한 석기시대로부터 서구의 식민화에의한 ‘선진‘ 근대로의 전환을 이른바 ‘라틴아메리카역사 패턴‘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이런 강변이 가당한 역사주의적 논리인가? 이것은 분명 역사의 단절이고 초단계적 도약일진대, 인류사에서 이러한 단절과 도약은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또한 이 땅의 주인인 원주민의 참여 없이 백인에 의해, 백인만을 위해 강요된 ‘분가(分家)‘ ‘분조(分朝)‘를 ‘독립‘으로 둔갑시킨 근대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중세를 맞아 한결같이 원주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인종사회가 된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어만 갔다. - P19

끝으로 학문 외적으로는, 그 시절 인생의 표상으로 삼아왔던 ‘체 게바라의 길‘을 직접 밟으면서 그를 기리려는 마음속 깊은 염원 한가지가 더 있었다. 체 게바라는 자기희생으로 ‘사건창조적 위인‘으로서의참모습을 걷는 길마다에 오롯하게 각인함으로써 세인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길을 찾아 열사의 심원한 세계변혁사상과숭고한 글로벌정신을 되새기려던 계획이 30년 전 중도 좌절된 이래줄곧 절절한 미련으로 남아 있었다. 고스란히 오늘을 기다리면서. - P20

130여년 전 독일의 지리학자 리흐트호펜에 의해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래 문명교류 통로로서의 실크로드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와, 2차대전 이후에는 전래의 오아시스 육로말고도 초원로와 해로(해상실크로드)가 각각 실크로드의 3대 간선으로자리매김했다. - P21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를 문명의 보고라고 하는 것은 우선, 인디오들이 남겨놓은 잉카문명이나 마야문명, 아스떼끄문명 등의 고대문명이야말로 휘황찬란하며, 그것이 곧 인류 공유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때문이다.

문명의 보고이자 미지의 세계이기도 한 라틴아메리카 땅을 한번실컷 밟아보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 P31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로 가는 도중에 굳이 리스본에 들른 것은 그 옛날 이곳 사람들이 대서양 물길을 처음으로 터놓은 후 한동안 그 길을 타고 동반구와서반구가 만났으며, 중세 ‘대항해시대‘의 막이 여기서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도의 닻을 이곳에서 올리기로 했다. - P33

이제 경로(敬老)는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가치가  되어 이 박물관에서도 60세이상의 관람객에게는 입장료를 반값(1.25유로)으로 낮춰주고 있다. - P37

게다가 유럽치고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민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가축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자못 궁금했다. 어제까지는 남의 등을 쳐서 이럭저럭 살아왔지만, 오늘을 전전긍긍하며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지난 시기 일시 허장성세를 부리던 기존 식민제국들의 가냘픈 현실이다. - P47

1502년 1월 구아나바라만(灣)에 이른 포르투갈 탐험대는 만을 강으로 착각하고 포르투갈어로 강이라는 뜻의
‘히우‘ (rio)와 1월이라는 의미의 ‘자네이루‘를 합성해 이곳을 ‘히우데자네이루‘라고 불렀다. 무지에서 온 오명(名)인 줄 뻔히 알면서도, 체면과 위선에 사로잡혀 우겨대는 바람에 아이러니하게도 오명이 관용으로 굳어져 오늘에 이른 경우다. 오용(誤用)이라도 일단  관용으로 굳어버리면 바로잡기란 녹록지 않다. - P57

아, 북방유라시아 초원로의 전유물로 알려진 비너스상이 여기에도 있다니! 인간들의 지적 수준이 비슷하게 될 때, 유사한문명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모건의 ‘심리공통설‘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두고 풀어야 할 숙제다. - P84

도시에서 무엇을 찾아보아야 할지 불현듯 고민이 일어났다. 그 자본주의적 ‘개발‘이란 숱한 희생과 소외, 저주와 환락에 의해 생겨난 ‘배설물‘에 불과할진대, 어떤 것은 알아야 하기에 파헤쳐야 하며, 또 어떤 것은 역겨워서 그만 넘어가야 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것이 고민이다. 그것은 이곳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해가는 첫 공정이기도 하다. - P105

알고보면 ‘개척‘이나 ‘개항‘ ‘개방‘은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다. 어느 한쪽만 보면 악 아니면 선, 한가지로만 보인다. 두 쪽을 맞대고 보아야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이 사실을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내내 내려놓지 말아야 할 화두로 간직하기로 결심하며 쌍빠울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P125

묘비의 상단에는 에비따의 다음과 같은유언이 새겨져 있다. "내가 멀리 갔다고 슬퍼하지 말라. 네가 있음으로 인해 내가 있다. 내 모든 사랑과 슬픔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작은 목표를 이루었다."  - P172

방문을 마치면서 스크랩 마지막 두번째 장에 이런글을 남겼다. "사건창조적 인간‘ 체 게바라 동지의 세계변혁정신 영생불멸하리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6월 29일. 남겨서 빛을 발하는 글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주인과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 P203

사랑하는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내가 너를 다시 볼 때는
고통도 망각도 없을 것이다. - P206

"남극문명 이해의 보고! 한반도를 경유한 아메리카로의 고대민족 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있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6월 30일 오후 4시20분." - P213

흔히 ‘마젤란 세계일주‘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노정에서 보다시피 ‘세계일주‘는 그와 엘까노의 합작품이다. 마젤란-엘까노의 세계일주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아메리카와 아시아 및 유럽은 서로가 연결되지 않은 별개의 대륙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 P236

아옌데는 라틴아메리카의 변혁, 이를테면 그 지긋지긋한 남미병을 치유하려고 손발을 벗고 나선 몇 안 되는 변혁의 선구자로 필자가추앙해온 사람이며, 그의 사상과 이념, 정책 그리고 생애까지를 심층탐구해보고 싶었던 인물이다. 동상에는 "나는 칠레가 가야 할 길, 칠레의 미래를 확신한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이 새겨져 있다. 그는 칠레가 ‘가야 할 길‘을 개척하기 위해 한생을 바쳤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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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대신 잡혀간 것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았대요.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형도 두렵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아들이, 즉 제가 세상의 냉대를 받고 직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괴로움이 바로 형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걸 감수하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내가 벌을 받는 것보다 내 가족이 박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실은 아버지가 남겨주신 말이 있어요. 아사바 씨 가족을 돌봐줬으면 좋겠다, 만일 네가 여유가 있다면 유산의 몇 퍼센트는 증여해줄 수 없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사쿠마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죄와 벌의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간단히 답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앞으로도 깊이 고민해봐야 할 테니까 자신의 일을 도와줬으면 한다, 둘이 함께 답을 찾아내자고."

"가즈마 씨의 그 마음, 정말 기쁘게 생각해요. 만일 언젠가 내가 어떤 식으로든 답을 찾아낸다면 꼭 알림 엽서를 보내겠습니다. 그때도 가즈마 씨가 내게 손을 내밀어줄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때는 저도 그 손을 잡고 싶으니까."

"오늘은 이만 가야겠군요. 하지만 잊지 말아요. 그날이 아무리 멀더라도 나는 손을 내밀 겁니다. 약속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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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의 행복을 우선 챙겨야 한다……. 차의 엔진을 켜면서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내가 한 말이지만 참 괜찮은 얘기였다고 내심 흐뭇해했다.
그게 큰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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